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와 형님의 관계는 대대로 사귀어 온 정의(情誼)의 돈독함과 서로 허여(許與)함의 깊음으로 볼 때 바로 골육의 형제와 같은데, 더구나 도의(道義)로 서로 기약하였으니 어찌 평범한 동료에 비할 뿐이겠습니까. 오직 이와 같기에 아우가 혹시 마음을 쓰고 처신하는 사이에 잘못이 있게 되면 경계하고 독책하는 도움을 형님과 여러 군자들에게 바라지 않은 적이 없었고, 형님이 혹시 잘못하는 바가 있으면 아우도 역시 마음에 품은 생각을 스스로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대개 기대하는 것이 얕지 않기에 기필코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또한 깊으니, 이것은 형님이 아는 바입니다. 세도가 떨어지고 풍속이 야박해져서 붕우의 도리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비위를 맞추면서 억지로 웃으며 말하여 명리(名利)의 장 안에서 붙좇으며 아첨하여 기쁘게 하는 데에 힘쓰는 자들은, 바로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 정도의 교제를 하는 무리에 불과할 뿐이니 어찌 말할 만하겠습니까.
오봉(五峯) 호 선생(胡先生.남송의 학자 호굉)이 말하기를 “상대방의 실제 병통(病痛)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어렵거니와, 상대방의 실질적인 지적을 수용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상대방이 나의 실제 병통을 지적할 수 있고 내가 상대방의 실질적인 지적을 수용할 수 있다면 붕우의 도리는 아마 거의 지극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아우가 이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지 않은 적이 없고 붕우 도리의 약석(藥石)이 됨을 알겠으니, 우리가 오늘날 힘쓸 바가 오직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아우가 수개월 전에 사람을 통해 형님께서 주점에서 기녀와 방탕한 유희에 빠지는 실수를 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우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마음속의 생각을 웅얼거리기를 “근래 사대부 가운데 진실로 이러한 잘못에 빠지는 자가 많긴 하지만, 어찌 이렇게 훌륭한 벗이 이러한 실수를 면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말을 전한 자가 망녕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전하는 말이 점점 불어나자 지엽적인 내용도 점점 많아졌는데, 사실이 은밀하게 가려져서 제대로 분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형님을 신뢰하는 아우의 마음으로도 역시 마음속에 한 터럭의 의심을 두지 않을 수 없어서 놀랍고 의혹되며 탄식하고 고통스러웠으니, 마치 제 자신을 상하게 하는 듯하였습니다.
이제 막 편지 한 통을 써서 들은 바에 대해서 형님에게 질의하고자 하였는데, 이번에 보내 주신 이 편지를 받고서 비로소 전후 곡절을 알게 되었으니, 형님 스스로 후회하고 자책하는 말씀은 모두 아우가 편지로 형님께 규간(規諫)을 드리고자 한 내용입니다. 형님께서 규간과 책망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깨우치고 후회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무슨 우려를 더 하겠습니까.
대개 이 문제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짐새(독이 있는 새)의 독이 됨이 매우 심합니다. 예로부터 영웅답고 호걸스러운 군주와 정직하고 단정한 선비도 더러 이 문제에 한 번 잘못을 범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마침내 나라를 잃고 자신을 망치는 데에 귀결되게 된 경우는, 도도(滔滔)하게 온 세상이 대부분 이렇습니다.
형님은 주공숙(周恭叔.주행기)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공숙이 서른이 되기 전에 이천(伊川.정이)을 뵈었는데, 공숙의 몸가짐이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외가의 여인과 혼사를 맺기로 말이 오간 적이 있었는데, 공숙이 문과에 급제한 뒤에 그 여인이 두 눈이 다 멀었으나 마침내 아내로 맞이하여 남달리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이천은 “나는 서른 이전에는 역시 이런 일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물러나는 것도 빠른 법이다.”라고 하며 매번 탄식하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 후 이천이 부릉(涪陵)으로 유배 갔습니다. 몇 년 뒤에 공숙이 술자리에서 마음이 가는 여인이 있었는데, 은밀히 사람에게 고하기를 “윤언명(尹彦明.송나라 윤돈)에게 알리지 말라.” 해놓고는, 또 말하기를 “알더라도 또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 이것은 의리를 해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천이 낙양에 돌아오자 화정(和靖.윤언명)이 그 말을 고하니, 이천이 말하기를 “이것은 금수만도 못한 짓이다. 어찌 의리에 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모의 유체(遺體)로 창기(倡妓)와 짝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천의 이 가르침은 어찌 부월(鈇鉞)처럼 삼엄하지 않겠습니까. 한 번 창기와 짝한 것을 곧 금수만도 못하다고 질책하였으니, 데면데면하게 처음 봤을 때는 혹 너무 지나친 듯하나 천천히 곱씹어 보면 일이 미미할 때 방지하려는 심오한 뜻을 미루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대부의 몸가짐은 처자(處子)와 같아야 하니, 여색을 피하기를 마치 화살을 피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옳습니다. 혹 사명(使命)을 받들어 외지에 나가서 잠시 기방의 기녀를 가까이하는 자가 진실로 반드시 의리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역시 이천의 죄인이 되기에는 충분합니다. 하물며 서울의 창기에게 몸을 잃는 것은 바로 인가(人家)에 있는 계집종의 남편처럼 되는 것이거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미혹되고 푹 빠져서 방탕하여 마침내 평소의 명성과 품행을 모조리 사라지게 한다면, 그 일신과 조상의 수치스러움, 그리고 맑은 조정과 사림의 치욕스러움이 됨을 응당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근래 사대부 가운데 이와 같은 무리가 있는데 스스로 풍류 있는 호방한 행동이라고 여기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유식한 선비가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어 더럽게 여기고 입에 올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형님께서 주공숙의 순간의 연정을 참지 못하여 별안간 이런 함정에 빠져서 장차 평소의 명성과 품행을 모조리 상실한 무리로 하여금 도리어 형님을 조소하게 하고 함께 목욕하는 것을 기뻐하게 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것이 아우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놀란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 달 내내 즐거울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옛사람 가운데 소자경(蘇子卿.송나라 소무)과 호방형(胡邦衡.송나라 호전) 같은 만고의 고절(孤節)로도 역시 이런 실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만약 즉각적으로 각성하여서 금강(金剛)의 검으로 그러한 생각머리를 잘라내 버려서 마침내 다시 싹트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어찌 자신에게 누가 될 만하겠습니까. 이것이 주자께서 이른바 ‘잘못을 고치는 데에는 용기 있는 행동이 중요하고, 환란을 예방하는 데에는 겁을 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니, 서로 보완한 뒤에야 진정 의를 실천하고 덕을 높이는 공을 이룰 수가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다만 그 한 가닥 연정(戀情)의 뿌리를 끝내 용감하게 뽑아버리는 것이 어려우니, 진실로 정갈한 재 백 섬으로 오장육부를 세척할 수 없으면 들불이 완전히 다 타지 않아 봄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불씨가 살아나는 것과 같을까 은근히 걱정됩니다.
대개 우리는 벼슬과 여색 두 가지 문제에 대해 타파함이 투철하지 못하면 곧 더 이상 말할 만한 것이 없으니 더욱 권면해야 합니다. 애초에 면대하고 다 말씀드릴까 생각했는데 마침내 편지를 올리기 전에 지금 형님의 편지를 받아서 비로소 이렇게 마음을 다 드러냈습니다. 그러니 일마다 즉시 규간하는 뜻을 완전히 잃었고, 게다가 이전에 제 자신을 꾸짖는 현명함이 혹 타인을 꾸짖는 것만 못할까 두렵습니다. 번역: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