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림성에서 온 남씨 아저씨
나는 이분을 남씨 아저씨라고 부른다. 육십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장난끼가 얼굴에 가득하다. 조금 길어 보이는 콧수염, 해맑은 웃음 그리고 아담한 체구에 얼굴까지 동안인데다, 구수한 경상도 말씨로 농담까지 할 때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용소에는 수시로 오가는 분들이 많아서 낯선 얼굴을 보면 “지난주 또 한 분이 잡혀 왔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그날은 예배 후 상담을 하면서 나의 예상이 크게 어긋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씨 아저씨가 수용소에 잡혀온 지가 벌써 4년이 넘었다는 것과 한국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 중국 ‘길림성’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고향은 경상도 “영덕”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중국에 머물다가, 6.25 전쟁으로 인하여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길림성’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덕’은 나에게 낯선 곳이 아니다. 서울 촌놈이 결혼하고 집사람의 고향인 포항에서 약 5개월간 살았다. 아마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때 나는 직업이 둘이었다.
‘낮에는 백수 / 밤에는 건달’
백수 때 수석채취를 한다고 동해안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특히 영덕 ‘오십천’에 좋은 돌들이 많다고 해서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돌은 ‘强 形 色’ 3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수석으로 가치가 있다. 강이란 강도, 형이란 모양, 색은 색깔을 의미한다. 나름대로 수석에 관한 몇 권의 책자를 섭렵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가지고 올 때는 분명히 ‘수석’ 이었는데, 집에 와서 보면 어느새 “짱돌”로 변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수석 아닌 ‘짱돌’을 집으로 날랐다. 그러다 운이 좋은 날이면 장인 어른께서 약국 문을 닫고 영덕에 가서 비싼 “영덕게”를 사주시기도 했다.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 남씨 아저씨의 고향이라니 더욱 친근감이 갔다.
아저씨는 수용소에 온지가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얼마 전 후배의 간절한 요청에 못 이겨 딱 한번만 나가주겠다고 하고 나온 것이다. 이제는 목요일뿐만 아니라 월요일에도 참석하고 지금은 일대일 제자양육까지 받고 있다. 지난 목요일에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부탁을 했더니, 자기는 머리가 나빠서 4 주간 시간을 달라했다. 다음주 월요일에 만났을 때 아저씨는 다 외웠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남씨 아저씨가 살았던 ‘길림성’은 북한과 인접한 곳이며 ‘조선족 자치주’가 있다. 대부분의 조선족은 동북삼성에 살고 있다. 동북 삼성은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을 말하며, 성(Province)이란 ‘도’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남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북한의 상황이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이 되면 될수록,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더 높아 지고 있다. 지금은 경제적 의존도만 높지만 곧 정치적인 간섭까지 받게 될 것이고, 그러다 북한이 중국의 성으로 편입되는 것은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된다.
첫댓글 나무는 모모, 새는 모모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