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한국교회 회복연대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아름누리
    2. blue sky
    3. 최봉안
    4. 김종섭 목사
    5. 모두ENG
    1. 김한주
    2. 그길로
    3. choonch
    4. 봉팔리
    5. KAIROS
 
카페 게시글
성경/교회 바로알기 (공개) 스크랩 십일조 헌금은 과연 성경적인가?
소망 추천 0 조회 83 13.05.09 11: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십일조 헌금은  과연  성경적인가

                          글 쓴 이 : 장로 고태영

 

1. 십일조(十一租)의 현실 

  ‘바른교회 아카데미’에서 2008년 8월 헌금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의식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십일조 헌금을 드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금하는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성경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49%),

    교인의 의무이므로(7%),

    감사하여(31%)

     

   신앙 생활의 모든 것은 오직 성경(Only Bible)만을 근거로 해야 한다. 

   관습적이거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면 기독인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십일조라는 헌금은

  과연 성경 말씀에 합당한 것인가?

  

  이것을 연구하면서 필자는 충격을 느끼게 된다.

 

  구약시대를 거쳐 예수님시대까지 존속되던 대표적인 것을 들라 하면

  '제사, 할례, 십일조'를 꼽을 수 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제사제도는 오늘의 예배로 송두리채 바뀌었고

        할례도 없어졌다.

        그런데 십일조는 왜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는가? 

 

  

    평신도로서 비전문가 수준이지만

   기독교의 발전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참 뜻을 살펴보고

   이 시대에 헌금은 어떻게 해야 합당한지 그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구약 시대의 십일조

 

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가 최초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BC 2115년 경 북방왕국과의 단 전투에서

롯(Lot)과 재물들을 구출하여 오는 중에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맞이하며 아브라함을 축복하는데

이때 아브라함은 노획한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드렸다.

이것이 십일조의 최초 기록이다.

 

창세기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a tenth)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다음은 야곱이 조건부로 하나님께 십일조 드림을 약속하는 기록이 나온다.

야곱이 외삼촌 라빈의 집으로 가던 길에 꿈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하고

이어서 아래와 같은 서원을 한다.

 

창세기 28:18-22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a tenth)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십일조를 명하심

 

   아브라함과 야곱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십일조를 드린 반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로 하여금 세상의 어떠한 일들도 하지 말고

오직 성막에서 제사장 직무만을 감당하게 하셨는데

그들의 생계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소산의 십의 일에 속한 것들을 레위지파에게 드리게 하였다

십일조에 관하여 가장 대표적인 말씀을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발췌해 보자.

 

레위기 27:30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a tenth)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민수기 18:21-23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all the tithes)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민수기 18:25-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 the tithe)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a tenth of that tithe)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신명기 14:22-23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the tithe)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십일조에 대해 질책하는 말씀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법 중에 하나인데

예수님이 오시기 400년 전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고

심지어 레위지파의 제사장들 조차 드려지는 십일조가 없어 생계를 위해

제사장의 직무를 떠나야 하는 상태에 이르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말라기 3:8-10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tithes)와 봉헌물(offerings)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the whole tithe)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 신약 시대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일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믿음을 질책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십일조를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a tenth)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a tenth)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의 십일조도 행하고

   또한 율법의 목적인 "공의와 자비와 믿음"도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을 책망하시며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는 율법시대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외식하는 믿음을 질책하기 위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제사가 없어지고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계속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인용하거나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이시대에도  모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일예로,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시고는 그 시대의 율법에 따라 행하게 하시는 말씀이 나온다.

  마태복음 8장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offer the sacrifice that Moses ordered)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나. 예수님 부활 승천 후의 십일조는?

 

  신약 시대는 레위 직분이 폐지되고

  제물이 필요 없는 시대로 바뀌었다~!

 

   예수님께서 단 한번에 자신을 드림으로서

   십자가 보혈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는

   깨끗하게 되는 것이므로

   예전처럼 짐승을 제물로 잡아 레위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이다.(베드로전서 2:9)

 

   그런 이유로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꾸짖을 때 말씀한 것 이외에는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율법시대에 있었던 십일조는 더 이상 존속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난 지 8일 만에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으셨지만,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할례가 필요 없는 것처럼~!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롬 2:28-29)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후 십일조 이야기는

 히브리서에서 딱 한번 나오는데

 이는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전쟁중에 노획한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다는 내용이다.

 

아브라함의 정성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큰 복이 된다는 것을 재삼 깨닫게 해 준다.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큰 복이라 하여

그렇다고 지금처럼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이긴 그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다.

 

전쟁의 승리로 얻은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 뿐인데~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 (히 7:1-2)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a tenth)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20)

 

그런데 어떤 분이 히브리서 7:8의 말씀을 인용하여 저의 글에 이의를 제기하셨다.

  히 7: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위 귀절을 해석하면서

십일조는 구약에는 레위가, 신약에는 산 자 즉 예수님이 받는 것이라면서

십일조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셨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히브리서 7장은 멜기세덱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인데

여기서 '산 자'는 멜기세덱을 뜻하는 것이요, '예수님'이 아니며 

'멜기세덱 = 예수님'이라고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봅니다

 

위 말씀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명확히 '산 자는 멜기세덱'이라는 것이 판별되지요

[히 7:8] 제사장들도 10분의 1을 받았고 멜기세덱도 10분의 1을 받았으나

             제사장들은 죽을 사람이고 멜기세덱은 성경이 증거한 대로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    현대어 성경에서

위에서 언급한 내용외에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도들은 십일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십일조를 해야 한다면

 사도들께서 여러번 강조의 말씀이 있었으리라~!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십일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우리는 사도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4. 신약 시대 초대 교회의 헌금은?

 

   그러면 십일조를 대신하여

   사도들은 사역에 필요한 재정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신약 성경을 통해 알아보자.

 

가. 사도 베드로의 사역에서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데

   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다.

 

사도행전 2:40-47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나. 안디옥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어서 유대에 거하는 형제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각자가 능력만큼 그 힘대로 모금을 거두어 보냈다.

 

사도행전 11:27-30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decided to provide help for the brothers living in Judea)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다. 고린도 교회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사도 바울의 권면에 따라

 매주 첫날 수입에 따라 미리 미리 모금을 준비하였다가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다.

.

고린도전서 16:1-2

성도를 위하는 연보(the collection for God's people)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라.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에서

 

   예루살렘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고 (로마서 15:26),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 교회에 알리고 있는데

연보를 자원하여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칭송하였다.

 

고린도후서 8:1-2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5. 오늘날 십일조가 존재하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가. 오늘의 십일조는 율법적, 비성경적인 것!

 

    지금까지 성경을 근거로 살펴 본 바와 같이

   십일조라는 개념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전까지 의미가 있는 것이요

   예수님 부활 이후에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율법적인 용어이다.

   할례는 예수님까지요 그 이후에는 없어진 것 처럼...

  

  구약 시대에 십일조를 부담하는 것은 하나님 명령이므로

   하나님 백성이면 꼭 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신약에서는 '아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십일조에 대신하여 새로운 단어가 생겨났는데,

     연보(모금, collection, contribution)라는 단어이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연보는 이미 정해진 량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정한 대로 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고후 9:7)고 했다.

 

 

      오늘의 헌금은 연보의 개념으로, 

     성도 각자의 마음에 정한 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복음시대에 어울리는 은혜로운 헌금제도이다!

 

  나. 오늘의 십일조가 가져오는 폐해(弊害)

 

   십일조 제도가 비 성경적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존재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정해보면

   첫째, 십일조를 기준선으로 하여 적든 많든 정성껏 드려서 믿음을 성숙케 하는

           은혜의 기회로 삼자는 의도와,

   둘째는 기독교 부흥을 위해 이 제도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오늘의 십일조 제도는 필요에 의해 사람이 만든 또 다른 율법이라 하겠다.

    

      헌금은 진정한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데,

      십일조라는 용어 자체가

      얼마를 내야만 한다하는 율법적인  색채가 강해서,

      또한 내야 하니까 낼 수 밖에 없는 의무감 내지 억압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흥성회하는 곳에 가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설교가 나온다.

    어떤 교회는 십일조 봉헌 여부로 성도의 믿음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십일조 봉헌한 성도의 명단을 주보에 실기도 해서 이에 동참하지 못하는 많은 성도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하는 자를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

     오늘의 십일조 제도이다.

 

  

  천주교에서는 십일조 제도가 없고 교무금(敎務金)이라는 제도를 시행한다.

 

   성당에서는, 년초에 신부님과 상담과정을 거쳐 교무금을 결정하게 되는데

내 친구는 소득의 삼십분 (三十分)의 일(一)을 내기로 하고 지금까지 잘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상담하면서 신부님이 ‘절대 무리하지 말고 감당할 수준으로 정해서 이를 잘 이행하여

은혜를 받으라’당부하더란다.

또 다른 친구는 신부님이 '십일조의 20% 즉 오십일조(五十一租, 2%)수준으로 하라고 권면받았다' 한다.

 

   과거 종교 개혁의 대상이던 천주교에서 지금은 이렇게 신약에 근거한 헌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기독교계(개신교)에서는 오직 성경(Only Bible)만을 강조하면서도 왜 십일조 제도는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지 하나님의 자녀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답답하다.

 

   최근 10년간 기독교 인구는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천주교는 크게 확장되고 있다.

   

                                종교인구 조사결과 (2006년 통계청 발표)

 

구 분

2005년 11월 기준

10 년 전과 비교할 때

기독교(개신교)

861만 명

14만 명 감소

천주교

514만 명

219만 명 증가

    -

-

-

종교를 가진 총 인구

2497만 명

총 238만 명 증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교를 가진 총 인구는 10년 전에 비해 238만 명이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인구는 14만 명 감소했고, 반면에 천주교 인구는 219만 명이나 크게 증가하였다.

  

 

   개신교인의 감소 현상이 나오게 된 주요 원인으로

  두 가지만 뽑는다면 필자의 소견으로는

      첫째는 다른 종교에 비해 무거운 헌금을 내게 하는 십일조 제도의 존속이고,

      둘째는 기독교계의 수많은 교파 분리로 그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첫 번째 원인인 십일조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십일조는 성경적 근거도 없어졌을 뿐더러

   십일조를 통해 선교사업을 확장시키는 순기능보다는 

   성도들에게 짐이 되는 역기능이 훨씬 크다.

  

   언제 빚에서 벗어나 저축하며 살 것인가~!

   아이들 교육은? 내 집 마련은? 내 직장이 안전한가?

   이들에게 십일조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아직 믿음이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성도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 

  "돈내라는 것이 많아 교회에 안간다" 사람도 적지않다.

 

   십일조를 부담으로 생각하거나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고

   거듭나지 못한,

   육적(肉的) 수준의 그리스도 인이라고 평해도 될까? 

   절대 아니다!

 

   십일조 못한다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자신을 맡기지 못한 자라고 폄하해서는 절대 안된다.

   이분들이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섬기는 자로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된다.

   성도는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 맞추어 성화(聖化)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왜 초도 교회의 사도들이 가르쳐 준 헌금 방법을 따르지 아니할까?

   정성껏 드리는 연보가 아니라

   미리 정해진 십일조를 드리게 하는 것은 성도의 행복을 저해하는 것이다.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제도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자.

      십일조 제도는 예수님 부활 이후, 신약 성경에 존립 근거가 없다. 

    예수님도 할례를 받았지만 부활 이후에는 그 제도가 없어진 것처럼...

 

    십일조 제도는 결과적으로 성도들에게

    복을 주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없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오히려 '헌금의 축복'을 가로막는 제도이다

   

    십일조는 사람이 만든

    필요에 의해 제도 적용을 연장시킨, 또 다른 형태의 율법이다

 

    따라서 십일조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고

    십일조 라는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넘치는 재정으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하는데

   반대로 성도들은  가난에 위협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가난해 질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만든 오늘의 율법이요

   기독교(개신교) 일부에만 존재하는,

   바로 십일조 제도이다.

 

 중세기까지 막대한 십일조 수입때문에 온갖 비리속에 지내던

    로마 가톨릭(천주교)은 십일조 교리를 버리고

        자율적인 헌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거꾸로

    가톨릭을  개혁한 마르틴 루터와 죤 칼빈의 후손 중 

       기독교(개신교) 일부에서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지 않았는가~!

  

 

6. 헌금은 '정성껏 스스로' 작정하는 것이 성경에 맞다

 

  비록 십일조라는 제도는 없어져야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우리 성도들은 풍성한 재정적 뒷받침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축복의 길이요 은혜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십일조 대신 연보'라 했는데

   연보는 어떻게 어느 정도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이 증언한 마게도냐 교회에서 연보(모금)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헌금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 알 수 있다.

 

 

고린도후서 8:3-5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사도 바울이 권하는 헌금(연보)의 자세

 

            1)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2) 자원(自願)하여

          3)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는 마음으로.

 

   

   이런 마음 자세로 헌금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는 은혜의 헌금이다.

   이런 제도가 시행되면 하나님 나라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소득이 많은 자는 소득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十分)의 이(二)를 드릴 수 있다.

   가난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이 힘이 들면 비록 동전 몇 개를 드리지만

   대신 충성하는 마음을 드리면서 애통해 하는 기도를 함께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수 많은 경제적 부담 속에서 힘들게 가계를 꾸려가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에게도 헌금의 기쁨을 줄 수 있도록

 자유로운 헌금제도 정착이 절실하다.

  

   한편 미국의 록펠러가 십일조 계산을 위해 많은 직원을 두었다고 하는데

  이분에게 구약의 십일조를 가르치지 않고 사도 바울이 증언한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이 지나도록 자원해서 드리라’고 가르쳤다면 더 많은 헌금으로 인하여

  세계 선교와 가난 퇴치에 더 큰 기여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나의 재물은 물론 나의 생명까지도...

   우리 성도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재물에 대해 경계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 이것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우리 삶 자체가 산 제사로 드려지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이다.  이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교회 운영, 선교를 위해, 구제를 위하여, 교육을 위하여 연보를 모은다.

 이것이 오늘의 헌금이어야 한다. 

 헌금은 드리고 나서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흘러나오는

 그런 헌금~!

 그래야 복음에 어울리는 헌금이다.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헌금 제도로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정성이면 된다. 

 

     예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시는 말씀을 보자

 

마가복음 12: 41-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7. 나의 제언 

 

오늘의 십일조 제도는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존속시키는, 

율법 차원의 것이니

이제 십일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

 

  할례와 십일조~!

  이 용어는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에게 돌려주자!

   

복음시대의 헌금은 성경에서 일러준 대로

정성스런 기도 속에 스스로 작정하여 드리는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개념의 헌금 제도로 조속히 바뀌어야 기독교가 발전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가르쳐준 연보(모금)제도를 시행하면

성도들의 마음에 십일조로 인한 어두움이 걷히고

기쁨과 평안이 더욱 넘치게 될 것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장되리라~!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리라~!

 

헌금은 교회 운영에 필요한 정도면 족한 것이요,

많을 수록 좋다는 식으로,

십일조가 비성경적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강요해서는 안된다.

 

십일조 제도는, 단기적으로는 교회 곡간을  넘치게 하겠지만 대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은 가난하게 할 뿐이요

장기적으로는 교회 좌석을 비우게 할 뿐이다.

부흥 집회에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며

부흥사들이 성도들을 욱박지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느냐 안내느냐를 기준으로 믿음의 정도를 평가한다. 

    참으로 세상사람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부끄러운 현상이다. 

 

 한편 성도들은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다 여기며 죄인된 심정으로 산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셨다.

         헌금에서도 자유함을 누리자!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원하시는 분이요, 돈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교회 운영에, 교회 사업에 적정한 돈이 필요할 뿐이다. 

    

 독일에서는 

 헌금 대신 국가에서 '종교세'를 거두어 나누어 준다.

 19세기부터 국가에서 '종교세'를 거두어

  개신교 카톨릭 유대교이든 본인이 지명한

  합법적인 종교단체에 나누어 준다. 

  세무신고시 종교가 없다하면 종교세가 없고

  종교를 일단 지명하면 소득의 8~10%를 거두는데

  이것이 너무 무거워 카톨릭으로 신고한 자의 경우

  지난 20년간 300만명이나 줄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종교로 하고서 교회에 다니는 자가 매년 많아지니

  12년 9월 카톨릭 주교회의에서는

  '종교세를 내지 않으면 영세 결혼 장례 등을 안해주기로 했다'한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교파들이 있는데

   십일조 폐지를 주장하는 교회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는 것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침례교 어느 교회에서 새신자에게 연보제도를 가르치고 있다.

   잠실의 어느 학교 교내에 있는 교회에서는 헌금할 때 이름을 쓰지말라고 강조하면서

          대신 년말 소득공제를 받을 분은 주민번호 뒷자리만 쓰라고 한다.

          이 교회는 헌금의 50%를 사회 외부로 지출하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십일조를 없애고

   오직 무기명 감사헌금만 받는

   참으로 감동적인 교회가 있기에 

   교회 카페에 실린  일부를 복사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십일조 없는 새들녘교회

                            (http://cafe.daum.net/amos5095 

     * 참고 : 최근 카페에 방문하니 2011년 9월, 카페 명칭및 운영진이 바뀜.

                아래 글은 그 이전에 게시된 것을 그대로 복사한 것임)

 

십일조 없는 교회가 있다.

십일조 뿐 아니라 감사 헌금 외에는 어떤 헌금도 없다.

감사 헌금도 무기명으로 한다.

최헌수 전도사(46), 박태순 목사(40), 강병욱 전도사(37)가 목회하는 새들녘교회다.

 

교회로 보면 교회 운영을 위해 십일조 등 헌금을 강조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거꾸로 행보하는 거다.

 

무기명 감사 헌금만 있는 이유를 새들녘교회의 '기본 정신과 의의'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는

그 어떤 조직이나 모임보다 더더욱 다른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헌금 강요, 불투명한 재정 집행, 무리한 예배당 건축,

교회 내부에만 머무는 재정, 사회 약자에 대한 경제적 무관심은

교회 내외부의 강한 비판을 일으킵니다.

정확하게 드리는 헌금보다 정직히 버는 헌금을 강조하고,

모든 헌금을 감사 헌금으로 단일화하며,

무기명 헌금을 원칙으로 하고,

즐겁고 자율적인 헌금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교회 수입의 60%는 무조건 사회에 환원한다.

환경 운동 단체, 언론사, 사회 복지 단체 등을 열 곳 넘게 후원한다.

어린이를 포함해 교인 13명이 내는 헌금을 여러 단체에 나눠 지원하니

각 단체에 돌아가는 몫이 적다.

하지만 사회 환원은 교회가 사회 문제에 외면하면 안 된다는

교회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기에

액수가 적더라도 여러 곳을 후원하려고 한다.

액수야 교회 재정이 늘어나면 함께 늘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교회 운영이 가능할까.

우선 일반 교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나가지 않는다.

세 명의 목회자는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교회 건물도 소유하거나 임차하지 않는다.

주일 예배는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를 전기세 정도만 내고 빌려서 한다.

예배 후 점심은 각자 도시락을 싸와 나눠 먹는다.

 
최헌수 전도사, 박태순 목사, 강병욱 전도사는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 1년 정도 다른 교회를 탐방하며,

목회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효과적으로 목회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하 생략함)

 

 새들녘 교회처럼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들이

 십일조 안 받는, 성경적인 교회들이

 초원의 불길처럼 이 땅에 번져나가기를 기원한다.

 

헌금은 사람이 개입할 일도 아니요

제도를 가지고 강압해서도 안된다.

헌금은 오직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으로 하는 것이다.

 

 

 

   정성스런 기도 속에

         스스로 작정한 헌금을

               기쁨으로 드리는

                      은혜시대에 알맞은 헌금 제도의 시행을

                             간곡히 제언한다.

 

 

   ' 우리 교회는 십일조를 받지 않습니다~! '

  ' 오직 성도 스스로 작정한 헌금만 받습니다~!'  

 

 이렇게 선언하는,

 은혜시대에 합당한 헌금제도를 시행하는 교회가 많이 나와서

 이 땅에 널리 참 복음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하며

 사도 바울의 말씀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고린도후서 9:7-11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하는 것이라

                                              - 끝  -  

P.S.                                              

- 이글은 어떠한 교단이나 교회와는 전혀 무관하며 기독교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순수한 개인 소견임을 강조 합니다.

- 기쁨으로 드리던 십일조라면 계속 드리되 최소한 타인에게는 십일조를 강조하지 말아 주기 바랍니다.

- 이글이 안티 기독인에게 악용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