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異)문화를 이해하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케미스타인터내셔널_박찬진 대표
페인트
지금처럼 비즈니스를 할 때 인터넷의 활용이 활발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저는 KOTRA 자료실에 있었습니다. 당시 중소 무역업체 신입 사원이었던 저는 해외제조업체 정보를 담은 디렉토리북을 발견한 후, 그 책이 마치 보물이라도 되듯 샅샅이 내용을 훑었습니다. 거기에는 앞으로 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인도 뭄바이 소재의 한 염료 제조업체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한 순간의 우연이 필연이 되듯 저와 인도에 위치한 염료 제조업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첫 해외 거래는 50kg 염료 수입
저는 그 염료 제조업체에 한 통의 짧은 이메일을 보냈고 그로부터 얼마 후 답장이 왔습니다. 그 인도 업체로부터 저는 염료를 수입하게 되었습니다. 꽃꽂이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꽃을 꽂는 네모난 오아시스 블록은 초록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 블록은 원래 초록색이 아니라 초록 염료로 염색을 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그 블록을 염색할 50kg의 염료를 그 인도 업체로부터 수입했습니다. 수출이 아닌 수입이라고 해서 그 과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 저는 신입 사원이었고, 그 인도 업체는 한국은 커녕 해외에는 한 번도 수출을 해보지 않은 기업이었습니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초짜인 것은 마찬가지였다고 할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양쪽 모두가 해외 무역에 초보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서로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기 무역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 상하이 전시회에서 운명적인 만남
당시 일하던 중소 무역업체에서 6년 동안 근무했던 저는 어느새 삼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대학교 때 전공인 화학보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서 국내를 벗어나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저에게 무역관련 업무는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남의 사업이 아닌 제 사업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의 역량을 더 개발시키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탐색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2007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영어에는 웬만큼 자신 있었기에 글로벌한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은 시장이 크고 사업아이템이 많아서 분명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1년여 시간동안 중국에 머물며 중국어 공부와 함께 새로운 사업 기회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상하이 전시회에 단순히 방문객으로 참관하고 있을 때 또 한 번의 운명 같은 우연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바로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인연을 맺은 그 인도 뭄바이소재의 염료업체 대표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전시회는 전 세계의 페인트, 도금 관련한 업체들이 참가하는 ‘차이나코팅쇼’였습니다.
"인도 친구의 도움으로 새로운 수출 기회를 얻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역 현장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신뢰를 심어주고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인도 친구는 전시장에서 저를 만날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인도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염료 수입으로 인연을 맺은 우리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것은 저 역시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Adhish Rathod입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 사이에 비즈니스 거래는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페이스북을 통해서 서로의 일상 생활을 확인하고, 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고, 가끔 전화를 통해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결혼식에 초청된 유일한 외국인
그렇게 국경과 나이를 뛰어넘어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친구로서 인연을 맺어가던 중 뜻밖에 그 인도 친구의 결혼식에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2008년 1월, 추운 겨울 저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하나뿐인 인도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습니다. 도착해보니 저는 결혼식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인이자 외국인이었습니다.
인도의 결혼식은 특별합니다. 한국이라면 한두 시간 참석해 얼굴 도장을 찍으며 축하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오면 끝나지만, 인도는 3일 내내 결혼식이 열립니다. 한 마디로 마을 축제가 됩니다. 저는 그 친구로부터 결혼식에 입을 인도의 전통 의상과 터번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 백 여명이 넘는 모든 가족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친구는 결혼식으로 정신없을 텐데도 자신의 모든 가족들에게 저를 소개시켜 주었고 친구의 가족들 역시 저를 가까운 가족처럼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
인도인들은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한 자리에 둘러 앉아 함께 맨손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따라고기를 먹지 않는 관습이 있는데, 저의 인도 친구 역시 자이나교를 믿고 있는 탓에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저는 친구로부터 자이나교라는 인도의 종교에 대해 좀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와 문화의 이해로 더 가까워지다
인도인들의 70%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인들이고 20% 이상은 돼지를 먹지 않는 이슬람인, 그리고 나머지 10% 정도가 불교와 자이나교입니다. 인도 내의 자이나교인은 약 350만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체 인도 인구수와 비교해볼 때 극히 적은 수입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태생은 비슷하며 어떤 작은 미물도 죽이면 안된다는 불살생 정신과 금욕, 정직, 채식, 비폭력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식습관에 있어서 계란이나 우유도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인도에서 자이나교인들은 유달리 중인 계급이 많습니다. 중인은 하층민과 무사 사이의 계급으로 주로 상업이나 비즈니스에 종사하고있습니다. 농사꾼이 될 경우 작은 해충이나 미물을 자신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정직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가 다수의 종교가 아닌 소수인들이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 자신들이 정직하지 않는다면 다수로부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낯선 인도의 종교와 문화, 관습에 대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더 알고 싶어 개인적으로 관련 책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인도라는나라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인도 친구와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도의 유대인, ‘마르와리’ 상인을 소개받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저는 독일계 염료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비즈니스로 그 인도 친구를 만난 적은 없지만 꾸준히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오던 차였습니다. 2014년 제가 친구에게 퇴사했다고 전하자, 그 인도 친구는 자신의 회사인 오스왈(Oswal) 제품의 한국 내 독점 에이전트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친구의 도움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또 다른 수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지인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인도의 자이나교인들은 일종의 끈끈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명 ‘마르와리(Marwari)’라고 불리는 공동체입니다. 마르와리출신 상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천부적인 상술과 집요하고 끈질긴 비즈니스 감각으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데, 제가 인도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지인 역시도 그 구성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운영하는 업체명은 인도 뭄바이 소재 A사로 도금과 관련해 인도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가진 업체입니다. 저는 이 회사에 방청 페인트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충북 음성에 있는 공장에서 만드는 방청 페인트는 녹이 슬지 않는 녹방지 페인트로 주로 자동차의 내장재 부속인 볼트, 너트, 브레이크 등에 도장 또는 코팅을 위해 사용되는 제품입니다. 올 1월부터 5~6천 달러 정도 수출을 하고 있어 아직 물량은 미약하지만 미래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인도는 전 세계의 자동차 생산국들 중에서도 우리나라를 앞지를 만큼 생산성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저는 소개받은 A사를 통해 앞으로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영업활동을 벌일 생각입니다. 인도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을 돌아보고 방청 페인트 관련 세미나 및 AS서비스를 위해 조만간 인도 출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파트너와 신뢰가 매우 중요
이렇게 인도 친구의 도움으로 새로운 수출 기회를 얻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역 현장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신뢰를 심어주고 이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
다는 사실입니다.
무역업에 종사하면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다행히 학창 시절부터 영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외국인친구들을 사귀고 관계 맺는 일도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어학 연수차갔던 중국에서의 생활도 즐거웠지요.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만났더라도 100% 비즈니스 이야기만을 나누게 되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에 대해, 삶의 자잘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많습니다.
해외 비즈니스 파트너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언어가 기본이 되어야겠지요.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면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 종교에대해서 배워가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비즈니스 관계 이전에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배려해주는 인간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인도 친구와의 오랜 관계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 무역업을 지속해오며 학생 때부터 꿈이었던 넓은 세상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겠다는 삶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무역협회와 KITA 홈페이지를 통해 받고 있는 많은 지원과 정보 또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무역 이전에 상대방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가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와 지속적인 관계를 만드는 첫걸음이라는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바탕이 된다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과 무역 파트너가 되어도 서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