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ief's Diary : 대재앙 -
날카로운 소음과 붉은 사이렌은 그것에 홀로그램이었고 동시에 함정이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쳇, 왜 B급인지 알겠군. 얼른 올라와!”
유가 다급하게 헤드셋으로 소리치자 엘은 재깍 조종기의 위쪽 화살표를 눌렀다. 내려올 때는 빠르게 내려왔으나 올라가는 것은 느리게만 느껴졌다. 그에 비해 경비들의 반응은 또 왜 이리 빠른지.
“어디서 갑자기……. 저기다!”
1층에서 경비 여럿이 엘을 향해 총을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 먼저 유의 라이플과 엘의 권총 탄환이 날아들었다. 엘을 잡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 세 명의 경비병은 모두 그 자리서 전자탄을 맞고 쓰러졌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엘을 가리키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복도 구석 여기저기선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전체가 엘을 주시하는 것처럼.
“젠장, 저건 왜 이리 느려!”
피앙 차칵
유는 재차 라이플을 쏘며 투덜거렸다. 누가 잡아준다거나 할 것 없이 사용자의 손짓만으로도 작동한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역시 급작스러운 상황에서는 대처가 느렸다. 엘도 최대한 속도를 올리며 재차 총을 쏘았지만 줄 감는 속도가 빨라졌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유가 라이플 탄창을 하나 비웠을 때에야 엘은 파이프에 도착해 유를 향해 재빨리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경찰 사이렌까지 들려오는 것이 여간해서는 그들을 곱게 놔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탄환 몇 개가 스쳐 지나갔으나 유의 재빠른 반격으로 엘은 무사히 파이프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살았네. 일단 도망가자. 뒤쫓아 올 거야.”
그들은 12층에서 왔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장 조용하고 어두운 곳을 찾아 이동했다. 그러나 중앙 복도를 겨우 벗어났을 무렵 엠이 소리쳤다.
“가지 마! 그쪽으로 경비 다수가 몰려가고 있어!”
“예? 그럼 어디로 가라는 거예요?”
“일단……. 일단 제일 가까운 데에 숨어 있어! 도망갈 길을 찾아 놓을 테니까.”
유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보이는 것은 사무실 방 안. 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 안으로 뛰어든 그들은 재빨리 형광등을 권총으로 쏴 깨뜨리고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곧 경비들이 몰아닥쳤다.
“……없어.”
“이봐, 10층. 정말 이쪽으로 도둑들이 온 게 맞나?”
이어지는 무전기 소리. 경비의 말.
“그럼 이 사무실 안에 있겠군.”
손전등과 권총을 치켜 든 경비들은 조금씩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 않는 움직임이었지만 손전등의 불빛은 그들의 진입을 유와 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딱히 숨을 곳이 없어 유와 엘은 책상 밑 구석으로 조심스레 기어들어갔다.
손전등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여길 뒤져보자.”
시은과 시란의 앞에 경비의 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둘은 좀 더 몸을 움츠러들어 손전등 빛에서부터 몸을 사렸다. 뚜벅대는 세 경비원의 발소리는 유와 엘의 심장 박동처럼 그들의 귀를 울렸다. 한차례 스쳐가는 동그란 빛.
“…….”
이어 또 다른 경비의 손전등이 유와 엘이 있는 책상 쪽으로 가까워졌다. 이어지는 권총 장전소리. 섬뜩함을 느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두는 한참동안 그들 앞에서 망부석마냥 가만히 제 자리를 차지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유와 엘을 앞에 두고 이내 뒤돌아섰다. 물론 그 곳에 한참을 있긴 했지만 곧 빛 무리도 사라지고 발자국 소리도 점점 멀어져 사무실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바깥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으나 아직은 이렇다 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엘이 엉금엉금 책상에서 나와 옆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아, 간신히 따돌렸네.”
“다행이다. 탈출루트를 불러줄까?”
때마침 엠도 그들에게 말을 걸자 유는 무심코 대답하려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대로 가면 적자인 데다 쓸데없는 오기마저 불쑥 고개를 내민 까닭이었다. 엘이 바깥을 지켜보는 동안 유는 엠을 향해 말했다.
“아뇨. 루비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주세요.”
“뭐? 끝까지 찾으려고?”
엠이 물어보았고 엘도 유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여전했다. 보통 때엔 설렁설렁 지나치지만 뭐 하나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 탓이었다. 유의 고집에 결국 엠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그래. 맘대로 해. 하지만 1급 경보 상태이니까 이동이 어려울 거라는 점은 명심해야 해.”
“알았으니까 위치나 말해 줘요.”
“그렇게 물어봐도 나 역시 잘 모른다고. 음……. 아, 그래. 사장실로 한 번 가 볼래? 비밀 금고가 하나 있거든.”
비밀 금고? 유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엠은 그 곳이 9층 복도 구석 끝에 있다고 알려줄 뿐이었다. 9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자리서 일어섰다. 9층으로 내려가 사장실을 찾으면 된다는 거지? 조심스럽게 두 베레타 M2의 슬라이드를 당기는 그를 엘은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곧 자신도 두 개의 단도를 빼들었다.
1급 경보이고 유와 엘, 두 도둑이 있었던 곳인데도 11층은 비교적 조용했다. 아까 사무실을 훑던 세 명의 경비 아저씨들은 11층의 각 사무실을 이 잡듯 뒤지는 중이었고, 아래서는 11층을 향해 연신 불빛을 비추어 대었지만 빛이 들어오는 각도로 보건대 직접 복도에까지 걸어 나와 위를 보진 않는 모양이었다. 유는 좌우를 둘러보며 잠시 상황을 살피다 세 경비들이 왔던 길로 향했고, 엘도 재빨리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걸어가자 엘리베이터와 음료수 자판기, 계단이 있는 조그만 공간에 도착했다. 탁자에 의자도 갖춰진 것이 직원 휴게실 정도의 용도로 쓰이는 곳인 듯 했다. 바깥이 대리석이라 유엘은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한편 주위를 살펴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살폈다. 그들이 신은 신발은 웬만해선 소리를 내지 않는 재질의 튼튼한 가죽 신발이었지만 밑창이 합성 고무인 관계로 대리석에서 잘못 발을 디디면 비익 삑 높은 소음을 내곤 했다. 그래도 노력한 덕분인지 날카로운 마찰음 한 번 없이 무사히 계단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들은 10층을 거쳐 곧장 9층으로 내려갔다.
차칵
소음기를 끼운 두 정의 베레타를 치켜들었지만 다행히 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실 군데군데엔 불도 켜져 있었고 경비들이 요란스레 떠드는 음성도 들려왔다. 유는 엠에게 입을 열었다.
“9층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그게, 좀 어렵겠지만 한 쪽 복도를 가로질러 반대쪽까지 가야 돼. 게다가 비서실도 지나야 하고, 그 안에는 감시카메라도 있지. 어렵지 않을까?”
“조심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뭘.”
일방적으로 엠의 말을 끊은 그는 곧 조심스럽게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엘도 그 뒤를 따르며 복도가 아닌 사무실 쪽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사무실은 불만 켜져 있을 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로 어두운 복도를 따라 안쪽 복도로 다가섰다.
말소리가 가까워졌다.
“잡은 거야,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11층에서 사라졌대. 지금 수색하는 중일걸.”
사무원인 듯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오갔다. 시은은 조심스럽게 더 안쪽을 바라보았다. 경비 세 명도 11층을 올려다보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보통 경비들과 다른 제복을 입은 사람이 연신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군가와 말다툼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냥 가기엔 어려워 보이는데, 오빠?”
“…….”
별 수 없이 돌진해야 하나. 하지만 계획 없는 돌진은 무모함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시은은 잠시 형세를 살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뭔가 작전을 세운 듯 M963저격 라이플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엘에게 말했다.
“엘, 저 두 사무원을 동시에 쓰러뜨릴 수 있겠어?”
“음……. 가까이 붙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왜?”
“그럼 잘 됐다. 내가 저격총으로 저쪽 세 명을 공격할 테니까 넌 내가 총을 쏘면 저 두 사람을 쓰러뜨려. 알았지?”
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도를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유도 경비들을 조준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피잉
파직 털썩
“응? 이, 이봐! 야!”
경비 하나가 목 바로 아래 부분에 전자탄을 맞고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자 좌우의 경비들이 그를 살폈다. 그 사이 엘은 재빨리 사무원들에게 달려들어 두 사람을 쓰러뜨렸다.
뒤이어 유의 두 번째 탄환이 날아들었다.
쿠당탕
남아있던 사무원 하나와 반대쪽 경비 하나가 동시에 쓰러지자 유는 레버를 당겨 새로운 탄환을 장전했다. 때마침 마지막 남은 경비 하나가 유와 엘을 발견하고 고함을 지르려 했지만 그보다 유의 반응이 한층 더 빨랐다. 마지막 경비마저 쓰러지자 유는 무전기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던 고위급 경비에게 총을 조준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스코프에서 눈을 뗀 유는 다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나치게 고요하고 어두운 안쪽 복도의 풍경만이 펼쳐져 있을 뿐 누구 하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는 계속 주위를 경계하는 한편 사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어디.
그러던 그의 귀에 권총 장전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엘! 옆으로 물러나!”
“어? 왜?”
엘은 되레 왜 그러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느새 바깥쪽 복도를 통해 뒤로 돌아가 엘을 향해 권총을 들이민 고위 경비를 향해 유는 재빨리 베레타를 꺼내들어 난사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을 본 엘은 서둘러 옆으로 물러났고, 경비는 유의 공격을 알아채고 몸을 숨기며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도둑들이 9층에 있다! 9층에 있어!”
“일을 시끄럽게 만드는군. 제길!”
유는 경비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계속 총을 쏘며 사장실 쪽으로 뛰었다. 그때 밑에서 총소리가 빗발쳤다.
두두둑 타다다다
“오빠, 경찰들이……!”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잠깐이었지만 시은은 또 다시 이라의 말을 떠올렸다. 저것들을 전부 죽였으면 하는 마음.
사장실 문을 박찬 유와 엘은 바쁜 걸음으로 그 안에 들어선 뒤 방 안의 모든 가구를 총 동원해 문을 막았다. 그 사이 엠은 유에게 비밀 금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잘 들어! 왼쪽에 있는 초상화를 거꾸로 뒤집고 반대쪽 책장에서 ‘부의 축적’이란 책을 뺀 뒤 그 자리에 있는 버튼을 눌러! 마지막으로 다시 책을 올려놓으면 초상화가 밑으로 내려갈 거야! 열쇠는 사장 책상 서랍에 있고, 암호는 33, 24, 98!”
일순간 쏟아진 말이었지만 그들은 재빠르게 행동했다. 유가 초상화를 돌리는 동안 엘은 서랍의 열쇠를 꺼내들었고, 다시 유가 책 속 버튼을 누르고 책을 다시 그 자리에 꽂자 엘이 초상화 뒤의 금고에 열쇠를 꽂고 암호에 따라 다이얼을 돌려 금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수백억에 해당하는 수표 다발과 통장, 그리고 루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엘은 재빨리 루비와 기타 돈다발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쾅 쾅
“이 자식들, 얼른 안 열어?”
험악한 경찰 목소리가 들려오자 일순간 그들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도망갈 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고, 환풍구 역시 사람 하나가 지나가기에도 좁았다. 감시카메라도 회전을 멈추고 유와 엘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비굴함조차 묻어나오는 목소리였지만 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문은 결국 폭탄과 함께 깨어지고 말았다.
퍼어엉
한 차례 먼지가 피어오르자 유와 엘은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눈을 떴다. 잠깐 사이에 눈앞을 메운 건 끝이 그을려 무너져 내린 문과 뿌옇게 가라앉는 먼지, 마지막으로 자신을 노리는 경찰들이었다.
“…….”
“…….”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앞을 노려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는 얇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9층 높이의 끝없는 나락이 펼쳐져 있었다. 침묵은 고요했으나 마음은 어지러웠다.
그러던 중 경찰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두 도둑은 경찰들이 물러난 그 사이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곧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발견한 유와 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자리한 사람은, 지금까지 수없이 유와 엘의 뒤만 쫓아오던, 강산영이었다.
“……강산영?”
“호오, 제 이름을 기억하나 보군요.”
산경은 안경을 치켜 들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승자의 미소, 분노에 미친 눈동자, 치켜드는 안경. 그녀는 유와 엘을 조용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소문으로 숱하게 들어 왔는데 마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군요. 으음……. 저랑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이겠지.”
유는 자신이 시은이라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항상 도둑 일을 할 때마다 성대에 음성 변조 패드를 부착하긴 했지만 유난히 눈치가 빠른 그녀 앞에선 말을 구성하는 글자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산영은 싱글 웃으며 유를 향해 말을 이었다.
“기분 탓이라…….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생각나는 것도 기분 탓이겠죠?”
엘이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산영의 표정은 여전히 의기양양했다. 유는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듣기로는 네가 우리를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던데, 우리가 네 아빠를 죽여서인가?”
“어머나, 제 아빠까지 아시는군요. 갑작스런 처리반의 공격으로 죽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형사계에서는 마음속의 영웅으로 추대 받는 분이시죠. 이런 결말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요.”
“결코 놓아주지 않을 건가 보군.”
“예. 경찰에게도 넘기지 않을 거예요. 조용히 묶어 놓은 뒤 천천히 즐기는 게 좋을라나. 아빠가 당한 만큼, 제가 괴로웠던 만큼, 많지는 않게, 아주 조금씩.”
“…….”
“그리고 정신이 망가질 때쯤엔 법정에 올려 스스로 범죄사실을 실토하게 할 거예요. 처리반도 대동해서 말이죠. 아참, 처리반의 정체를 알고는 조금 놀랐어요. 그 정도 힘을 가진 사람의 체구가 키 작은 여학생이라니.”
순간 움찔했다. 산영이 이라의 모습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처리반이란 사람이 산영 근처에 있다는 것을 모를 뿐.
“……역시 맞나 보군요.”
그의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챈 산영은 안 그래도 섬뜩한 미소에 더욱더 잔인한 웃음을 그려 넣었다. 유는 다른 곳으로 말을 돌렸다.
“우리가 여기서 잡힐 거라 생각하나?”
“그럼 어디로 도망갈 건데요? 그 방탄유리 너머는 9층 낭떠러지라고요. 잡힐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들 뒤에 있는 이 유리가 방탄유리라는 새로운 사실에 엘은 살포시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유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복면 안으로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저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이 유리를 뚫고 떨어지진 못할 거라 믿고 있었고, 그것은 유와 엘의 돌발 행동에 저들이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로, 탈출구는 생겼다.
“……앞으로 볼 수 있을까?”
“제 얼굴을 말하는 건가요? 후후, 오늘부터 질리게 볼 텐데 뭐가 그리 걱정이시죠?”
“아니, 왠지 이번에도 넌 우릴 잡는 데 실패한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뜻이죠?”
그제야 산영도 슬쩍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유는 엘의 배를 팔꿈치로 톡톡 찌를 뿐이었다. 엘은 괜히 눈썹을 뭉뚱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그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등 뒤에 검 손잡이를 잡았다. 순간 모든 눈길이 모였지만.
차앙 키이이잉
새하얀 펄스 소드는 이윽고 주저 없이 방탄유리를 향해 날아갔다. 방탄유리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것은 산산이 깨어져 허공으로 비산했다.
“초, 총을 쏴!”
산영이 서둘러 명령을 내렸지만 유와 엘이 9층 나락으로 떨어진 뒤였다.
“이런……!”
자살할 생각이었나? 정체를 들켜 죽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무모하게 뛰어내릴 줄이야! 산영은 다급한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하늘, 대지를 바라보는 산영의 시선. 이윽고 경찰들도 그녀의 뒤를 따라 창가에 몰려들었지만.
“……하아, 속았군. 설마…….”
낙하산이 하나 더 있을 줄이야.
“쫓아갈까?”
형사 하나가 산영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낙하산의 뒤꽁무니만을 하염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곧 바닥에 착지한 유와 엘은 깜깜한 골목길 사이로 사라졌다.
산영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쫓지 마세요. 어차피 또 놓칠 게 뻔하니까요.”
“너무 소극적인 거 아냐? 잡을 수도 있을 텐데 왜 벌써 포기하는 거지?”
“절대 포기하는 게 아녜요. 소극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
형사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산영은 품 안의 종이를 다시 한 번 펼쳐 보았다. 아빠가 남겨 준 ‘유언’, 일곱 자리의 전화번호, 언제든 그들을 부를 수 있는 열쇠를.
다음날 오후.
“……정말 결심한 거야?”
이라는 여전히 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에 응답하듯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은 대답소리. 긍정.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이라의 말.
“좋아, 그럼 이제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쳐 줄게, 시은.”
미소 짓는 그녀의 뒤에서 시은은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입'ㅅ'. 결국 결심 굳히는 시은이군요. 뭐 실제로 시은이 인간을 살해할지 안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여튼 대략 란감하게 끝났습니다-ㅅ-~... 이번 도둑질 신이 정말 안 그려져서 한 편 쓰는 데 2주일이 넘게 걸렸다는[...] 비축분이란 사실에 정말 감사할 따름.[먼산 - ] 쓰긴 써야겠는데 쓰이진 않고 머릿속엔 공상만 가득 [...]
다음편에는 시은의 '환상'이 시작됩니다. 이라가 그를 어떻게 교육(?)할지는 천천히 지켜봐 주시길'ㅂ'~
-----다음편 예고-----
#20.환상(幻想)
"음냐앙... 졸려요오오오~."
"다 왔다. 이거 받아."
"응? 산영 선배, 휴대폰 샀어요?"
"저, 안녕하세요. 2학년 2반 담임선생님을 뵈러 왔는데요."
"이라요? 흠. 일단 앉으시지요."
"...외국인 아니었어요?"
"소리 안 질러도 돼. 나 여기 있으니까 말야."
"응. 무의식을 끌어내고 있어."
"...내가 저지른 게...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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