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 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 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 시이다.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 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 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 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낮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 않는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고은 <김삿갓 1>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 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 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구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 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 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했네.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 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 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닳겠네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거리 저마을로 손을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겠다... 제가 뿌린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련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여인네 제 잘못을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서니 행색은 그러하나 양반의 후예(後裔)이고 자존심 있는 남자 아닌가? 그래서 '삿갓'이 한마디 욕을 했단다. 하지만.... '삿갓'이 누군가? 쌍스런 욕은 못하고 단지 두 마디
"해. 해."
*
해=年 그러니, "해. 해."이면 '년(年)'자(字)가 2개, 2年(=이 년!)일까 아니면 두 번 연속이면 쌍(雙)이니 '雙年'일까?
허 허 허....
위 이야기의 아낙네는 다만 실수로 남에게 작은 피해를 줬지만 자신의 행동이 부정(不正) 불법(不法) 반도덕(反道德) 반인륜(反人倫)인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의(義)를 벗어나고 죄(罪)를 범(犯)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삶의 행태(行態)를 본다면 난고(蘭皐)는 무엇이라 욕을 할까?
- 저 절 로 해,,해!-
-<김삿갓의 해학시>-
(情事 정사 1)
爾年十九齡 乃早知瑟琴 - 너의 나이 열아홉에 일찍이도 거문고를 탈 줄 알고
이년십구령 내조지슬금 (김삿갓의 의도는 이년십구녕 이었을 것임)
速速拍高低 勿難譜知音 - 박자와 고저장단을 빨리도 알아서 어려운 악보와 음을 깨쳤구나.
속속박고저 물난보지음
(情事 정사 2)
爲爲不厭更爲爲 不爲不爲更爲爲
위위불염경위위 불위불위경위위
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情事 정사 3)
自知면 晩知고 補知이면 早知 어라 (인용부분)
자지면 만지고 보지이면 조지어라
스스로 알려고 하면 늦게 알아지고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빨리 알아진다.
(정사3은 독음(읽기음)대로라면 음담패설이나 한자의 뜻대로 해석하면 공부의 진리가 담겨있는 심오한 글이라서 많은 카페에서 어디서 온 글인지 몰라도 이말만 많이 인용합니다. 김삿갓의 시나 글은 대부분 이렇게 음담패설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암시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 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 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 시이다.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 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 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 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낮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 않는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고은 <김삿갓 1>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 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 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구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 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 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했네.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 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 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닳겠네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거리 저마을로 손을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김삿갓'이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그 집 아낙이 설거지물을 밖으로 휙~ 뿌린다는 것이 그만 '김삿갓'에게 쏟아졌겠다... 제가 뿌린 구정물을 지나가던 객(客)이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하련만, '삿갓'의 행색이 워낙 초라해 보이는지라 이 여인네 제 잘못을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서니 행색은 그러하나 양반의 후예(後裔)이고 자존심 있는 남자 아닌가? 그래서 '삿갓'이 한마디 욕을 했단다. 하지만.... '삿갓'이 누군가? 쌍스런 욕은 못하고 단지 두 마디
"해. 해."
*
해=年 그러니, "해. 해."이면 '년(年)'자(字)가 2개, 2年(=이 년!)일까 아니면 두 번 연속이면 쌍(雙)이니 '雙年'일까?
허 허 허....
위 이야기의 아낙네는 다만 실수로 남에게 작은 피해를 줬지만 자신의 행동이 부정(不正) 불법(不法) 반도덕(反道德) 반인륜(反人倫)인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의(義)를 벗어나고 죄(罪)를 범(犯)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삶의 행태(行態)를 본다면 난고(蘭皐)는 무엇이라 욕을 할까?
- 저 절 로 해,,해!-
-<김삿갓의 해학시>-
(情事 정사 1)
爾年十九齡 乃早知瑟琴 - 너의 나이 열아홉에 일찍이도 거문고를 탈 줄 알고
이년십구령 내조지슬금 (김삿갓의 의도는 이년십구녕 이었을 것임)
速速拍高低 勿難譜知音 - 박자와 고저장단을 빨리도 알아서 어려운 악보와 음을 깨쳤구나.
속속박고저 물난보지음
(情事 정사 2)
爲爲不厭更爲爲 不爲不爲更爲爲
위위불염경위위 불위불위경위위
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情事 정사 3)
自知면 晩知고 補知이면 早知 어라 (인용부분)
자지면 만지고 보지이면 조지어라
스스로 알려고 하면 늦게 알아지고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빨리 알아진다.
(정사3은 독음(읽기음)대로라면 음담패설이나 한자의 뜻대로 해석하면 공부의 진리가 담겨있는 심오한 글이라서 많은 카페에서 어디서 온 글인지 몰라도 이말만 많이 인용합니다. 김삿갓의 시나 글은 대부분 이렇게 음담패설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암시하는 글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