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평화란 것을 아무런 잡음이 생기지 않고 고요하게 잘 굴러가는 걸 평화인 양 생각하고, 뭔가 자꾸 문제 제기를 하면서 잘못된 것에 비판을 가하면 ‘반국가세력’이라고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릴 때, 학교에서든 어디든 곤란한 질문도 많이 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아이에게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딴 애들은 안 그러는데 넌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말 많으면 공산당”
저는 전부터 주일학교 애들이나 청년들에게 “부디 여러분들이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건강한 시민이란 ‘생각의 힘’을 키운 사람을 말합니다. 그냥 어느 사회나 조직에 ‘소속’돼서, 그 사회나 집단에서 ‘시키는대로’ 행동하며, 그 집단이 요구하는 ‘사상’(가치)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게 ‘시민’인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시민’이란,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코 박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를 생각하며,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잘잘못,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고, 그애 대해서 당당하게 ‘정당한 비판’이나 때로는 물리적 행동(액션)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시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 생각이 굳어버린 ‘꼰대’가 되지 않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즉 회의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회의론자(스켑틱, Skeptic)이란 것은 뭔가 마음이 꼬여있는 사람처럼, 만사 삐딱하고, ‘무엇이든 의심하고 보는 것’쯤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믿어버리는 습관’을 배제하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회의론자’를 그저 ‘분란을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나 반 국가세력’으로 여길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라는 오늘 말씀도 문제의식을 지니고, 내 일처럼 정열을 가지고 그때그때 시비를 가릴 건 가리고, 만사를 충만 되게 만나라...하는 말씀으로 들으면 좋겠습니다. 저항과 반대가 두렵다고 “귀 막은 신자”나 “입 다문 사제”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