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를 만나다. 치따슬로(cittaslow)
이태호
신안군을 품고 있는 천사 섬 중 하나인 증도에 다녀왔다. 자동차 액셀을 덜 밟으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슬로시티’ 말 그대로 느림의 철학을 하고 싶었다.
‘우전리’바닷가에 500여 년 된 팽나무 한 그루가 보호수란 명찰을 달았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아내와 내가 다가서자 증손을 맞이하듯 살랑살랑 푸른 이파리로 “더위야 가라!” 부채질을 해주었다. 나와 아내는 양손을 잡고 나무 둘레를 껴안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빨리 빨리만 선호했더라면, 이토록 여러 세기를 버틸 수 없었을 것이야."
애초 당일치기로 정했던 일정을 1박 2일로 늘렸다. 우선 바닷가에 뿌리를 내린 민박집을 찾았다. 노을빛 슬레이트를 머리에 이고 거만하지 않게 서 있었다. 새댁시절 별호가 예쁜이라는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엇보다 리드미컬한 전라도 사투리가 듣기에 좋았다. 안내 책자가 있었지만, 일부러 물어보았다. 어디가 좋으며 어디부터 가야 옳은지를. 여행지에서 ‘아는 척’은 절대 금물 중 하나다.
가능한 많이 걷기로 했다. 걸어야만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짱뚱어 다리 밑에는 또 다른 소우주가 펼쳐져있었다. 우리가 내려다보자 곧바로 짱뚱어가 신호를 보냈다. 말하자면, “외부인 침입!” 이라는 경고메시지다. 신호를 받자마자 황발이(농게)들이 일제히 붉은 왕발을 번쩍 치켜세운다. 그런가하면 능젱이(칠게)들도 오죽잖은 발이지만 집게를 활짝 열고 금방이라도 대들 자세다. 영근 햇빛도 그들의 영역을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천천히 느림의 철학 속을 산책하는 것이다.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은 더딜수록 알찼다.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유럽의 어떤 도시 여행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도시에서 수년을 근무한 사실이 있고, 지인은 약 15일간의 여행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말했다. 당시 나는 지인의 언행을 탓하기에 앞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솔직히 우리는 외국여행을 할 때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다. 소통이 어렵다는 것은 문물은 물론 풍습 등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방증이다. 그 때문에 한번 다녀왔다는 것은 어떤 사물을 슬쩍, 한 바퀴 돌아본 것과 같다. 국내여행 또한 다를 바 없다.
1박2일 일정으로 증도를 둘러보았다. 언급한대로 수박 겉핥기다. 초가을에는 한 열흘 증도와 함께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 안에 진실도 키우고, 마음의 소리도 옮겨 담을 계획이다.







첫댓글 '좋아요' 기능이 있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싶습니다.^^ 느림의 미학이 전해집니다. 바다를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아는 척 금물. 아는 것도 없지만 아는 척도 하지 말자 생각해봅니다.^^
전라남도 바닷길을 거슬렀다 왔습니다. 신성리 갈대 숲도 들려서 한 껏 푸름을 만끽하기도 했습니다. 만리포 바다도 좋습니다. 부군 휴무일에 따님과 함께 오십시오. 주변에 천리포수목원도 있답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을 귀한 사진으로 보여주시는데, 독자로서 최소한 눈요기 값은 해야 예의지요. '눈요기 값'이란 고작 댓글 한 줄 쓰는 것이지만 그 마저 인색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의 옹색한 변명이지요. 각설하고 이 선생님 사시는 곳도 아름다운 바닷가인데 증도 여행하시면서 감탄하시는 걸 보니 또 다른 구경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근사한 곳에서 두 분이 따로 사진을 찍어 올리셨지만 사진을 서로 찍어 주시면서 느끼셨을 부부애를 상상해 봅니다. 풍경도 인상적이고 두 분의 모습도 멋집니다. 금슬 좋은 부부가 가장 부럽습니다. 부부금슬도 건강해야 가능합니다.
짱뚱어 조각에 웃음이 스칩니다. 그 위에 올라타면 저 멀리로 날아갈 듯 날렵하네요.
저같은 육지인은 그저 감탄하다 올 뿐인데 바다의 면면을 눈과 마음에 담아 글로 풀어내시는 게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