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5
보물지도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10년전 미국여행을 할 때입니다. 한 주에서 다른 주로 넘어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여행안내소에는 그 주(洲)가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지도(official map)와 주에 속해있는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도, 그 외 박물관 등 관광지 안내 팜플렛에서부터 큰 스프링노트 형태의 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홍보자료들이 있어 이를 수집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담겨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색감, 재질, 모양 등은 나를 흥분시켰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모았던 것이 한 상자는 되었습니다. 각 주가 발행하는 홍보용 자료가 가장 풍성하고 좋았던 곳은 텍사스 주였습니다. 그래서 그 주가 부자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부터 지도 보는 재미를 익혔고, 대전으로 이사와 서점에서 구입한 전지크기의 대전지도를 3천원짜리 명화라 이름붙여 벽에 붙여놓고 감상하곤 하였습니다. 이후 지도 속의 지명만 보면 마음 설레는 버릇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1년간 살았던 곳의 지명이 테네시 주의 cool spring이란 곳이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찬샘, 냉천 이란 지명이 있는 것과 마찬지로 지명만으로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가늠하게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1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도는 빈약했습니다. 관광지의 유명 호텔에 가도 그 지역의 안내지도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의문했었는데, 2001년 대전문화유산해설사가 되니까 공부시키면서 대전시가 발행한 지도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지도들이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했을까는 그 당시만해도 예산상의 어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자체가 홍보용 지도를 만들긴 했어도 외부 귀빈들 정도 선에서만 제공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역관광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도는 다양해졌습니다. 접으면 명함 크기가 되는 지도에서부터 책자 형태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색감 등이 화려해졌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현재까지 전라남도의 지도가 가장 좋았다고 판단됩니다. 보기도 좋고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동남아 여행하며 가져온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싱가포르 것만 해도 7종류입니다. 그중 하나는 한국관광객을 위해 한글로 번역되어있는 것도 있습니다. 여행을 가면 해당국의 공항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할 것이 그곳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도입니다. 지도를 구입하여 읽어내는 판독은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할 정도로 중요한 보물창고입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은 official map이라해도 종류가 여러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2009년 크리스마스를 대비하여 발행된 것, 쇼핑 중심의 지도, 야간관광을 위한 지도 등 특색있게 제작되어있습니다. 지도는 처음 접해서 익힌 지도가 가장 편리합니다만, 자신이 찾고자 하는 관심사에 따라 지도를 선택해서 보는 것이 좋으므로 몇 가지 지도를 비교하며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령 어떤 지도는 국립도서관이 표기가 안 되어 있는 지도도 있는가하면 국립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잘 드러나게 표기된 지도도 있고, 지하철 노선과 도로 등을 부각시킨 지도, 또 어떤 지도에는 병원이 잘 보이도록 제작된 지도도 있습니다. 정해진 지면상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에 나온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싱가포르와 태국 관광지도를 비교해보면, 싱가포르는 official map 이라 표기되어있어도 상업용과 큰 차별이 없을 정도여서 국가차원에서 관광과 쇼핑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의 official map 에는 한 나라의 기본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기후, 로칼 타임, 물(마실 물)의 종류, 무엇을 입고 있는지, 업무시간, 화폐, 신용카드, 전기종류, 언어 등을 간략하게 표기하여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있으며, 각국의 대사관 등 주요전화번화, 도로거리 표기, 간단한 태국어 인사말, 주말시장 위치, 관광지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 외 상업적 용도로 제작된 지도에는 광고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목적에 따라 구성과 표식이 다르게 제작되어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지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애초 태국 치앙마이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싱가포르 항공표를 구입하였던 것이었는데, 치앙마이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중 제가 탈 비행기가 예약 초과가 되어 여행자가 혼자인 몇 사람들에게 제의를 해왔습니다.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가서 방콕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타이항공을 타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였습니다. 5천바트(약 17만원정도) 보상조건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권유에 당황스러웠으나 방콕도 가보지 못했으니 이 참에 가보자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방콕으로 가게 되었는데, 방콕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9시간 정도였습니다. 방콕을 갈 계획이 전혀 없었기에 방콕에 대한 사전정보도 지도도 없었습니다.
방콕공항에 내리자 방콕지도부터 구입(물론 무료)하여 시내로 나가는 방법을 찾았는데, 여기저기 물어도 택시밖에 없고, 자기네 투어코스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는데 가격이 좀 비쌌습니다. 공공버스가 없을리 없어 찾아보니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있었습니다(1층 8번출입구쪽). 시내 여러 가지 지점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짧은 시간내 관광할 수 있는 곳이 AE 2 코스였습니다. 비용은 150바트(약 5,250원), 소요시간은 50분 정도였습니다.
버스 안에서 몇 개 지도를 보면서 보기 쉬운 지도를 택하고 도착할 지점의 위치를 파악해보니 가 보아야할 곳의 순서가 짜여졌습니다. 하차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국립미술관, 그 건너편이 국립국장, 국립박물관, 에머랄드 부처가 있다는 프라 태우 사원, 왕궁, 포 사원 등의 순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쾌재를 부르며 내리자마자 자신감 있게 지도를 보면서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미술관에 당도하니 웬걸 월, 화요일 휴관일입니다. 마침 화요일이니 ‘국립’자 붙은 곳은 겉만 구경할 수밖에요. 강가에 위치한 그곳은 관광코스의 핵심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체관광객들이 떠밀려 다니고 있었으며 장사치, 거리행인하며 도로자체가 난장이었습니다. 치앙마이와는 규모면에서 완전 차원이 달랐습니다. 사원도 엄청나게 커서 그것 하나 구경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습니다. 왕궁 쪽은 전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으로 붐비고 한국인 단체관광객들도 있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갈아입을 요량으로 들고 온 겨울옷 보따리와 작은 노트북을 메고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무거워지고 더위와 함께 짜증과 조급함에 빨리 공항으로 돌아가고 싶어 택시를 탔는데, 내가 내렸던 곳과는 달라 그 지점을 찾느라 지도를 보며 뺑뺑 돌았습니다. 그 즈음에는 구경이고 뭐고 빨리 공항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뿐 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이르게 공항으로 돌아와 저녁으로 우동을 먹고 타는 곳 위치를 확인한 후 커피집에 앉아 쉬면서 이것저것 메모하다 출발시간 밤11시에 맞춰 타는 곳으로 오니 한국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안심되면서도 또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싫어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휴관만 아니었어도 갑작스럽게 주어진 시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 나라는 화요일까지 휴관해가지고서리. 우리는 월요일만 쉬는데, 그들은 주5일을 통째로 지키나봅니다. 지도를 하도 들여다봐서 다음 갈 때는 지리가 훤하게 잡힐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공항과 도심을 오가는 버스에서 본 방콕은 결코 만만한 도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지도 이야기로 다시 마무리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 관람코스 첫 번째 방에 붙어있는 조선시대 제작된 전국지도에는 지역마다 인명이 표기되어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앞으로 지역별로 여러 가지 형태의 지도들이 제작되어 풍요로운 볼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감도 형태의 옛 지도 형태를 오늘날 적용시키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 지도, 대전의 대전둘레산잇기 지도 등 이러한 것들의 총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담아내는 것인 동시에 그 자체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볼거리(觀光)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