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목숨은 때묻었나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보고 싶더라
살아서 주검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는 살아서 돌아오라.
신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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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집 시인은 영문학을 전공한 지성인으로 대구에서 오래 살다가 돌아간 시인이다. 생전에 미국 시인 휘트먼을 사랑해 그의 시를 번역했고 그의 시처럼 우렁찬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했다.
여기에 읽는 시만 해도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증언하듯 쓰고 있다. 삶에 대한 끈질긴 물음이 있고 살아남은 자의 미안스러움이 들어있다. 음성은 다소 거칠지만 정직하고 정연하다.
시인이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삶에 대한 의지다. 삶에 대한 외경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직하고도 성실한 시인의 목소리가 시류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가뭇없이 묻혀버리는 우리의 현실은 또 다른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