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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에 대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雨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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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읍과 가은읍을 지나 선유동계곡으로 가다 보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수도 도량인 봉암사가 나타나는데 그 봉암사는 명산 희양산 안에 있다. 우리는 길가에 차를 세워 특이한 모습의 희양산을 구경한다. 희양은 마치 거대한 바위 하나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 큰 바위 덩어리가 하나의 산인 셈이다.
희양산은 대야산과 마찬가지로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가 999m이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는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선상에 있다. 산세가 험해 한말에는 의병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산 정상 일대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난코스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겨울에 등산하기엔 위험한 반면, 전문 클라이머들은 즐겨 찾는다.
희양산하면 많이 얘기 되어지는 것이 봉암사인데 봉암사는 희양의 남쪽 자락에 자리 잡고 음력 초파일을 전후한 약 한 달 가량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조계종 특별수도 도량이다. 이 사찰은 신라시대 구산선문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경내에는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보물 137)과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보물 138),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보물 171),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보물 172),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 함허당득통지탑, 환적당지경지탑, 상봉대선사비, 노주석, 백운대, 마애불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극락전은 경순왕이 잠시 피난 왔을 때 원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산행은 봉암사가 출입금지 지역이어서 산 반대편의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이나,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홍문정 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들어가면 정상에 오르는 길이 있다.
나는 저기에 들어가 봤냐고? 물론, 내가 누군인데. 나는 저기에 들어가 봤다. 물론 몰래 들어갔지. 봉암사 앞을 흐르는 계곡은 천하 일품의 경치를 자랑한다. 경주의 권창운 박사(경주 권내과 원장. 의학박사)와 함께 숨어 들어왔는데 아름다운 희양산은 구경했지만 경주로 귀향하다가 구미 근처에서 큰 사고가 났다. 신호등에 정차해 있었는데 뒤에서 르망 승용차가 전속력으로 우리를 들이박은 것이었다. 우리 차는 프랑스제 푸조 였기에 다소 덜 다쳤다. 우리 차 푸조의 뒷 부분과 뒤에서 박은 르망의 앞 부분은 박살이 났다. 르망의 운전자는 젊은 놈이었는데 거의 미친 놈이었다. 신호등만 보고 우리 차를 못 봤다는 것이다. 그 뒤 한달 가량 나는 가슴이 아파 병원에 다녔는데 한푼도 보상 받은 것은 없다. 우리는 원래 당하고 보상을 잘 받지 못한다. 성격인 모양이다.
그 뒤 권창운 박사는 나에게 늘 말했다. 들어가지 말라는 성지에 몰래 들어갔으니 부처님이 노했음에 틀림이 없다.................라고.......ㅋㅋㅋㅋ
우리는 선유동펜션에 짐을 풀고 부리나케 취사를 하여 밥을 먹고 술도 먹으면서 바로 유흥을 시작했다. 나보고 기타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무지개는 하모니카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이다. 노래도 스스럼 없이, 모두 다 우리 시대의 7080 노래들이다. 작은 새, 긴머리 소녀, 연, 이름 모를 소녀, 한 오백년, 조개 껍질 묶어..., 연가, 바다의 여인, 해변으로 가요, 사랑해.............등등이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어 노래도 신나게 부른다. 나보고 기타 가져오라고 하더니 무지개와 시끄새는 가수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구! 손가락이야. 기타를 언제 치고 다시 치는 거냐? 노래는 자꾸 수준이 높아진다. One Summer Night, 편지, 님은 먼 곳에, 영일만 친구.......ㅋㅋㅋ 우리 50대 중반 맞는거냐? 누가 보면 욕하지 않을까? 어쨌든 쿵짝 쿵짝...뽕짝 뽕짝.........ㅋㅋㅋ 무지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사랑해'를 열창한다.
앗싸, 비야! 삼겹살은 익어가고 돼지국밥은 따끈따끈하게 맛을 내는 가운데에, 맥주와 소주, 막걸리...........가 막 들어간다.
밤 12시가 넘어 만취한 지루선수의 청에 따라 양주병 들고 선유동계곡 암반으로 진출한다. 달빛이 고요히 흐르는데 계곡의 물소리는 정겹기 그지 없다.
우리가 지금 자리 잡은 선유동계곡은 화양동도립공원 내에 있다. 인근의 화양동계곡이 남성적이라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계곡이다. 조선시대 이황이 송면리 송정부락(당시에는 칠송정)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이곳 경치에 반하여 아홉 달 동안 머물면서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 제2곡 경천벽(擎天壁), 제3곡 학소암(鶴巢岩), 제4곡 연단로(鍊丹爐), 제5곡 와룡폭(臥龍爆), 제6곡 난가대(爛柯臺), 제7곡 기국암(碁局岩), 제8곡 구암(龜岩), 제9곡 은선암(隱仙岩) 등 9곡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화양동계곡과 함께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적혀 있다. 우리가 보기에도 설악의 계곡에 비해서는 아닌 것 같지만 산수는 화려함 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 곳의 인문지리적인 가치, 사대부가 위치하여 낭만적인 풍류를 곁들여야 하겠고, 이 자연미에 선인들의 학문적이고 지적인 분위기가 얽혀 들어야 하는 모양이다. 선유동계곡은 우리가 내일 오르는 대야산을 경계로 문경선유동계곡과 괴산선유동계곡으로 나뉘인다.
드디어 피곤한 무지개가 암반 위에서 잠 든다. 암반이 다소 차갑지만 우리들의 달아오른 열기 탓에 별 느낌이 없다. 이렇게 해서 내일 산은 어떻게 오르나? 산? 그거 문제 없지. 산은 산이고 술은 술이다. 우원이 말한다. ㅋㅋㅋ
드디어 9.13일 일요일 아침 10:30분 경이다. 우리는 대야산 벌바위주차장에 주차하고, 대야산에 오르기 위해 산 들머리에 섰다. 어제밤 만취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나름대로는 역전의 용사들이다. 자! 용추계곡의 10용사, 돌격! 앞으로!
우리가 오늘 오르는 대야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31m이다.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이 지역의 백두대간에서.......남으로 부터..........속리산-청화산-대야산-장성봉-희양산-백화산-조령산-만수봉.......이런 순서에 위치해 있다. 대야산은 계곡이 아름다운 산으로 경북 쪽에는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 충북 쪽으로는 화양구곡이 있다. 대하산, 대화산, 대산, 상대산 등으로도 불리지만 1789년 발행된 문경현지에 대야산으로 적혀 있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우리는 선유동계곡 벌바위로 들어가서 용추폭포-월영대-피아골-정상-밀재-월영대-용추폭포로 돌아나올 것이다. 아래에 '대야산은 법정등산로가 아니오니 각별히 주의..........'라고 쓰여져 있듯이 대야산의 산길은 애매하기 그지 없다. 나도 올 때마다 헷갈렸으니 오늘은 특별히 조심할 일이다.
우리는 산행을 가은읍 벌바위에서 시작하여 선유동계곡(여기에 들어오면 용추계곡이라고 한다)을 따라 들어오다가 유명한 용추폭포를 만난다. 용추계곡의 입구에는 '문경팔경'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다. 용추계곡의 비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용추폭포는 폭포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회백색 화강암 한가운데로 하트형의 독특한 탕을 이루고 있다. 용추의 양쪽 옆 바위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세심대, 활청담, 옥하대, 영차석 등의 음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살면서 일상에 찌들어 마음이 건조해지면 산을 찾는다고 했던가? 계곡길을 걷다가 한번씩 계곡의 계류를 쳐다볼 때마다 초록빛 물기가 돌기 시작한다. 용추계곡의 숲길은 산책로같이 완만하다. 나뭇잎 사이로 보일 듯 말듯 드러난 하늘 아래, 느릿한 걸음 옆으로는 맑디맑은 계류가 줄곧 동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거침이 없는 시원한 물소리와 싱그러운 나무와 흙냄새, 초록의 눈부심, 살랑살랑 와 닿는 바람의 필링이 어우러진 이 감각적인 계곡의 향연. 발길을 옮길수록 감동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산 친화적인 사람들만의 이야기인가? 그러다가 용추폭포가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들, 용추폭이로구나! 한다. 참으로 진기한 형상이다. 폭포는 완만하지만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며 위 아래 3단으로 이어져 있다. 뚜렷하게 하트 모양으로 형성된 매끈하고 깊은 암반 사이로 물줄기가 화살을 꿰뚫듯 좁고 빠르게 떨어진다.
비경을 간직한 폭포가 흔히 그러하듯 이곳 용추도 두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이곳의 물은 마르는 날이 없어 예부터 비가 오지 않으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도 한다. 폭포의 신비로운 전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용추 양쪽의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용트림을 할 때 남겼다는 용 비늘의 흔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둥그런 윗 용추의 소(沼)는 그야말로 옥빛을 뿜어내며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데 너무나 신비로워 뛰어들고 싶지만 한편 두렵다. 첫 번째 소에서 잠시 머물렀던 물줄기가 길쭉한 아랫 용추의 소로 흘러 좀 더 넓고 완만한 소를 이룬다. 첫 번째 소는 위험하지만 아래로 갈수록 물 미끄럼을 타도 좋을 야트막하고 넓은 계곡 터를 끼고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적당하다. 신선과 선녀가 따로 있던가. 찌든 상념은 눈과 귀와 코로 느끼는 용추의 신비로움에 어느새 떠내려 가 버린 듯 홀가분하기만 하다.
용추폭포의 4용사. 좌로부터 무지개, 우원, 성표, 긴겨울..........
용추폭 위로 오르다 보면 산죽들이 산길 좌우에 서서 우리를 반긴다. 우리 고장에서는 신허대라고도 하지?
용추에서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월영대가 우리를 반긴다. 달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월영대(月影臺)라고 한다. 이곳은 다래골과 피아골의 합수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산길로 바로 돌아 올라간다. 아름다운 월영대는 하산 때에 들르기로 한다. 시끄새가 서 있는 곳의 이정표 오른쪽으로 피아골이다. 물론 왼편은 밀재 방향이다.
사실 예전에는 피아골 쪽으로는 길이 없었는데 지금은 개척해 놓았겠지. 그렇지만 아무도 이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면 이곳의 길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예정대로 피아골로 힘들게 올라 정상에서 밀재로 내려갈 것이다. 대야산 올 때마다 길을 잃었기에 오늘은 피아골 들머리부터 나침반을 꺼내어 방위각을 재어놓고 산을 오른다. 오늘은 기필코 실수하지 않으리라.
피아골 중간에서 잠시 쉬며 방위각을 재고 있는 나. 오늘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했지만 결국 또 실수를 하고 만다. 수정하기는 했지만........대야는 전체적으로 이정표의 부재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어디로 가도 길은 나오지만 자주 올 수 없는 우리로서는 방문한 산의 최고의 절경코스를 가야하기 때문에 탐방로 탐색은 중요한 것이다.
피아골이 끝나고 이제는 가파른 된비알을 막 치고 올라간다. 모두들 겔겔하지만 단미만은 튼튼하게 올라간다.
정상 바로 밑의 건폭지역에서 험로구간이 시작된다. 가벼운 클라이밍 지역이지만 피곤한 우리들로서는 귀찮기 짝이 없다. 여기서부터 정상부 능선까지 바짝 치고 올라야 한다. 저 정상부 능선은 바로 백두대간이 아니던가?
정상부 능선에서 내려다 본 촛대봉 방향.
대야산은 산림청 선정 한국 100명산에 속하는데, 그 선정 이유는............기암괴석과 폭포·소(沼)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속리산 국립공원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이 감안되어 선정되었다는데, 대야하면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이 용추폭포와 촛대바위가 있는 선유동계곡 및 월영대이다. 그 중에서도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형으로 패인 특이한 소(沼)용추를 흐르는 용추골의 물은 깨끗하기가 그지없다.
클라이밍하는 성표. 그는 나하고 무학국민학교 4,5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이다.
대야를 오르는 성표와 나
정상에 올라서 보니 우리가 올라온 동쪽으로 둔덕산이 뾰족하게 솟아있다.
멀리 남쪽으로 속리산 연봉들이 늘어서 있다. 왼편에 문장대부터 시작하여 비로봉, 천황봉, 구병산 까지 줄지어 있다.
북동쪽으로 보이는 희양산. 희양 뒤에 저 멀리 우뚝한 것이 백화산이다.
정상에 선 <산에 대하여> 멤버들. 우리도 나름대로는 좋은 팀이다.
우리가 올라 온 문경선유동계곡 방면
괴산 방면으로도 산세의 위용은 대단하다.
밀재로 나아가는 대야산의 능선
지나면서 뒤돌아본 대야산 정상. 오늘은 유달리 사람들이 많은데 후에 알고 보니 전국 친박가족합동산행이 이 대야산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그마치 버스가 30여대가 들어왔단다. 박근혜의 정치세력은 대단하여 바로 피부로 느껴진다. 그녀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인 모임으로 이런 류의 모임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니..............아마 내 생각에 예전의 노사모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우리가 지은 밥에다 지루선수가 집에서 가져온 온갖 반찬들이 바로 점심이다. 하지면 밥 먹으면서 뭔가 이상했다. 왜 이렇게 우리는 급하게 내리막으로 떨어져 내려야 하는가? 아뿔쌰! 또 길을 잘못 들었다. 백두대간 능선이 이렇게 떨어져 내릴 수는 없다. 그러면 잘못 들어온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올라온 피아골 길로 다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몰랐다. 벌건 대낮에도 산길은 이렇듯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자고 하니까 시끄새가 "저걸 어떻게 다시 올라가?" 고함친다. ㅋㅋㅋ 하지만 대야산 능선을 지나야 대야산을 제대로 볼 수 있으니 별 방법이 없다. 왜 길을 잘못 인도했냐고? 내 잘못은 없다. 내 앞에 막 질러 나아가니까 나로서는 길을 찾을 방법이 없다. 뒤에 선 내가 무슨 길을 인도하랴?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와 북쪽을 보니 장성봉 부근의 산들이 펼쳐져 있다.
백두대간인 대야산 주능선 상에 있는 코끼리바위이다. 코끼리 닮았는가?
대야산 능선은 이렇듯 바위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어찌 경치가 나쁠 수가 있겠는가?
대문바위에 선 성표. 그는 산행을 보약에 비유하는 산심이 있는 친구로 산행 참여율이 높다. 술과 유흥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건실한 친구인데 산에서의 성실한 친구들은 늘 힘이 된다.
대문바위를 지나가는 대원들. 지루선수는 이제 술이 깼는가? 무지 마셔 대더니......뭘 해도 화끈하게 일을 벌이는 지루, ㅋㅋ 재미있는 친구다.
괴산 방면의 능선
선바위는 거의 공중에 뜬 부석과도 같은데...........사람들이 재미있게도 저 바위가 지탱되도록 대들보(?)들을 받쳐 놓았다. 우리도 돌이 무너질까봐 스틱으로 돌을 공구고 있다. 촬영할 때만이라도 무너지지 말아라.
월영대에 도착한 대원들. 내가 촬영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친구들이 월영대의 제대로 된 사진을 촬영하지 않아 아름다운 월영대의 암반은 볼 수가 없다.
월영대는 대야산의 무릉도원이다. 월영대(月影臺). 이름만 척 들어도 풍류가 느껴지는 이곳은 용추폭포와는 사뭇 다른 경치다. 용추폭포의 물줄기가 타악기라면 월영대의 물줄기는 관악기다. 둥실 밝은 달이 하늘을 밝히면, 달그림자가 물 위로 어른거리고, 좋은 벗과 마주앉아 기울이는 조촐한 술잔 위로도 또 하나의 달이 떠오른다고 하여 월영대라 불린다니 이 어찌 기가 막히는 풍류가 아닌가? 군데군데 포진한 너럭바위 어디에 앉아도 그림이 된다. 완만하게 이어진 화강암 바위를 층계처럼 타고 쏟아지는 물줄기 옆으로는 두 사람이 앉으면 안성맞춤인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름하여 ‘술상바위’다. 아직 물들지 않은 푸른 단풍이 등 뒤에서 늘어지고 비스듬히 계곡을 바라보는 바위의 시선이 그야말로 제격이다. 과연 술상바위에 올라앉으니, 옛사람들의 풍류를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이 경치에 제대로 어울리는 모습으로 말이다.
대야산을 떠나 오면서 다시 한번 왼편으로 쳐다보는 희양산. 희양은 볼수록 신기한 산이다. 들판에 혼자 솟은 산봉우리 같지만 저 산정도 백두대간인 거대한 산줄기이다.
산행을 완전히 마친 뒤 가은읍으로 나오면서 들런 가은읍 도래실의 한 매운탕집이다. 옆의 강은 대야산 선유동계곡의 물과 희양산의 양산천 물이 합해진 강으로 곧 문경에서 영강에 합류한다. 이 도래실매운탕집은 근방에서 제법 유명하다고 하여 찾아 왔는데 어류는 메기 뿐이었고 (메기는 3급수물에 사는 고기라 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 맛은 그만그만하였다.
매기매운탕으로 배를 채운 뒤 경주팀과 서울팀은 문경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가 서로가 반대 방향으로 달려 경주로, 서울로 헤어졌다. 경주팀은 밤 9시경에 성건 오이시이 일식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서울팀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서울로 진입했다고 한다. 이 시즌이 벌초의 시즌이 아니던가! ㅋㅋㅋ 좋은 산수 구경하는 것이 어디 그렇게 편하게 될 줄 알았더냐? 나 저렇게 많은 산들을 찾아 다니면서 별의 별 경험 다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