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이
나른한 봄날
학처럼 곱디고운 모시적삼 걸치고
뒷짐지고
여릿여릿 걸어서
청량산을 내려와 고산정에 다다르니
낙동강물이 소두둘을 휘돌아 깊은 소를 이루고
건너편 적벽에는 도화가 분홍치마 속살을 흐브지게 드러내고
봉화 삐땍이 골을 나선 낙동물은
소두들을 휘돌아 퇴계수와 합수하여
물안개를 피우고
한나절
원족으로 두평 남짓 서원 사랑방에 다다르니
문필봉 중허리에
학 한 마리가 춘곤증에 실눈으로 졸았다.
학문 마루에
홀로 갓끈을 풀고
선생도 건너 의촌 들녁을 휘도는 강변을 보고
우망 우망하는데...
나루터 주막집에서
주모가 개비름 나물 무침에 백미탕 그릇에 탁료를 가득 부어서
조용조용 걸어와 마루에 내려놓았다.
구전 약조는
별도로 하지 않아도
이쪽으로 오마나 할까
기다리던 도화는
어주자 배를 타고 꺼꾸로 육육봉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졸던 학이 놀라서 헌사스럽게 흰구름 사이로 날개를 털었고
퇴계 어르신은
조용히 모시적삼을 접어 놓고
백미사발에 비친 구름을 물끄러미 보고는
조용조용 술잔을 드시고는 묵필을 잡으셨다.
나라 녹을 내려놓고
낙향해서
도인이 어디메 계신가 했더니...
두평 서원
마루에 계셨네!
(필자가 2025. 춘삼월 도산서원에 들러 꺼떡끄떡 졸다가 비몽사몽 적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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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 소식
이른봄 도산서원에서 - 조정래 (14회동문)
서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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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1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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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을 보니 옛날, 김휘준 선생님이 국어시간에 가르쳐 주신 퇴계의 시조가 생각나는군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선생님은 이 시조에서 "백구야"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요. 학생들이 "백구야"를 백구를 부르는 소리로 오해하고 있을까봐.
조정래
김휘준 선생님은 꼿꼿한 선비 타입이셨지요
일직에서 구계 올라가는 반변천 옆 동네가 고향이시구요
제가 경북 학생 백일장 대회서 장원상을 받자
제 글을 국어시간에 김휘준 선생님이 직접 낭독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