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울진 답사
장소:죽변등대,봉평신라비전시관,남사고 유적지,평해황씨 해월종택,대풍헌
일시: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08시~21시
참석자: (김홍배, 김광엽, 오은숙, 이남숙, 오은실, 김점한, 정세집, 김진동, 이재중, 김정중, 조정희, 최옥련, 장송회) 선생님
1.죽변등대: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1-23번지
죽변등대는 1910년 11월 울진지역에서 최초로 건립된 등대이다. 등탑의 구조는 평면 팔각형 콘크리트조 4층의 탑형 구조물(높이 15.6m)로 상부로 갈수록 체감되어 안정감과 수직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이 등대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인하여 등대기능을 잃기도 하였으나, 1951년 10월에 등탑을 보수·복구하였으며, 1970년 4월 안개시 보내는 소리신호기(무신호기)를 설치하여, 안개나 풍우 속에서도 선박의 항로를 인도할 수 있게 되었다. 죽변등대는 동해안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뱃길을 인도하기위해 건립한 것으로, 이 지역의 랜드마크적 역할 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애환과 역사를 담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전체적으로 벽면의 여러 선들과 형태요소들이 잘 조화되어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참고-문화유산 울진문화재)
뭉게구름이 살살 지나가는 날에 죽변등대에 왔어요.참 조용한 곳인데 여러 선생님들의 도란도란 이야기소리가 정적을 깨주는 같네요.왼쪽에 사무실 건물이 있고 등대와 같이 하얀 색이네요.오른쪽에 이재중선생님은 김광엽부회장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하네요.
등대 사무실 맞은편에 큰 호박을 발견했어요.다 익은 듯 하지만 껍질이 거무스럼하네요.꼭다리를 땅에 감추고 뒤집혀서 자라니 보기가 더 좋네요.혹시 등대를 바라보고 자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호박과 대화하는 법을 터득한다면 참 좋겠네요.
등대앞에는 반고리 모양의 돌위에 동그란 구멍 다섯개 뚫린 황동 초생달이 붙어 있네요.그 위에 등대불이 붙어 있네요.등대불은 밤에 비추니 달과 잘 어울리네요.빨간 옷 입은 이남숙 선생님도 좋은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네요.
꼭대기 동그란 부분에 불빛이 나오는 곳이네요.높은 창문,낮은 창문,그리고 정문.문을 열고 올라가서 등대불이 비추는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자물통으로 굳게 잠구어 놓았네요.정세집선생님이 뒤쪽의 창문을 가리켜서 들여다보니 가파르게 올라가는 계단이 청동난간으로 되어 있네요.등대속은 계단을 보는 걸로 만족하고 여기에 근무하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어요.
2.봉평신라비전시관: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521번지
국보 제242호 울진봉평신라비의 효율적인 보존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하여 조성하여 2011년 6월 23일 개관하였다.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 앞마당에 울진지역에 산재한 송덕비 45기를 이전설치하여 비석거리를 조성하였으며,제1전시실에는 울진봉평신비의 실물을 전시하고 비의 발견과정과 해석 등이, 제2전시실에는 신라,백제,고구려 3국에서 중요한 석비 10기를 실물크기와 똑같이 만들어 전시하였다. 제3전시실에는 우리나라 금석학의 계보, 시대별 비의 양식, 한문과 한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뒷마당에는 우리나라 국보,보물급 석비 중 25기의 비를 실물크기와 똑같이 제작전시하여 우리나라 비석문화를 한 곳에서 알 수 있게 하였다.(참고-봉평신라비전시관 홈페이지)
봉평신라비 전시관 앞에서 양복입은 김성준해설사님을 만나서 여러 회원분들과 인사를 했어요.오른쪽에 김홍배회장님과 김정중선생님과 저는 경북향토사협의회 연찬회에서 만나서 더욱 반가웠어요.먼저 소개를 하시고 나서 향토사는 지역의 조그만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했어요.
전시관 안에 들어가서 울진봉평신라비 원문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 주었어요.이 비는 전시관 근처의 논에서 발견되었는데 비문을 해석해 보니 신라시대 지역민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정부의 관군이 와서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사후 법으로 처리하는 내용과 신라의 관등제에 대한 기록이 있어서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여기서 "갈문왕"은 왕이 아니라 왕과 가까운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하나 배우는 좋은 시간이었어요.우리 모임말고 안동,서울에서 온 분들도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이 듣고 이야기를 나누니 좋네요.
3.남사고유적지: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224-1
이 곳은 격암 남사고 선생의 태어난 생가의 터가 있던 곳으로 2007년에 생가터에 서재로 자동서원,강당으로 수남정사,사당으로 치격사를 지었다. 예연서 격암 유록으로 유명한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조선 명종 때 이름이 높았던 예언가입니다.. 본관이 영양(英陽)이고 호는 격암(格庵)으로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던 그는 역학, 풍수, 천문, 복서, 관상의 비결에 도통하여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꼭 들어맞았다고 한다.(참고-RURIWEB)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도착하니 넓은 곳에 지어진 유적지가 보이네요.먼저 안내판을 보고 들어가야겠지요.조선시대 예언가답게 설명을 많이 해 놓았네요.입구에서 보니 건물 뒤편에 키가 큰 소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띄네요.저게 바로 울진에서 자랑하는 금강송이랍니다.보통 소나무보다 가지를 가늘게 쳐서 똑바로 자라고 키도 30m정도로 자란답니다.방문객을 반겨주는 듯 하네요.울진에서 교편을 잡으신 김광엽부회장님은 신경쓰실려나 모르겠네요.문 왼쪽이 '수남정사'이고,오른쪽이 '자동서원'랍니다.
마당에 들어와서 우리 선생님들은 따로따로 바라보시네요.안내판을 보시는 분,자동서원을 보시는 분,머리하얀 동네분과 이야기 나누는 회장님.시선들이 다르기에 여러가지를 보셨을 거라 생각돼네요.
자동서원에 눈에 띄는 것이 기둥에 붙어 있네요.회장님께 물어보니 '주련'이라고 하는데 하얀 바탕에 까만 글씨를 써 놓은 주련은 처음 보네요.제실이나 서원을 둘러보다 보면 까만 바탕에 하얀 글씨를 보는데 여긴 어떤 의미가 숨어있길래 요래 해 놓았는지 궁금해지네요.
다른 분들은 이동을 하고 김정중 선생님 혼자서 사당인 치격사를 들여다 보고 있네요.옆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저는 먼 발치에서만 보았는데 선생님은 자세히 보시네요.담넘어 편액 글씨를 보고 있는 듯 하네요.다음에는 저도 자세히 봐야겠네요.
4.해월헌: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번지
해월 황여일(1556∼1623)의 별당이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21년(1588)에 짓고, 헌종 13년(1847)에 고쳐 지었다. 원래 기성면 사동리 마악산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황여일은 선조 9년(1576) 사마시를 거쳐 선조 18년(1585) 문과에 급제한 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원사 권율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웠다. 선조 27년(1594) 형조정랑을 거쳐 참판에 올랐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옆면 앞쪽 1칸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돌렸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에는 ‘해월헌기(海月軒記)’, ‘제해월헌(題海月軒)’, ‘용청강운(龍淸江韻)’이라고 쓴 현판들이 걸려 있다.(참고-문화유산 울진문화재)
좁은 길을 따라서 들어가니 입구부터 공사를 하고 있네요.담넘어 복스러운 반송이 손님온다고 내다보는 것 같네요.강열한 햇살을 등에 업고 안내문을 보았어요.전에는 '해월헌'이라고 써 놓았는데 지금은 '평해황씨 해월종택'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놓았네요.궁금하지만 우선 대문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대문을 들어가니 여기 마당에도 역시 공사를 하고 있었어요.공시를 지시하는 사람이 여자분이라서 신기했어요.문화재를 많이 아는 분인가 하고 생각을 하는데 왼쪽에 주인인 듯한 어르신 부부가 계시길래 종택에 관한 설명을 들었어요.오른쪽 정자는 '해월헌'로 황여일선생이 공부하던 곳이고,왼쪽은 '모고와'로 살림집이라고 하네요.뒤편의 건물들 모두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서 관리를 받고 있다고 하네요.주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선생님들은 벌써 안채까지 다 둘러보고 나오시네요.뒤편에 낮은 산에 소나무가 둘러싸고 안쪽에 대나무가 둘러싸니 아늑하고 따시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네요.
5.대풍헌: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번지
대풍헌은 조선시대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건물이다. 이 건물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구산동사 중수기에 의하면 1851년(철종 2년) 중수하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 측면 3칸의 일자형 팔작집으로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구산리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마을 주민들의 집회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풍헌은 조선시대 동해안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건물로 평면구성이나 일부 가구수법에서 특색을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건물의 여러 부분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 변형되어 있어 2010년 해체복원하였다. 조선시대 울릉도를 관리하던 수토사들의 출발지라는 점에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참고-문화유산 울진 문화재)
대풍헌에 왔어요.기다릴 대,바람 풍,집 헌 으로 한자를 써 놓았네요.울릉도를 순찰할 관리들이 여기서 순풍을 기다린 곳이네요.뒤편은 큰 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높은 벽이 있어서 적이 들어 올 때 올라가서 수비를 하기도 좋은 곳이네요.왜구들이 동해안으로 자주 침략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성을 쌓고 막았을 것 같네요.
부회장님과 회장님께서 대화를 하는 중에 건물에 들어간 김점한선생님은 휴대폰으로 열심히 찍고 있네요.대풍헌 중수기를 찍는지 작시를 찍는지 궁금하네요.여기는 기둥에 종이를 붙여서 글씨를 써 놓은 것이 특이하네요.낯선 글씨들이 많아 읽지를 못하겠네요.
오후의 햇살에 전부 눈부신 얼굴이 되었습니다.뽀샵처리가 자동으로 되었네요.이 건물에 편액이 두 개나 걸려 있네요.왼쪽은 '기성구산동사'이고 오른쪽은 '대풍헌'이네요.물어보니 원래는 동사로 쓰다가 수토사들이 오면 같이 쓴다고 하네요.우리 선생님들도 전부 수토사 같습니다.순풍에 돗을 달고 울릉도를 시찰할 꿈을 꾸는 듯 합니다.
첫댓글 답사 정리를 현장감이 있고 어제 가본 듯 합니다. 글 솜씨도 센스있고 재미있어 좋습니다. 1인1연구 자료가 아닌 2014년 우리회 자료집에 실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자료집에서 볼 날을 기다려 봅니다~^^
벌써 자료를 올리셨네요... 감사... 그런데 원본 파일을 좀 보내주세요...
사진을 카페에 올리고 나서 원본사진을 지웠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