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애절한 그리움들이 켜켜이 쌓여 한 줌 빛알갱이로 타올라 끝내는 천상의 별등으로 돋아나면,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강물 위엔 수만의 꽃등이 켜져 도리어 지상을 지난 시절의 단심(丹心)으로 물들이게 하네. 그래서 충절(忠節)과 의기(義氣)로 가득찼던 1천년 역사의 성터엔 그 어떤 아쉬움이라든가, 그 어떤 간절함이라든가, 그 어떤 눈물겨움이라든가 하는 그런 정한들로 축제의 심지에 불을 댕기게 하는가 보다.
진주 ‘남강’, 그리고 ‘유등축제’. 뭔지 모르게 짠하고 눈물을 뿌리게 할 것도 같고 뒤집어 황홀경에 젖게 할 것도 같다. 1천년 역사의 고을 진주에서 남강은 바로 그 땅의 동의어에 다름아니다. 유등축제 또한 유래를 살펴보면 그 땅의 무게 만큼이나 크다. 바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전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남강이고, 그런 유등축제이기에 ‘진주남강유등축제’는 겨레의 고유명사이다.
2005 진주남강유등축제는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물, 불, 빛-그리고 우리의 소망’이란 주제로 열렸다. 축제장은 남강에 놓인 여덟개 다리 가운데 도심에 가까운 진주교와 천수교 사이 3Km 구간의 남강과 둔치, 그리고 이 곳에 맞붙어있는 5만4천평의 진주성터(사적 제118호).
유등축제의 정수는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인 촉석루 바로 아래 남강물에 띄워져 있는 대형등. 높이 4-5m에서부터 1m 안팎의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300여개의 대형등이 진주성을 배경으로 떠있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그 화려하고도 섬세하게 만들어진 모양에관광객들은 매료돼 연이어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1천년의 멋과 향기를 간직한 진주의 ‘청정 자연’과 진주성 전투와 민속을 나타낸 ‘진주의 혼’, 우리 민족의 고유정서를 표현한 ‘한국의 미(美)’, 18개 외국의 상징물을 형상화한 ‘세계의 모습’ 이란 네 가지 주제로 꾸며져 구성면에서도 탄탄했다.
더욱이 이들 대형등이 띄워진 남강에 전등으로 장식된 부교(浮橋)와 남쪽 부교 출입구에 진주성터의 정문인 공북문(拱北門) 실물크기의 등을 만들어놓고 관광객을 다니게 했으며, 특히 성곽 주위에 야간조명까지 해서 남강에 띄워진 등불과 성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므로써 그야말로 환상같은 불야성을 연출했다.
이 외에도 진주시민과 관광객들의 신청을 받아 설치한 소망등과 창작등, 전통한지공예등, 종교단체의 등, 남강에 띄워보내는 유등, 하늘로 날려보내는 풍등도 나와 한 자리에서 수많은 등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흥겹고 즐겁고 가슴 벅차 황홀경에 빠진 모습들이었다.
고교생들이 만든 3천여개의 창작등은 사용한 재료에서부터 형태에 이르기까지 젊은 세대의 풋풋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한 눈에 엿볼 수 있어 유등축제의 앞날을 밝게 했다. 그리고 전통한지로 만든 50여점의 공예등은 씨름과 농악, 십장생, 해태, 장산곶매, 삼족오, 치우천왕, 무당벌레, 반딧불이, 쇠똥구리 등 우리 고유민속과 정서를 사실감 넘치게 표현한 예술품이었다. 20여점은 지난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등축제에 우리나라 대표작품으로 참가한 것.
종교단체들이 내놓은 등 가운데 공작등 두 점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붙잡았다. 불교명왕 중에 가장 대표적인 명왕인 공작명왕을 형상화한 이 공작등은 2m나 되는 긴 꼬리를 수시로 오므렸다 펼쳤다하며 움직이고, 입으로는 불까지 내뿜어 장관이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등(燈)이라는 볼거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축제였다. 축제 5대 요소의 으뜸인 볼거리가 축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 좋은 사례라 하겠다. 현재 전국에서 치러지는 한해 1천200여개의 축제 가운데 볼거리 하나만으로 성공한 축제는 유등축제를 포함해서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유등축제는 축제장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유서 깊은 진주성터 바로 아래 남강변이었기에 접근성은 물론 축제를 눈에 확 띄게 하는 장소로서도 최적이었다. 진주성터와 남강, 그리고 잘 가꾸어진 남강둔치의 자연친화적이고 아름다운 경관은 유등축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194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개천예술제’의 단위행사로 치러지다가 독립된 축제로 승격해서 도리어 개천예술제를 능가하는 축제로 발전된 ‘진주남강유등축제’. 올해 축제 때에는 쉰다섯번째 개천예술제와 실크페스티벌, 전국민속소싸움대회, 한국드라마축제, 세계의상페스티벌, 전국 주민자치센터박람회 등이 동시에 열려 진주는 그야말로 축제의 큰잔치판이 펼쳐졌다. 그 결과 주민 35만의 진주에서 열린 축제에 그 여덟배가 넘는 무려 300여만명이 다녀갔다.
온통 축제로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진주남강유등축제’가 국민축제로, 세계축제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다양한 등(燈) 개발을 비롯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등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얼치기 축제가 판을 치는 마당에 우리 곁에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