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달 독서모임에서는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제목 그대로 80일간 세계일주를 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포그는 ‘바이런’을 닮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라고 묘사된다. 돈이 아주 많은 영국인 신사에다가 하는 일이라곤 자신이 속한 ’혁신 클럽‘으로 가, 카드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게임을 하고 따온 돈은 모조리 자선사업에 쓰였다. 돈을 목적으로 도박을 한다기 보다는 그 도박 게임 자체를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포그는 시계처럼 정확한 사람이었다. 잠드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집에 도착하는 시간, 모든것이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계획이 안 맞을 수가 없던 것이 포그의 동선은 집-혁신클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날 포그가 새로 고용한 하인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세계일주를 떠나게 된다. 집과 혁신클럽만 드나들던 포그가 갑자기 세계일주를 떠나게 된 이유는 인도 횡단 철도가 개통되며 이제는 80일 간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는 기사가 떴기 때문이었다. 혁신클럽 회원들은 이야기 끝에 내기를 했고 포그는 2만 파운드, 지금의 가치로는 약 40억원의 돈을 걸고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편하게 기계 같은 사람을 섬기려고 온 직장인데 하루아침에 세계일주를 떠나게 되어 황당한 하인 파스파르투는 프랑스인이었다. 파란색 눈과 둥글넓적한 얼굴, 큰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인상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고, 친절과 다정, 그리고 정직은 그와 꼭 맞는 단어였다. 세계일주는 유럽부터 시작되어 인도를 거쳐 중국, 일본, 미국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리버풀을 지나 런던으로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인도에서는 순장을 당할 뻔한 아우다부인을 만나게 된다. 아우다 부인을 홍콩에 있는 가족들에게 데려다주려다가 같이 여행을 하게되고 마지막에는 어쩌다보니 아우다부인 덕에 내기에서 이기며 포그와 아우다부인 결혼 엔딩으로 책이 끝난다.
사실 엔딩은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포그 일행이 일말의 사건에 휘말려서 시간이 지연된 탓에 내기에서 진 줄 알았지만 포그가 동쪽 방향으로 여행하는 바람에 하루를 벌게되었던 사건이다. 그런데 그것을 결혼식 날짜 잡다가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아우다부인 없었으면 포그는 파산엔딩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반전때문에 갑자기 헷갈려서 뒷내용부터 다시 읽었다. 내가 잘못 이해한 줄 알고 굉장히 당황했지만 작가님께서 우리모두에게 뒷통수를 친 것이었다. 당연히 일주 완료하고 가뿐하게 내기에서 이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마지막에 고난과 역경이 한꺼번에 왔다가 간 느낌이었다. 그냥 내기에서 이겼다면 뻔한 결말이었겠지만 이렇게 시차를 이용해 반전을 주고 나서 내기에서 이긴 결말은 너무 신기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한 일간 신문의 인기있는 연재 소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 챕터의 마지막은 꼭 위기로 끝났다. 그 당시 많은 시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포그가 과연 세계일주를 잘 마칠 수 있을까, 그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다. 그 당시 엔딩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 분위기가 너무 궁금하다. 마지막에 포그가 혁신클럽으로 돌아와 내기에서 이기는 장면은 소설 속 도착 날짜 하루 뒤에 신문 소설에 나왔다고 한다. 날짜까지 비슷하니 그 당시 이 소설을 챙겨보던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생생하게 느끼며 봤을 것 같다. 나도 이 책 한 권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 시절로 가서 사람들과 같이 손에 땀을 쥐며 한번 읽어 보고 싶다.
작가는 프랑스인이지만 주인공은 영국인이다. 역사시간에 배운바(?)로는 프랑스는 세계일주를 할 정도로 분포된 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에 영국은 정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가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가 주인공은 영국인이고 포그가 여행한 나라들은 거의 다 영국의 식민지들이었다.
동양인과 인디언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무조건 야만적인 인디언과 은근히 조롱하는 듯한 동양에 대한 묘사는 지금의 시선으로 읽었을 때는 그다지 달가운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때의 사회적 분위기를 꽤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에 이겼다. 그는 80일 동안에 세계일주는 끝마쳤다. (중략)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 여행에서 그가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그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갖고 돌아왔는가?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까? 확실히, 한 아리따운 여성말고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그러나 좀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그 여성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p.366)’ 포그는 이 여행에 오로지 명예를 위해 2만 파운드를 걸고 내기를 걸었다. 그밖에도 수만파운드를 여행 경비에 써버렸다. 하지만 포그는 아우다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아우다부인 없었으면 얻는 것은 커녕 거지 신분으로 길바닥에 나앉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우다부인이 정말 가치 있는 여행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또 독자들은 이 여행을 통해 포그가 과묵하고 냉정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 그 내면에는 다정함과 섬세함이 숨어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는데 고민 없이 위험에 빠진 여성을 구하는 것과 인디언에게 붙잡힌 하인을 구하는 장면, 그리고 다른 여러 장면들은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는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 세계일주라는 것이 낯선 시절에 대신 세계일주를 하며 세계의 여러 문화를 보여주고 독자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다. 포그의 여행의 가치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포그 자신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말로는 많이 들어본 고전 소설이었다. 하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됐고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꽤나 과학적인 소설이었다. 맨 마지막 문장인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라는 문장처럼 언젠가 나도 세계일주를 하게 된다면 정말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 보다는 엄청나게 하찮은 어떤 이유를 들며 떠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