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일기(8) : 경북 <의성역>
한 도시의 인상은 무엇이 결정할까? 유명한 랜드마크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있는 곳은 그것을 통해 방문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렇지만 강렬한 인상은 그 자체로 주변에 있는 다른 것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유명 관광지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대부분 비슷한 유형의 화제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유명한 볼거리나 특별한 경관이 없지만 유독 좋은 인상을 주는 도시도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도시가 갖고 있는 균형과 적절한 적도에 있다. 가령 압도적인 산맥이나 거대한 폭포를 보면 사람들은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모습에 압도되며 강렬한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기억이지만 일상적인 따뜻함과는 거리가 있는 예외적인 상황의 모습이다. 자극의 최대치이다. 이런 자극에 중독되면 우리는 더 멋진, 더 쾌감을 주는 장소를 찾게 된다. 방송과 유튜브를 장악한 낯선 외국의 풍경 소개가 인기를 얻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런 장소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자극이 우리의 감성을 지배하면 쾌락은 날뛰지만 내면의 안정은 사라지는 것이다. 오히려 일상적인 만족과 여유를 주는 것은 평범하지만 자연과 인공이 서로 질서와 균형을 이루고 각자의 경계를 지키면서 적도를 유지하는 그런 풍경에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경북 ‘의성’은 그런 곳 중 하나일지 모른다. 의성은 전체적으로 조용하다. 대부분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도 보이지 않으며 도로를 다니는 차도 많지 않으며 도시를 압도하는 소음이 없는 도시이다. 의성의 중심 거리는 크게 두 개의 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역 앞에 있는 도로와 군청 앞에서 이어지는 ‘중앙로’이다. 중간중간 작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편의시설은 많지 않지만 거리는 깔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최근 방문한 한국의 도심은 거의 비슷하다. 조금 더 복잡하거나 한가하다는 차이 이외에는 동일한 모습이다. 역 앞에 커피전문점이 없다는 점이 이 도시의 이동인구가 많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의성의 매력은 도시의 중심을 흐르고 있는 ‘남대천’ 길을 걸으면서 느껴진다. 도심의 구봉공원 주변에서는 자전거와 보행자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하천길과 하천 옆 암벽 지대에 만들어진 코스가 각자의 개성적인 모습으로 마주보고 있다. 길은 넓고 여유롭지만 걷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밀양이나 영천의 강과 달리 남대천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걷기에 집중하게 해준다. 남대천 길의 풍요로움은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남대천 자전거길’을 걸을 때 만나게 된다. 하천 옆에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고 사람과 자전거의 동시 이용이 안내되어 있다. 하천은 끝없이 갈대숲으로 이어져 있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산들이 길을 호위한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들 중에는 다시 마늘 농사를 위하여 땅을 갈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많은 곳들이 푸른색으로 넘쳐난다. 마늘 농사를 위해 모종을 심은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없는 것이 남대천길의 답사의 매력을 가중시킨다. 보이는 것은 산과 물 그리고 논 사이의 적절한 균형일 뿐이다. 새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다. 산 속 고요함과는 다른 평야의 고적함이다. 길 중간에 있는 마을입구 250년 된 느티나무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귀환하였지만,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끝없이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성은 특별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떤 유적지도 특별한 자연경관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모여서 더 큰 여유와 평화를 주는 특별한 인상을 만들고 있었다. ‘자연의 품 안에서의 따뜻함’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적절한 장소였다. 하늘은 청명하고 세상은 고요하며 놓여있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모두가 적절한 거리에서 서로와 공존하고 있다. 늦가을에 일상적이지만 따뜻하고 새로운 풍경과 만난 것이다. 내일부터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가 들려온다.
첫댓글 - 예전에는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이었을지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