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房山 禁葬地
위치 ; 안덕면 사계리 산16번지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방산(山房山)은 높이 395m이며, 지질학적으로 보면 유동성이 적은 조면암질안산암(粗面岩質安山岩)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상화산(용암원정구)이다. 분출되어 나올 양(量)은 많은데 압력이 약해서 천천히 나오면서 굳어지다 보니 높은 봉우리를 형성하면서 분화구가 없어져 버렸고 사방이 절벽을 이룬다. 사면경사가 50°내외라고 하지만 육안으로 가까이에서 보면 수직처럼 느껴진다.
신생대 제3기에 화산회층 및 화산사층을 뚫고 바다에서 분출하면서 서서히 융기하여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주상절리(柱狀節理)에 따른 침식 흔적 외에도 200m가 넘는 높은 지역에서도 풍화작용을 받은 풍화혈(風化穴, tafoni)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다.
높이 200m의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산방굴은 해식동굴로 부처를 모시고 있어 산방굴사라고도 하는데, 길이 10m, 너비 5m, 높이 5m 정도이다. 고려시대의 고승 혜일(蕙日)이 수도했다고 하며, 귀양왔던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은 이 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하며,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산의 남쪽에는 화산회층이 풍화된 독특한 경관의 용머리해안이 있으며, 이곳에 하멜 표류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가파도·마라도·형제도·화순항의 경관이 뛰어나다. 정상으로 오르는 4곳의 등산로가 있으나, 주로 북쪽 사면을 이용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백과)
산방산에는 포수와 산신, 여신 산방덕 등의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금장(禁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산방산은 예로부터 금장지라고 해서 무덤을 써서는 안 되는 곳으로 알려졌다. 꼭대기에 있는 편평한 장소를 질메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무덤을 쓰면 그 집안에 반드시 힘센 장수가 나오거나,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든다는 얘기가 전해내려왔다. 가뭄이 계속되면 주민들은 몰래 묘를 쓰지나 않았나 하여 확인을 한다.
어느 해 여름 몹시 심한 가뭄이 계속되어 두 달 넘게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누가 몰래 무덤을 썼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이 산방산 꼭대기 편평한 장소를 올라가 보았지만 몰래 쓴 무덤을 찾지 못하고 며칠을 돌아다녔는데 결국은 한 사람이 묘를 찾아냈다. 찾은 무덤은 보통 무덤이 아니었다. 산방산 한 귀퉁이에 굴을 파서 무덤을 만든 것이었다. 주민들은 무덤을 파고 시체를 보니 시체는 썩지 않고 살아 있었고 겨드랑이에 날개까지 돋아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의논 끝에 도끼로 날개를 잘라버렸더니 그만 죽어버렸다.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장사를 지내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끼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은 해결되고 그 시체를 그냥 뒀으면 하늘로 올라가 큰 장수가 태어났을 걸 하고 자기 손으로 죽인 것을 후회했다.
산방산 꼭대기는 명당이므로 평민들의 무덤을 쓰면 그 집안에 나라를 뒤엎을 역적이 날 우려가 있으므로, 하늘에서 역적이 나오지 못하도록 가뭄을 내려 마을 사람들 스스로 그곳에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약 80년 전에 가뭄이 심하여 산방산에 또 누가 몰래 장사를 지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여 동네에서 다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올라간 주민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산소를 만든 흔적은 없고 농사를 지은 것이다. 화전처럼 개간하여 조를 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그 조를 모조리 뽑아버리자 하늘에서 비가 막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당시 조를 간 이는 사계리 안(安)모씨로 알려졌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방산 꼭대기에는 무덤만이 아니고 농사를 지어도 가뭄으로 주민들에게 고통을 준다고 전한다.(현용준,『제주도 전설』) 산방산 꼭대기 평지에 평민의 무덤을 쓰면 가뭄으로 고통을 받지만 양반의 가문에서 묘를 쓰면 제주목사가 나온다고 전한다.(초등사회교육협회)
《작성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