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go]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가로지르는 10장의 명반
Changgo's recommedation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가로지르는 10장의 명반
(Choosed by cherry)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은 그 어느 시기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시장 규모의 팽창과 전반적인 음악적 향상에 걸맞는 대중음악계의 전반적인 성숙은 아직 요원하다.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거대한 저택에 살게 되었지만 아직은 여기저기 기운 남루한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이 우리 대중음악계의 모습인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들어온 앨범들을 곱씹으며 저울질하는 작업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즐겁다. 수십 수백장의 앨범들이 서로 뒤엉켜 마구 핥고 때리고 긁히고 울부짖던 내 머릿 속의 도저한 SM적 풍경은 어느새 열 장의 음반에 "니가 고수야!"라는 딱지를 달아주었다. 물론 아래 10장의 앨범만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반이라고 우길 생각은 전혀 없다. 전반적으로 삐딱한(?) 음반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상큼한 체리로 위장하고자 하는 내 비열한 이드의 감출 수 없는 충동 때문이리라. 어차피 인류의 역사는 이성의 힘으로만 굴러온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 자리를 빌어 나의 앨범 선정에 많은 도움을 준 창고의 puk과 cookie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은 내가 뽑은 수십 장의 후보 앨범들을 마음껏 비웃었(?)을 뿐 아니라 그 중에서 가려 뽑은 아래 열 장의 앨범들의 태반을 목록에서 빼야한다고 난리부르스를 떨었다. 그들의 괴롭힘은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엿장수식 가위질은 나의 삐뚤어진 심보를 더더욱 자극했고, 그 결과 아래와 같은 리스트가 추려지게 된 것이다. "이 앨범이 왜 빠져요? 말도 안돼!"라는 그들의 강요 때문에 오히려 제외해야 했던 내 청년기의 수많은 애청 음반들은 다른 형태로 다음 기회에 정리해 볼 심산이다. 그리고 하나 더. 도저히 눈을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섹시하고 아름답던, 그래서 노래방이며 댄스플로어 등지에서 줄기차게 따라 부르고 흔들어대던 '쭉쭉빵빵' 예쁜이들의 앨범들이 죄다 누락되어 있다는 것 또한 무척 마음에 걸린다. 이에 대해서는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반드시 고해성사를 하고 말 생각이다.
♬음악에 있어서 감성이란 콩나물을 기르기 위한 물과 같다. 산뜻하고 신선한 콩나물을 얻기 위해서는 맑고 깨끗한 물이 있어야 하는 법. 유앤미 블루(U&Me Blue)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 [Cry... Our Wanna Be Nation!]은 뛰어난 음악적 감성이라는 정화수가 한국이라는 '콩나물 시루'에서 어떻게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을 길러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랑, 그리움, 절망, 미지에의 동경, 기다림 등 다양한 마음의 풍경들을 전혀 상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걸러낸 이 앨범은 이제는 그 어디서도 구할 길이 없는 저주받은 걸작이다. 그들이 내놓은 대안으로서의 음악은 3류 댄스 주류의 음반 시장에서 외면받았지만 그들의 고독했던 작업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은 오늘도 인디적 전통 위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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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집 무지개
산울림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은 발라드와 댄스가 거의 모든 양분을 독식하는 듯했다. 시나위, 넥스트, 강산에 등 몇 안되는 걸출한 록커들 또한 거대한 메인 스트림에 억눌려 있었다. 한국에서 록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번민이 심각하게 대두될 때, '다시 문제는 록음악'임을 주창하고 나선 이들 삼형제의 포효는 90년대 후반 록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동년배의 록밴드들이 전멸한 대중음악계에서 이 백전노장의 열세 번째 정규 앨범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전혀 녹슬지 않은 록 스피릿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 비유적 가사로 세상을 풍자하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고양이 사냥꾼', 어린 세대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무지개' 등 노장의 관록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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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
N.EX.T
♬팝-아이돌 스타로 그칠 것 같았던 뮤지션 하나가 있었다. 그의 음악적 방향 찾기는 록큰롤에서 발라드, 댄스를 넘나드는 종횡무진이었다. 그러던 그가 쟁쟁한 세션 멤버들과 그룹을 결성한다고 했을 때, 코웃음쳤던 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는 90년대 한국 록음악을 대표하는 넥스트(N.EX.T)라는 그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넥스트의 앨범들은 뚜렷한 컨셉, 발라드·댄스 주류의 가요차트를 두드릴 수 있는 확실한 싱글 컷, 무엇보다 고른 수준의 튼실한 구성으로 한국 그룹의 앨범도 전체적으로 들을만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World]는 넥스트 최전성기의 음악적 역량이 녹아있는 앨범이다. 진지한 문제의식의 다양하고 능란한 방법적 적용이 탄탄한 연주력의 뒷받침으로 훌륭하게 형상화된 그들 최고의 앨범이다.
♬이제 테크노는 더 이상 새로운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2년 전, 테크노는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었다. 프로디지(Prodigy)와 [트레인스포팅]이 촉발시킨 한국에서의 테크노 붐은 이윤정, 달파란 등의 선구적인 테크노 앨범들을 생산해내기도 했다.
96∼97년의 작업을 모아 내놓았던 모하비(Mojave)의 [테크노…타나토스]에서 우리는 남김없이 자신의 내면을 파고 들어간 젊은 예술혼의 결정체를 만나게 된다. '사막과 물고기', 이 어울리지 않는 모순적인 내면의 공간에서 탄생한 열 개의 편린들은 사변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음악 테크노의 한국적 승화를 보여주고 있다. '도리도리춤'이 테크노의 전부가 아니듯, '잘 빠진 몸매에 걸치는 싸구려 유리구슬'만이 테크노는 아니다.
♬"도대체 가사 사이에 무슨 뜻이 있다는 거지?" 너무도 친절하게(?) 가사 사이의 숨겨진 의미의 맥락을 부클릿에 옮겨 놓은 삐삐밴드의 [문화혁명]이 나왔을 때, 혹자들은 '장난이 지나친게 아니냐'는 질책의 시선을 보냈었다.
90년대 초중반을 강타했던 소위 '신세대' 담론의 음악적 앤솔로지라 평가할만한 이 앨범은 강기영, 박현준이라는 묵직한 이름에 삐삐 같이 통통 튀는 이윤정이라는 보컬이 어우러져 나온 부산물이다. 이들의 음악적 시도는 앨범의 표제처럼 새로운 문화 혁명에의 꿈꾸기였는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신나게, 미친 듯, 때로는 몽롱하게 감겨오는 [문화혁명]과의 행복한 만남은 40분이 채 넘지 못한 트랙 타임으로 아쉽게 끝을 맺는다.
♬노이즈가든은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등과 함께 90년대 중반 한국의 인디 음악을 대표하는 그룹이다. 초기 인디의 또다른 흐름인 황신혜 밴드·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관념/해프닝적 음악과는 달리 노이즈가든은 헤비한 기타 리프와 장중한 형식미로 90년대 한국 록/메탈계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노이즈가든의 셀프 타이틀 앨범이 가지는 미덕은 록/메탈 밴드의 정석을 착실하게 밟은 안정된 사운드에 있다. 드럼과 베이스는 전체적인 사운드를 낮고 힘있게 받쳐주고 있으며 기타는 결코 서둘러가는 법 없이 유려한 헤비함을 자랑한다. 한국에도 이런 그룹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이들의 소원은 부모님께 돈을 가져다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 어떤 평론가라 해도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계 끼친 서태지의 영향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일개 아티스트로 최대의 문화담론을 양산해내며 신세대 문화의 상징적 인물로 남아 있는 서태지의 여러 음반에서 단 한 장을 꼽는다는 것은 수많은 서태지의 팬은 물론 한국의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나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발해를 꿈꾸며]는 한 뮤지션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이 기울지 않는 균형 감각을 얻었을 때의 놀랄만한 음악적 발화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등의 주제성 있는 음악에 '영원', '아이들의 눈으로'의 가슴 시린 감수성, 거기에 서태지 음악의 형식미를 대표하는 '널 지우려 해'로 마무리되는 앨범의 완성도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다시 한번 'Yo, Taiji!'
♬"아, 대한민국…??" 정수라의 국민가요(?)를 떠올리실 분도 있겠지만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정수라의 조국찬가와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90년대 초, 한국적 감수성에 포크 음악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태춘은 이 불법음반(?)으로 안티 테제의 민중적 감성의 대변자로 떠올랐다.
'시인의 마을', '북한강에서', '떠나가는 배', '촛불' 등 서정성 짙은 음악으로 사랑받았던 그가 우렁차게, 목이 터져라 부르짖은 자유와 평등의 노래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귀중한 유산이다. 정태춘은 민요적 가락과 장단의 도입, 역설과 반어의 화법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부조리를 고발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뜨거운 가슴은 아직도 목하 열애중이다.
♬98년 대한민국 가요계에 록큰롤의 새로운 바람은 일어나지 못했다고 봐야겠다. 20만장을 바라보고 시작한 그들 비즈니스의 성과는 그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스푸키바나나의 드러머 정열은 보컬과 기타, 작사·작곡을 맡고 있는 신유난을 이렇게 평가한다. "정말 천재에요!"
자화자찬의 '븅신삽질 개X랄 쌩라이브 쇼'라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그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은 90년대 후반의 한국 록계의 귀중한 보물이다. 써드 아이 블라인드(Third Eye Blind)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리듬감에 종잡을 수 없이 좌충우돌하는, 그러나 날카로운 발톱을 결코 숨기지 않는 가사, 'Goo Goo Eyes' '소방관 아저씨'의 경쾌함 뒤에는 'Classic Girl' 'Wendi Time'의 섬뜩할 정도로 가슴을 파고드는 감수성이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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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삐걱
DJ. DOC
♬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악동인 이들은 크게 성공한 상업적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메인스트림 뮤지션이라 부르기엔 어색한 아웃사이더적 기질이 농후하다. 그냥 '좀 노는 애'들의 대변자인 이들의 음악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가사와 '빠다' 냄새 나지 않는 래핑으로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댄스음악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삐걱삐걱]은 지나치게 직설적인 가사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앨범이기도 하다. 현직 대통령의 선거 유세 캠페인 송으로 쓰이기도 했던 'DOC와 춤을'을 비롯, 전작들의 '겨울이야기' '여름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좀 노는 애'들의 일상을 가감없이 뱉어낸 '무아지경' '5분 대기조', 고전(?)의 DOC적 재해석인 '해변으로 가요' '뱃놀이(Boat Song)'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