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현 가라쓰 3 - 가라쓰성에서 무령왕과 나고야성 박물관에 군치 마쓰리를 생각하다 !
2023년 2월 22일 후쿠오카 에 내려 Budget 렌트카 승합차 를 빌려타고 서쪽으로 달려 사가현 가라쓰
에 도착해 소나무 숲 니지노마츠바라를 지나 성벽을 돌아서 가라쓰성 (唐津城) 에 오르는데
미쓰시마산에 위치한 연곽식 평산성으로...... 학을 닮았다고 해서 마이즈루성(舞鶴城) 이라고도 합니다.
가라쓰는 옛날 한국 가야나 백제에서 문물을 수입할때는 韓津(한진) 이라고 했으니 그후 중국 당나라
에 직접 사신을 보내 문물 을 수입하니 韓津(한진) 에서 (唐津 당진) 으로 바뀌었지만, 발음
만큼은 외국을 뜻하는 “가라” 를 계속 사용하니 “가라쓰” 라고 부르는데.... 삼국시대 일본은
가야에서 철을 수입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으니 가야 = 가라 이고 “가라는 곧 외국” 을 뜻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은 고대에 문자가 없었으니 오랜 세월 말 로만 이어지다가.... 침략자로 원수놈이자
적국이며, 이민족인 중국 한나라에서 간헐적으로 漢字(한자) 가 전해지니 자기 고유의 말을
한자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가야 를 뜻하는 말만 해도.... 가야(加耶· 伽耶· 伽倻)· 가라
(加羅)· 가량(加良)· 가락(駕洛)· 구야(狗邪· 拘邪)· 임나(任那), 한(韓) 등 인데.... 모두 같은 뜻 입니다.
주몽 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중국 사서에는 주몽(朱蒙 ) 으로 나오나 삼국사기, 광개토왕릉비,
모두루 묘지에는 추모(鄒牟) 로 적혀있으며, 또 삼국사기에는 중모(中牟) 와 중해(衆解), 상해(象解),
삼국유사 에는 추몽(鄒蒙) 그리고 일본서기에 중모(仲牟),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주배(朱背)
와 도모(都慕) 로 기록하며.... 그외 신라 도 신로(新盧) · 시라(斯羅) · 서나(徐那), 서라벌(徐羅我) ·
서야(徐耶:徐耶我) · 서라(徐羅) · 서벌(徐我) 과 계림(鷄林) 으로 구구각색인건 각자 옮긴 때문 입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인 1595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데라자와 히로타카 가 영지를 받아 지은
가라쓰성 은 가라쓰 만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해성(海城) 으로도 불리는데.... 그는 4년전에
임진왜란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인 히젠 나고야성 건설에 봉행으로 파견되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주인을 잃고 폐성되었던 히젠 나고야 성을 헐어서 그 부재를 사용했습니다.
제주올레에서 로열티를 주고 들여온 규슈의 12개 올레길 중에서 가라쓰 올레길 초반부에 위치한 히젠
나고야성 名護屋城跡 은 원래 왜구인 마츠우라당 (松浦堂) 의 나고야에치젠노카미 쓰네노부의
성(城)이던 것을 1591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조선 침략 전진기지로 삼기위해 가토 기요마사
를 총 책임자로 해서 스무명이 넘는 다이묘들이 구역을 배정받아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세운 성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성이 허물어져 현재 폐허가 된 히젠 나고야성 에는 나고야성 박물관
(名護屋城 博物館) 이 세워져 있는데..... 선사시대 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와 일본사이의
교류사 를 균형있는 시각으로 고찰할수 있으며 또 평화 박물관을 지향하는지라 입구
에는 제주도 돌하르방과 천하대장군에 지하여장군 장승 이 서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 입니다.
나고야성 박물관에 들어 가자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거북선 과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맞이하는데.... 사진 금지 표지판을 부착해 놓은 몇몇 전시물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후래쉬를 켜지않고 사진 촬영이 가능하며, 한반도에서 전해진 문화와
고려 불경에 수월관음도 그리고 조선 성리학과 조선통신사등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거북선 모형과 조선 대포며 임진왜란 전시물이 있는 방을 지나면.... 그 다음 방에는
불과 1년도 안되어 완성된 여기 히젠 나고야성 지도가 걸려있는데,
나고야성 외곽에 장수들의 진지 가 보여 세어보니..... 모두 43명 으로
조선에 출병하지 않은 이시다 미쓰나리 와 마에다 도시이에 등 다이묘들도 보입니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에도(도쿄) 의 다이묘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인데, 세력이 큰 위험한
인물이니 조선에 출병해 큰 공을 세우면 명성이 높아질 것을 염려한데다가 이에야스의 영지가
머나먼 동쪽이라 실제 출병도 힘드니 히데요시가 여기 나고야성에 잡아두고 감시 하려고 했나 봅니다.
조선을 침략한 무장들을 보자면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와 대마도주의 19,000 명,
제2군 가토 기요마사 와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23,000 명,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 의 12,000 명이 3선봉으로 조선을 세길로 나누어 북상합니다.
제4군 모리 요시나리와 시마즈 요시히사 14,000 명, 제5군 후쿠시마 마사노리 25,000 명,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16,000 명, 제7군 모리 데루모토 30,000 명,
제8군 우희다 히데이에 10,000명, 제9군 도요토미 인척인 하시바 히데카쓰 11,000명 이라!
그리고 수군 으로 구키 요시타카 와 도도 다카토라에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700척 9천명으로
해전을 대비했다기 보다는 병력과 물자 수송 을 위주로 하니 총계 158,000 명에 달하는데,
일본에서는 함대가 해전을 벌인 일은 매우 드물고.... 병사와 물자를 운반하는 수송선 입니다!
그 외에 여기 나고야성 일대에 후진으로 머무는 군대는 10군 부터 16군이니 14만 으로
총 30만명 중에서 1차 진주성 전투 때 까지 20만명 가까운 왜군 이 바다를 건넙니다.
여기 나고야성(名護屋城) 박물관 은 원래는 임진왜란 과 관련된 유물과 사진들을
모았겠으나 그럼 침략전쟁 을 전시 선전 하는 것이 되니, 이후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 조선 통신사 가 일본을 방문하여 양국 친선의 오랜 시기를 가졌으니
그 유물과 조선의 유학등을 전시함으로써 "평화 박물관" 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보네요?
통신사 는 태종때 1404년과 1413년 세종때 1429년에도 왜구 근절 요청을 위해 파견됐는데
1607년 도쿠가와 막부의 요청으로 회답겸쇄환사 를 파견해 조선 포로들을 대동해 귀국
하면서 1811년까지 12차례 에 이르는 통신사가 파견됐으니 350명에서 5백명 규모 였습니다!
동서 고금 인류 5천년은 전쟁의 역사 이니 이웃나라는 99% 원수 지간 인데.... 국력이 비슷하면
평화가 유지 되지만 국력에 차이 가 나면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듯 침략 이
일어나니 백년 평화 가 드문데, 유일하게 조선과 일본은 1603년 부터 1874년 까지 270여년
동안 통신사를 보내며 장기간 선린우호 관계를 가졌으니.... 세계역사에서 보기드문 사례 입니다?
박물관에서 나와 나고야 성터에 오르면 가부도 큰 섬 뒷편에 자리한 백제 25대 무령왕의 탄생지 가카라시마
(加唐島 가당도) 가 보이는데..... 고구려의 침공에 시달리던 백제 개로왕은 동생 곤지 에게 임신한
후궁을 주어 일본으로 도피시켰는데, 후궁은 도중에 태기를 느껴 저 섬에서 무령왕을 출산 했다고 합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자 신라에서 원군 1만을 빌려온 아들
문주는 웅진에 도읍 하나 해씨들에게 암살 당하고 아들 삼근왕이 즉위 하나.... 역시
진씨들에게 암살 되는데, 진씨들은 곤지의 아들(개로왕의 아들?) 로 일본 가카라시마에서
출생한 무령이 곤지와 함께 귀국했는데도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동성 을 일본에서 모셔옵니다.
일본 유랴큐천황(일왕) 은 15살 어린 동성 을 궁으로 불러 머리를 쓰담으며 격려한 후에 왜군 500명 에게
호위를 시켜 한반도로 내보내니 동성왕은 백제왕 에 올라 신라와 화친하고 고구려를 공격하며
중국에 근거지를 마련하나 가림성 성주 백가 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 당하니 이부형(개로왕의
아들?) 이 왕위에 오르는데... 바로 무령왕 으로, 동성과 무령 2대에 걸쳐 비로소 백제 왕위는 안정됩니다.
여기 가라쓰 성에는 희한하게 생긴 그림들이 많은데 바로 히키야마( 曳山) 라고 하는 수레인데 히키야마는
군치제 축제 에 사용하는 장식을 한 수레(가마) 로 무게 3톤인 일본 최대의 옻칠 공예품 이라고 합니다.
시내 가라쓰 진자 앞에 있는 히키야마 전시장 曳山 展示場 에는 매년 11월 3일 부터 4일 까지 벌어지는
"가라쓰 군치 마쓰리" 에서 시내를 행진하는 큰 수레인 히키야마 를 보관, 전시하는데....
축제 첫날 11월 3일은 일본에서 "문화의 날" 이라 공휴일이니 이 날 부터 축제를 시작하는가 봅니다?
11월 2일 전야제 부터 시작해 4일 까지 시민들이 도로에 운집한 가운데 니쿠주반에 핫피 를
입은 지역민들이 14대의 히키야마 수레 를 끈다고 하는데.... 신사에 바치는
봉물을 실은 수레 히키야마는 징과 북에 피리 를 흥겹게 불며 마을을 행진한다고 합니다?
핫피(半被) 는 원래는 무사가 자기 집안을 상징하는 문장 을 염색한 외겹 옷 을 말하는데
점차 장인과 소방사에 이어 축제 마쓰리에 참가하는 사람들 이 입게 되었다는데
쪽색이나 갈색 무명으로 만들며 등과 옷깃에 옥호나 상표 를 염색해서 입는 겉옷 입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 군치, 나가사키 군치 와 더불어 규슈 3대 군치라는 가라쓰 군치 축제의
전야제 唐津くんち 前夜祭 는 1819년 가라쓰 신사 에 바치는 봉물제 에서
유래했는데 히키야마를 밀고 당기며 "엔야, 엔야", "요이사, 요이사" 구령을 외친다고 합니다.
점토에 종이 를 입힌 후에 옻칠 을 한 사자, 용, 거북, 물고기 및 투구 형상을 한 14대의
히키야마 曳山 를 나무수레에 얹어 끄는데, 전야제 캄캄한 밤에 선보이는데 군치의
어원은 임진왜란때 끌려온 조선 도공을 위로하기 위한 "큰잔치" 가 발음이 변했다나요?
가라쓰(唐津) 는 현재 한국과의 주요 교통로가 되는 후쿠오카시 보다 한반도에 더욱 가까우며 박물관이
자리한 히젠 나고야성 주변으로 제주에서 로열티를 주고 도입한 '가라쓰 올레' 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 히젠 나고야성 아래에는 요부코 라는 항구가 있는데 새벽 어시장과 오징어회 로 유명하며 근처
에는 유명 료칸들이 있다는데.... 시간만 있다면 저 어촌에 들러 오징어회를 먹고 싶지만
딸이 나가사키 하우스 텐보스 입장시간 전에 대어 가야 한다고 재촉하기에 그만 발길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