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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운전대는 높다.
대형트럭만큼은 아니지만, 한층 높은 그 위치는 도로에서 지나치는 뭇 차량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된다.
지붕 낮은 차들의 그 안쪽 공간의 별의별 풍경을 엿보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즐거운 일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허벅지를 훔쳐보는 일이다.
걸어 다니는 미니스커트에 비해 앉아 있는 모습은, 치마 그 안쪽의 1인치가 더 속 보인다는 사실이다. 무릎에 각을 세워 은밀한 부분이 전면으로 배치될 때 위에서 내려다보기란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새하얗게 뽀송송한 그곳이, 신 과일을 한입 가득 물고서 고이는 침과 같은 싱그러움을 전해 주고는 한다.
신이 만든 선 線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 여자 다리의 선이라 생각한다.
표현하기조차 오묘하고 신비롭기가 짝이 없다. 하이힐 뾰족한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거나 아니면 브레이크를 밟고 있거나 샌들의 틀 안에서 가지런한, 발톱이 장식된 유선의 발등을 따라 반들거리며 광채를 띠고 있는 쭉 뻗은 정강이뼈를 따라 앞으로 올라가면 탐스럽고도 부드러운 완만한 언덕, 무릎을 만나게 된다. 뒤로는 발바닥의 끝 발그레한 발꿈치에서 아킬레스건으로 이어져 풍요한 종아리의 곡선이 유선을 야릇하게 그리며 무릎의 뒤 편 으슥한 곳이 오금을 만들어 내는데 참으로 요염스럽기 짝이 없다. 무릎은 탐스럽고 부드러운 완만한 언덕으로 이루어져서 뼈가 전부일 것 같은 그곳에 앙상하지만 않고 안흥찐빵의 표면 같아서 군침 돌게 한다.
무릎을 넘어서 동산과 같은 허벅지가 이어진다.
이 허벅지를 따라 안쪽으로, 안쪽으로 속살이 비칠 것만 같은 이 각도가 버스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길거리에서 만나는 미니스커트보다도 1인치를 더 훔칠 수 있는 위치이다. 스커트 안자락의 은밀한 부분은 야릇한 상상과 묘한 감정을 솟구치게 한다.
우거진 숲 사이로 기름진 계곡에 물이 마르지 않을 시골 오솔길 같은 그곳….
“야 씨발 내가 꼭 여게로 와야 할지 모르겠다.”
구로동 어느 골목 어귀에 주저앉은 칠닥이는 덕기에게 전화하는 중이다.
“왜, 뻐스 회사 아이라?”
“뻐스는 뻐슨데, 마을 뻐스구만 그래 좇이나.”
“큰 뻐스도 있다메?”
“씨발 그 큰 뻐스가 시내버스가 아이라 마을버스 중에 중형 버스를 말하는 갑드라. 내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우에면 좋겠노?”
“그이, 우에노….”
철환이가 칠닥이에게 일자리를 권할 때 그랬다.
“큰 버스도 있고 작은 버스도 있다고 그러네?”
안산에서 마을 버스회사에 근무해 본 적이 있는 칠닥이는 철환이가 권하는 회사가 우선 시내버스인지, 마을버스인지를 따져 보았다. 마을버스라면 굳이 서울까지 이사해서 일할 만치 가치가 있겠는가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벼랑 끝에 선 칠닥이에게는 선택의 여지는 더 없었다.
수빈 버스 사무실은 세탁소 건물 좁은 계단을 올라서 이 층에 있었다.
새시로 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눈에도 초라한 사무실에는 예쁘장한 경리 아가씨가 뚜앙하게 쳐다보았다. 구석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왜소한 체구에 평범한 차림에 짧은 우산을 들고 들어 왔다.
“자리를 바꾸지요.”
그러고 보니 티 테이블 위에는 칠닥이가 앉았던 자리에는 <사장 오00>이라는 명패가 있었다. 사장은 본래 그 자리가 자기 자리임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였다.
“안동공고? 우리 직원 중에서도 안동공고 출신이 있었는데……. 요즘은 마을버스도 사람이 그리 귀하지 않아요. 임금은 26일 만근에 120만 원 정도입니다.”
칠닥이 눈빛이 순간적으로 난감함을 비췄으나 사장이 그것을 눈치를 챘는지는 알 수가 없다.
120만 원이라, 과연 그 봉급으로 생활할 수 있기나 할까.
입사가 결정된 칠닥이는 고 부장에게 인계되어 인근 지하에 있는 회사 식당으로 따라 들어갔다.
수십 년 전의 구로동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반지하의 천장이 낮은 허술한 식당에는 오전 근무를 마친 기사들 여럿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체육복 차림의 부장이 새로 온 기사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오칠닥의 구로동 마을버스 기사 생활이 시작된다.
-일이 잘 풀리는 놈은 노력이라 하고, 잘 안 풀리는 놈은 운명이라 한다.-
“오늘 강연에 학술 주제는…. 이명박 회장님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셨으면….”
“ 반갑습니다……. 제가 금년 1월에 BBK라는 투자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1999년 이명박이 기업인을 상대로 광운대에서 강연하던 모습이 당긴 동영상이 인터넷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경준이 대표로 있는 투자 전문회사 BBK는 이명박의 형,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이 대주주로 있는, 다스의 190억을 비롯하여 삼성생명에서 100억 원, 심텍에서 50억 원 등 총 600억 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았다. 2001년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투자자에게 각종 위·변조 펀드 운용보고서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져 BBK의 등록이 취소되었다. 김경준은 취소 하루 전, 인수한 옵셔널벤처코리아의 주가를 조작했고 이를 통해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그리고 그는 미국으로 도주했다.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주요 투자자와 5,200여 명의 소액투자자들이 수백억 원의 피해를 보았으며 자살하는 사람이 다수 발생하면서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켰다. 이 사건에서 이명박은 자신은 BBK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김경준은 이명박이 실제 소유주라고 주장했다. 이명박이 BBK 주가조작에 관련했다는 주장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측에서 처음 주장이 나왔고 그해 6월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추가로 의혹을 제기했다.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선거 기간에 이 사건의 의혹을 다시 주장한 민주당 17대 의원 정봉주는 2011년 12월 26일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된다. 정봉주는 2012년 12월 25일 대한민국 정치인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다.
강남의 영포빌딩 옆에 보신탕집에 이명박은 세 사람을 대동하고 들어선다. 그가 16인승 방에 들면 다른 손님은 이용할 수가 없다. 빌딩은 이명박이 건물주이고 식당 주인은 그 건물에 세입자라 특별히 모시는 셈이다. 함께 온 사람들은 홀에 자리하니 이명박의 독상인 셈이다. 수육 1인분 18,000원이다. 보통 네 사람이 오면 4인분을 시켜서 수육을 먹고 탕은 덤이니까 거기에 밥 말아 먹는데 근검하기로 소문난 이명박은 이 경우에 2인분을 시킨단다. 1인분에 고기가 다섯이나 여섯 조각밖에 안 되니 주인으로서 방과, 홀에 세 사람에게 나누기가 곤혹스러운 것이다. 결국은 주인이 안에도 2인분, 밖에도 2인분을 주면서 ‘2인분입니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넷이서 탕까지 먹고 가면 모두다 3, 6000원으로 해결이 된 것이다. 보통은 넷이서 식사를 하면 10여만 원이 나오는 경우라 한다. 그런데, 이명박이가 계속 오니 하는 수 없이 주인은 고육지책으로 탕을 2,000원씩 받게 되었단다. 많은 사람은 이명박이 경제의 정통한 것으로 나라 경제를 굳건히 할 거라 믿고 2007년 그를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택하였다.
<이명박에게 드리는 교시[敎示]>
제가 지금보다도 훨씬 철이 없었던 이십 대 이야깁니다.
당시에 요즘으로 말한다면 잠실에 초고층 건물을 짓자 한다면 군사비행장 활주로도 쥐어 틀 수 있는 그런 대기업 좃데그룹의 실성 음료에서 머슴 사느라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면 단위 시골 거래처에서 음료 배달 작업하고 있는데, 나뭇단을 잔뜩 실은 경운기가 지나가면서 길에 세워 둔 화물차를 스치더란 말이지요.
어? 하면서 확인해 보니 백미러는 돌아갔지만 깨지지는 않았고 문짝에는 얼마큼 살짝 나뭇가지가 스친 흔적이 생긴 정도입니다.
말아도 될 일을 왜, 그랬는지 괜히 격분해서는 차를 몰아 쫓아가 가로막고는 따졌지요?
“그냥 가면 되느냐?!!!”
당연한 항의에 사태는 전혀 예상과 달리 같잖은 상태로 번졌습니다.
경운기에서 뛰어내린 중년의 사내는 곰 같은 몸집에다 솥뚜껑만 한, 두 손을 높이 쳐들더니 내 목을 조이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웍,웍, 괴성을 지르며 거품을 물더란 말입니다.
마치, 티브이에 나오는 헐크를 연상하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화물차를 다 부실 듯이 바위 같은 돌을 쳐들고는 덤벼드는 거지요.
하이고, 이게 웬일인가 참, 환장하겠네 싶을 때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말려서 저는 간신히 그 현장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오면서, 쓸데없는 일을 벌였다는 생각에 긴 한숨이 샜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저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있는 듯 없는 듯한데,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이다 싶으면 불같이 일어나서 말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차피 한동네에서 같이 살아야 할 존재니까 그냥 성질 건드리지 않고 얼레고 달래고 그렇게 산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는 저 자신의 경망함에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냥, 말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동네 사람들의 그 함께 사는 지혜가 햇볕정책 같은 거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데 싸워서 서로 피 튕기기보다는 양보하는 게 이길 수도 있다, 그런 거 말이지요?
그런 경우에 대해서 지혜로운 가르침은 성경에 있고, 불경에도 있을 터이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금강산 일대의 남한자산을 동결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보니 과거 그 경우가 떠오릅디다.
오칠닥처럼 순간적으로 끓는 분노가 아니라 동네 사람처럼 묵직한 포용이 아쉽다는 그런 거요.
저 사람들은 과거 10년 동안 퍼 주기만 했는데, 그 결과가 핵무장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좀 달리 보자면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래서 군비감축이 얼마고 남북경협이 얼마입니까?
남는 장사 아니었습니까?
얼마나, 답답하면 소문난 장사꾼 현대가 정부에서 대화에 나서라고 호소하겠습니까.
저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데,
우리는 무지하게 얻어 온 10년입니다!
그런 진리는 김대중이 터득한 거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노무현이 맞다 해서 승계한 게 아닌가 감히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까닥하면, 전쟁 불사를 뇌까리는 한나라당이 병역도피 집단 1위라는 거 다 아시지요? 자기네들은 전쟁할 일이 없으니, 목숨 걸 일은 아랫것이나 하고 그러는 중에 반사이익이나 챙기면 짭짭한 꺼리가 되다는 거지요.
안 그렇습니까? 면바기 아자씨?
장례식장에 분주하게 눈에 띄는 소복 입은 여자는 칠닥이가 살던 반지하 방의 앞집 여자이다. 마치 칠닥이의 아내인 양, 문상객에게 눈웃음을 흘리면서 반갑게 맞이하고 음식을 내오고는 한다. 그러는 그 여자에게 하정이가 따라다니며 앙칼지게 견제를 하고는 했다.
“아줌마, 대체 누구신데 미망인처럼 구세요? 그리고 여기가 뭐 결혼식장이에요? 그저 좋아 못사는 것 같아요.”
“야 야, 결혼식도 축제이고 장례식도 축제인 기라. 그리고 너그 아부지와 나는 지하 셋방에서 방을 마주 보고 살았던 기라. 내사 마 그이를 잊을 수 없고 그이도 저렇게 싸늘하게 식어서도 나를 잊지 못할 기다. 호 호 호.”
“그이라니 정말 재수 없어!”
어느덧 칠닥이의 장례식도 막장으로 가고 있었다. 북적대던 문상객 대부분은 돌아가고 장례를 마무리할 친족과 덕이와 익준이가 친구로서 마지막을 지킬 듯이 남아 있었다. 사흘째 졸여 들던 육개장이 짜져서 여동생 금희가 맹물을 한 바가지 보태어 부었다. 유족들은 삼 일장을 끝으로 시신은 수원 화장터에서 화장해서 유골은 안산의 시화호에 뿌리기로 하였다. 이제 오칠닥의 오십 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과 그 인생을 회상하는 죽음의 모든 절차를 모두 마치고 그 존재 자체가 촛불의 불빛 꺼지듯이 세상에서 사라질 찰나에 다 달은 것이다. 잠시 피어오르는 연기의 여운을 남기며.
방금 조문을 마친 여인을 강하는 식탁으로 안내를 하고 있다.
“어머니, 이렇게 아부지 장례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오실 줄 알았어요.”
“애고, 안 그래도 내가 안 올라꼬 했다. 너그 큰이모가 자꾸 가보라케서…. 가 봐야 한다고 해서. 뭐, 먹을 것 좀 가져와 봐라! 이 집 잔치는 얼매나 잘 차린가 보자.”
“네. 어머니.”
고개 숙여 예를 표한 강하는 저기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지하 방 여자에 다가가서 귀엣말로 속삭인다. 여자는 눈이 똥그래져서 발딱 일어난다.
“아이고, 행님 와써 예~”
“아, 행님 하고 지는 동서 간 아이라 예~”
지하 방 여자는 강하 어머니에게 갖은 아양을 떨며 음식을 날라 와서는 권하고 한다.
빈소에서 나오는 삼십 대 중반의 여인이 이번에는 강하에게 귀엣말은 건넸다.
“아, 그렇습니까? 마침, 저쪽에 아버지의 부인이었던 사람과 애인이었던 사람이 계시니 그리 가시죠. 그러시다면 여인께서는 아버지의 제자인 셈이군요. 하 하 하.”
여인은 잠시 얼굴을 붉히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강하의 안내를 따랐다.
칠닥이의 전 부인과 전 애인이 수다를 떠는 자리에 안내된 여인은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현숙이었다.
<마을버스>
버스를 운전하는 이 직장에서도 잔대가리 굴리는 인간은 꼭 있다.
출발 시간을 야마시(사기치는...)해서 앞차를 바짝 따라붙으면, 손님 덜 모시면서 느긋하게 한 회전을 도는데 그렇게 하면 상대적으로 식사 시간도, 휴식도 한층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제시간 지켜서 뒤 따라다니다가는 간격은 점차로 벌어지고 모셔야 할 손님들은 쌓여가고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늦게 온다고 욕먹고…. 급기야, 간격을 좁히고자 난폭운전에 교통위반을 하지만 이미 식사 시간이나 휴식은 멀어졌고 종점에 들어가면 쉬지 못하고 곧장 돌아 나가기가 바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얍삽한 인간들은 평생을 그런 투로 살아 온 전력이 역력히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게 살기에 편했다.
요령, 적당히, 줄서기 이건 다분히 군대적인 정서다. 오랫동안 군인이 지배해 오면서 사회 구석에까지 깊게 물들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평생을 그렇게 약게 살아서 노년에 겨우 집 한 채 마련한 것이 전부라 할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굶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살게 해 준 것은 그들, 위대한 위정자의 덕이라고 넘치게 감읍하고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이라는 정보 이상은 입력조차 되어있지가 않는 가련한 존재이다.
씨발!
죽어 자신의 막바지에 이르는 장례식장을 떠도는 칠닥이 눈에는 또 다른 여인, 세 사람을 발견한다.
두 여인은 뛰어난 미인이고 한 여인은 박색이다.
“나는 미스터 오가, 부끄러워하고 선한 표정이 좋아 보였어요. 몇 번이고 내가 좋아한다는 표정을 보여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은 용감해 보이고도 하였지만 늘 수줍어해서는 우리 둘 사이에 연애 감정에는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지요.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없었고 멀어졌다는데 나중에 나는 중학교 교사를 만나 결혼했지요.”
세 여인이 둘러앉아 맨 먼저 말을 꺼내는 이가 손 애랑이었다.
그녀들은 각자가 칠닥이와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애랑은 읍내 십자 거리에 있는 큰 이발소의 딸이었는데, 칠닥이가 군대를 제대하고 운전면허 학원에서의 수강하면서 연습생 동기가 된 셈이다. 중학을 졸업하고 서울 어디서 직장생활을 했다는데 상당히 도회적인 인상이었다. 칠닥이를 부를 때도 꼭 ‘미스터 오, 라는 영어 호칭을 했다. 애랑과 한동네에서 살던 바람둥이 우목이가 침을 흘릴 정도였다.
"햐~저런 것하고 하룻밤 자 봤으면 좋겠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미모가 뛰어났다. 용기가 부족했던 칠닥이로서는 인연의 한계가 거기까지이었다.
“오빠는 의욕이 청청한 사람이었어요. 안동에 유학하는 고등학생을 모아 ‘풍안회’를 조직하여 봉사활동도 많이 했고 각종 강연회나 문화 활동을 힘차게 추진해 나갔지요. 겨우 고등학생이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여인은 김신홍이다.
고향 학교에서 일 년 후배인 신홍은 안동여고에 다니면서 풍안회 회장이 칠닥일 때 그녀는 부회장이었다. 칠닥이는 폼을 잡고 회의한답시고 하숙방에 여러 사람을 부른 자리에 당연히 신홍이도 같이 했다. 칠닥이 눈에는 신홍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단정하게 여름 교복을 입고는 뽀얀 목덜미가 훤하게 드러난 채, 무릎을 붙여 종아리를 한쪽으로 가지런히 한 끝에 흰 양말에 쌓인 발목에서부터 발끝이 상큼한 선을 이루어 한눈에 들었다. 신홍이는 야무진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탐스러운 양 볼의 모습은 꼭 새큼한 사탕을 입에 문듯하여 바라다보는 칠닥이가 다 혀가 시었다. 삶은 달걀을 벗겨놓은 듯, 깔끔함을 한껏 품은 신선한 여학생이었다.
“두 분은 칠닥이, 저 사람은 좋게 평가하는군요. 그러나 나는 저 사람이 불쾌하고 짜증이 나요. 나하고는 결혼 약속도 하고요, 잠도 잔 적이 있어요. 그런데도 나를 전혀 좋아하지 안했어요. 그러면 약속이나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도 없이 잠적하지를 않나.”
“미스터 오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지 않을까요? 두 사람이 너무 안 어울리는 배경이라던가요.”
손 애랑이 눈치 없이 불에 기름 붓듯이 끼어든다.
“사정은 무슨 사정이요! 내가 못생겼다는 걸 빼면요.”
하면서 손바닥을 치켜들었는데 여자 손이 전쟁에 나선 장군의 손처럼 우람하였다. 최경희였다. 최경희는 경찰서 앞 골목에서 한식 식당을 했다. 칠닥이도 실성 사이다 판매원 시절부터 밥을 먹으러 다녔지만, 그 식당은 남다른 맛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경찰서 직원, 전경들 그리고 인근에 군청 직원들, 주변 상인들이나 주류도매회사에서 또 각 대기업의 배달사원들이 많이 몰리는 식당이었는데 그 집 주인이 아직은 처녀였다. 처녀가 처녀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사오십 대 후덕한 아줌마 모습이었다. 그렇게 매력 없는 여인을, 여인숙에 방을 얻은 점쟁이가 된 칠닥이 고등학교 동창이 다리를 놓았다.
그렇게 만난 최경희를 먼저 결혼한 익준이에게 인사를 시키고자 안동을 방문하였다.
익준네 집에서나 자리를 옮겨 안동댐으로 밥을 먹으러 갈 때나 익준이와 그의 처, 칠닥이와 최경희 이렇게 넷이서 앉아 있을 때나 최경희의 거구는 단연 돋보였다. 여자의 몸매는 칠닥이를 넘어서 익준이와 버금가는 덩치로 보였다. 밥을 먹거나 마룻바닥을 걸을 때 솥뚜껑같이 큰 손이나 육중한 몸이 마룻바닥을 눌러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에 칠닥이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날 칠닥이가 운전해서 돌아가는 길에는 보름달이 휘영 찬란해서 도로의 가로수에 눈을 뿌린 듯이 아스라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칠닥이가 일부러 라이트 불을 꺼 봤다. 분위기는 한층 더 고즈넉했지만, 칠닥이는 그 분위기에서도 도무지 여자를 안아 볼 욕망이 일지 않았다.
“아, 이 여자하고는 안 되겠구나. 끝내야겠어.”
칠닥이를 막냇동생 대하듯 하는 나 전무가 지긋한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고 칠닥이는 진지한, 아니 경애하는 표정으로 경청에 임하고 있다.
나연숙은 구로동에 있는 마을버스 회사 ‘서북교통’의 주인이자 경영자이다. 서북교통은 구로 09번 버스로 13대가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아현동에 ‘서북운수’가 버스 18대, 일산 바닥에 굴러다니는 버스가 칠십 대로 도합 백여 대의 버스를, 한 집안이 소유한 그룹형 버스회사이다. 이 모든 버스를 장악하고 있는 회장, 서 운영에게는 부인이 모두 셋인데 나 전무는 그 둘째인 셈이다.
규모가 제일 큰 일산은 첫 부인의 아들인 서 회장의 장남 경영을 하고 있고 셋째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 부장직으로 보조를 한다. 아현동은 역시 첫 부인의 딸과 사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며 두 번째 부인인 나연숙에게는 자손이 없다.
오래전, 1970년대에 경북 영주의 자동차 정비공장의 정비 주임과 인근 다방 마담으로서 운영과 나연숙은 만난다. 이미 결혼한 서 운영이지만 나연숙과는 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이 깊어 갔다. 그 사랑의 힘으로 결정한 그 들의 결론은 야반도주였다. 서울로 올라 온 이들은 서 운영이 정비공장에 취직하고 나연숙이 구로시장에서 순대국밥 집을 연다. 그리고는 30년 후에 나연숙의 순대국밥 집은 대성공을 하였고 그제야, 서 운영이 버리고 온 처자식을 나연숙은 서울로 불러올린다. 남편이 사라지고 어린 자식들과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던 본처에게 백배사죄를 올린 연숙은 그녀의 자식에게 이리저리 벌려 놓은 사업체를 하나씩 맞기거나 새 사업을 벌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서울시에서 마을버스 정책을 시행하자 나연숙은 정비공장의 사장이 된 서 운영을 설득하여 버스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키워나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서 회장은 셋째 부인을 얻게 되는데 아들이 딸린 이혼녀이다. 나연숙은 배짱이 큰 여자였다. 본처를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셋째를 얻는 데까지 그녀는 질투가 아니라 일일이 서 회장을 배려하고 챙겼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연숙을 조언하던 유명한 점쟁이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는 모습은 마치 여왕벌 하나 많은 식솔이 공동체를 이루는 형상으로 보인다. 서 회장 자신은 여왕벌을 챙기는 수벌에 불과한 일종의 나연숙의 협력자일 뿐이었다. 전통적인 한가정의 구성원이 요상하게 변형되는가 싶더니 오로지 부 富를 최선으로 추구하는 경제공동체로 묶인 희한한 경우이다.
봄이 가져다주는 정서는 따습다.
새싹이 돋으니 생동감이 생긴다. 날씨가 따뜻하니 나른한 것이 여유롭다. 여유로 움은 느릿하고 느린 중에 평화롭다.
마을버스 손님도 여자들의 차림새가 가벼워져 상큼해지고 겨우내 은둔하던 노인네들의 나들이가 분주해지며 어린 손님도 겨울과는 달리 활발하고 수다스러워진다. 출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배차 시간을 재촉하는 이도 드물어진다. 겨우내 얼어있던 도로나 도로를 끼고 돌던 안산천도 풀리고 회색빛이 녹색으로 변해간다.
어쨌든, 봄날에는 한층 느긋해 보인다.
봄 풍경이 새로운 것 중에는 연세든 할머니들의 안색이 한층 화사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깔끔한 양복에 긴 코드 받쳐입고 중절모에 지팡이까지, 영국 신사와 같이 일체의 구색을 갖춘 할아버지 차림새가 눈에 돋보인다. 아마 화사해진 할머니들이 바람 넣으셨나? 참으로 재미난 것이, 그 할아버지 느린 행동으로 점잖게 버스에 오르시곤 헛기침과 함께 품위 갖추어 자리를 잡으시더니 얼마 안 가셔 내리시더라.
그런가, 했더니 또 얼마 후 내리신 곳에서 다시 타고는 또, 얼마 안 가셔서 내리시고….
멀어져가는 백미러의 모습은 다름없이 느리면서도 품위가 흐트러지지 않으신 걸음이시다. 곱게 차리시고 립스틱 진한 표정의 할머니나 한껏 멋 내시고 일없이 다니시는 할아버지나, 새 옷 입고 새 신발 신고는 나서는 아이의 동심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은 봄바람 가르며 달리는 기분 좋은 마을버스이다. 차창으로 팔을 뻗어 한결 부드러운 바람을, 손바닥 펴서 만져 본다.
교대 기사가 두고 간 이미자 테이프를 운행 중에 틀어주면, 연세 든 분들이 특히 아주 좋아한다. 섬마을 처녀나 동백 아가씨 가락에 발장단을 맞추는 모습 백미러로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다. 비라도 주룩주룩 오는 날에는 그 가락에 참지 못하신다.
"아~ 기사 양반 그 노래 어디서 산 겨? 참! 좋네~"
종점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예의 그 이미자에게 빠져 계시던, 할머니는 옛 노래를 들으며,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할 것이다.
출발한 버스가 학교 앞을 지날 때는 학생들이 어느 버스를 탈까 망설이는데 그러면, 앞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을버스 기사 칠닥이는 소리친다.
"어이~ 학생들, 우리 버스 타라! 이미자 노래 틀어준다.~"
"우 헤헤 저 아저씨 봐~ 이미자 노래 나온대."
"이미자? 누구야?"
"글쎄, 첨 들어 봐."
늦은 저녁 시간이면 교통방송에 황인용 씨의 팝송 방송을 들려준다.
퇴근하는 중년의 신사는,
"요즘은 올드 팝송들을 기회가 드문데, 이 방송은 몇 시에 나오는 거요?"
그러고 보면, 가요든, 팝송이든 옛것이 좋아지는 것이 전에 같지가 않은데 나이가 들어간다는 방증이다.
학창 시절, 지독한 음치인 그는 음악과는 친하질 않아서 친구들이 유행하는 음악에 심취하고 그러면 심드렁하게 뒤돌아 콧구녕 후비고 했드랬는데, 인제 와서 그 음악이 새삼 그리워지고 정감 어린 것은 그것과 함께 그때 그 시절의 젊음이 아쉬워졌기 때문일 터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회상할 과거가 연륜으로 쌓이는 깊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
버스 운전사가 승객으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가 요금을 덜 내거나 안 내고 타는 때다. 손님이 자신을 속인다는 생각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90년대는 버스 요금을 토큰이라는 동전 같은 것으로 냈는데,
토큰은 백색과 황색의 두 가지로 제작되어서 요금 인상이 있을 때마다 바꿔가며 시중에서 사용하고는 하였다.
중, 고등학생들은 따로 회수권이 문구점의 딱지 모양으로 유치하게 만들어져 있다. 조잡하다 보니 이놈들이 곧잘 가짜를 만들어서는 운전사를 속여 먹고는 하였다.
어른들도 황색 토큰 사용 시에는 구멍이 뚫린 옛날 일본 주화나 또는 우리 돈, 십 원짜리로 슬쩍한다.
백색 토큰 사용 때는 주로 오십 원짜리로 운전사를 속여 먹고는 하였다.
운전사들이 승객들이 요금을 속일 때 발끈하는 것은 회사에 제대로 요금을 받아 줘야지 하는 이유로 화내는 게 아니다.
다만, 얼마나 운전사가 우스워서 하찮은 요금을 속이려 들까 하고 적으나마 자존심 지키려는 유치한 심정에서이다.
그래서 그 속임이 적발되었을 때 운전사의 가차 없는 질책이 내려진다.
운전사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승객에게 약자의 위치라 하더라도 요금을 속이는 현장에서만은 어엿한 강자의 위세를 좀 심하다 할 정도로 행사하고는 하는 것이다.
또, 간혹은 그런 현상을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이제, 190원 하는 버스 요금이 220원 하면서 황색 토큰이 백색 토큰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것 봐요! 아직도 누런 토큰 넣으면 어떻해욧!"
"버스비 올랐나요?'
"올라? 뉴우스도 안 봐요? 뉴스~ 벌써 며칠 짼 데~ 쩟……."
" 거~ 아저씨!
“허~이, 아줌마!
“이 봐! 하액~생~ 요금, 똑바로 내야지이.~"
평소 배차 시간이 늦었을 때나 급브레이크를 밟게 될 때, 또는 하차 실수나 원거리 정차 시에 등 운전사의 실수에 얼마나 승객에게 질책을 받아 왔던가. 억울하고도 서럽게 무시당해 왔던 쓴 경험이다.
모든 잘못은 운전사 몫 인양, 하던 승객들.
관계기관이나 회사에 체계의 불합리에는 전화 한 통 할 용기도 없으면서 만문한 홍어 좇으로 운전사를 몰아붙이는 쫄드기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잘못 내는 요금에 대하여 엄정한 복수를 가하는 것이다.
"이 봐욧! 아가씨~"
이런, 젊은 년까지 나를 속이려 하네~ 도나 개나 소나 세상에, 운전수를 사람으로 생각지 않으니.
"토큰, 이거 흰 거잖아~"
하지만 돈 통에 바뀌지 않은 흰 토큰을 획 하니 던져넣고는 버스 중간에 우뚝 선 아가씨는 숫제 못 들은 척한다.
"아가씨 토큰 바뀐 거 몰라요? 이리 좀 와 봐요."
역시, 반응 없이 동그라미 손잡이에 주먹을 쥔 채 차창만 바라본다.
아니. 저년이…. 하고 오 기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다 오 기사가 이내 주저앉은 것은 어떤 강한 상상이 순간적으로 그의 뒷머리를 쳤기 때문이다.
"혹시, 벙어리……?"
귀 머리겠지…. 말귀를 모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 솟는다.
벙어리도 대체로 귀가 어둡다고 하잖아? 벙어리 아가씨에게 그는 잠시 동안이나마 요금 수십 원을 더 받기 위해서 목줄이 쓰릴 정도로 악다구니를 썼단 말인가.
회사의 수입 유실을 막기 위함은 천만의 말씀, 노동자의 적과 같은 회사를 손톱만큼의 위함이 아니라 십 원짜리 동전과 같은 자존심이 늘 무시당해 왔던 자격지심이 있다.
오로지 쥐고 있는 칼자루라는 것이 요금 감시라는 지극히 유치한 권위였다.
그리고는 도로 주저앉은 오 기사는 룸미러로 그 아가씨를 찬찬히 살펴본다.
반듯한 외모에 정갈한 맵시와 고상한 자태가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음~
어쩌다 저런 아가씨가 벙어리라는 업보를 짊어졌을까?
신은 인간을 보호하려 존재하는 인가, 멸시하려는 존재이던가.
오 기사는 측은지심에 빠져들면서 막 바로 전에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그냥,
"토큰이 바꿨습니다. 요금 더 주셔야 하는데요."
하면 될 일을 쥐를 잡는 고양이처럼 잔뜩 웅크렸다가는 딱, 걸렸어. 하면서 치사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
오 기사는 숫제 아가씨를 장애우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아가씨가 벙어리인지 귀머거리인지는 오 기사의 상상일 뿐이다.
안산으로 역 귀농하여 얻은 첫 일자리는
수암동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3번 마을버스 운전수.
다행이다 싶을 사이도 없이 쏟아지는 농협의 영농자금 상환독촉! 또, 독촉….
도대체 말귀를 알아처먹을 라고도 하지를 않는 담당색기!
"글쎄~ 갚는다니깐! 갚아……."
꾸리 꾸리하고도 서글퍼도 어쨌거나 한탕이라도 더 돌아야 일이 끝나는 것.
하루 일이 끝나자면, 열네 탕을 돌아야 하는데 요번이 몇 탕 째더라?
시발지에서 출발하여, 안산동에서 이 사람들 태우고 화정동에서 저분을….
동산병원 앞 저 여자, 한양아파트 저년(맨 날 잔소리하는,) 2단지에 할머니들, 4단지에 초등학교 병아리들이 노랗다.
다음에 그리고 또,
다음엔 저 샠~(싸움한 ...)
삐리리~ 울리는 전화벨,
"아, 예! 그게요 사모님 제가 월말에 꼭 입금시키려 했거든요. 안 그래도 막 전화를 드리려고…. 그럼요, 그쪽에서 돈만 나오면…. 예……. 그럼요, 틀림이……. 예……."
주위를 의식지 못할 정도로 다급할 전화의 주인은 바로 오 기사 뒷좌석의, 중년의 남자 모습이 백미러에 비친다.
딴 사람은 모르지만, 오 기사는 사내의 긴 한숨을 들을 수가 있었다.
먼 길에 눈길을 주는 사내의 눈빛이 서럽다.
흔들리는 버스.
같은 또래가 같은 고민을 안고,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앉았다.
우리는,
격랑의 파고를 넘는
한배를 타고 있던 셈이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서류 가지고는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마을버스에서도 기사님은 안 받습니다. 우리는 기사님이 하도 선하게 보이니 한 번 써 볼라고 하는 거요.”
진보 운수의 키 크고 깡마른 사장은 칠닥이를 면접하면서 한심 어린 말을 건넸다. 뚱뚱하고 키 작은 그의 마누라는 사무실 한쪽에서 동전 분리기 작업에 정신이 없다.
그랬다. 안산의 경원여객에 세 번을 도전하였으나 실패한 것은 이혼의 경력과 음주운전 기록이다. 용인에는 국회의원 남경필의 아버지 회사인 경남여객이 운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시내버스가 곤란하다면 마을버스라도 안 되겠습니까?”
“아, 마을버스는 뭐 새벽에 안 나옵니까? 아저씨처럼 혼자 사는 양반이 누가 깨워주지 않아서 출근 시간 못 지키고 그러면, 이 게 버스라는 게 손님과 약속인데 첫 차가 제시간에 출발을 못 하고 그러면 안 되지요. 우리가 다 겪어 봤는데 이혼한 사람들이 술을 많이 먹더라고요.”
이제 칠닥이는 운수회사에서는 어디라도 이혼한 자는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겨우 생활비가 될까 한 비정규직 마을버스 월급으로 살아가기란 너무나 희망이 없었다. 더구나 변산서 빚진 농자금을 갚을 길이 무망하기만 했다.
"뱃짱 한 번 좋다! 차를 떡하니 사고"
화근이는 첫마디가 비아냥거림이다.
"그러이 우째노, 마을버스 월급으로는 희망이 안 보이."
"그라이 말라꼬 촌에는 가기는 갔노. 뭐로 농사 지가꼬 빚진다는 거, 뻔한 거 아이라?"
화근이 질타에 칠닥이는 은근히 화가 솟는다.
"그래 말하자면 니는 머라켔노. 내 먼저 내려가 가 자리 잡으라 안 켔나? 그라면 니하고 상철이 하고 내려 온다꼬."
화근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 더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정규직 진입이 불가능한 버스 운전직에 미련을 버리고 화물차 한 대 사서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화근이의 아파트 단지에 자리 잡은 미니슈퍼였다. 화근이를 칠닥이는 첫 거래처로 삼을 판이다.
12쪽 180매.
(현대사- 이명박, B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