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는 그 매우 특별한 위상이라는 수식어적 의미를 넘어 우리 대중음악사적으로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비단 가요 사전심의철폐 운동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투쟁가다운 면모는 논외로 하고서라도(아이러니하게도 실상 가요 사전심의철폐 운동의 최대의 수혜는 그에게 돌아갔다기 보다는 요즘의 신세대 가수 중 험악(?)하거나 선정적인 노래말로 주목 한 번 받아보려는 이들에게 돌아가고 말았지만…), 그의 노래들로부터 시사되는 각종 특징만으로도 그에게 위와 같은 찬사를 보내는 것이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가치와 의미는, 첫째로는 그의 노래가 발표된 때로부터 그가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는 '향토적 정서'에 있다. 그 누구도 정태춘만큼 한국적 이미지에 기반한 향토적 정서의 승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둘째로는 그는 한국어로 된 노래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첫 앨범이 1978년에 발표되었는데, 그 이전에 불리워졌던 다른 포크계열의 노래들과도 달리 그의 노래말은 그의 특유의 창법(조금은 웅얼거리는 듯한)과 어우러져 무엇인가 뜻한 바를 노래로서 전달하는데 있어 진지한 가사의 전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것 같다.
셋째로는 그의 노래가 참여의식의 서정적 발현이 어떠하여야 하는 것에 관해 이전에는 보기 어렵던 나름대로의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노래들(예컨대,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의 노래들)이 그 창작자들에 의해서조차 그들의 노래 속에 내포되어 있던 참여적 성향에 적잖이 당혹해했던 것에 비해, 그리고 근년의 소위 운동권가요들이 서정적 성향은 도외시한 채 구호화된 참여적 성향만을 강조하였던 것에 비해 그의 노래는 많은 자제력을 갖고 이 둘을 적절하게 조화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그가 1980년대 말경부터 각종 콘서트에서조차 "옛날의 나의 노래를 듣고 싶다면 음반을 사서 들으라"고 공공연히 말하기까지 하였지만, 그 이후의 그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역시 그가 '참여의식의 서정적 발현'이라는 테마에 대해 끝내 손을 놓지 않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정태춘/박은옥]은 [시인의 마을](1978), [떠나가는 배/우리는](1984)에 이은(그 중간에도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 [우네] 등의 음반이 발표되기는 하였으나, 거의 사장되었다) 그의 세 번째 앨범이다.
이 음반은 [시인의 마을]로 시작된 그의 노래가 [떠나가는 배/우리는]의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 <촛불>, <떠나가는 배>, <탁발승의 노래> 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하고 난 직후 발표된 것이다.
정태춘은 이 음반을 통하여 종래부터 그가 지향하여 왔던 '향토적 정서'에다 '참여의식'을 그의 노래 속에 본격적으로 투영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음반에는 <북한강에서> 외에도 <사망부가>, <애고, 도솔천아>, <여드레 팔십리>, <봉숭아>와 같이 이전에는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한국적 서정미가 가득한 수작들이 실려 있다.
그 이후 발표된 [무진 새노래](1988)는 정태춘의 참여적 성향이 더욱 고취된 노래들, 이를테면 <그의 노래는>, <얘기2>, <아가야, 가자> 등과 같은 노래가 수록되어 있고, 이 중 <그의 노래는>은 심의 때문의 가사의 일부가 훼손된 채 그대로 음반화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사회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문제작 [아! 대한민국](1990)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에 수록된 <아! 대한민국>, <일어나라, 열사여> 등과 같은 노래는 아무래도 그의 참여적 의도가 지나쳐 음악으로서의 그의 작업이 일종의 한계선상을 걷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다만, 이 중 <우리들의 죽음>은 그 주제가 매우 심각한 것이기는 하나, 노래로서 얻을 수 있는 참여의식의 발현이 어느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을 시사한다는 면에서 매우 휼륭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정태춘은 그 후로도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정동진/건너간다](1998) 등의 음반을 발표했는데, 앞의 것은 [아! 대한민국]의 연장선상에서, [정동진/건너간다]는 이전 두 음반의 한계 앞에서 절망한 끝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갈등기의 것이라고 이해될 듯하다.
<북한강>은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매우 진지한 곡이기도 하다. <북한강>은 자아의 정체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사람들의 지속적 교류와 괴리,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번민을 강가에 가득 피어 올랐다 사라지는 안개에 비유하여 형상화하였다(이렇게 진지한 주제에 이렇듯 멋진 노래말 그리고 아름다운 곡조를 가진 곡이 과연 이전에 우리 나라에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