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진 3군단장 호반걸설에 공로패 전달...호반걸설. 육군 3군단 국군장병 복지증진 위문금
“호반건설과의 소중한 인연은 우리 군 장병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원이 군 장병들의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호반건설(회장 김상열)이 육군 3군단 국군장병 복지증진을 위해 위문금 전달하면서 육군 3군단 전동진 단장과 호반건설 김양기 부사장이 위문금 전달식에서 서로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육군 3군단(단장 전동진)은 호반건설이 지난 18일 육군 3군단을 방문해 후원금과 위문품을 전달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전동진 육군 3군단장과 김양기 호반건설 부사장 등 양측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육군3군단은 장병들의 복지와 군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호반건설에 공로패를 전달했다.
호반건설은 장병들의 복지와 부대 발전을 위해 운동기구 등을 포함해 5000만원 상당의 후원금과 물품을 전달했다. 후원금은 코로나19 격리장병 치료와 경계부대장병 위문 등에 활용 예정이다.
호반건설과 육군 3군단은 2015년‘1사 1병영 협약’을 체결하고 다양한 지원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장병 건강증진을 위해 체력단련실을 조성했고, 코로나19 확산방지 열화상 카메라를 전달하는 등 지금까지 총 2억 원 상당의 후원금과 물품을 전달했다.
육군 3군단은 호반건설 임직원과 가족들에게 안보 견학, 병영 체험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는 등 군.기업과의 유대관계를 끈끈히 이어가고 있으며, 군은 기업이 편안하게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은 군이 보다 더 좋은 복지환경에서 안보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데 협력하고 상생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
전동진 3군단장은“호반건설과의 소중한 인연은 우리 군 장병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며“장병들이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도록 주신 후원금을 잘 활용하겠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이에 김양기 부사장은“험준한 동부전선에서 국가 방위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는 전동진 군단장님을 비롯 모든 장병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이번 지원이 군 장병들의 임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전동진(육사 45기) 육군 3군단은 작년 12월 7일 오후 군단 사령부에서 제45대 군단장에 취임했다.
전동진 군단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를 확립해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민과 호흡하는 군대를 구현하겠다”고 밝힌바가 있다.
전남 영암출신(서호)인 육사 45기의 전동진 중장은 합참 작전부장, 15사단장, 13공수특전여단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3군단장으로 취임하여 동부 지역의 국토방위수호에 추호도 빈틈없이 철저한 방어태세로 임하고 있다. 이번 호반건설이 3군단에 위문금을 전달하으로 인해 군 발전은 물론 군 장병들의 사기충천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승리, 최강무적 산악군단 육군 3군단은 1950년 10월 16일 청설하여 6.25 전투 때 오마치 고개 돌파 작전 실패로 1951년 5월 26일 해체된 것을 1953년 5월 1일 재창설한 육군 3군단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을 근거지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소속 군단이다. 상징명칭으로‘기린대(麒麟臺)’또는‘산악부대’로서 국방안보에 임하고 있다.
규모는 군단으로 강원도 동부전선 방어를 맡고 있으며, 2개의 사단과 4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기린대[4] 또는 산악부대[5]로 불리며, 2021년 현재 군단장은 전동진 중장(육사 45기)이다. 부군단장에 준장 장두영(3사 23기) 참모장, 준장 박용훈(육사 48기)이 있다.
한편 2017년 2월 12일 북한이 북극성-2형 미사일을 쏘자 전 장군은“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정면 위반으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 행위”라며“무모한 도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태”라고 강력 경고했다.
그해 3월 7일 스커드-ER 미사일 4발을 동시에 쏜 북한에 대해“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발을 계속 감행한다면 북한 정권은 스스로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바”라고 말했다. 같은 해 5월 14일 북한이 미상의 미사일을 발사하자“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발을 계속한다면, 우리 군과 한.미 동맹의 강력한 응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2017년 6월 21일 북한 무인기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상균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 조사 결과를 간략히 설명한 뒤 전동진 장군이 단상에 올라섰다.‘북한 무인기 관련 대북 경고 성명’은 전동진 장군의 몫이었다.
전 장군은 마이크 높이를 고치고 혀로 입술을 살짝 적시더니“북한의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군사 기지를 촬영한 행위는 중대한 도발 행위”라고 힘주어 말하며 이어“북한이 대남 도발을 계속한다면 우리 군은 강력히 응징할 것이며, 향후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바”라 강한 톤으로 북한을 향해 경고 발언을 해됐다. 전 장군은 당시 원고를 외운 채 정면 카메라만 바라본 채 초점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앞만 주시하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인상을 보여줬다.
전 장군이 김용현 전 작전본부장, 구홍모 전 육군참모차장의 뒤를 이어 2017년‘규탄 성명 전담자’로 활약한 이유에 대해 군 소식통은“원래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하는데 인상이 순하다는 이유로 전 장군이 발탁됐다”고 할 정도로 전동진 장군이 강한 인상을 지닌 장군다운 장군으로 봤다. 그런 전 장군은‘맹장(猛將)’의 얼굴에 목소리가 카랑카랑해 적격이라고 본 것이다.
특히 북한 무인기에 대해“엄중히 경고하는바”라는 대목에선 사찰의‘사천왕상(四天王像)’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또 다른 군 소식통은“규탄 성명 전담자 계보에선 눈을 크게 뜨고, 턱은 당기고, 정면만 바라봐야 한다는 족보가 내려온다”고 귀띔할 정도로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강인한 전사적 기질 불굴의 군인정신을 갖춘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 전동진 장군을 들고 있으며, 강인한 군인정신과 국가수호의 결의를 다진 진정한 호국의 간성으로 거듭나게 한 참다운 군인, 맹장다운‘참군인 모델’이 되고 있다. 하나 된 마음 강인한 군인정신이 필요로 하는 데 있어서 전동진 장군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전동진 장군이 이끈 육군 3군단은 대한민국 동부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부대로서 상징명칭으로‘기린대, 산악부대’라고 부를 정도로 사천왕상의 별칭을 얻은 그는 험준한 산악(山岳)의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전동진 장군이 몸을 담고 있는 3군단은 2개의 사단과 4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기린대[4] 또는 산악부대[5]로 불리고 있다.
3군단은 우여곡절도 많은 곳이다. 3군단 나무위키에 따르면 한국 전쟁 중 1950년 10월 16일 서울시 중구 남산동에서 초대 이형근 소장이 군단장에 임명되고 9사단, 11사단을 편성하여 창설되었다. 그러나 창설 7개월만인 1951년 5월 16일 창촌으로 철수하던 제9보병사단이 중공군의 2개 군단에 의해‘오마치 고개(강원도 인재군 성남면 오마재)’가 점령된 것을 알게 되었다. 5월 17일, 반격을 포기하고 현리에 집결하여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려 했으나, 북한군 제5군단, 12군단, 27군단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퇴각 작전은 실패하였다. 작전이 실패하면서 군단은 전투의지와 통제를 잃었으며 후퇴하는 도중, 군단장 유재흥 소장이 지휘권한을 버리고 항공기로 이탈하였고, 5월 22일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5월 26일 미국 제8군 지휘관 제임스 밴 플리트 대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재흥의 직위를 박탈하고‘3군단을 해체’시켰다. 그런 조치 후 군단 예하의 제2, 5, 9, 11사단은 각각 미국 제8군 예하 배속되는 예전의 3군단의 명성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고, 불명에 3군단으로서의 역사의 뒤안길로 남게 됐다.
그런 치욕스런 일을 겪은 3군단은 1953년 5월 1일, 강문봉 소장을 군단으로 임명하고 제20, 22사단을 예속 받아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에서 재창설되었다. 같은 해 12월 15일, 제1야전군 예하의 군단이 되었다. 오마치 고개에서 패전한 3군단으로 남은 전력이 있지만, 재창단하여 전력을 가다듬은 3군단은 이후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의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12사단을 궤멸시킨 매봉·한석산 전투를 비롯해 백석산, 펀치볼 등에서 영토를 사수하여 확보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소탕작전, 1990년 제4땅굴 발견, 1996년 강릉 침투 무장공비 소탕작전 등을 완수하는 등의 대한민국 최고 강력군단, 3군단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인제군 관대리에 있었던 3군단은 1972년 7월 27일 소양강댐이 건설되어 본래 주둔지인 관대리가 물에 잠기자 부대를‘기린면’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83년에 제22보병사단과 제68훈련단을 의정부로 이전한 제7기동군단에서 편입했으나, 1987년에 영동지역의 지역방위 기능을 다시 제8군단으로 분리하면서 다시 빠져나갔다.
동부전선을 지키고 있는 3군단은 전군에서 근무 환경이 척박하기로 손에 꼽히는 군단 중 하나이다. 스스로를‘산악군단’이라 자부하는 군단인 만큼 유달리 산을 홍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에 걸맞게 소속 사단들은 한 결 같이 근무 환경이 최악을 달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3군단은 155마일(248km) 휴전선 중 가장 넓은 일반전초(GOP)를 담당하고[7], 평균고도는 물론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8]해있기 때문이다. 제12보병사단과 제21보병사단의 경우, 제7보병사단과 더불어 가장 험준하기로 유명한 GOP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부대의 주둔지는 강원도 인제군, 양구군, 홍천군[9] 일대를 카버하고 있다.
3군단은 군단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준하게 솟은 산들로 에워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장병들은 특수부대 못지않게 고난도의 산악 등 어떠한 기상과 지형 속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 특전용사들이기에 훈련은 항상 최악의 조건에서 인간 한계를 극복하며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생사를 초월한 고난도 훈련을 통해 전천후 특수전 수행능력을 연마하고, 강인한 전투의지와 자신감을 배양하는 등의 튼튼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한 채 국토방위수호에 임하고 있다. 사천왕상의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전동진 3군단장이 이 험한 곳에 임무수행을 하고 있으면서“다시는 오마치 고개 전투 패배 같은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동부전선 이상 무”라는 그의 철저한 방어태세로 국민들한테 안심되게 해주고 있다. 3군단에 지속적으로 군장병 복지증진을 위해 위문금 등을 지원하고 있는 호반건설로 인하여 3군단은 군장병들의 사기충천으로 더욱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위문금을 전달한 호반건설은 1989년 설립됐으며, 30여 년 동안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로 고객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기업이라는 바탕으로‘주택, 건축, 토목, 리조트, 골프, 유통, 제조, 미디어, 금융’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여 고객 여러분의 성원과 사랑을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이루고 있는 기업으로서의 대한민국 최고 건설업계로 발돋움하고 있다.
고객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고의 주거 공간 창출을 위한 혁신적인 디자인 개발과 다양한 특화 상품개발 그리고 고객중심 서비스 강화를 통해 차별화된 주거문화 가치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호반건설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사회공헌’활동을 보다 강화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다.
호반건설은 호반이 고객으로부터‘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 비즈니스 파트너와 상생하는 기업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고객 여러분의 끊임없는 격려로 더욱 성장하고. 사회에 기여와 나라에 이바지하기를 바라고 있다.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