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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瑞草區 ]
정의
서울특별시 중남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은 강남구, 서쪽은 관악구와 동작구, 북쪽은 한강, 남쪽은 경기도 과천시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56'~127°05', 북위 37°25'~37°28'이다. 면적은 47.00㎢이고, 인구는 44만 676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8개 행정동(10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편마암류로 구성된 기반암이 오랜 침식을 받아 10∼20m의 기복을 보이는 낮은 구릉지를 이루며, 구릉지의 토양은 오랫동안 심한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적갈색을 띤다. 남쪽으로 청계산(淸溪山, 449m)을 주봉으로 구룡산(九龍山, 306m), 대모산(大母山, 293m), 우면산(牛眠山, 293m), 인릉산(仁陵山, 326.5m) 등의 산이 연봉을 이루어 자연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면산에서 발원하여 반포동 일대를 가로질러 흐르는 반포천(盤浦川)이 북류해 한강으로 유입되며, 관악구와 동작구의 경계를 따라 반포천의 지류인 사당천이 관악산과 우면산에서 흘러 내려와 이수교 부근에서 반포천에 합류한다. 이 지역의 남쪽에는 관악산에서 발원한 양재천과 청계산에서 발원한 여의천이 양재동 영동1교 부근에서 합류하여 동쪽으로 흘러 강남구를 관통하여 탄천과 합류한 후 한강으로 들어간다.
한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편서풍대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 기온은 13.3°C, 1월 평균기온은 -1.5°C, 8월 평균기온은 26.1°C이며, 연 강수량은 1,499㎜ 내외이다.
역사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 · 신석기 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고, 한강 유역의 하남시 미사리 유적이나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흔적, 강남구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선사유물, 서초구 원지동의 지석묘군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도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국가로서 마한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서기전 18년 부여계 고구려 유이민인 온조(溫祚)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백제국(伯濟國)을 건국하고 점차 마한제국을 병합하여 삼국 중 하나인 백제로 성장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475년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를 공주로 옮길 때까지 500여 년간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강 유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의 쟁패가 계속 이어졌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때 남하정책을 펴면서 한강 유역을 공략하여 석현성과 관미성 등 10여 성을 함락하고 이어 백제 서해안을 공격하여 58개 성을 취하였다. 이어 장수왕 때는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살해함으로써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면서 장악하였고, 이 일대에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설치하여 80여 년간 다스렸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동맹을 파기하고 이 일대를 독차지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 혹은 신주(新州)를 두어 관리하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나라와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고구려 · 백제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세력이 고구려와 백제를 잇는 수직라인과 신라와 당을 연결하는 수평라인이 서로 대립하였고, 당나라 세력을 이용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통일을 달성한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한강 유역을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로 개칭하였으며, 서초구 지역은 고구려 때 율목군(栗木郡)에 속했다가 통일신라 이후에는 율진현(栗津縣)이 되었다. 후삼국시대 ‘서초 지역’은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895년 한산주 관내의 10여 성을 복속시킴에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에 귀속되었다. 고려 건국 초기에는 각 지역에 호족세력들이 건재하였는데 한강 유역 일대에는 왕규(王規)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였고, 강감찬(姜邯贊)의 후손인 금주강씨(衿州姜氏 혹은 衿川姜氏) 세력과 풍덕유씨(豊德柳氏) 세력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규는 경기도 광주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금주강씨는 금천구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풍덕유씨 세력들은 한강 하류의 마포 서쪽지역 일대에 웅거하고 있었다. 고려 건국 후 한주를 광주(廣州)로 바꾸고, 율진현은 과주(果州)로 바뀌었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함에 따라 광주목이 되었고, 995년에 고려의 행정구역을 5도로 나누면서 광주에는 절도사를 두어 그 군대를 봉국군(奉國軍)이라 이름 짓고 관내도(關內道)에 예속시켰다. 이후 1018년(현종 9)에 다시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광주목이 되었고, 과주는 광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과주는 달리 부안(富安) · 부림(富林)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서 수도를 한강 북쪽의 한양으로 옮기고 행정제도를 개편하였다. 1394년(태조 3)에 먼저 경기도를 좌 · 우도로, 양광도를 충청도로, 강릉교주도를 강원도로, 서해도를 풍해도로 바꾸었는데, 이때 서초구는 경기좌도 과천군(果川郡)에 소속되었다. 1413년에는 과천현이 되어 현감(縣監)이 두어졌다. 이후 이 지역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동면(東面) · 상북면(上北面) 지역과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彦州面) 지역에 해당되었다. 즉 서초동 · 양재동 · 원지동 · 우면동은 과천군 동면에, 잠원동 · 반포동 · 방배동은 과천군 상북면에, 염곡동 · 내곡동 · 신원동은 광주군 언주면에 각각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과천군은 인천부(仁川府)에, 광주군은 한성부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됨에 따라 광주군은 경기도 제1등 광주부로, 과천군은 경기도의 제4등 군으로 변경되었으며, 1906년에는 광주부가 광주군이 되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본은 조선의 전통적인 지방제도와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행정 구역의 개편을 시도하여 1914년에 지방제도를 12부 317군에서 12부 220군으로 폐지 혹은 통합하였다. 이때 과천군 상북면과 동면 지역은 시흥군(始興郡) 신동면으로 개편되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광주군 언주면에 속하였다.
당시 시흥군 신동면의 하위 행정 구역인 7개 리는 서초리, 잠실리, 반포리, 양재리, 우면리, 신원리, 방배리 등이며, 언주면에는 염곡리, 내곡리, 신원리의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이들 지명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이 지역은 광복 이후에도 경기도 시흥군과 광주군에 분할, 소속되어 있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이때 서울시의 영역을 대규모로 확대하면서 10개 출장소를 설치하였는데 광주군 언주면 지역에는 성동구 언주출장소가, 시흥군 신동면 지역에는 영등포구 신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탑곡동, 양재동, 남성동, 서초동, 잠포동의 5개 동사무소를 두어 행정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후 1975년 성동구 영동출장소와 천호출장소 관할구역의 48개 동을 독립시켜 서초구의 모체인 강남구를 신설하였으며, 1980년 관악구 관할구역 가운데 방배동 일원과 동작동 · 사당동 일부가 강남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에는 강남구의 11개 법정동인 서초동, 잠원동, 반포동, 방배동, 도곡동, 양재동, 우면동, 내곡동, 원지동, 염곡동, 신원동을 분리하여 서초구를 신설하였다. 1989년에는 강남구 포이동 일부를 서초구 양재동에 편입시키고, 서초구 도곡동을 강남구에 편입시켜 서초구는 10개 법정동을 가지고 있다. 서초구 지역이 현대 도시로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서울특별시 기본계획에서 부도심으로의 개발이 결정되어 1968년 영동 제1차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이다. 그 후 연차적인 토지구획 정리사업에 의해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물 · 유적
이 지역에는 국립중앙도서관과 사찰에 많은 국보와 보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유형문화유산과 무형유산도 많다. 사적으로는 내곡동의 서울 헌릉(獻陵)과 인릉(仁陵)(사적, 1970년 지정)이 있으며, 기념물로는 잠원동의 잠실뽕나무(서울특별시 기념물, 1973년 지정)가 있다. 이 외에 원지동의 도당터와 미륵당, 우면동의 효자문, 동작나루터, 서초동의 대성사 · 나홍좌 묘 · 정역신도비, 말죽거리 등도 역사의 숨결이 묻어있는 곳이다 국보로는 반포동의 국립중앙도서관에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국보, 1973년 지정) 1책이 있다. 보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석보상절(釋譜詳節) 권6, 9, 13, 19(보물, 1970년 지정), 동인지문사육 권10~12(보물, 1981년 지정), 민간 목활자 및 인쇄용구(보물, 1986년 지정), 언해태산집요(보물, 1991년 지정)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의보감은 199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또한 월인천강지곡 권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2017년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우면동의 관문사에는 묘법연화경(보물, 1988년 지정), 묘법연화경 권6~7(보물, 1988년 지정), 대방광원각약소주경 권하(보물, 1988년 지정), 대방광불화엄경소 권41(보물, 1988년 지정), 육경합부(보물, 1988년 지정), 지장보살본원경(보물, 1988년 지정), 상설고문진보대전전집 권7~8( 보물, 1988년 지정) 등의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외에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악후보(보물, 1998년 지정), 방배동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 상감매 죽학문매병(보물, 1986년 지정) 등도 있다. 이 지역의 유형문화유산으로는 방배동의 효령대군 이보 묘역, 방배동의 성안공 상진 묘역, 서초동의 대성사 목불좌상, 원지동 석불입상 및 석탑 등이 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는 조아통상조약(한문, 아문), 조영통상조약(영문), 대조선국 · 대덕국통상조약(한문), 대한국 · 대청국통상조약, 대조선국 · 대법민주국통상조약 등 외국과의 조약문이 있다. 효령대군 이보 묘역은 1972년, 성안공 상진 묘역은 1984년, 대성사 목불좌상은 1993년, 원지동 석불입상 및 석탑은 1993년, 조아통상조약은 1998년, 조영통상조약은 1998년, 대조선국 · 대덕국통상조약은 1998년, 대한국 · 대청국통상조약은 1998년, 대조선국 · 대법민주국통상조약은 1998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는 서초동에 있는 경국대전 권3(經國大典 卷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방배동에 있는 목우자 수심결 · 법어(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6년 지정)가 있다. 거문고산조는 방배동에 거주하는 원광홍 등이 보유자이며, 1968년 2월 20일 지정되었다.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방배동에 거주하는 이영희 등이 보유자이며, 1968년 12월 10일 지정되었다. 승무는 양재동에 거주하는 이매방 등이 보유자이며, 1969년 7월 4일에 지정되었다. 피리정악 및 대취타는 잠원동에 거주하는 정재국이 보유자이며, 1971년 6월 10일 지정되었다. 문배주는 잠원동에 거주하는 이기춘이 보유자이며, 1986년 11월 1일에 지정되었다. 살풀이춤은 양재동에 거주하는 이매방이 보유자이며, 1990년 10월 10일에 지정되었다. 거문고 산조는 1967년,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1968년, 승무는 1969년, 피리정악 및 대취타는 1971년, 문배주는 1986년, 살풀이춤은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서울특별시의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들도 있다. 삼해주 제조는 방배동에 거주하는 권희자가 보유자이며, 1993년 2월 13일 지정되었다. 자수장은 방배동의 한영화가 보유자이며, 1996년 12월 31일 지정되었다. 판소리고법은 서초동에 거주하는 정화영이 보유자이며, 2001년 10월 23일 지정되었다. 악기장은 서초동에 거주하는 김복권이 보유자이며, 2002년 5월 6일 지정되었다. 삼해주는 1993년, 자수장은 1996년, 판소리고법은 2001년, 악기장은 2002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교육 · 문화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는 24개교, 중학교는 15개교, 고등학교는 11개교, 특수학교 1개교, 대학교는 서울교육대학교와 카톨릭대학교가 있다. 이 지역의 종합적인 문화시설로는 1982년 한국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여 창작활성화에 기여하고 국제교류 증진과 국민문화복지 향상을 위해 건립한 예술의 전당이 있다. 우면산 기슭의 남부순환로변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은 대지 16만 6009㎡, 건물 12만 352㎡에 오페라하우스, 음악당, 미술관, 서예관, 디자인미술관, 야외극장 등이 있다. 중심이 되는 오페라하우스는 한국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선비정신을 본 뜬 갓 모양의 원형건물이고 음악당은 부채모양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예술의전당은 인근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국악원과 함께 복합문화예술센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일반 공연장으로는 서초동의 한전아트센터와 블루노트서울, 양재동의 서울교육문화회관대극장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양재시민의 숲 남쪽에 1988년 건립한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의 규모로 유물전시실, 독립운동 사진전시실, 세미나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서초구민회관 지하에는 서초문화센터를 만들어 요리, 미용 등 지역민의 취미, 여가 활동 및 취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으로는 서초동에 외교자료 140여 점을 전시한 외교박물관, 한국전력공사에서 운영하는 전기박물관(電氣博物館), 서울교육대학교박물관, 서예박물관, 염곡동의 한국사진박물관, 방배동의 서울디자인박물관, 우면동의 분재박물관 등이 있다. 미술관은 예술의전당 서예관 · 디자인관 · 미술관에서 족자 사진 한국화, 서양화 등을 전시하고 있고, 우면동의 치우금속공예관에서는 금속 유리 도자기 등 11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반포동에 자리잡고 있다. 1988년 남산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도서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의 건물로 국보와 보물 등 귀중본을 포함하여 모두 391만여 점의 각종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자료가 전산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 외에 크고 작은 전시관으로는 우면동의 치우금속공예관에서는 금속 유리 도자기 등 110여 점을 전시하고 있고, 양재시민의 숲 남쪽에 1988년 건립한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유물전시실, 독립운동 사진전시실, 세미나장 등을 갖추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으로는 서초동에 외교자료 140여 점을 전시한 외교박물관, 한국전력공사에서 운영하는 전기박물관(電氣博物館), 서울교육대학교박물관, 서예박물관, 염곡동의 한국사진박물관, 방배동의 서울디자인박물관, 우면동의 분재박물관 등이 있다. 반포동 반포유수지 내에 있는 반포종합운동장에는 축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테니스장, 풋살장,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트랙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시설의 사용은 접수를 받아 대여하고 있다.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에는 총 8만 8000평의 부지에 6만 6500평의 잔디와 12만 2800주의 수목, 1,280평의 꽃단지를 확보해서 시원스런 한강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시민공원이 5,4㎞의 길이로 되어 있다. 강남 제일의 번화가인 압구정동, 신사동, 잠원동이 인접하여 있으며, 축구장, 배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체력단련장, 육상경기 연습장, 자전거 도로, 야외수영장, 보트장, 윈드써핑장, 자연학습장, 만남의 광장, 낚시터 등이 갖추어져 있어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반포동에 있는 서초구민체육센터는 서울 YMCA가 서초구청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수영장, 농구장, 헬스장, 축구장 등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사회체육활동은 물론 평생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 동 별로 스포츠클럽이나 공원의 생활체육 시설이 많아 자유롭게 여가를 이용하여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 놓고 있다.
민속
이 지역만의 특별한 세시풍속은 없으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계절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세시풍속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월 초하루에는 설날을 맞아 각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는 풍속이 남아있다. 정월 열나흘에는 오곡밥 먹기, 정월 대보름의 부럼깨기와 더위팔기, 윷놀이, 연날리기 등이 행해진다.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연등달기, 칠월 복중에 개고기와 삼계탕 먹기, 추석 차례와 성묘가기, 동지 때 팥죽 먹기 등의 세시풍속이 펼쳐진다. 민속놀이로는 우면두레가 있다. 이 놀이는 우면동의 성촌 · 형촌 · 송동 · 식유촌 등 4개 마을에서 농사를 지을 때 주민이 일하고 함께 즐기던 민속놀이로서 마을의 단결과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놀이이다. 구성은 꽹과리 · 징 · 장구 · 북 · 호적 등 농악대 10명과 영감 · 소리꾼 · 일꾼 · 지게꾼 · 새참꾼으로 구성된 농부 60명으로 모두 70명이 출연하는 12마당이다. 12마당은 입장 · 달팽이놀이 · 마을싸움 · 씨름 · 모찌기 · 한마당 · 모심기 · 새참놀이 · 김매기 · 논밟기 · 새쫓기 · 마무리 등 1년의 농사를 짖는 과정을 놀이로서 묘사해 놓은 것이다. 이 외에 원지동 미륵당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洞祭)를 지내곤 한다.
설화 · 민요
이 지역에는 지명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여우가 많이 나타났다는 여우고개(현재는 남태령), 고려 왕성인 왕씨만 살았다는 왕촌,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산 등이 있으며, 반포동에는 특별하게 벌바위 터와 말무덤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옛날 어느 임산부가 산기가 있어 친정인 마포로 가다가 진통이 심해 견딜 수가 없어 길 옆 갈대밭에 들어가 혼자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태를 끊을 수가 없어 어려워 할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흰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일러주기를 “태는 갈대 잎으로 끊으면 되나 아기가 걱정이다.”라고 하며 당부하기를 “뒤에 말 탄 병사가 쫓아 와서는 그가 아기는 어떻게 낳았으며, 태를 어떻게 잘랐느냐고 추궁할 것이니 그때 갈대로 잘랐다고 말하지 말아라. 만일 말한다면 아이를 죽일 것이다.” 하고 일러주고는 하늘로 사라졌다. 곧이어 말 탄 병사가 뒤 쫓아와 산모에게 추궁을 하자 산모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대답하니 병사는 즉시 아이를 죽였다. 이때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아기가 죽은 뒤편 큰 바위에서 무수히 많은 왕벌이 쏟아져 나오더니 그 병사를 향해 날아가 병사와 말을 쏘아 죽였다. 그 후 벌이 나온 큰 바위를 벌바위라고 불렀다. 현재 이곳에는 반포전화국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병사를 태우고 온 용마가 벌에 쏘여 죽은 것을 안타까이 여긴 마을 사람들은 용마를 정성껏 묻어 주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반포동 1번지 경남쇼핑센터 옆이다.
산업 · 교통
토지의 38.5%가 임야이고 경지는 전체 토지의 8.7%이다. 대지 27.3%, 학교용지 1.9%, 도로 13.2%로 전체 토지에서 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산업 인구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는 7.7%, 건설업 11.3%, 도소매업이 21.5%, 숙박 및 음식업이 8.1%, 운수업 3%, 금융 및 보험업 4%, 부동산 및 임대업 4%, 사업서비스업 24%, 교육서비스업이 3.4%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 사업체 수 가운데 1~4명의 종사자를 가지고 있는 사업체가 전체의 69%의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1,000명 이상의 사업체도 12개 업체에 달한다. 예로부터 한강을 끼고 있어 수운을 통해 이 지역으로의 접근이 가능하였고, 도성에서 한강 이남으로 이동할 때는 한강나루와 동작나루를 건너 판교 · 용인 · 충주나 수원 등지로 왕래하였다. 조선시대 도성에서 한강을 건너 남태령을 지나 수원으로 이동할 때 동작나루를 건너 이동하였다. 특히 정조는 동작나루에 배다리를 놓고 3일간의 일정으로 수원 화성을 다녀오곤 하였다. 1970년 한남대교와 연결되는 경부고속도로가 서초동 일대를 관통하면서 급격한 발전을 도모하였고, 고속버스터미널과 남부화물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인적 물적 이동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남부순환도로가 서초구 남쪽지역을 관통하고 있고, 반포인터체인지 · 서초인터체인지 · 양재인터체인지 등 도로의 교차지점이 서초구와 연결되어 있어 도로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또한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서초구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고, 지하철 7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지하철 4호선은 서초구와 동작구 · 관악구 사이를 지나고 있다.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 · 신반포역 · 고속버스터미널역 · 사평역 4개의 역이 서초구 내를 지나고 있으며, 2011년에 광역철도노선인 신분당선이 개통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서초구의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반포대교나 동작대교 · 한남대교를 이용하여 강북의 도심지로 진입이 손쉽다. 특히 2층으로 되어 있는 반포대교는 서초지역의 중심을 강남 · 강북을 연결해 도심과의 시간을 단축시켰으며, 이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는 구실을 담당하였다. 반포동에 강남종합고속버스터미널이 설치됨에 따라 우리나라 최대의 교통처리를 담당하고 있다. 도로의 크기에 따라 광로(廣路) · 중로(中路) · 소로(小路)를 모두 합하면 총연장은 347㎞에 달하며,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폭 40m 이상의 넓은 도로는 한강변의 올림픽대로와 남부순환도로가 서초구의 남쪽과 북쪽에서 동서를 가로지르며, 반포대교와 연결되는 반포로, 동작대교와 연결되는 동작대로가 서초구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심도로이다. 이 외의 간선도로로 사당로, 강남대로, 사평로, 잠원로, 우면로, 신반포로, 방배로, 효령로, 헌릉로, 서초로, 사임당길 등의 도로가 있어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이어진다.
지하철 2호선은 서울 강남과 강북의 도심권 43개 역을 순환하는 노선으로 1978년 3월에 착공하여 1984년 5월 완공되었다. 서초구를 지나는 2호선 구간은 강남역, 교대역, 서초역, 방배역, 사당역이며 교대역에서 3호선을, 사당역에서 4호선을 갈아탈 수 있다.
지하철 3호선은 수서에서 대화까지 39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80년 착공,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하여 1985년 10월에 완전 개통되었으며, 양재역에서 수서까지의 연장구간은 199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서초구를 지나는 3호선 구간은 신사역, 잠원역, 고속터미널역, 교대역, 남부터미널역, 양재역이 있으며 고속터미널역에서는 7호선을, 교대역에서는 2호선을 각각 갈아탈 수 있다. 지하철 4호선은 당고개역에서 오이도까지 48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80년 착공하여 1985년 개통되었으며, 서초구를 지나는 역은 동작역, 총신대입구역, 사당역, 남태령역이며, 총신대역에서는 7호선을, 사당역에서는 2호선을 각각 갈아탈 수 있다. 지하철 7호선은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에서 구로구 온수역까지 42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90년 착공하여 2000년 8월 완전히 개통되었으며, 이 중 서초구 지역은 2000년 7월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서초 지역을 지나는 7호선은 논현역, 반포역, 고속터미널역, 내방역, 총신대입구역이며, 고속터미널역에서는 3호선을, 총신대입구역에서는 4호선을 각각 갈아탈 수 있다.
관광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예술의 전당, 양재 시민의 숲, 서울교육문화회관, 양재문화예술공원, 헌인릉, 우면산 일대,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 등이다. 예술의 전당은 종합예술공간으로서 각종 공연은 물론 전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양재 시민의 숲과 서울교육문화회관, 그리고 양재문화예술공원은 양재동에 모두 몰려 있어 많은 시민이 모이는 곳이다. 양재 시민의 숲에는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의 규모로 유물전시실, 독립운동 사진전시실, 세미나장 등을 갖추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공원은 총면적 7만 4385㎡의 부지에 많은 수목과 화초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특히 조각공원(彫刻公園), 야외공연장, 각종 기획전시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과 만남의 광장, 롤러스케이트장 등 청소년 놀이공간을 설치하여 수준 높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하는 서초구의 대표적인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교육문화회관도 문화관과 스포츠센터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잔디광장과 분수광장 등의 놀이 공간도 있다. 또한 우면산은 서초구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등산로를 따라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2004년에 개원한 우면산 자연생태공원은 우면산의 양호한 자연생태와 참나무 군락지를 활용하여 나비관찰원 등 관찰원 15개소, 자연해설판 14개소, 자연탐방로 1,320m, 야외강의장, 목교, 저수지 등의 시설을 만들어 놓아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도 압구정동, 신사동, 잠원동과 손쉽게 연결되며, 각종 체육시설과 볼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어 생활체육을 즐기는 동호인들과 일반 시민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1995년부터 서초구민의 화합과 서초구의 문화발전을 위해 학생, 교사, 학부모, 주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학예발표회와 가족노래자랑, 작품전시회, 기념음악회 등을 주요 행사종목으로 하여 11월 초 서초구청의 주관하에 서초문화제를 개최한다.
동(洞)
내곡동(內谷洞)
구의 동부에 위치한 동으로 인근의 염곡동과 신원동의 행정업무를 모두 내곡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내곡동의 동명 유래는 조선시대 말까지도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의 일부로서 마을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안골 또는 안말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내곡동(內谷洞)이라 한 것이다. 내곡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안골, 내곡동으로 칭하였으며, 일제강점 후 1914년 안골 · 능안말 · 구석말 · 양지말 등을 병합하여 광주군 언주면 내곡리라 하였다. 광복 후 1963년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 성동구에 편입된 후 1975년에는 강남구에,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반포동(盤浦洞)
구의 서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반포동의 동명 유래는 이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구비 흐른다 하여 ‘서릿개’ 곧 반포(蟠浦)라 하다가 변음되어 반포(盤浦)로 칭하게 되었다 한다. 또 일설에는 이곳이 홍수의 피해를 입는 상습 침수지역이므로 반포라 칭했다고도 한다. 내곡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상북면(上北面)이었으며, 1914년 시흥군(始興郡) 신동면(新東面) 반포리(盤浦里)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 반포동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에는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강남개발계획에 따라 한강변에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고,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어 남부지방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대학으로는 카톨릭대학교가 있으며, 강남성모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서울지방조달청과 서울기획예산처 및 대한민국 학술원,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 행정동으로는 반포본동과 반포1동에서 반포4동까지 모두 5개 동이다.
방배동(方背洞)
구의 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방배동의 동명 유래는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의 방배(方背)라 한 데서 붙여졌다. 방배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상북면(上北面) 방배리(方背里)였으며, 1914년 시흥군(始興郡) 신동면(新東面) 방배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 방배동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관악구, 1980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지하철 7호선과 2호선이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방배로 · 사평로 · 사당로가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서초동(瑞草洞)
구의 중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서초동의 동명 유래는 이곳에 서리풀이 무성했다 하여 불려졌으며, 그리하여 일명 서초리(霜草里), 서리풀이라고 칭하였다. 서초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동면(東面) 서초리(瑞草里)와 명달리(明達里)였으며, 1914년 시흥군(始興郡) 신동면 서초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 서초동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대학은 서울교육대학교가 있으며, 문화시설로는 예술의전당 · 국립국악원 · 전기박물관 · 외교박물관 · 서예박물관 등이 있다. 대검찰청과 대법원 및 검찰청과 법원 등이 서초3동에 밀집되어 있으며, 외교안보연구원과 서울시공무원교육원이 있다.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지나고 남부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신원동(新院洞)
구의 동남부에 위치한 동으로 인근의 내곡동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신원동의 동명 유래는 조선시대 원터 아래쪽에 새로 조성된 마을이므로 ‘새원’이라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신원동(新院洞)이라 한 것이다. 서초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 신원리(新院里), 신정리(新亭里)였으며, 1914년 광주군 언주면 신원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성동구 신원동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이 지역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라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한적하고 아직까지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양재동(良才洞)
구의 중부에 위치한 동으로 행정동으로 양재1동과 양재2동이 있으며, 양재1동에서는 우면동 지역의 행정을, 양재2동에서는 원지동 지역의 행정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양재동의 동명 유래는 이곳에서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이 많이 산다 하여 지은 동명이라 한다. 양재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동면(東面) 양재리(良才里)였으며, 1914년에는 시흥군(始興郡) 신동면 양재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 양재동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문화시설로는 서울교육문화회관, 양재문화예술공원, 양재 시민의 숲에 건립된 윤봉길의사기념관, 양재천 변의 생활체육시설, 양재근린공원 등이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양재대로와 만나는 양재나들목 부근에 한국트럭터미널, 농협양재물류센터, 양곡도매시장 등이 이 고속도로와 연계되어 있다.
염곡동(廉谷洞)
구의 중북부에 위치한 동으로 인근의 내곡동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염곡동의 동명 유래는 이곳 지형이 염통과 같이 생겼으므로 염통골(또는 한자명으로 靈通谷, 廉谷洞)이라 하였다. 염곡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 염곡리(廉谷里)였으며, 1914년 광주군 언주면 염곡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성동구 염곡동이 되었다. 이후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헌릉로를 통해 시내로 접근할 수 있으며, 박물관으로는 한국사진박물관이 있다. 서울의 외곽지역으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근교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기타 기관으로는 한국연구재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이 있다.
우면동(牛眠洞)
구의 남부에 위치한 동으로 이 지역의 행정업무는 양재1동에서 담당하고 있다. 우면동의 동명은 우면산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유래되었다. 우면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동면(東面) 우면리(牛眠里)였으며, 1914년 시흥군(始興郡) 신동면 우면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 우면동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문화유산으로는 관문사에 소장된 보물이 있으며, 박물관으로는 분재박물관이 있고, 민속놀이로 우면두레가 있다. 과천 · 우면산 간 연결도로가 우면산터널을 통해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우면산 주변에 자리잡고 있어 공기가 맑고 주민들은 근교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기타 기관으로는 KT연구개발본부와 서울특별시품질시험소, 대한결핵협회결핵연구원, LG종합기술원 등이 우면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원지동(院趾洞)
구의 동남부에 위치한 동으로 이 지역의 행정업무는 양재2동이 담당하고 있다. 원지동의 동명 유래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원(院)이 있었던 곳이기에 원지(院址)라고 칭하던 것을 한자 표기의 잘못으로 원지동(院趾洞)이 되었다고 한다. 원지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동면(東面) 신원리(新院里)였으며, 1914년 시흥군(始興郡) 신동면 신원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신원동과 분리하여 바람골, 양수리, 원터마을을 원지동이라 하였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지대이고 일부 지역에서 논농사와 근교농업을 하고 있다.
잠원동(蠶院洞)
구의 서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잠원동의 동명 유래는 조선 초기에 국립양잠소격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이곳에 설치되어 잠실리(蠶室里)라 칭하던 것을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될 때 이미 현 송파구에 잠실동이 있으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잠실리의 ‘잠’(蠶)자와 인근 신동면(新東面) 신원리(新院里)의 ‘원’(院)자를 따서 잠원동(蠶院洞)이라 한 것이다. 잠원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果川郡) 상북면(上北面) 잠실리(蠶室里)와 사평리(沙平里)였으며, 1914년 시흥군(始興郡) 신동면 잠실리라 하였고, 1963년에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잠원동이라 하였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1975년 강남구, 1988년에는 서초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한강변으로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가 있으며,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고, 한남대교를 이용하여 강북으로의 이동이 편리하고 지하철 3호선과 7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5)
『경조부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북한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서울의 하천』(이상배, 2000)
『서울의 전래동명』(이재곤, 백산출판사, 1994)
『서초구지』(서초구청, 1991)
『서울육백년사』민속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90)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서울육백년사』1~6(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2006)
『한경지략』(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동국여지비고』(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서초구(www.seocho.go.kr)
▲서초구청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12-1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