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641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영랑호와 청초호
설악산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호수가 보인다. 그 호수가 청초호와 영랑호다. 전설에 따르면 청초호와 영랑호에 두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청초호의 수컷 용과 영랑호의 암컷 용이 지하통로를 오가며 살고 있는데, 한 어민의 실수로 청초호 주변의 솔밭에 불이 나자 수컷 용이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에 격노한 암컷 용이 이 지역에 가뭄과 흉어 등의 벌을 내렸다. 농민들은 기우제와 용신제를 지내 용의 죽음을 위로하고 나룻배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며 한 쌍의 나룻배끼리 힘을 겨루는 민속놀이를 만들었다. 싸움에서 진 마을은 이긴 마을에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이긴 쪽은 풍어와 대풍을 맞는다고 믿었다.
영랑호설악산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호수가 보인다. 그 호수가 청초호와 영랑호다. 영랑호 남쪽의 범바위는 속초팔경의 하나다.
호수지만 바다 같은 영랑호를 두고 『산중일기』를 지은 정시한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아침 식사 뒤에 15리 남짓을 가서 영랑호에 이르렀다. 둘레는 30여 리나 되었다. 물가는 둘러서 굽어 있었고, 바위는 기이하고 절묘하였다. 호수 동쪽의 작은 봉우리는 끊어져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큰 바위 위에는 ‘영랑호’라는 세 글자를 크게 새기고 붉게 칠하였다. 문생과 함께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설악산은 병풍으로 둘러쳐진 것 같았다. 동쪽은 큰 바다에 다다라 밝고 쾌활함이 비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구경하였다.
이곳 속초의 논뫼호에서는 고을 수령의 환영연을 베풀며 불꽃놀이도 벌어졌다. 호수에 꽃배를 띄우고 연이어 사흘 동안 관기들의 가무가 벌어졌는데, 밤이면 널빤지에 숯불을 피워 호수 위에 띄워서 흥을 돋우었다. 놀이를 구경하러 나온 주민들까지 어우러져 즐겼는데, 조선 후기에 최양락 군수의 환영연 때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은 뒤로 이 놀이를 금지하였다.
또한 이곳의 특이한 수산물은 도루묵이다. 1970년대 중반에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도루묵이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맛도 없이 이상한 냄새가 나는 그 고기가 시도 때도 없이 국으로 끓여져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고기의 원래 이름은 묵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밀려 평안도 의주까지 피난을 간 선조의 밥상에 올랐던 고기라고 한다. 피난살이에 지친 선조는 묵이 맛은 좋았으나 그 이름이 마땅치 않게 여겨져 맛도 좋고 빛깔도 은빛이 도는 생선이니 앞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라 했다.
청초호영랑호와 더불어 속초를 지키는 두 개의 눈동자라 불리는 호수. 이중환이 영동의 호수 가운데 유일하게 관동팔경의 하나로 언급한 곳이다.
그 후 피난살이가 끝나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피난 시절에 맛본 그 생선이 생각나서 은어, 즉 묵을 다시 찾았으나 맛이 그전만 못하자 은어를 도로 묵, 곧 다시 묵으로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한때 맛이 없다고 푸대접을 받았던 이 도루묵이 일본 사람들에게 고혈압이나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진 뒤 전량 수출되면서 서민들의 밥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한때 속초 부둣가의 술집에서 값싼 술안주로 팔리던 도루묵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은어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속초 지방의 어민들이 바다에 나갈 때 노를 저으며 불렀던 노래가 「노 젓는 노래」라는 민요다.
세노야 세노야 어야디야 세노야
어기여차 어기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담아내라 퍼내어라 저건 전부 싣고 가자
세노야 세노야 어야디야 세노라
한 배 실었다 세노야 어디로 갈까 세노야
올려나 봐라 세노야 어서 퍼라 세노야
만선이다 세노야 어이야 차야 세노야
한 배 실었다 세노야 따라오너라 세노야
어허야디야 세노야 어야디야
어허야디야 오호야 산이로다
세노야를 부르며 고달픈 삶을 영위해갔던 뱃사람들의 생애가 줄기차게 이어진 것이 동해 바닷가 속초 고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