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운동할 때 짚고 다니시라며 지팡이 두 개를 형님께 건네주었다. 별 뜻 없는 척 건네주고 돌아섰지만 사실 나는 그 지팡이를 다듬기 위해서 오랜 기간 정성을 쏟았다. 나무를 고르고 말리고 다듬고 모양내기를 하면서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니스 칠까지 했는데 막상 형님께 건네주려니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지팡이는 노인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건네주면 내 스스로 형님이 노인임을 인정하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의 지팡이는 내가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막연한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어머님께서 살아계실 때였다. 병석에서 겨우 일어나서 지팡이가 필요한데 자식은 부모의 지팡이를 만들어 주지도, 돈을 주고 사지도 못한다고 완강히 거부하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불문율이었다. 그렇다고 당신께서 지팡이 사러 나가지도 못하는 근력이셨다. 대충 부지깽이도 지팡이가 되었다가 골목에 굴러다니던 대나무 꼬챙이도 짚고 심지어는 각목도 지팡이가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내가 얼마나 가슴이 아렸는지 모른다. 내 손으로 한다면 가볍고 튼튼한 나무로 예쁜 모양 내가며 멋지게 만들 수가 있는데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친구들에게 부탁도 해보았다. 친구라면 당연히 들어줄 것이라 믿었기에 어렵지 않게 부탁을 했다. 대답만 시원하게 할 뿐 막상 지팡이를 들고 와 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팔팔한 이십대 혈기라 지팡이라는 관념이 도저히 먹혀들지 않을 나이일 때다. 나같이 절실한 심정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길에 굴러다니는 꼬챙이로 알고 어머니가 주워 쓰시라고 그럴싸한 나뭇가지 같은 것을 베어 와서 집 주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그것도 나중에 내가 한 일이란 걸 알고 절대 안 된다고 나무라시며 못하게 하셨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변변한 지팡이 한번 못 짚어 보고 가셨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지팡이에 대한 한이 맺혀서 틈나는 대로 지팡이를 다듬었다. 이웃 노인도 하나씩 드리고 숙모님들도 나누어 드리곤 했다. 지팡이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워하고 기뻐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부분 사람이 자기가 짚어야 할 지팡이는 준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 아직은 끄떡없어’하고 방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지팡이 하나 장만할 기력조차 없어 우왕좌왕하는 노인을 많이 봤다. 물론 요즘이야 꼭 지팡이가 아니더라도 끌고 다닐 수 있는 유모차도 있고 온갖 의료기구가 있다. 지팡이는 자식이 못해준다지만 의료기구나, 지팡이를 대신할 유모차는 자식이 얼마든지 구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머님께서 살아계실 때도 이런 세월이었으면 내가 속상하지 않아도 되었고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같으면 내가 전동차라도 해 드릴 수가 있는데 말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지팡이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나는 그들보다 먼저 사회에 발을 디뎌야 했다. 사회생활은 시작했지만 비빌 언덕조차 없는 맨땅이었다. 도대체 짚고 일어설만한 끈덕지가 없었다. 막내로 태어나서 형제들이 많다고 해도 일찍이 객지로 나가 저 먹고살기도 바빴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변변한 논밭뙈기 하나 없는 가난한 살림이었다. 거기다 내가 철들 무렵에 부모님은 이미 연로하셨다. 무엇이든 짚고 일어서 보려고 애를 썼지만 배운 것도 없고 아무런 기술도 없었다. 부모님의 어깨는 너무 좁아서 짚기는커녕 손댈 수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부모님께 짚을 수 있는 어깨를 내드려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남들보다 늦게나마 내 힘으로 다녔다.
한번 일어나기가 무척 어려웠다. 지팡이까지는 필요 없었다. 무엇이든 짚을 수만 있다면 짚고 발딱 일어설 수 있고 일어나면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다. 형제들한테 손 한번 잡아달라고 내 밀 수는 있었지만 부모님도 그걸 원하지 않았고 내 마음도 허락하지를 않았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겠지 허우적거리면서 가슴엔 자꾸 뿌연 안개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의 논을 얻어서 농사도 짓고 하면서 홀로서기는 더디게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우뚝 서지는 못하고 있다.
지팡이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형님을 보며 난생처음으로 내가 형님이 의지할 지팡이가 되어본다. 형제간의 끈끈한 정이 흐른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좋은글잘보았어요^^
가슴 뭉클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빠아 추카추카진짜로 억수로 축하합니데이
진대씨~~~~~~~~축하축하 합니대이 ㅎㅎ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멋진대요~~
이진대 님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믿었더니 이제사 반가운 소식을 보내오셨네요.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치열한 창작활동으로 이름을 빛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