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사후 서먹하게 지냈던 조카들이 다녀가고 나서
10년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형님의 검게 그늘졌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큰형은 돈이 필요해서 월남 파병을 지원했다. 화천 오음리서 훈련받고 춘천역에서 우리를 향해 웃으며 손 흔들고 열차타고 떠났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 1973년 봄 으로 기억한다.
형님은 파월 백마부대 말단 소총수로 북위 17도선 이북 밀림에서 지냈다.
소눈을 닮았던 겁많던 큰형은 월남생활 1년이 지나고 용맹스런 백마부대 용사가 되어 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고 환향했다.
전장의 말단 소총수 였던 형은 전선의 맨 앞에서 지내다 다행히 다친데 없이 귀국했다.
우리집서 학교다니던 사촌들과 어린 우리 형제들은 사랑방에서
흥분된 어조로 베트콩과 밀림에서 조우했던 긴박했던 무용담을 들었고 그때 형이 가져온 흑백 티비에선 미국은 월맹을 향해 손을 들었고 뒤집힌 보트피플의 다급한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에서 미국까지 길었던 인도차이나에서 제국주의 식민지 침탈 전쟁은 끝났다.
비엣남과 결혼했다던 호치민의 비움의 품위와 애국 애민의 승리였다. 월남 민중들의 피어린 민족해방전쟁은 베트남 민중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전쟁이 남기는건 묘지밖에 없다.
전쟁은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미국과 미군은 많은 곳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오렌지 에이전트 즉 밀림을 고엽제로 덮어서 밀려드는 베트콩을 막기 보담 저격수들을 막기위해 주둔지 부대 주변에 비행기로 뿌려댔다. 맹독성 고엽제 오렌지 에이전트는 평생 형을 괴롭혔다.
귀국 이후 형은 직업군인으로 평생 군인으로 살았다.
50중반에 찿아온 뇌졸증과 간 경화는 평생 형과 형의 가족을 괴롭혔다.
그후 제대후 몇년 동안 간경변으로 고생하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형의 운명 이었을까?
운명을 받아들이면 행복하다.
형이 생의 마지막 시기에 나와 함께 공동체에서 지냈다.
고통은 우리를 신에게로 이끈다.
모든 전쟁은 악이다.
평화가 답이다.
승리는
땅에서 이루지는게 아니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특별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속절없는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우크라이나 뒤에서 조종하는 미국은 이 더러운 전쟁을 더이상 부추키지말라.
정전 협정, 평화협정 그리고
상호존중의 평화가 답이다.
바이든이 다녀갔다...
부자들의 욕심과 부자되려는 이들의 욕망이 버무려져 대책없는
윤석열 정부에서
엉뚱하게 흘러가가지 않기를...
간절함을 담아 평화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