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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大同江 : 최자(崔 滋)의 삼도 부(三 都 賦)】
○ 최자(崔 滋)의 부(賦) 삼 도 부(三 都 賦)에,
《“뭇 물줄기 모였으니 이름이 대동강(大同江)이라, 해맑고 넘실넘실, 번쩍여 출렁출렁. 호경(鎬京)을 안고 풍수(灃 水)를 모아온 듯, 깨끗하긴 흰 비단을 깐 듯, 해맑기는 청동(靑銅 거울) 같은데, 비단 닻줄을 풀고 목란(木蘭) 배를 띄워 중류(中流)에서 머리를 돌리니 황홀하여 병풍 속에 있는 듯하네.”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 위의 설명(說明)을 보면,
㉠ 많은 지류(支流)가 흘러들어 큰 강을 이루는데, 바로 “대동강(大同江)”이라는 설명이며,
㉡ 호경【鎬京 : 섬서(陝西)성 장안(長安) 서쪽에 있으며, 주 무왕(周武王)의 도읍지(都邑地)】을 안고 흐르는 “풍수”【灃水 : 장안을 거쳐 위수(渭水)로 흘러든다.】를 모아온 듯 깨끗한 물이 흐른다는 이야기이며,
㉢ 반도(半島)를 흐르는 하천(河川)은 하나같이 맑고 깨끗하다. 대동강(大同江)의 물만이 깨끗한 것은 결코 아니다.
㉢ 조선(朝鮮)유학자(儒學者)들이 펴 낸 “문집(文集)”속에서는 이 대동강(大同江)의 물은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 패서(浿西) 13 진(鎭) : 패(浿)는 “한국의 물 이름 패”자이며, 대동강(大同江) 주위는 한국(韓國)이란 나라가 존재(存在)한 적이 없다. 또 패서(浿西)란 말은 “대동강(大同江)의 서쪽”이란 말과 같은 것인데, 대동강(大同江)의 서쪽은 현 바다(海)이므로, 13개의 진(秦)은 고사하고, 단 한곳의 진(鎭)도 존재(存在)할 수 없는 곳이다.
● 이렇게 이해(理解)할 수 없는 이야기로 점철(點綴)된 것이 “반도사관(半島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의 논리(論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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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수(浿水)에 대하여 다른 각도(角度)에서 살펴보자.
《연려실기술》 세 개의 패수(浿 水)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사기》에, “한(漢)이 일어나 요동의 옛 변방을 정비하여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삼았으며,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동(東)으로 달아나 패수(浿水)를 건너가 왕검(王儉)에 도읍하였다.” 하였으니, 압록강(鴨綠江)을 패수(浿水)라 한 것이다.
㉡《당서》에는, “평양성은 한(漢)의 낙랑군에 속하였는데, 산의 굴곡에 따라서 성곽을 쌓아 남쪽은 패수를 경계로 하였다.” 하였으니, 지금의 대동강을 가리킨 것이다. 《일 통 지》에, “패 수 (浿 水)는 조선국 평양성(平壤城)의 동쪽에 있는데 일명 대 통 하 (大 通 河)라고도 하며 가운데에 조 천 석(朝 天 石)이 있다. 당 나라 소정방(蘇定方)이 패수에서 군사를 격파(擊破)하였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였다. 《설문(說文)》에는, “물이 누 방 (鏤 方)에서 나와 동(東)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또 패수(浿水)현은 강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당(唐) 나라 이적(李 勣)이 패강도 대 총관(浿 江 道 大 總管)이 되었다.《증보자휘(增補字彙)》
㉢《고려사》에, “평산(平 山) 저탄(猪 灘)을 패강(浿 江)이라 하였으니, 백제 시조가 북쪽으로는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고 한 것과, “당 나라 황제가 패수의 서포(西浦)에 배를 대고 돈을 깔고 상륙하여, 송악 군(松 岳 郡)에 도착했다.”는 것은 아마 이 패수를 지칭한 것인 듯하다.
이로 보건대, 우리나라에 본래 3개의 패수가 있었는데 고금을 통하여 여러 사람이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대동강이다. 《여 지 승 람》 대동강의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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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것을 방향(方向), 지형지리(地形地理), 엣 전고(典故)등을 살펴서 설명(說明)해보자.
㉠ 『<위만(衛滿)>이 동쪽으로 달아나 “패수(浿水 : 압록강을 칭)” 를 건너, “왕검(王儉)”에 도읍(都邑)하였다.』는 말은, 이미 한(漢)에서 패수(浿水)로 국경(國境)을 삼았다고 하였으니, 그 동(東)쪽으로 도망(逃亡)을 갔다면, 압록강(鴨綠江) 상류(上流)측의 첩첩산중(疊疊山中)으로 도망을 간 것이며, 그곳에서 “왕검(王儉)”에 도읍할 수가 없다. 왕검(王儉)은 평양성(平壤城)에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위의 설명이 올바르게 되려면, 『“위만(衛滿)”은 “남(南)”쪽으로 도망을 쳐, 패수(浿水)를 건너, 평양(平壤)에 있는 왕검(王儉)에 도읍했다.』고 하여야 옳은 것이다.
결국, ㉠의 설명은 『압록강(鴨綠江)이나, 대동강(패수)이나, 동서(東西)축 선상(線上)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패수(浿水)”라는 하천(河川)이 무슨 움직일 수 있는 유기생명체도 아닌 다음에야 어찌 ‘이리 같다, 저리 같다’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마음이 ‘이리 같다, 저기 같다’ 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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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통 지》에, “패 수 (浿 水)”는 조선국 평양성(平壤城)의 동쪽에 있는데 일명 “대 통 하 (大 通 河)”라고도 하며, 가운데에 조 천 석(朝 天 石)이 있다. 당 나라 소정방(蘇定方)이 패수에서 군사를 격파(擊破)하였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였다. 《설문(說文)》에는, “물이 누 방 (鏤 方)에서 나와 동(東)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또 패수(浿水)현은 강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당(唐) 나라 이적(李 勣)이 패강도 대 총관(浿 江 道 大 總管)이 되었다.《증보자휘(增補字彙)》』고 하였다.
1) 일 통 지(一統志)에는,『평양성(平壤城) 동쪽에 있는 패수(浿水)는 대 통 하(大通河)이다.』 이 말은 반도(半島) 평양성(平壤城) 설명(說明)과는 부합(符合)될 수 없는 조건(條件)이다. 평양성(平壤城)은 패수(浿水)의 동쪽에 없으니 말이다. 또 패수(浿水)를 대 통 하(大通河)라 했다는 말 역시 반도(半島)의 패수(浿水)가 될 수 없다.
대 통 하(大通河)는,
대 통 하 (大 通 河) : 『청해(靑海) 서북 ‘아 목 니 니 고’ 산(山)에서 발원(發源)하여 동(東)쪽으로 흐르는 <간니 대 통 하>이며, ‘화석 특 좌 익’ 두 기(旗) 북(北)쪽의 좌우(左右)의 물을 모두 받아, 동남(東南)으로, 방향(方向)을 틀어 ‘대통 현’을 경유(經由)하여 감 숙성(甘肅省)으로 들어온다. ‘영등 현’ 서(西)쪽에서 동남(東南)으로 흘러, 황하【湟 河 = 황수(湟水)】에 들어오고, 이 황하【湟 河 = 황수(湟水)】는 다시 황하(黃 河)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청해 성(靑海省)과 감 숙성(甘肅省)을 흐르는 하천이다.』
이 하천(河川)이 패수(浿水)라 이름하며, 그 북(北)쪽을 흘렀다는 하수(河水)가 압록강(鴨綠江)이라고 한다면, 위 글 ㉠의 내용을 충족(充足)시킬 수 있다.
2) 『《설문(說文)》에는, “물이 누 방(鏤 方)에서 나와 동(東)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또 패수(浿水)현은 강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하였다.
설문(說文)의 주장(主張)이나, 1)의 대 통 하(大通河) 주장은 모두 동쪽으로 물이 흘러가는 간다. 반도(半島) 대동강(大同江)은 이름값을 할 수 없는 자격미달(資格未達)인 “짝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첫째로는 여러 하천의 물을 받는 것이 ‘대동강’인데 이에 미치지 못하고, 둘째로는 물의 흐름이 서쪽으로, 바다로 들어가기 때문에 역사서(歷史書)에 기록(記錄)된 방향(方向)과 반대(反對)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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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시조가 북쪽으로는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고 한 것과, “당 나라 황제(皇帝)가 패수(浿水)의 서포(西浦)에 배를 대고, 돈을 깔고 상륙하여, 송악 군(松 岳 郡)에 도착했다.”』는 설명은 역사서(歷史書) 기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당 황제(唐皇帝)가 “반도(半島)” 땅을 다녀갔다. 』는 말은 우스갯소리치고는 과도한 말이다. 고증(考證)할만한 자료가 없으니 더 이상의 설명(說明)은 할 수 없다. 다만, 송악(松嶽)군에 도착하려면, 임진강(臨津江)에 배를 대면 될 일인 것을, 무엇하려 평양(平壤)까지 가겠는가? 이것은 “임진강도 패수(浿水)였다.”는 말을 하기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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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本人)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수경 주(水經注)”는 자기 나라의 영토(領土)안의, 곧 대륙(大陸)의 왕조(王朝) 구역(區域)안에 있는 하천(河川)에 관한 설명(說明)이지, 반도(半島) 또는 그 북방(北方)의 물 설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수경 주(水經注)에 의하면』하는 말을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며, 무지(無知)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1) 패수(浿水)는 낙랑(樂浪) ‘루 방(鏤 方)’현에서 나오는 물로, 동남(東南)으로 와 ‘림 패’ 현을 지나, 동(東)쪽 바다로 들어간다.
(2) 許 愼 (허신)에 따르면, 패수(浿水)는 루 방(鏤 方)에서 나와, 동(東)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3) 수 경 안 (守 敬 按)에 따르면, 루 방(鏤 方)현은 한(漢), 진(晉)에 속해 있는 낙랑군(樂浪郡)이며, 후한(後漢), 위(魏), 진(晉) 이후(以後)에 폐지(廢止)되었다.
(4) 수경주전의 설에 따르면, 패수(浿水)는 동(東)쪽 바다로 들어간다.
(5) 십 삼 주 지(十 三 州 志)에 따르면, 패수(浿水)의 물은 루 방(鏤 方)에서 시작된다. 연인(燕人) 위만(衛滿)은 패수(浿水)의 서쪽에 이르는 곳이 조선(朝鮮)이라 했다.【반대로 번역해도 상황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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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역(疆域)은 그 왕조(王朝)의 도읍지(都邑地)인 서울【황도(皇都) : 왕도(王都) : 경조(京兆) : 경사(京師) : 왕성(王城) : 황성(皇城)등과 같은 말이다.】을 기준(基準)하여 방향(方向)과 거리등을 논하며,
특이(特異)한, 특별(特別)한 지명(地名)은 왕조(王朝)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그 위치(位置)도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나라의 몇 대 왕(王)이 무슨 일은 어떻게 했고』, 하는 식의 역사 이야기는 우선(優先), 『영토(領土)가 있고, 백성(百姓)이 있은 후에나, 가능(可能)한 이야기다.』
문화유산(文化遺産)도 중요하지만, 가정 우선적(優先的)으로 중요(重要)한 것은 “영토(領土)”다. 나라의 영토(領土)가 어디인지 조차 모른 채, 문화유산(文化遺産)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지금 우리들이 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적인 행동(行動)을 하고 있는데, 왜 그것이 “언어도단【言語道斷 : 말문이 막힌다는 뜻이며, 어이가 없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뜻임】적”인 것인지 조차 모른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2012년 03월 31일 <글쓴이 : 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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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만이 東쪽으로 달아나 패수를 건너...> 에서, 설명이 올바르게 되려면 <위만이 南쪽으로 달아나~~>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 합니다... 이것은 南...자로 써야할 부분에 東..자로 써서 왜곡한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