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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강대국들이 자국의 핵심이익(core interest)를 위해 구사하는 정책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비강대국들이 국제전략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안들 중 하나이다. 개별 국가들이 어떻게 동맹을 맺고 왜 서로 다른 전략을 채택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오랜 역사를 거쳐 다양한 이론이 제기되어 왔는데, 국가 안보, 경제적 이익, 이데올로기, 그리고 국내 정치사회적 요인 모두가 강대국에 도전하거나, 협조하거나,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이유가 될 수 있다.1) 최근 수십 년 간 중국의 급격한 성장은 이 고전적인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강대국의 이익 추구와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국가와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가 독자적인 학문 분야를 생성하기에 이르렀다.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핵심이익 추구 행위와 관련하여 각국 정부의 대응 기전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이론은 아직까지 도출되지 않았다. 급격하게 성장한 중국의 경제적 입지가 각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대응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지만, 연구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모든 사례를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또한 분석 대상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기에, 여전히 많은 질문들이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중국에 대해 개별 국가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이러한 입장을 설명하는 근본적인 요소인가?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국제 질서에 대한 엘리트들의 공통된 생각이 외교 정책의 수렴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국내 정치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균형을 한 방향으로 기울게 하는 것인가?
이 글에서는 기존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추가적인 연구 주제를 제안한다. 우선 개별 국가들이 강대국, 특히 중국과 관련된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서 경제적 요인이 다른 모든 요인들보다 우선한다는 이론에 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로, 이처럼 각국의 행동 전략 수립의 기전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한 가운데에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의 이론적 접근을 제안한다. 세 번째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향후 적절한 전략 수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어서 라틴 아메리카 역내 주요 국가들 중 칠레와 우루과이의 사례를 통해 이들 국가들이 중국의 핵심이익 전략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분석해 본다. 칠레와 우루과이는 비슷한 수준의 개발 단계에 있는 국가로,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도 유사한 수준을 보인다. 국가 역량이 제한적이고 지리적으로도 중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들 두 국가가 어떻게 중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함으로써 국가 간 상호 관계를 포지셔닝 했는지를 분석한다.
중국의 부상, 국가 간 관계 재정립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에 가입한 중국은 이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며 세계 경제의 핵심 국가가 되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공산품 수출국이자 원자재 수입국으로 부상했고,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과 방대한 경제적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2) 동시에 중국은 군대를 현대화하고 다양한 국제기구에 참여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3)
중국의 부상은 국제 관계에서 중국의 역할과, 중국과 미국 간의 잠재적 경쟁 또는 갈등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4)5)6)7)8)9) 강대국 간의 경쟁에 대한 논쟁을 넘어 중국의 성장은 국제관계와 관련된 고전적인 논쟁을 다수 불러일으켰는데, 대표적으로 안보와 관련한 이론을 들 수 있다. 국가 간 동맹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이론들 중 하나는 안보 프리즘인데, 이 이론은 군사적 역량과 안보 우려에서 동맹의 요인을 찾는다. 그러나 국가의 상대적 힘과 무관한 정치 제도, 문화, 경제 구조 또는 리더십 목표의 차이가 다양한 외교 정책을 설명하는 데 오히려 안보 이슈보다 더 큰 연관성을 보인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국제 관계에 대한 고전적인 이론에서 동맹을 설명하는 다양한 요인들은 상호 연계되어 작용한다. 동맹과 연대를 형성하는 동기는 역사적 경험, 목적, 문화적 영향에 의해 형성된 선호도를 반영하거나 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된다.10) 이러한 배경 하에 안보와 경제 이슈가 중국과의 관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해 볼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전략
중국의 성장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국 및 기타 주요 국가들 간의 패권 다툼뿐만 아니라 중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 대륙의 역내 국가들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수행되었다.11) 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 및 군사력 성장과 정치적 영향력 및 다자 기구 참여의 증가는 이 지역의 국제 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관계에 대한 분석은 미국을 제외한 특정 국가들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중국의 성장에 대한 일본과 호주의 지도자들의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왜 이러한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는지 등의 질문이 연구를 통해 제기되었다.12)
일련의 연구를 통해 중국에 대한 비주요국가들(secondary states)의 입장 분석이 중요하다는 점이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데이비드 강(David Kang)은 ‘중국의 부상: 동아시아의 평화, 권력, 질서(China Rising : Peace, Power, and Order in East Asia)’ 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의 힘에 균형을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중국에 협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등 다양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전략을 분석한 데니 로이(Denny Roy)13)는 상기 국가들이 교역관계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과 연대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성장에 대한 대응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대부분 아시아에 위치한 주변 국가들과 강대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의 전략은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튀르키예,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 등 중견 국가(middle powers), 유럽 국가 또는 소규모 국가들이 이 강대국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연구도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길리(Gilley)와 오닐(O’Neil)은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중견 국가들이 비슷한 경제적, 안보적,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대응 방안은 국가별 성향과 역량이 반영되어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14)
결론적으로, 관계 정립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이 고전적인 논쟁은 중국의 성장과 그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모든 국제연합(UN) 회원국,15) 아시아 국가,16) 중견국가,17) 또는 호주와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들의 특정 사례를 비교하는 등 중국의 성장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연구가 또한 진행되어 왔다.18) 이외의 소규모 국가들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강대국과의 관계 정립과 국가 전략 방향 설정을 위해 향후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칠레와 우루과이의 입장
최근 10년간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e) 전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an Pinera) 전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대통령이 이끈 칠레 정부와 호세 무히카(Hose Mujica) 전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Tabare Vazquez) 전 대통령, 루이스 라카예 포우(Luis Lacalle Pou) 대통령이 이끈 우루과이 정부의 중국의 핵심이익(주권 및 영토 보전, 국가 안보, 경제 발전)에 대한 입장을 비교할 때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양국 간의 광범위한 유사성이다.
지난 10년 동안 칠레와 중국의 관계는 큰 변화 없는 지속성을 보여 왔다. 바첼레트, 피녜라, 보리치 정부는 중국의 주요 관심 지역인 홍콩과 신장 두 지역에 관하여 동일하게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한편 기술 투자 분야에서는 바첼레트 정부가 우호적인 견해를 표명했고, 피녜라 정부는 반대와 중립이 혼합된 모호한 입장을 취했으며, 보리치 정부는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등 다소간의 입장 차이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정부의 입장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경제이다. 바첼레트 정부는 중국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며 양국 관계 개선을 통한 투자 유치를 희망했고, 이는 피녜라 정부에까지 이어졌다. 이후 또 다른 강대국인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며 중국의 투자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되고, 정부의 입장도 반대 쪽으로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세 정부 모두에서 경로 의존성(역사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실용주의를 적용해왔던 것)과 외교 전략(중국을 미래 강대국으로 보는 시각)과 같은 부차적 요인이 작용했다. 여기서 경로 의존성이란 정치적 스펙트럼 측면에서, 그리고 외교부 관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유지해 온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연속성을 의미한다.
우루과이 역시 중국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서 칠레와 비슷한 연속성이 관찰된다. 무히카, 바스케스, 포우 정부 또한 홍콩과 신장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칠레 정부와 유사하게 중국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비우호적이지도 않은 입장이다. 기술 투자에 있어서는 무히카 정부와 바스케스 정부가 호의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편 포우 정부는 중국 기업의 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칠레와 마찬가지로 우루과이 세 정부 모두에서 경제가 정부 입장 결정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특히 무히카와 바스케스 정부는 초기에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 두 정부와 포우 정부 간의 입장 차이는 정부의 이념적 성향과 같은 국내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포우 정부 기간 동안 또 다른 강대국인 미국의 이해관계라는 관련 요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추가 설명 요인은 경로 의존성(이 경우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도입)과 외교 전략(중국을 강대국으로 간주하고 파트너 다변화를 모색하는 등)이다. 우루과이 사례에서 경로의존성의 경우 양국 관계의 실용주의 대신 내정 불간섭 원칙을 도입한 것, 외교 전략의 경우 메르코수르(Mercosur) 경제 블록의 침체 속에서 파트너 다변화를 강조한 것, 이 두 가지 점에서 칠레의 사례와 유사하다.
결론적으로 중국에 대한 양국의 입장은 유사하다. 두 국가 모두 중국과의 관계에서 연속성을 보여왔으며, 모두 경제-상업적 측면이 중국과의 관계의 원동력이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거의 없고 무역통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과의 유대가 곧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국가 간 관계는 경제적인 이유로만은 설명될 수 없다. 칠레, 우루과이의 선택과는 달리 이웃한 파라과이는 중국 대신 대만과의 우호관계를 선택하였고, 아르헨티나의 신임 대통령은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국가 간 입장 차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 각주
1) Williams, Kristen, Steven Lobell, and Neal Jesse. 2012. Beyond Great Powers and Hegemons: Why Secondary States Support, Follow, or Challeng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 Kastner, Scott L, and Margaret M Pearson. 2021. “Exploring the Parameters of China’s Economic Influence.” Stud Comp Int Dev 56(1): 18–44.
3) Kang, David. 2007. China Rising : Peace, Power, and Order in East Asia. Columbia University Press.
4) Buzan, Barry. 2010. “China in International Society: Is ‘Peaceful Rise’ Possibl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3(1): 5–36.
5) Foot, Rosemary. 2006. “Chinese Strategies in a US-Hegemonic Global Order: Accommodating and Hedging.” International Affairs 82(1): 77–94.
6) Friedberg, A L. 2005. “The Future of U.S-China Relations - Is Conflict Inevitable ?” International Security 30(2).
7) Ikenberry, John. 2008. “The Rise of China and the Future of the West: Can the Liberal System Survive?” Foreign Affairs 87(1): 23–37.
8) Johnston, Alastair Iain. 2003. “Is China a Status Quo Power?” International Security 27(4).
9) Mearsheimer, John. 2001.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 W.W. Norton.
10) Ross, Robert S. 2006. “Balance of Power Politics and the Rise of China: Accommodation and Balancing in East Asia.” Security Studies 15(3): 355–95.
11) Goh, Evelyn. 2016. Rising China’s Influence in Developing Asia.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2) Tan, Alexander C. 2012. “China and Its Neighbors: Too Close for Comfort?” In Beyond Great Powers and Hegemons: Why Secondary States Support, Follow, or Challenge, eds. Kristen P Williams, Steven E Lobell, and Neal G Jess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3–206.
13) Roy, Denny. 2007. “Southeast Asia and China: Balancing or Bandwagoning?” Contemporary Southeast Asia 27(2): 305–22.
14) Gilley, Bruce, and Andrew O’Neil. 2014. Middle Powers and the Rise of China. Georgetown: Georgetown University Press.
15) Strüver, Georg. 2014. “‘Bereft of Friends’? Chinaʼs Rise and Search for Political Partners in South America.”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7(1): 117–51.
16) Kuik, Cheng-Chwee. 2021. “Asymmetry and Authority: Theorizing Southeast Asian Responses to China’s Belt and Road Initiative.” Asian Perspective 45(2): 255–76.
17) Gilley, Bruce, and Andrew O’Neil. 2014. Middle Powers and the Rise of China. Georgetown: Georgetown University Press.
18) Köllner, Patrick. 2021. “Australia and New Zealand Recalibrate Their China Policies: Convergence and Divergence.” The Pacific Review 34(3): 4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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