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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년 십일월 팔일.
지난 달
13일에 칭다오를 떠나
이달 3일에 쟈위꽌까지
삼천 팔백 오십 삼 킬로미터
쟈위꽌을 찍고 돌아...
고비 사막을 가로 지르기를
꼭 닷새에...
일천 팔백 오십 칠 킬로미터.
이 아침에 길을 나서
몽골 오르도스에서 황토 고원을 넘고
황하를 건너고...
흙으로 쌓아
이제는 다 무너진
만리장성에도 오르고
요동도 들러보고...
평원으로 내려왔지만...
아직도 남은 길이
이천오백리가 훨씬 넘어...
이틀은 늦게 이르겠네!
다행이
길벗님네들의 보살핌으로
반푼의 몸으로도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이어온 기행길.
남은 사나흘의 여정이
꽤나 멀지만...
무난하게
화베이 평원을 건너고...
단 숨에 황토 고원을 넘어
티베트 고원에 오르고...
실크로드를 달리고...
고비 사막을 건넜듯이...
순조롭기를...
山陰縣 張家鄕 長成商務 賓館에서 taengii.
황하를 건너고 만리장성을 넘어... ㉯
어얼둬쓰[鄂爾多斯]. 이제는 중국땅이 된 몽골의 오르도스. (내)몽골 중서부 황하를 끼고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 일억 위엔[圓]. 우리 돈으로 일백칠십억원이 훌쩍 넘어가는 부자가 칠천명에 이른다는 꿈의 도시. 쌍하이나 썬쩐의 두 배가 넘는 개인 소득 이만오천불.
지구상 희토류 최대의 매장량, 석탄과 천연가스 등의 풍부한 자원의 개발로 중국의 칠백여도시 중에서 성장률 구년 연속 일위의 도시로 이따리의 명차 파라리[法拉利, Ferrari]가 흔하던 오르도스. 바로 엘도라도다. 그러나 지금은 짓던 호텔이 공사 중지되고, 다 지은 아파트도 입주율이 삼십퍼센트도 아니되는... 지금은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고 유령의 도시가 되었다 고...
바이두 지도를 켜고 찾아든 곳은 구 도시가 아닌 신도시 똥썽[東勝]구 였다 는...
++ 오르도스의 해발고도. ++
++ 구릉이 산으로 바뀌고 오르내리는 산비탈 길이 많음. ++
++ 몽골 과일 사탕. 자전거 탈 때는 한 알의 사탕으로 십리를 달리는데... 운전 중에도 졸음을 쫒아 낸다. ++
++ 소수민족 자치구에서 보기 힘든 국도상의 수비참. ++
++ 황하를 건너다. ++
G30. 엔훠[連霍]고속도로. 싼먼샤[三門峽]에서 똥꽌[潼關]까지 구간에 황하를 볼 수가 있는데, 짙은 안개로 못 보았고, 란저우에서 황하 제일철교를 북으로 건넜으며, 쟈위꽌을 찍고 돌아가는 길에 쓰쭈이싼에서 동으로 건넜고, (내)몽골에서 싼씨[山西]성으로 넘어 오면서 남으로 건너다. 아직 싼동 어디선가 한 번을 더 넘어야 칭다오에 이름.
++ 황하를 잡다. 라오따꺼의 촬영은 계속 이어짐. ++
++ 후이[燴 : 모아 끓일 회]. 이쪽 지방의 주요 음식에 이"燴"자가 많이 들어감. ++
우리 요리는 지지고, 볶고, 삶고, 굽고, 찌고, 곪고, 끓이고, 튀기고, 부치고, 데치고, 조리고, 달이고... 등의 조리법이 있는데....중국 요리에서는 불의 종류가 오[熬, 오, áo], 젠[煎, 전, jiān], 쩡[蒸, 증, zhēng], 쭈[煮, 자, zhǔ], 펑[烹, 팽, pēng], 쉰[燻, 훈, xūn], 먼[燜, 민, mèn], 쥐[焗. 국, jú], 짜[炸, 작, zhá], 뚠[燉, 돈, dùn], 뚠[炖, 돈, dùn], 류[熘, 류, liū], 카오[烤, 고, kǎo], 샤오[燒, 효, shāo], 차오[炒, 초, chǎo], 쭈오[焯, 작, zhuō], 삐엔[煸, 편, biān], 치앙[熗, 창, qiàng], 빠오[爆, 폭, bào], 빠오[煲, 보, bāo], 웨이[煨, 외, wēi], 후이[燴, 회, huì]로 같은 삶기라도 약한 불에 천천히 삶느냐? 와, 튀기는 것도 센 불에 빨리 하느냐? 를 글자를 달리 씀으로 그 종류가 스물두가지에 이름. 윗 사진의 차림표 후이차이[燴菜]는 양념이 달라 그 맛이 같지 않지만, 약한 불로 긴 시간을 끓여내는 방식은 우리의 닭찜과 유사함.
싸고 맛있는 중국요리들... : http://cafe.naver.com/acebike/1426
++ 아흔아홉(?) 번째 기념 서명. ++
++ 산세와 지형이 한족의 땅에 듬이라. ++
++ 마침내 몽골을 벗어나고, 싼씨[山西]성에 듬. ++
++ 만리장성을 오르다. ++
황하와 만리장성을 답사 오신 듯이.... 자위꽌에서 끄트머리를 보고...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우웨이[武威]까지 오면서 거친 풍화로 얕트막한 흙담이 된 만리장성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왔던 기억이 나는데... 고속도로를 타고 오면서는 못 보았음. 뻬이징에서 튼튼하게 돌과 벽돌로 쌓아 올린 번듯한 장성을 보고, 이쪽의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내린 흙담을 보니 감회가... 더구나 누구나 본 장성이 아니라는 것과...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볼 수가 없는 장성이라는 것이 더해져 더욱 더 감개가 무량!!
++ 길을 멈추고 장성에 올라 추억을 담다. ++
++ 요동(흙굴집)으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나고... ++
[울 안에 큰 사과나무가 두 그루 있는 땅굴집]
한 3km를 달렸을 때에 흙 구덩이 속에 집을 보았다. 땅을 정육방형으로 파내고 그 안에다가 집을 지은 것이다. 비록 눈 구멍은 작을 지라도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작은 눈이 놓칠리가 없었다. 바로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두 개 다 꺼냈다. 그 동안에 우리는 흔적으로만 보았던, 흙속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만나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저 아래 집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도로에서는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역시 하이쵸가 앞장을 서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았는데, 집 앞에 나와서 길을 쓸던 꾸냥[姑娘]이 수줍어 하면서 들어 가더니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한 동안을 사정(?)을 하여 참관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 굴[窯洞] 속에 살던 사람들은 앞쪽에 양옥을 짓고 살고, 그 굴은 시골에서 막 올라온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즉, 양옥집 사이로 난 대문을 통해서 그 흙 굴집으로 들어 갔는데.....
우선. 그 울안에는 큰 사과나무 두 그루가 사과를 주렁주렁 달고 서 있었다. 세네 집이 같이 사는 듯이 보였다. 정면에 흙 굴이 3개인데 2개는 사람이 사는 굴이고, 중간은 창고로 안에 잡동사니가 보였다. 왼쪽에는 역시 흙을 파내고 변소를 만들었고, 오른쪽에는 아주 작은 다른 독립가옥이 있었다. 우리는 꾸냥의 허락을 받고, 주인도 없는 정면의 흙굴집. 동방홍[東方紅]이라고 대문 위에 써 붙인 집의 대문을 열었다. 거의 모든 집이 기차길의 굴 모양이다.
왼쪽은 창문이고 오른쪽이 대문이다. 이 집은 문을 열고 들어 가자마자, 왼쪽에는 흙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이불 세 채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다. 침대 밑에는 가로 세로 30cm정도의 작은 아궁이가 바닥에서 20cm정도 위에 나 있는데, 불을 땐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추운 겨울에는 군불을 넣는 것 같다.
천장에는 거미줄과 함께 백열 전구하나가 달랑 달려 있다. 정면 안쪽에는 새까맣게 때에 절은 책상이 있고, 그 위에는 작은 항아리들이 커다란 거울과 함께 놓여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밀짚모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역시 나무의자와 커다란 궤짝이 놓여있었다. 그 밖에 수건과 망태기 등의 작은 살림들이 놓여져 있을 뿐이다. 이 곳에도 불필요(?)한 가전제품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굴집의 전체적인 부피(?)는 얼마나 될까? 우선 높이부터 보자면, 사람이 들락이는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을 만큼 높다. 즉,173cm인 내가 침대 위에 일어서도 꼭데기 천장에 닿지 않을 만큼 높고, 폭은 흙으로 만들어진 퀸사이즈 침대의 크기 만큼과 통로로 쓰이는 공간이 4자[120cm]는 될 것이고, 깊이는 나의 두 길. 즉, 3m 반은 넘어 보였다.
이 굴은 안방으로 쓰이는 공간으로 보인다. 즉, 창고와 변소가 따로 있듯이 부엌이 따로 있을 것이며, 건너방(?)도 따로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아들을 장가들여 방이 더 필요하다면, 수요에 따라서 삽을 들고 흙을 파내면 또 방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여간 이런 굴집[窯洞]은 지붕도 그냥 흙이다. 지붕에 올라 가 보니 평평한 잔디밭이었다. 이러한 흙굴집[窯洞]은 방한, 방열, 방풍, 방음 등등이 모두 뛰어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비 문명적 시설인 널판자로 얼기설기 가린 푸세식(?) 변소를 사용하는가 하면 매우 문명적(?)인 시설 전기도 들어와 있음.
- 2002년 9월 11일 일기를 땀. -
땅굴집 : http://cafe.naver.com/acebike/1641
++ 라오따꺼의 뜨거운 취재열기. ++
++ 라오따꺼! 자세 나오십니다. ++
++ 으이샤! 한 껀 했다!!
++ 짧은 해가 엉덩이에 달아붙으니 뜨거워서 부지런히 내 빼야... ++
++ 구글로 찍어보니 바이두만 못하다. 업그레이드가 않되니... ++
꾸꺼[谷歌 Google]는 중국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공산당이 철저히 막아 놓아 어떤 '짓'도 할 수가 없다.
++ 수 많은 언덕을 넘고, 장성과 요동을 들러보고... ++
++ 오르도스에서 싼인현의 한 시골마을까지... ++
해를 찾아 동으로 나가는 길. 바로 건너가는 길이 없음에 바이두 다오항[導航]을 켜고, 더듬는데... 동[東]으로 가기는 가는데 남으로 내려갔다가 북으로 올라 갔다가를 반복....!! 라오따꺼님들은 황하, 만리장성, 요동. 세 곳을 관람하고도 이동 거리가 모 신문사가 주최하는 - 자전거 - 유라시아 횡단팀의 하루 이동거리보다 훨씬 더 멈.
숴저우[朔州]를 지나 고속도로에서 내렸고, 이미 어두워져 깜깜한 논두렁 같이 좁은 길을 얼마를 달려 이른 짱쟈향. 마침 번듯해 보이는 장성빈관이 있어 망설임 없이 찾아 듬.
나이가 많지 않아도...
여는 말씀으로...
이전과 다르게 나타나는 반응 하나가 있으니 잠을 일찍 다는 사실. 한 창 때는 애국가를 듣고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억지로 침대로 가고는 했는데... 언제인가부터는 아홉시 뉴스 끝나고 피디수첩을 보려면 중간에 연속극을 하는데.... 그 간격을 넘지 못하고 쇼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아내의 구박을 듣게 되었고.... 더구나 수술을 하고 난 뒤부터는 약골이 된 몸이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어느 때는 아이처럼 먹으면서 졸리더라는... 하여간 요즘에는 아홉시 뉴스 보기도 바쁜데.... 그러다보니 한 잠을 잘 자고 깨어보면 아직 새벽이다. 또 자고.... 더 자고.... 그래도 기상 나팔이 울지 않는다.
말씀인즉...!! 일찍자니 일찍 일어나고 일찍 일어난 몸이 빨리 노곤해 지니 또 일찍 자게 되고... 아마도 더 낡으면 할배와 할매 같이 낮에도 수시로 자야 할 것이다. 늙어 근력이 떨어지면 밤새도록 자도 또 낮잠을 주무시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서...
칭다오에서 네 분의 라오다꺼를 모시고 해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는 한 달여의 멀고 긴 여행. 앞서 고국을 짧게 다녀오면서 충분히 실험(?)을 했다 고 하지만, 반푼의 몸으로 겁없이 나선 무모한 여행이다.
사실인즉... 오래 전부터 속앓이를 해 왔고, 심해지면 약을 찾아 먹고 나아지면 나이가 들어가니 당연 그러려니 해왔던 고질병. 하이난으로 여섯 차우님들과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고단함에 더해 과중한 스트레스가 얹히니 못 견뎌 터졌고... - 이월. 서둘러 귀국을 하여 입원 수술을 하고... - 삼월. 거의 한 해를 누워 지내는 아픔을 격은 뒤라... - 십일월말까지... 모든 치료는 끝이 났고 겉 보기는 멀쩡하였지만... 휴유증(?)으로 빈혈이 있어 반 년 동안 약을 먹었고... 가끔은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맥을 못추는 증상이 나타니기도 함.
이듬해 봄이오면 자전거를 살살타면서 몸을 만들고, 여름이 오기 전에 이전과 같지는 못하겠지만, 어느정도의 회복을 보일 것이라 기대가 있었는데.... 나름 계산을 하여 원상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무모한 계획으로 염증이 생겼다 는... 아차...! 그 때 절대적으로 서둘지 말고 한 발씩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음을 얻음.
전성기 때의 몸무게가 일백사십여섯근이었고... 나이가 한 주먹이 넘고 나잇살이 붙어 조절이 불가 할 때는 백육십근이 훌쩍 넘어가기도 했는데... 수술 뒤에 서른 근 쯤이 빠져 일백이십근 대를 유지. 몸무게의 원상 복구로 회복을 가름한다 는 미련한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고, 식욕에 빠져 자꾸 많이 먹게되니... 온전하지 못한 위에 부담이 되어, 먹고 나면 많이 힘들고 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래 염려가 없지 않아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천천히 꼭꼭 씹어서 조금만 먹어야 한다 는 원칙을 세웠고... 피로가 쌓이면 아니됨으로 야간운전은 사양하고, 무엇보다도 편히 잘 수 있는 잠자리를 마련해 주십사 했으며, 식사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편의를 봐 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 지금까지 잘 견뎌왔고, 몇 일 남지 않은 여정에도 문제가 없으리라 느껴짐.
이와같이 네 분의 라오따꺼들께서는 이미 환,진갑이 모두 지난 분들이지만 오팔(?)청춘 같이 훨훨 나시는데... 가장 어린 막내가 벌벌 기는 상황이니... 과연 앞으로 두 바퀴를 더 돌아 라오따거의 연배가 되면 자전거를 탈 수가 있을까! 아뭏튼 여행 내내 네 분께 뿌하오이쓰한 점이 많았으나 모두들 접수를하셨으리라 믿음.
칭다오에서 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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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몽고 에서 산서 표시 지도가 이채롭군요 - 중간중간 차량으로 이동 하는군요?
네...!! 워낙에 먼거리라서 자전거는 조금밖에 못 탔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전에 쓴 것을 베껴서.... "반복등재"입죠!! - 단 탱이 겁니다.
흙담으로 된 만리장성 ... 먼길을 다녀오셨군요. GPS 앱을 중국서 다운받을수 있나요? 좌표와 고도값이 정확하든가요?
네 모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단 구글과 기독교는 공산당이...
@탱이 아...네...구글플레이 서비스 안되드라구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