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법 승 삼보에귀의합니다
불 법 승 삼보에 업장을 참회합니다
불 법 승 삼보에 감사합니다
개법장진언 옴아라남아라다 옴아라남아라다 옴아라남아라다
제2장 분신들을 모은다
이품의 해설
분신집회에서( 分身 )분신 이라는 말은 지장보살의 몸이 여러 개로 나누어지는 의미입니다.이것은 지장보살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중생들을 다 제도할 수 없기 때문에 몸을 나누어 여기 저기서 한꺼번에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분신집회품은 그 많은 지장보살의 분신들을 모아서 한곳에서 이야기한고 해서 `분신들을 모으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다시 말해 분신집회품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법회를 여실 때 지옥의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헤아릴수 없이 많은 몸을 나투어서 교화하던 지장보살들이 모두 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지장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투어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그 몸은 여럿이면서 하나이고,하나이면서 여럿입니다.지장보살의 나투신 몸은 여럿이지만 하나가 여럿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결국은 하나입니다.또 하나이지만 여러 분신으로 나투었으므로 하나가 아닙니다.(緣起)연기의 도리를 기본으로 하는 불교의 (空思想 )공사상에 서 보면 어떤 개체는 독자적인 (自性)자성이 없습니다.모든 것이 서로 의지해 있으므로 독자성이 없다는 말입니다.독자성이 없다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것은 하나입니다.그러나 독자성이 없다는 것을 뒤집어서 표현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 하나한에 빠짐없이 그 한 개체들이 직접,간접적으로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말입니다.하나가 모든 것 속에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는 다시 여럿이됩니다.상호의지해서 있게 되는 상대적이며 연과적 존재를 독자적인 하나의 실체가 없는( 空 )공이라 할수 있습니다.반대로 하나하나의 모든 것이 직접,간접적으로 그영향력이 다 들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 속에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지장보살이 여럿과 하나의 몸을 자유자재로 나타낸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비어 있음과 모두갖추어져 있다는 원리에서 볼때 지장보살은 하나의 몸으로 여럿을 동시에 나타낼수 있습니다.이러한 원리에서 생각해 볼 때,우리 자신은 바로 지장보살의 분신이 되고 지장보살은 바로 우리의 분신이 됩니다.단지 지장보살은 분신과 집회를 자유자재로 하는 반면에 우리는 분신과 집회를 알지도 못하고 자유자재로 할 수도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부처님과 지장보살은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남녀노소 산하대지등 모든 곳에서 몸을 나투십니다.똑똑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못난 사람에게도 그 모습을 나투십니다.하늘,구름,산,강 그리고 지금 이 시간 고통받고 방황하는 모든 사람 모든 중생들에게 바로 부처님과 지장보살의 분신이 나투시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바로 지장보살과 부처님의 분신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면 분신집회품의 대강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석가모니 부처님 앞에 지장보살의 모든 분신과 지장보살의 분신들이 교화해서 해탈시킨 모든 중생들입니다.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중생들을 교화해 오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제도되지 못했다.실로 백천만억의 여러 형태의 분신과 방편을 써서 각기 다른근기들을 제도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이 있으니 내 이후에 미륵불이 출셓할 때까지 그들을 해탈시키도록 하라." 그 때 모든 세계에서 몸을 나투었던 지장보살의 분신은 다시 한 몸을 이루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제가 오랜 겁으로부터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 많은 분신을 나투어 중생들을 교화하되 중생들이 부처님 법 가운데서 착한 일을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마침내 불과를 얻도록 할 것입니다.후세의 악업 중생에 대해서 염려하지 마옵소서."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에게 서원을 성취하고 마침내 불도를 이루리라고 말씀하시며 수기를 내리십니다.
이상과 같이 대강의 줄거리에서 살펴보았듯이 지장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뭄을 나투어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서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면 지장보살의 분신은 왜 그렇게 많을까요?지장보살의 원력과 신통력은 참으로 위대합니다.지장보살의 입장에서보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지장보살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뜻도 됩니다.부처님도 천백억 화신이라 해서 수천,수만의 모습으로 변화해서 몸을 나투십니다.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분신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진대 지장보살이 중생들을 고통을 보면 분신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클 것입니다.백억화신 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불보살은 많은 몸을 필요로 합니다.왜냐하면 중생들의 근기와 중생들의 처지와 중생들의 사정에 맞추어서 몸을 나투고 교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불보살이 분신을 한다고 해서 부처님의 모습이나 지장보살의 모습이 직접 나타나서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불보살님은 때때로 친구의 모습으로 혹은 우리 이웃들의 모습으로,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내기 미쳐 몰랐던 것을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또 아내의 모습이나 남편의 모습 ,혹은 자식의 모습으로 나타나 미혹한 우리들을 깨우쳐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그게 바로 지장보살의 화신이고,관세음보살의 화신이고,부처님의 화신 입니다.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할 때 천수천안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중생들을 얼마나 보살펴야 하기에 천의 눈과 천의 손이 되었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과세음보살을 찬탄한 이러한 시가 있습니다.
메아리 응답하듯
부르는 소리 낱낱이 찿아
고통 구해 주시고
컨 강에 밝은 달 비치듯
소원 발하는 이마다
큰 안락 주시는 이여.
가없는 중생의 아픔
끝없는 중생의 소원
얼마나 애달팠으면
천의 손이 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한 중생에 팔만의 병고요
한 중생에 팔만의 번뇌인데
항하사 중생의 고통
모두 씻어 주시는
관세음 관세음
자비하신 어머니여
원하옵나니 자비시여
이 도량에도 밝아오사
저희들의 작은 공양을 받아주소서.
여기서 지장보살이 분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지장보살의 원력의 위대함을 잘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궁극적으로 우리가 지장보살이 분신하지 않도록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장보살의 원력을 우리의 마음속에 바로 새겨야 합니다.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원력이야말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원력은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거대한 마음의 힘으로 작용하여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우리의 실체는 불성인간 이기 때문에 인간의 참모습은 그 누구도 다 파악할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과 무한하고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이런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개발해서 쓰는 것이 기도입니다.자신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이해와 신념이 확고하다면 어떤 처지도 다 극복할수 있습니다.우리가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무한한 잠재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은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불교의 잠재능력과 관령된 이야기를 한 가지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843년에태어난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그 사람은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였으며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었습니다.그 사람은 불교를 몰랐습니다.그런데 이 사람은 인류사에 있어서 최대의 발견을 했다고 했습니다.그것은 바로 인간의 잠재의식의 존재를 두고 한 말입니다.그는 잠재의식의 힘이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설파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잠재의식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 혹은 진여를 의미한다고 보아줍니다.그 심리학자는 인간의 잠재의식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입니다.우리들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잠재의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 마음자리이며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이것은 확고한 믿음은 자신의 삶을 결정짖는 중욯나 열쇠가 됩니다.
경전에서는 ``무릇 마음이 있는 자는 모두 부처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마음이 있는 자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면 학벌이 좋고 나쁘며,재산이 있고 없으며,명예가 높고 낮은 것과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오직 바른 소견을 가지고 본래의 마음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자리의 위력이 이처럼 엄청난데 세속적인 조그만한 소원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나이 많은 노인이 검정고시에 거뜬히 합격하는 일도 가끔 신문지상에 몰 수 있고 ,평소 참선수행을 한 모 서울대 명예교수는 77세에 산소통 없이 히말라야 산을 등반하여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결국 인간이란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할 수있는 만물의 영장인 것입니다.또한 인간에게 불가사의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잠재된 힘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입니다. 많은 성인들이 인간의 마음자리를 찿는 일에 평생을 매달렸습니다.마음자리 하나 제대로 발견해서 잘 쓰려고 했던 것입니다.부처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분이며 수많은 역대 조사 스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장경에서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거듭 강조하지만 강인 한 원력입니다.강인한 원력 이야말로 당당하고 힘찬 자신의 인생을 펼쳐가는 원동력 입니다.그것은 곧 진여불성을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우리가 사람이라 할때 그냥 인간이 아니라 불성을 소유한 인간으로 알아야 합니다.지장경에 펼쳐 보이는 지장보살의 큰 원력은 지장보살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그렇게 될 때 불교를 믿는 참다운 의미가 있습니다.지장경을 독송하든지 지장보살을 부르든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것은 지장보살의 그어려운 난관을 극복해 가는 그런 강인한 원력 ,곧 힘찬 생명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지장보살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불끈 솟는 뜨거운 생명력을 느껴야 합니다.그런 뜨거운 열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침을 느낄 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설사 다소의 어둡고 답답한 목구름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장보살을 힘차게 불고 그 뜨거운 워력을 느낄 때쯤이면 이미 그먹구름은 저만치 물러가고 맙니다.지장보살의 정신을 우리들 자신의 정신으로 받아들였을때 지장경 공부,또는 지장보살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바람직한 보람과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불 법 승 삼보에 즐겁게 할수있는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