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또 다른 우리말, 수어
신성근 신부(문화유산교육지도사)
숲 해설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숲을 함께 걷던 한 농인을 만났습니다. 다행히 통역 봉사자가 함께 있었기에 설명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통역사가 있다는 사실보다, 정작 나 자신이 그분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마디조차 직접 건넬 수 없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인사 정도는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작은 마음이 수어를 배우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수어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언어였습니다. 단순히 손동작 몇 개를 익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언어였고, 하나의 문화였으며, 하나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목 현장에서 적지 않은 농인들을 만났습니다. 미사 안에서도, 성사 안에서도,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여러 차례 마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수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제 안에 장애가 있는 이들을 향한 진정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제게 맞추기를 바라면서도, 저는 그분들에게 한 걸음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수어를 배우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수어는 참 아름다운 언어입니다.
소리가 아니라 몸으로 말합니다. 표정이 말이 되고, 눈빛이 문장이 되며, 손끝의 움직임이 마음을 전합니다.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담아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의 언어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그 과학성과 독창성을 인정받는 한글이 있다면, 그 곁에는 몸짓과 표정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수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리로 마음을 전하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마음을 전합니다. 한글과 수어가 함께할 때 우리의 언어는 더욱 풍성해지고, 소통은 더욱 따뜻해집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귀를 넘어 손끝과 표정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기쁨은 배가 됩니다.
저에게 수어는 외국어와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문법을 익혀야 하고, 새로운 표현을 배워야 하며, 새로운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보다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직접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기쁨, 통역사를 통하지 않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들의 세상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기쁨입니다.
이제는 수어를 배우는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인사를 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배우고 있습니다. 어쩌면 수어를 배우는 것은 손의 언어를 익히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애는 그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장애는, 다가가지 않으려 했던 제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서툰 손짓으로 수어를 배웁니다. 더 잘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어는 농인만을 위한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며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하듯, 수어를 배우는 것은 우리 곁에 있는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가장 따뜻한 방법입니다.
혹시 수어를 배울까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너무 큰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좋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라는 몇 마디 인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인사 한마디를 배우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 짧은 인사가 제 삶의 시선을 바꾸어 놓을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수어를 배우면 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이 수어를 배워 보시기를 권합니다.
수어는 손으로 배우는 언어이지만,
결국 마음으로 완성되는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