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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경영이념 연구의 대가로 불리었던 고전형高田馨에 의하면, 경영이념은 경영목적을 형성하는 두 가지 요인의 하나(또 하나는 경영목표)이고, ‘경영신조信條·creed’, ‘경영신념信念·belief’, ‘경영이상理想·ideal’ 등의 의미로 인식되었다. 또한 경영이념은 경영자의 ‘경영관’이며 ① 환경주체관사회관 ② 경영목표관 ③경영조직관 ④ 경영경제관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경영이념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고, 그 의의를 ① 경영목표에의 규제작용 ② 경영조직에의 규제작용 ③ 경영경제에의 규제작용 ④ 경영경제와 경영조직의 통괄작용이라는 네 가지 관점으로 보았다.
만약 경영철학의 유무有無가 기업의 경영성과와 무관하다고 하면, 이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서 논의가 전개되고, 학문의 한 분야로서 발전해오고 있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의의나 기여함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의 조사결과이지만, 경영이념의 유무와 영업이익 신장률을 비교·분석하였던 바 경영이념이 있는 기업의 영업이익 신장률은 7.8배였으며, 그렇지 않은 기업은 3.8배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日經 비즈니스, 1995년 8월호) 이러한 결과 등을 배경으로 경영철학이나 경영이념에 대한 중요성과 의의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 한층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근래에는 ‘경영철학’ 용어보다 ‘경영이념’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의 경영이념에 대한 연구를 보면, 학자에 따라 그 개념이나 정의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경영사經營史 혹은 企業家史 관점에서 경영이념을 연구하였던 나카가와 게이이치로中川敬一郎는 경영이념을 ‘기본적으로는 사회의 비즈니스 엘리트, 즉 경영자가 스스로 기업경영에 대해 표명하는 견해’라고 규정하고, 그것은 경영자의 주관적 태도의 문제가 아니고, ‘경영자가 문서든 강연이든 그러한 것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표한 견해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경영자가 품고있는 가치관이나 개인적 신조 등 이른바 문화의 잠재적 측면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더불어 ‘그 어떤 논리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사회적 타당성을 갖고, 또 그것을 비판하거나 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경영이념’ 연구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그 정의나 존재의의에 대해서도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이처럼 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지언정, 경영이념이란 조직에 내재한 ‘신념·신조’ 등의 가치관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경영이란 행위를 통해서 ‘보이는 것을 움직인다’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또 하나는 그것이 경영자의 신조를 표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도 개인의 주관적인 태도표명이 아니며, 그 어떠한 논리성이나 시대적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비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결론적으로 경영이념이란 용어가 일본기업에서 일반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는 경영사상·경영철학·경영방침·기본방침·강령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었다.
미츠이三井, 스미토모住友, 미츠비시三菱 등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 호상豪商·舊재벌기업들은 길게는 에도江戶:1603~1867년 시대부터 나름의 경영철학 및 경영이념을 만들어 견지해오고 있다. 미츠이의 종축유서宗竺遺書(家憲 1722년), 스미토모의 사업정신事業精神(營業要旨 1600년대), 미츠비시의 삼강령三綱領(1930년대)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신흥대기업집단, 예컨대 마츠시타(현재 파나소닉), 소니, 토요타, 혼다, 닛산, NEC 등에서도 패전 이전부터 경영이념을 제정하였으며, 구재벌계와 마찬가지로 시대환경에 맞추어 개정하거나 의미를 새로이 해석하면서 조직구성원에게 내재화시켜 오고 있다.
마츠시타松下電器는 경영이념이란 용어 대신 ‘경영기본방침’이란 용어를 오랫동안 사용하여 왔다. 이 역시 시대의 환경변화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여 오고 있다. 1929년에 제정된 강령과 신조 그리고 1933년에 제정되어 1937년에 개정된 ‘마츠시타가 준봉遵奉해야 할 정신」을 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1946년 2월에는 패전 후의 정치·경제·사회의 환경변화를 반영하여 강령과 신조도 그 내용을 새로이 개정하였다. 강령은 ‘산업인産業人으로서의 본분本分을 철저히 하고, 사회생활의 개선과 향상을 도모하며, 세계문화의 진전에 기여하도록 한다’ 그리고 신조는 ‘향상과 발전은 각자의 화친과 협력이 없이는 이루기 어려우므로, 각자 지성至誠을 다해 일치단결하여 사무社務에 복무할 것’으로 부분 수정하였다. 강령과 신조는 그 이후 대표이사가 여러 번 교체되었지만 해석을 새로이 할 뿐 원문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파나소닉’으로 사명을 개칭한 이후에도 홈페이지를 보면 “우리는 경영이념에 기초해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경영이념이란 사업의 목적과 사업활동의 기본적인 사고이며 강령, 신조, 우리들이 존중해야 할 정신과 간략하고도 강력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경영이념에 기초하여 일을 추진하는 것은 시대의 추이, 사업규모·사업내용의 변화에 불구하고 불변입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파나소닉을 보면 경영이념의 견지가 반드시 고성과 조직을 보장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의 경영부진은 경영이념이외의 경영전략의 실패이거나, 경영이념을 장식품으로 전락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창업자가 제정한 경영이념을 존중하며 그대로 유지해오는 기업’과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영이념이나 경영원칙 등을 제정한 기업’으로 대별된다고 할 수 있다. 후자는 글로벌 경영의 급진전이나 업태의 변화 등에 기인한다.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장수기업이 돌출되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수기업들의 공통점으로 ‘경영이념의 명확화와 공유화’를 지적하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동경리서치의 조사(2009년 8월)에 따르면, 창업 100년 이상의 기업으로 종업원 3천명 이상의 대기업만도 104개사에 달한다. 소규모까지 합하면 무려 2만3천개사에 달한다.
창업 200년 이상의 기업을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일본 3,113사, 독일 1,563사, 프랑스 331사, 영국 315사, 네덜란드 292사, 호주 255사, 이탈리아 163사, 러시아 149사, 스위스 130사, 체코 97사, 미국 88사, 벨기에 75사, 스웨덴 74사, 스페인 68사, 중국 64사, 덴마크 62사 등이다.(고토 도시오後藤俊夫, 「三代 100年 망하지 않는 회사의 룰」, 프레지던트, 2009년) 참고로 한국의 경우 2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은 하나도 없다.
물론 이들 장수기업 모두가 경영철학 및 경영이념이 굳건하여서 된 것만은 아니다. 가업家業을 이으려는 정신과 열정 그리고 혈족이나 장자 중심의 승계가 아닌 능력중심의 후계자 선정이나 승진 및 보상 등의 인사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아들의 역량이 부족하여 경영권을 물려주기 어려울 경우 가업의 번성과 장수를 위해 딸을 유능한 관리자番頭와 결혼시켜 경영권을 승계시키기도 한다. 혼다자동차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마츠시타전기산업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젊었을 적 舊직급체계番頭제도에서 가장 낮은 직급데치:丁稚에서 일하며, 경영이념의 중요성과 경영노하우를 습득하였고, 창업하여 전후戰後의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일본사회에서는 일찍이 신도神道·유학·불교 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경영윤리나 경영이념을 정립하여 상인계층에 널리 설파한 선구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에도시대의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 1685~1744년을 들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영리활동의 정당성을 주창하면서, 근면과 검약정신 등 이른바 일본 비즈니스계의 상도商道를 구축하였다. 그의 강론은 남녀를 불문한 공개강좌였다. 이는 훗날 일본 기업가들의 경영철학이나 경영이념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영이념이 아무리 명구名句라 할지라도 조직구성원의 마음속에 새겨져 일상 경영활동에서 언행으로 나타나고 실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즉 장식품이 되어서는 안되며 채용·평가 및 보상·육성 등의 제반 인사시스템과의 정합성도 갖추어 연계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 노무라총합연구소의 조사(2006년)에 의하면, CEO의 6할이 ‘경영이념을 명시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데 반하여, 구성원은 2할 정도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의 3할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1할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요컨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조사결과로 미루어보면 경영이념이 장식품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동안 필자도 국내외 많은 회사를 방문하거나, 컨설팅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경영이념은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걸려 있다. 짓궂기는 하지만 그 자리를 벗어난 곳에서 기회를 보아 경영이념에 대해 물어보곤 하였다. 임원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야말로 경영이념을 적어 둔 액자는 금빛 찬란하고, 유명한 서예가에게 부탁하여 쓴 것이라지만 이는 보이기 위한, 하지만 이미 죽은 경영이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임직원의 마음속에 새겨져 보이지 않지만 일상의 경영활동에 있어서 임직원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살아있는 경영이념인 것이다.
에도江戶 시대 노포老鋪 상가商家의 경영자나 패전 이후 사업을 일으킨 창업 경영자들은 대다수가 경영이념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 왔다. 예컨대 마쓰시타, 토요타, 혼다, 소니 등의 창업자들은 경영이념의 정착과 조직내 체화를 위해 아침 조례에서 다같이 합창하도록 하거나 인사고과, 교육프로그램 등에 연계시켜 왔다.
하지만 창업자 시대와는 달리 제 2, 3세대로 승계되거나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되면서 경영이념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 정도가 약화되고, 구성원 사이에도 깊숙이 침투되어 공유되거나 하부 시스템과의 연계성 등이 미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저 회사 홈페이지에 경영이념과 공유가치 등을 올려놓고 각자 알아서 암송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한편 경영이념을 명문화하여 널리 공표함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다. 먼저 경영자가 실수없이 기업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고, 경영판단을 하기 위한 기준·지침이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극성같이 명확한 나침반역할을 하여준다. 다음으로는 구성원의 행동지침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해관계자, 사회 전체에 회사의 이념과 가치를 알려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경영이념을 만들거나 개정한다면 경영에 관한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기업의 목적을 명시함이 바람직하며, 기업의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자율적으로 억제한다는 의미에서 경영윤리 준수 등과도 그 연계성의 확보가 요구된다.
필자가 오랜 세월 근무하였던 삼성그룹의 경우 경영이념과 공유가치 그리고 경영원칙이라는 세 가지를 상위개념으로 하여 CSR·준법경영·인사제도 등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오고 있다.
경영이념에 대한 최근의 학계 연구와 기업 현장의 제정 및 개정의 현상을 보면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경영이념과 기업윤리,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와의 관련이다. 사회가 공감하는 경영이념으로 명문화하고, 그것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제도적 측면에서 그 연계성과 정합성을 강화하고자 한다.
둘째, 경영이념과 경영전략 그리고 사업전략과의 관계이다. 즉 경영전략의 방향성과 내용이 경영이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 경영이념과 정반대의 재화나 서비스의 경영전략을 추진한다는 것은 언행불일치와 같은 것으로 임직원은 물론 고객 등 외부의 이해관계자로부터도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경영이념과 이노베이션의 관계이다.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이노베이션이 불가결함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창의와 도전, 변화와 혁신 등의 키워드가 기업이념 속에 널리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여타 제도나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지 못한다면 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경영이념과 학습조직의 관계이다. 조직단위 및 구성원 간의 소통이 원활할 때 학습문화 구축은 더욱 용이하다. 즉 경영자에게는 열린 조직의 경영철학이 요구되며, 이를 통한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은 누구나 강조하면서도 경영이념에 명시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 하부시스템과의 연계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네 것은 알고 싶지만, 내 것은 알려주기 싫다’라는 이기주의의 발로일 것이다.
그외에 글로벌화, 다양성, CSR, 상생, 일과 삶의 균형 등의 키워드가 강조되고 있지만 대부분 경영이념이나 공유가치·경영원칙 등과는 동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인사 등 서브시스템과도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라 할 것이다.
장상수 삼성경제연구소 자문역(sericss@gmail.com)
일본 게이오(慶應義熟)대학교 경제학 석사 및 경영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근무(인사조직실·대외협력센터·인사조직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