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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 날 너희 가운데서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들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그것은 너희 생명이므로 너희에게 헛된 것이 아니니라. 이 일을 통해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 날들을 길게 하리라. 시편 91편 9 나의 피난처 되시는 주 곧 [지극히 높으신 이]를 네가 네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어떤 재앙도 네게 닥치지 못하며 어떤 역병도 네 거처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대한 책무를 주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잠언 3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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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지 말고 네 마음이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할지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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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것들이 네게 많은 날과 오래 사는 것과 화평을 더하리라.
잠언 10장 2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날들을 길게 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햇수는 짧게 되리로다. (한글 흠정역) |
여기서 우리는 위의 성경 말씀들로부터 몇가지 교훈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들을 순종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건강 장수를 별도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에페소서 6장 3절에서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약성경이 구약의 계명과 가르침들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폐하여진 것이 아닙니다! 우상 숭배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하신 계명의 말씀들이 폐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 그대로 수용되었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지키라고 하실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이미 그 계명들이 구약에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명령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한국 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현대교회는 무법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신약교회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야 하며(롬 8:2) 그 법은 구약 율법의 형사법과 도덕법을 수용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율법의 성전제사법과 의식법을 성취하고 대체한 것으로 믿어집니다. 반면 도덕법, 형사법은 더욱 강화된채 성령의 법으로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그분을 두려워함이 장수하는 비결이라면 바로 그분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려 하여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으로 기록되었으며 성경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이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무지로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을 수시로 상고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좇아 살아야 하며 그것이 장수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3. 동물보호가 장수에 연결되어 있음은 주목할 일입니다(신 22:7) 하나님은 육축에게도 안식일을 줄 것을 인간들에게 명하셨습니다(출 20:10)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하시기도 하십니다(신 11:15) 의인은 그의 짐승의 생명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씀하십니다(잠언 12:10) 요나서 4장 11절에서도 하나님의 육축에 관한 관심을 볼수 있습니다.
4. 여러 계명들 중에서 부모 공경이 중요한 요소임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자녀들로부터 동일한 공경을 받을 자격을 갖추도록 해줄 것입니다. 그럴려면 자녀들은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며 훗날에 그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들을 잘 공경할만한 사람들로 바꾸어 줄것입니다.
5. 물론 이외에도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몸이 성전인줄 알고 잘 관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며 사탄의 한가지 계략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게 하면서 건강을 해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윌리암 보덴이나, 무어하우스가 일찍 죽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어하우스는 무디 형제가 탄복했던 설교가였습니다만 40세의 나이에 일찍 죽었습니다. 윌리암 보덴은 한국의 수많은 선교사들을 지원하였던 당시 미국 최대의 부호들 중의 하나였던 가문에서 태어나 많은 금액으로 한국행 선교사들을 지원하였는데( 스크랜튼,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등), 그 자신이 무슬림 국가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이집트에 갔다가 거기서 열병으로 26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세계 곳곳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울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충분히 그 사연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6. 그러나, 죠지 뮐러와 로버트 채프만의 경우는 분명히 그리스도안에서 평안한 삶을 살면서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분의 뜻을 좇아 살았기 때문이었다는 예들이었다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죠지 뮐러처럼 누구나 고아원을
경영하며 큰 일들을 수행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대신 각자가 마음에 선을 행하도록 나름대로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
수준을 달성한다면 주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행하도록 요구하시지는 않을 것이며 그분은
도우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어떤 수준과 기준이 있음은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태 복음 10장
25 제자가 그의 스승같고, 종이 그의 주인 같으면 족하도다
예수님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수준이 있음을 알수 있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좇아 사는 삶일 것입니다. 성령님을 좇아 살면 스승같이 되고 주인같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평안가운데 우리가 살수 있다면 우리의 심장은 우리로 평안가운데서 더 오래 건강하게 살게 해줄 것입니다.
http://cafe.daum.net/Eliyahu?t__nil_cafemy=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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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래에서 기쁨님이 질문하신 바에 대한 답이 아무래도 길 수밖에 없어서 별도로 썼습니다.
하토브님! 주님을 몰랐을때는 부모님 원망 많이 했었어요 .내가 부모가 되고나서 더욱 심해졌었죠.어떻게 부모가 자식들 한테 ... 그런 환경을 줄수가 있나...해준게 뭐가있나...그런데 주님을 영접하고 이번에는 정죄감과 죄책감을 수반하며 부모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죠..이러지 말아야지 주님 싫어 하시는데..왜 주님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나 ...분명히 주님의 깊은 뜻이 있을텐데 하면서 괴로웠습니다. 노력도 많이 했었죠.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니 제 의지로 노력으로 해도 헛수고 였어요 자꾸만 반복되고...
그런데 얼마전 마침내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토브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바로 그것입니다 나도 부모구나..! 그것은 자녀들로 부터 동일한 공경을 받을 자격을 갖추도록 해주시기 위해 그러시는구나! 늘 깨닫는것이지만 주님은 언제나 우리 좋으라고 늘 우리에게 좋은것만 주시는 주님을 또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왜 그래야만하는지 주님이 확실하게 동기를 부여해주시고 또 그것을 확실하게 받았으니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그 집 아이를 보면 부모가 어떠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마찬 가지로 부모를 보면 아이의 어떠함은 그 이이를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지요..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간에 갈등이 심한 가정은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특히 부부가 불화한 가운데 자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특히 그들이 청소년기가 되어서는 이성관계가 난잡하고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이 땅에서 세상적인 복이라도 받으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실 부모 공경중에서 제일 어려운 시점이 마지막에 병환 수발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훈련 받으면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수많은 간호사들을 보면서 지켜보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어려운일이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부모 공경은 결국은 여러면에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저는 부모가 계신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유익이라고 믿습니다. 제게는 부모가 안계시니까,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갖고 달려와서 좋은 일 생겼다고 소리칠 때 기뻐해줄 부모가 없는 슬픔이 가장 큰 것을 느낍니다. 수많은 즐거움 중에 가장 좋은 기쁨은 아마 남들을 도울 때 오는 기쁨일 것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모두 잘 도와 주는데 내 부모에게 효도해준 적이 없었다고 느껴질때는 참으로 가슴아픈 사연이 됩니다. 저는 제 어머니가 저의 8살 때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한번도 효도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는 어머니가 병석에 2년동안 누워 있는 동안 동네 교회에서 찬송가를 불러주었는데 그중 두곡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기에 제가 잘 모실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게는 이런 문제를 말한다면 슬픈 이야기가 됩니다.
하토브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댓글들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토브님이 요약해주길 바란것은 건강하게 오래사는법 글 말미에
주님께 충성이란
단어를 보고 , 글 제목관 상관없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주님께 충성을 하는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충성이고, 특별히, 주님 만났을때 상급, 즉 면류관을 받을수있는지 에대해, 그리스도인 전생애에 해야될것들에관하여
하토브님의 글이 읽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 세월이 다 지났지만, 우리교회에서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중에
주일학교 교사면 교사, 찬양대원이면 찬양대원으로써, 혹은 심방대원이면
심방을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몇십년동안 꾸준히 한 사람들이 너무
부럽답니다. 특별히 내가 할수있는것중에 한가지 수요예배와 성경공부에
참석을 안하는데 (남편은 잘~나가는데) 만일 이다음 공예배에 참석을
충실히 한것이 몸으로서의교회 세운일에 상급이있다면 얼마나 후회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격려차원보다는 채찍차원으로 말씀해 주십시요.
충성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저는 늘 군대 생활을 생각합니다. 제가 있던 군대에서의 경례구호는 충성이었습니다. 그 구호를 엄청 큰 소리로 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예수님께 충성! 하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인간들에게 충성할 수 있다면 왜 그들의 창조주이신 분에게, 특히 저를 위해 피흘리고 죽으신 분에게 충성할 수 없겠습니까? 그리하여 그 구호가 지금까지 계속 충성이라는 단어로 제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충성하기 보다는 인간관계에 충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인간들에게 기쁨을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갈 1:10)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실질적으로 하나님께 충성을 하고 있지, 인간에게 충성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럼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 너희는 랍비( 선생)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단 한분 그리스도 뿐이요,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니라" (마 23:8)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집사님 집사님 하고 부릅니다. 제가 교회에서 제직회의 하는데 모든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부르고, 목사를 형제로, 여전도사를 자매로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그뒤로 저는 거기서 나왔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겠습니까? 인간들에게 충성해야 하겠습니까?
또한 성경을 살펴보면 침례가 옳고, 세례는 잡신교의 풍습이며, 말하자면 위조지폐와 같습니다. 위조지폐 100만 달러는 정화 100만 달러의 절반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것을 소지한자들은 형사처벌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침례가 옳지만 세례도 무방하다! 하고 주장하며 가르칩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한 사람들은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던진 이유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족속들로 제자를 삼아 침례를 베풀라 명하셧던(마 28:19) 것은 세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물한바가지로 세례받을 수 있다면 요단강까지 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안에 어느 직책에 평생동안 있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방향입니다. 또한 그런 삶의 방향을 사모하는 것도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중에서 도지사나 시장에 선출된다음 그 직책을 계속해서 잘 수행하려하지 않고 소위 대권이라는 것을 꿈꿉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욕심의 세계입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분야에서 전문가로 크게 성공한 대통령 수천명ㅇ이 필요합니다. 그와 같이 전문적 분야에 충성하려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든지 좇아가는 삶입니다.(계 14:4) 그런 까닭에 바울은 수많은 곳들을 다니며 전도했으며
아마도 3년을 보낸 에페소가 가장 오래 체재했던 곳이고, 그외에는 무수히 옮겨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가서에 보시면 예루살렘 여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만은 못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순종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받는다거나,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더욱 나은 삶과 충성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충성의 길은 전력투구하여 기도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끈을 잡을 수 있게 되며 그때부터 따라가는 삶이 바로 충성의 길입니다. 스펄젼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들 몇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흡연해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죽기 3년전에야 담배회사들이 스펄젼이 피우는 담배를 피우자고 선전하는 것을 보고야 끊었습니다. 그리하여 59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제가 말한 동일한 조건하에서, 그가 그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에 진지하게 귀기울였더라면 그는 훨씬 더 오래 살며 전도했을 것입니다.
제가 나가는 형제모임에서는 쭈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만찬을 매주일 실행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 사실이 중심이 되어 있는 것으로만 들리는데 실제는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만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떤 중요범죄도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 제가 만일 나쁜 범행을 저지른 다음에 뻔뻔히 성만찬에
참여한다면 주님은 저에게 엄청난 형벌을 가하실 줄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주일 내내 저는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형제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간증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성만찬이 어느 성직자, 목사가 집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동등하게 명예로운 손님들로 초대받은 잔치이며 그 잔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이렇게 실행하지 않으며 매주일 교회에 모이는 목적이 바로 이 떡을 떼기 위하여 모이지도 않습니다(행 20:7) 그리하여 그들은 고전 11장 25절 26절에서 너희가 자주 이떡을 먹으며 자주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일년에 두번씩만 실행하기 위해 이 성경구절을 변개 시켜, 자주라는 단어를 빼버렸으며, 심지어 한글 킹제임스와 흠정역도 이 단어들을 빼버렸습니다. 그러나 영문 킹제임스 성경에는 as oft as, as often as, 로 번역되어 자주라는 본래의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죠지 뮐러 로버트 채프만은 이런 계명에 충실했음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건강장수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꼭 기억할 것은 본인이 그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영적 야망입니다. 즉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도록 보전하여 달라고 의탁하는 사람을 주님은 지켜주실 것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믿지도 않고 의탁하지도 않는 사람을 인간들보다 더 생각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이시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구할바를 알지 못하기에-롬 8:26) 그것을 믿고 아는 사람을 지켜주시는 음성을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잘 알아들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음성에 청종하며 순종할 것입니다.예컨대 시편 34장 20절에서 의인의 뼈를 보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보증서입니다. 그 보증서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뼈는 마지막까지 보전되었습니다.(요 19:36)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분께 충성하면 (전심으로 귀기울이고 청종하면) 우리의 뼈는 보전됩니다. 이것은 큰 교통사고를 당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뼈는 보전되고 살만 통증을 당하는 고통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뼈는 보전하십니다. 전반적으로는 원래의 건강조건에 많이 제한을 받지만 우리는 타고난 조건, 동일한 조건하에서 가장 잘 건강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은혜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주의만찬을 자주 할때에 큰 유익이 있는것. 그냥 주의죽으심을 기억하는것뿐 아니고
거룩하고 충성된 삶을 살게되는것이 있게되겠습니다.
일년에 두번밖에 주의만찬을 안하는것. 그것도 큰 잘못이군요.
그리고 정말 흠정역에도 영어엔 써있는게 번역엔 자주(종종)란 말이 빠졌군요.
제가 아까 낮에 시간맞춰 나갈일이 있어서, 위엣글을 처음부분과 댓글만 읽고는 다시 재차 질문하고 나갔다 들어와서 읽어보니
제 질문에대한 답이 위에 본문글에도 모두 나와있습니다. 6번에.
귀한내용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 킹제임스와 한글 킹제임스가 다른 경우들은 꽤 있습니다. 마태 16장 2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간하여(한글 개역), 말리어(한글 킹제임스) 라고 하였는데 , 영어 킹제임스는 rebuke, 입니다. 즉 꾸짖은 것입니다. 말리거나 간하였는데 예수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 간떨어질만큼 무서우니까, 예수님깨 직접 기도하지 말고 자비하신 마리아님께 기도하면 모든 것이 잘된다고 카톨릭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기 시작하였으며 그대로 두면 계속하여 예수님을 훈계할 것이었기에 베드로 뒤에 숨은 사탄을 호령하여 엄중히 꾸짖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조치는 적절하고도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성만찬에 관하여는 고전 11장 23-32절을 정독하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7절과 사도행전 2장 42절과 46절에서 음식먹기와 떡떼는 것을 구분하고 있음을 주목하시고, 고전 10장 16-17절의 교훈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며(고전 11:26), 예수님의 몸과 하나됨을 의미하며(11:24) 그분이 내안에 사심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며(킹제임스 에페소서 5:30), 그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믿는 행위이고(고전 11:25, 26) 하나님과의 새 언약, 새 약속이며(11:25), 우리 스스로를 살펴서 죄짓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며(11:27-32), 함께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과 하나됨을 믿고
기념하는 행사입니다(10:16-17). 그러므로 성만찬 혹은 주님의 만찬이라는 것은 예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최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내게 있는 향유 옥합을 주님께 가져와 그분께 깨뜨려 그분께 부어드리고, 그분 발앞에 엎드려 경배드리는 것으로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성만찬 예배에서는 여러사람이 최대한 찬송과 경배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로 주님께 드리고 있음을 제 블로그의 나의 이야기, 험버강을 따라 자전거 타고, 옥크빌에서의 성만찬 예배라는 글에서 엿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만찬 예배를 매주일 드린 사람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성만찬이 / 하나님께대한 경배의최정상.
향유옥합을 주님께가져와 깨트려 부으며 그 발앞에 엎드려 경배드리는것.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것. 이라고
요약해주셨군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최상과최선의것을 드려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고자하는 마음의소원도 있구요.
위에적은 성경구절은 읽어보려고 수첩에 적었고요, 하토브님 블로그에도 들어가 읽어보겠습니다.
긴~글 올려주셨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쓴 이후로 몇년이 지난 지금 한 말씀을 더 추가한다면요한 11장 26절이 해당된다고 믿어집니다
https://www.nytimes.com/2000/08/12/business/binge-led-to-death-of-herbalife-founder.html
The chief executive of Herbalife International Inc., Mark Hughes, died after a four-day drinking binge, according to a full report by the Los Angeles coroner.
Mr. Hughes, 44, who promoted natural healing methods using Herbalife's health care and weight-loss products, was being treated by a psychiatrist for his drinking problem and smoked six to eight cigars a day, according to the coroner's report. He founded the company 20 years ago.
On June 16, the coroner found that Mr. Hughes had died May 21 of an overdose of alcohol and a toxic level of doxepin, an antidepressant. His blood alcohol leve
https://people.com/health/rich-piana-obituary/
Bodybuilder Rich Piana has died — just two weeks after being placed in a medically induced coma. He was 46.
The former Mr. California’s death was confirmed Friday morning in a Facebook post by his estranged wife Sara Piana.
“I’m in tears writing this that @1dayumay has just passed away,” Sara wrote. “I can barely believe this… I am so saddened & heartbroken that he didn’t make it.”
“I just want to say THANK YOU Rich for teaching me so much about life, whether it was the easy or the hard way,” she added. “We had our ups and downs but we sure h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