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나보다 한살 아래인 종숙부가 한사람 있다
아홉살 나이에 중학생처럼 덩치가 좋았던 탓인지
아니면 아재라고 어른행세 하려고 했는지 언제나 나를 아기 취급했었다
어머니와 같은 항열인 종숙부에게 "계시다"가 아닌 "있다"로 표현하는 것은
천하에 버릇없는 종질이기도 하겠으나 그리 나쁘게만 볼 수 없는 것이
또래를 아재라 부르며 같이 보냈던 그 유년의 추억 때문이다
산아 제한이 없었던 시절에 외종조모님께서 늙으막에 어찌어찌 보신 자식인데
너무 나이드셔 낳으신 탓인지 어쩐지 총기가 좀 모자라 보이는 아재였다
우리집에서 한 삼백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엄마는 아재라 부르라며
곤곤이 타이르셨지만 나 보다 나이도 적은 위에다 언제나 침이나 코를 찔찔
흘리고 다니는 아재를 어른 대접 해야하는 것이 나는 늘상 못마땅 하여
어른들이 계시지 않을 때는 "문석아"하고 동생 부르듯 막 대하기도 하였다
우리 유년시절의 면섬유의 질이나 염색 기술이란 것이 형편 없었던 때 였는데
아홉살이 되어도 침을 잘 흘리던 아재의 런닝은 언제나 축축히 젖은 채
어른들 표현을 빌리자면 목이 개창자 처럼 늘어져---
단정치 못하게 젖꼭지 까지 보이다 말다 하였다 종조모님의 눈에도
그 모양새가 참으로 탐탁잖어셨던지
축 늘어진 런닝의 바이어스쳐진 목선에다 고무줄을 끼우셨는데
허연 콧물이 입에 들어갈듯 말듯 하다가
다시 콧속으로 후루룩 말려 들어가는 것이나
침이 지르르 흐르는 커다란 얼굴울
목이 탁 조여 든 런닝셔츠를 입혀 놓은 모습이 하도 기괴해서
나는 그런 아재를 참으로 딱하다는 듯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곤했다
자기 친구들만 만나면 우리 친척이라고 나를 소개 하는 것도 싫은데
학교까지 타박타박 길동무 해 가는 것은 더욱 싫어서 아침도 먹지 않고 달아 나 버리곤 했다
아재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내 태도는 누구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 났으나
정작 아재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물가의 앵두가 익으면 제일 먼저 한 웅큼씩 따다 주거나
감나무 꼭대기의 잘 익은 홍시를 골라 터지지 않게 소중히 갖다 주고는 했었다
어느 여름 저녁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날 술래가 되었던 아재를
밀치고 뛰어 나왔드니 아재가 퍽 엎으졌으나 그만한 일에 울 아재도 아니고 해서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이틑날 할머니는
"분이야 니는 우짤라꼬 아재를 개똥에다 처 박았노?"
"나는 그냥 술래 안할라꼬 그랬는데...... 아재 지가 개똥에 가서 넘어졌는데 뭐......"
그렇게 방자 하게 굴었던 내가 아재에게 죽는 날까지 감사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
마을 한켠으로 흘러가던 냇가에 모양좋게 굽어진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나무 아래 우리 키의 세배쯤 되는 작은 우물이 있었다 우리는 그 지리한 여름의 오후를
우물에 머리를 처박고 우물 속에서 새어 나오는 스산한 기운과 메아리를 즐기고 있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 우물가의 이끼에 미끌어지며 나는 우물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재의 어디서 그런 순발력이 나왔을까 ?
아재는 물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내 머리카락을 휘어 잡았고
나는 두팔을 벌려 간신이 물속에 빠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아재는 커다랗고 다급한 목소리로 사람살리라고 고래고래 고함 질렀다
그리고 지나가던 어느 어른에게 구조 되어 이미 혼이 다 빠져 버린 나를 업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엄마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어대는 나를 보며
"문석아 니가 뭘 우쨋길래 이래 섦게 우노?"
엄마는 애궃게 아재를 나무랐지만 아재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끝내 함구하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나는 곧잘 아재의 숙제를 해 주었는데
덧셈 뺄셈조차 서툴렀던 아재를 찬찬히 가르켜 주기도 했고
그림일기 속에서 조차 엉성하기 짝이 없는 아재를 모양좋게 수정 해 주고 나면
우리는 마당 복판의 멍석에 누워 별을 헤었다 흰 강물같은 은하수를 찾아
오작교 이야기도 해주고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찾아 밤하늘을 헤매노라면
할머니는 "요거는 크서 뭐가 될라고 요리 똑똑할꼬"
하시며 등줄기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할머니의 느릿하니 한가롭던 부채질과 매큼한 쑥향기 속의 그 여름은
가을의 풍요를 예견하며 모두가 행복에 젖어 들었던 시절이었다
첫댓글 우리시절 촌수로 나이가 휠신 아래인 아재는 물론 대부도 같은 동네서 살았다. 동갑네기 초등학교 동창이 아제가 있었는데 늘 이름을 부르,고 친구처럼 지내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그 동창 아재가 우리집에 왔는데 아버님을 보고 "형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 내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감히 00 아하고 부를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아재하고 부르고 말도 야자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아재가 고인이된지 벌써 오래되었다. 글일 읽으면서 유명을 달리한 아재 생각이 나네요. 글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우리들이 어린시절에는 동네란게 거의 집성촌이다 보니 돌아서면 친척이었지요 나이어린 아재도 있고 몇살위인 할아버지도 있고.......가물가물ㄹ 피어오르던 모기불처럼 아련한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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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집안 잔치에서 만난 그아재보고 기절할뻔했지요 180정도의 키에 훤칠한 장부로 나타나서는 " 네 샘에 빠진거 건져준거 기억나나 하대요....자기 코 흘리던 건 말 안하고....바둑이나 장기는 당할사람이 없었습니다 산수셈도 못하던 양반이 참 말이 안나오데요
아아, 너무도 생동적인 작품 입니다. 작품 속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겠군요. 유쾌하고 뭉클하고 싸아합니다. 군데군데 문장의 표현이 아주 돋보이는군요.잘 읽었습니다.
어머나~~~기분좋아라~~~ 감사합니다 실은 이것도 한번 써 먹은 거에요
촌수로 따지면 종숙부는 큰 어른인데 나이가 한 두살 아래 위니 마치 친구같이 마냥 어울려 잘 지낸 일이 대견한데 목숨을 건져 올리신 그 은혜는 언제나 갚을 고!.... 아찔한 순간이 엊그제 같게 해마다 여름이면 뭉실 떠오르겠습니다. 고운 글 감사합니다.
지금 부산에서 베이커리 점 하고 계십니다 부산 내려오면 세상에서 젤 맛있는 빵 만들어 주께 하시드군요 .....머잖아 고향에서 다시 만날기회가 주어질것 같습니다 더위에 건가 ㅇ유의하세요~~~
제가 또 지나가다가 슬쩍 엿들었습니다. 부산에서 베이커리하고 계신다고요? 우와아! 세상에서 젤 맛있는 빵을! 목숨까지 건져 주셨는데...힝!
후리지아님 빵 좋아 하세요? 나중에 나눠 드릴게요....근데 세상에서 젤 맛있는 빵이 아니면 어쩌지요?....
정말 저는 빵을 좋아한답니다. 안주셔도 괜찮아요. ㅎㅎ. 좋은 글을 읽으면 마음이 유쾌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