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작가는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011년 첫 소설집 『개그맨』을 출간했고, 2015년 『국경시장』을, 2008년 중편소설 『이슬라』, 2020년에 『에디 혹은 애슐리』를 출간했다.
유려한 문장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김성중 작가의 책 『개그맨』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사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는 소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단편 「개그맨」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실과 허구를 조합하면서 비유와 상징의 기법으로 인물들 간의 관계와 상황을 서술해 나간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개그맨은
“신중하게 공을 때리는 프로 당구 선수처럼 말 사이의 타이밍을 노려 공기를 한곳에서 얼어붙게 만드는 개그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무명 시절에 그를 만났다. 트레이드마크 같은 유행어를 최초로 들은 사람도 주인공이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애쓰는 나, 전류가 흐르지 않는 꺼진 소켓 같은 나, 벽에 걸린 꽃처럼 붙박여 있는 열아홉” 주인공을 표현하는 문장이다. 비유와 상징 잘 쓴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작가의 상징적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개그맨과 동물원 구경을 갔을 때, 오랑우탄이 갑자기 머리를 쿵쿵 찧기 시작했다. “유리 벽이 흔들릴 정도로 이마를 쾅쾅 찧어대는 오랑우탄의 몸부림은 어딘가 경이로운 데가 있었다. 나는 저렇게 온몸을 부딪쳐 본 적이 없다.” 삶을 위한 강렬한 몸부림을 한 적이 있는가를 주인공은 돌아본다.
나도 얼른, 내 삶을 돌아본다. 온 생을 몸부림치며 살아온 것 같은 내 생의 서사가 활자로 변해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면 어떻게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다.
물고기 키우기를 좋아했던 개그맨이 무명 시절이 끝나자 어항을 맡겼다. 물고기는 이야기를 끌고 갈 때, 양념으로 종종 등장한다. “필사적으로 웃음의 그물을 치는 그와 통통한 물고기처럼 왁자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사람들의 결합은 이상하리만치 감동적이었다.”
개그맨은 대중을 웃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무너뜨린다. 개그맨과 사귄 적이 있는 주인공은 대중들과 다른 맥락으로 개그맨에게서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를 발견하며 무명 시절에 자기만의 개그맨이었다는 사실을 회상한다.
“난 웃을 수 없어서 웃기는 사람이 된 것뿐이야, 우스운 얘기지?” 큰 인기를 끄는 유명 인사가 된 개그맨은 그렇게 말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순식간에 TV에서도 세상에서도 개그맨은 사라졌다. ‘물고기가 지나간 물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것처럼’ 개그맨은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목수의 아내가 된 주인공은 나무옹이처럼 묵묵히 살아간다. 14년 후, 사별할 때까지 다른 옹이를 가슴에 지닌 채 충실한 아내 노릇을 했던 자기가 가증스러웠다고 한다.
“흐르는지도 몰랐던 시간이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와 거울을 내밀기 시작했다.”라고 노년도 아닌 중년이 돼가는 외로움을 표현했다. 무명의 개그맨이 전성기의 개그맨을 흉내 내기 시작하고 ‘그때 개그맨의 엽서가 도착했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가 결말이라면, 시골 장터를 거니는 물고기 봉지를 든 두 사람의 얼굴에 꾸밀 것도 없는 편안한 웃음이 번지는 결말이기를 상상해 보았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는 독자의 몫으로 돌린 열린 결말이라면 나았을까.
주인공은 개그맨을 찾아 외국에 간다. 개그맨의 친구라는 키키의 집에 머물게 된다. 키키는 여장 남자다. 개그맨의 죽음은 이후의 서사를 끌고 나아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침묵은 외부의 한기를 막아주는 두툼한 외투처럼 나를 보호할 것이다.”
조라고 불리게 된 개그맨은 ‘1권이 없는 책’ 같았다고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통 말하지 않았으므로. 키키는 커피 통을 내밀며 개그맨의 유골이 있다고, 그의 유언이었다고 말한다.
계곡을 찾아 개그맨의 유골을 뿌린다. 커피 통에 구멍이 있어 개그맨은 이미 입구부터 개그맨은 날리고 있었다. 돌풍이 불어 두 사람에게 유골이 덮쳤고, 콜록콜록 기침하던 그들은 웃음이 터졌다.
“어색한 순간마다 더 어색한 말을 꺼내 사람을 웃기던 개그맨”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의 본분은 다한 것이다. 개그맨의 마지막 개그였다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개그맨의 동료들이 꾸민 무대를 감상하며 무대 위의 동료들이 공연에 임하는 시간만큼은 평화로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의 삶은 어항 속이고 자기는 물고기라고 상상한다.
“투명하고 편안한 곳이었지만, 진짜 물길은 아닌 곳에서 고통스러웠고,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거의 행복할 지경이었다.”라고 쓰여 있다. 키키가 건네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는 위로의 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개그맨이 두 사람한테 다가선 것은 아니었을까. 관계성과 삶에 대한 시선을 보여준다.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여성이 남편과 개그맨의 죽음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성장소설이다. 무명의 개그맨이 유명해졌다가 사라진 것처럼, 주인공도 의무를 다한 삶에서 사라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개그맨의 안간힘처럼 자기를 낮춰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첫댓글 수고롭게 써 놓은 글인데 너무 쉽게 잘 읽었어요.
그런데 읽고 나니 허허로운 마음이 드네요.
자기의 삶은 어항 속이고 자기는 물고기라고 상상한 것도 슬프고
개그맨이라는 타이틀도 너무 안타까워서 왠지 모르게 무거운 느낌이네요.
고마워요.
죽거나 사라지는 결말들은 마음에 슬픔이 남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동화에만 어울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