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목이 몽글몽글하다.
난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뿐인데 ...
사람들은 내 주위에 올 엄두조차 못내나보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보고 싶지도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믿기지 않는 다고들 하지만
어쩐일인지
나는 너무나 차분하게 지금을 받아드리고 있다.
그렇다.
지금 난 사랑하는 사람의 영정사진 앞에 앉아있다.
처음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그게 무엇일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냥
더 이상 그 사람을 만질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음에 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장례는 늘 가던 그 병원이 좋겠어...'
'누구누구에게 연락을 해야하지?'
'영정사진은 어떤 게 좋을까?
그래, 웃는 모습이 예뻤으니깐 신혼여행 때 강가에서 찍은 사진으로 하자.'
'그 사람의 부모님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여보세요.
예, 어머니. 저예요.
그 사람이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네요.
장례를 치러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해야하나....
음...
마치 그 사람의 죽음을 기다린 사람 같다.
그럼...
조금 흐느낌을 넣어야 하나..
눈물이 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연기라도 해야하나...'
다른 것보다 그의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민이었다.
그냥 난,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종이에 쓴 그대로 읽어야 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가
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어머니와 참 많이 닮아 좋다고 말했었다.
어머니도 지금 나 같은 마음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였다.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 식장을 찾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그에게 절을 한 뒤
나에게 인사를 한다.
진심인 듯 하지만 가식이다.
그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게 아니라
그의 젊음과 나의 앞날을 동정하는 것 뿐이다.
그들의 입에서 뭐라고 뭐라고 소리가 나긴 하는데
너무 비슷한 말들이라 딱히 기억 나는 것은 없다.
나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는
잘 견뎌볼게요. 같은 말들을 그들에게 해야했지만
그들이 그의 죽음에 와주신것에 대해
감사하지도 않았고
이미 잘 견디고 있기에
그냥 아무말 않고 슬며시 미소만 지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이 다 내가 싫어하는 것 뿐이었다.
직접 가서 먹고 싶었지만,
딱히 옆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먹지 않기로 했다.
그의 가족들은
내가 울지 않는다며
독한년이라는 말을 했다.
독한년..................
내가 몇 년만에 보는 그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그의 짐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의 옷들, 책들 그리고 잡다한 잡동사니들과
사진.....
사진은 우리가 같이 찍은 것 한 장과
그의 독사진 한 장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의 짐들을 다 처분한 뒤
다시 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의 친척들에게는 독한년이란 소리를
나의 친척들에게는 동정의 소리를
그와 나의 친구들에게는 우리의 대학시절 추억의 소리를
한참을 듣고 나니
어느새 그가 재가 되어 나타났다.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독한년이었다.
계속 목이 몽글몽글한 것을 빼면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그 모든 안쓰러운 눈초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의 짐들이 없어서인지 집이 휑하다.
지금은 그냥 자고싶다.
너무나 피곤하다.
씻기가 얼마나 귀찮은 줄 모른다.
그래도 이 눈초리들을 씻어버리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을 것 같다.
물의 온도를 최대한으로 뜨겁게 맞춘 뒤
욕조에 틀어놓았다.
물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이를 닦기로 했다.
욕조안에 물줄기가 너무 세서 내 발에 튀기 시작했다.
참 별일이다.
평소엔 찔끔찔끔 나와 사람을 그렇게 짜증나게 하더니....
칫솔에 치약을 짰다.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난 혼자인데
언제나처럼 빨간색과 초록색
두 개의 칫솔에 치약을 짜고 있다.
물을 묻히려 물줄기에 칫솔을 갖다 댔다.
이상하다.
물이 언제나처럼 찔찔거리며 나오고 있다.
게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럼 발등에 떨어진 이건 뭐지?
거울을 봤다.
따뜻한 물 때문에 거울이 흐리게 보이는 줄로만 알았다.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눈물을 닦으니
너무도 선명하게 양손에 칫솔을 들고 있는 내가 보인다.
다 버린줄 알았는데...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 그이를 불러보았다.
"여보... 이 닦아... 귀찮다고 또 그냥 자지 말고.............."
대답이 없다.
이번엔 좀 큰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여보! 또 자는 척 하지! 쫒아 가기전에 얼른 오시지!"
또 대답이 없다.
언제나처럼 화가나는 척 발을 쿵쿵거리며
안방으로 쫒아 들어갔다.
"여보! 이 닦고 자라고 했지!!!"
뚝.뚝.뚝.
목에 몽글몽글했던 것들이 폭포처럼 밖으로 쏟아진다.
그이가 없다.
항상 침 흘리고 자던 베개도,
노란 트렁크 팬티도,
1년전부터 잠자기 전에 한 페이지씩 읽었던 책도...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너무나 보고싶은
너무나 뽀뽀하고 안아주고 싶은
베컴머리 그이가 없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누나보다
그의 어머니보다 더 서럽게
목이 터져라 울기 시작했다.
이 못난 손이 모조리 그의 흔적을 지워버려서
내게 남은거라곤 사진 두장과 이 칫솔하나 뿐이다.
이를 닦을 때마다 귀찮아하는 그이 때문에
항상 티격태격이었다.
게다가 너무 힘을 주는 탓에 항상 같이 새 칫솔을 써도
그이의 것이 헌 것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 모습이 그의 머리모양같아 우린 한참을 웃은 적도 있었다.
그의 머리모양을 한
칫솔을 부여잡고
입맞추며 한참을 울었다.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한참을 울었다.
주먹이 부숴져라 땅바닥을 쳐내고
가슴이 터져라 심장을 쳐봤지만
여전한 사실은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항상 부부싸움을 하면
난 차라리 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처음 그의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 피식 웃음이 났나보다.
그가 너무 보고싶다.
뾰족한 머리를 만지고 싶고
그의 다리털을 꼬아 개미집을 만든 뒤
그가 짜증 낼 때쯤 빗으로 빗어주고도 싶다.
십오년을 넘게 봐왔던 사람인데
벌써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신준영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신.준.영.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의 칫솔에 묻은 치약이
내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을 지우려면 난 얼마나 더 견뎌야할까.........
살기위해
흔적을 지워야 하는지...
흔적을 지우기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리 그를 불러보아도
물어보아도
휑한 방안에
그의 칫솔과 사진, 그리고 나뿐이다.
ㅠㅠ
제 글이 지워졌어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는데.....ㅠㅠ
댓글하나하나에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몰라요.ㅠㅠ
너무나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지워져버렸어요!!!!!!!!!!!!!으앙.ㅠㅠ
다신 이런 일이 없기를.ㅠㅠ
첫댓글 앗! 그랬었군요 ㅎㅎ 왜삭제가된걸까요 ㅡㅡ;; ㅎㅎ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군요 ㅎㅎ 자주 써주세요~ ㅎㅎ
와우~ 감사합니다^^
글이 없어져서 깜짝 놀랬는데....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 합니다~^^
많이 읽어주시고~ 많은 관심 바래요~ 쌩유~!!
ㅜㅜ
님댓글을 보니 새로운 소재가 생각났어요 ^^
슬퍼요 ㅠㅠㅠ
ㅋㅋㅋ 눈이 세개 ㅋㅋㅋ 감사합니다~!
처음엔 좀 무서웠는데.. 읽다보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앞으로 좋은글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래요!!! 근데 왜 처음에 무서우셨을지 .... ^^
표현력이 좋으신듯해요!!! 멋지다 하항ㅋㅋ 몽글몽글이라는 말에서 뭔가 공감이..울고 싶을 때 정말 목이 몽글몽글해지죠..
몽글몽글!!! 그 느낌을 아시네요!!!!! 정말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