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鉉錫(양현석)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대한민국의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부터 허비 행콕의 대표곡 〈Rock It〉 과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앨범의 영향을 받아
흑인음악과 춤에 심취하여 댄서로써의 성공을 꿈꾸던 양현석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건축 관련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터라
졸업 후 서울 종로의 한 지도제작회사에서
잠시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고등학교 시절 자신과 함께 춤을 추었던 동료들이
TV에 속속 출연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이태원에 있는 유명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댄서의 길에 들어섰다.
스파크의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도중
가수 박남정을 만나
1989년 박남정과 친구들을 결성하여
댄서 겸 안무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1992년까지 활동)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애초 서태지는 솔로가수로 데뷔 할 생각이었다.
당초 댄스가수로 데뷔 하려던 서태지는
당시 국내 음악시장에서는 여전히 생소했던 랩을 접목시킨 댄스 음악을 이미 만들었지만
이와 어울리는 안무가 필요했다.
서태지는 국내 최고의 춤꾼으로부터 춤을 배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수소문 끝에 박남정의 댄서로 활약하던 양현석을 찾아가게 되었다.
서태지의 요청으로
양현석은 춤을 가르치다
서태지가 만든 난 알아요를 듣게 된다.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노래가 좋다. 그런데 이 노래는 혼자 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고,
이에 서태지는 음악적 교감이 맞은 양현석의 조언을 받아들여
팀을 결성하기로 결정, 양현석에 팀 합류를 요청했다.
이어 이주노까지 영입하면서
국내가요계 이단아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하게 됐다.
서태지와 함께 팀을 꾸린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다시
"노래에 멜로디가 없으면 우리나라에서는 통하기 어려우니 '난 알아요'의 후렴구에 앞서
멜로디가 필요하다.
멜로디를 넣지 않으면 팀원으로서 활동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양현석의 주장에 서태지는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의 랩에 이어
'난 정말 그대 그대만을 좋아했어/
나에게 이런 슬픔 남겨주는 그대여/
그대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요/
나에게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잖아' 부분의 A멜로디를 만들어 삽입하게 된다.
더불어 양현석은
'난 알아요/요/요 그대 떠나는 모습을 뒤로하고~'로 시작하는 마지막 솔로 랩 파트를
담당하게 되는데,
특히 초반부의 '요-요-요'로 리믹스되어 반복되는 구절은
양현석 자신이 카세트 레코더로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이러한 일련의 서태지와 아이들 그룹 결성 초기에 보여준 적극적인 모습들은
단순한 '춤꾼'이 아닌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가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초석이 된다.
1992년 한국 대중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양현석은 팀 리더 서태지 못지않은 큰 인기를 얻었다.
멤버로 활동하면서
약간의 작사(1집 앨범 수록곡 '이 밤이 깊어가지만', 3집 앨범 수록곡 '널 지우려 해')와
보컬, 춤, 드럼(4집 앨범 활동 당시) 등을 담당했던 양현석은
보컬에서는 서태지에게 밀렸지만
웬만한 노래와 랩은 충분히 혼자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을 갖추게 되었고,
춤에서는 이주노의 카리스마에 눌려 2인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소울 댄스 만큼은 선구자적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힙합 프로듀서로 변신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맴버로 활동 중에
가수 박선주 등으로부터 화성학을 2년동안 배우고
컴퓨터 미디 작곡도 시작하는 등 춤 이외에 음악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학습해갔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양현석은 양군기획을 설립하고
자신이 기획한 첫 번째 작품인 정통 힙합 그룹 킵식스를 선보이지만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이후 양현석은 이름을 "양군"으로 바꾸고
회사를 YG 엔터테인먼트로 개명하였으며,
흑인 음악 전문 레이블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1997년,
양현석 자신의 두 번째이자 YG 엔터테인먼트의 첫 결과물로 지누션을 데뷔시켰다.
양현석이 직접 작곡한 〈가솔린〉이
각종 가요 차트에 상위권에 올리며 이름을 알렸지만,
실질적으로 히트를 친 것은
듀스 출신의 이현도가 작사/작곡하고 엄정화가 피쳐링한 〈말해줘〉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부터였다.
지누션을 시작으로
원타임 등 오버그라운드 랩퍼들을 데뷔시키고,
세븐, 렉시, 빅뱅, 2NE1 을 데뷔시켰다.
양현석은 2000년
서태지가 미국에서의 긴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컴백한 때부터
앨범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까지 직접 돕기도 했다.
2002년에는
R&B 전문 레이블 엠보트(M.Boat) 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휘성,거미, 원티드, 빅마마와 같은 가수들을 데뷔시켰다.
또한 매니아적인 힙합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YG 언더그라운드에는
Masta Wu, 스토니 스컹크, 45RPM 등이 소속되어 있다.
양현석은 2007년
스토니스컹크의 멤버인 스컬을 미국으로 진출시켜
한국 최초로 미국 빌보드 'Hot R&B/Hip-Hop Singles Sales'차트에 진입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양현석은 2003년 12월
SBS 가요대전 올해의 음반 프로듀서상을 수상하였으며,
YG 패밀리 외부 음반으로는 최초로
2008년 7월 발매된 엄정화의 10집 앨범 'D.I.S.C.O.'를 직접 프로듀싱하고
수록곡 '흔들어'와 'Celebration'에 작사가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 상반기에는
빅뱅의 일본 진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으며,
하반기에는 YG 엔터테인먼트 두 번째 여성 힙합 그룹인 2NE1의 첫 번째 앨범
"1st Mini Album" 을 프로듀싱하여
앨범 수록곡 중 첫 번째 싱글 'I don't Care'의 국내 가요 차트 석권을 주도하였다.
양현석은 국내에서는 거의 드물게
자신이 소속사 가수들의 앨범을 직접 믹싱하는 엔지니어이며,
또한 거대 기획사를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보도자료와 홍보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그가 YG공식 블로그의 ‘Message from YG’란 제목으로
일종의 공지사항을 팬들에게 올리는 것이 공식적인 발표의 전부다.
YG엔터테인먼트의 이 같은 경향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그다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보기도 한다.
스위티 출신 가수 무가당 이은주와 결혼
2010년 3월 9일 오후 YG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9년간의 열애와 결혼계획을 발표했다.
이은주는 2002년 데뷔한 여성그룹 스위티 출신으로,
2006년에는 원타임 출신의 송백경과 함께
무가당 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
젝스키스 출신인 이재진의 동생이기도 하다.
양현석은 예비신부 이은주의 생일인 3월9일에 맞춰
생일선물로 열애사실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5월 15일에는 연인 이은주가 임신 4개월째이며
동시에 올해안에 혼인신고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0년 8월 이은주 사이에서 득녀하였다.
작업 방식
양현석은 넵튠스 (The Neptunes) , Jermaine Dupri, 팀버랜드 (Timbaland),
테디 라일리 (Teddy Riley), 퍼프 대디 (Puff Daddy) 등과 같은
힙합 / 알앤비 프로듀서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YG 언터테인먼트 설립 이후부터
미국 유명 프로듀서들의 스타일을
YG 언터테인먼트의 작업 방식이나 기획사 운영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YG 패밀리라는 이름 하에 소속사 내 뮤지션/프로듀서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여
크루(Crew)의 개념을 오버그라운드 음악계에 끌어들인 점,
또한 YG 내 음반 작업시 반주(악기 연주 + 비트)를 만드는 작업과
랩/보컬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을 구분해서 공동작업한다는 점 등이
이에 기인한다(이 때문에 빅뱅의 표절시비가 잠시 불거지기도 했다).
또한 미국 음악 산업의 중심에 있는 프로듀서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다양한 정보는 물론 인맥을 쌓는 데에 있어서
국내 제작자들 중 가장 적극적이다.
2008년 하반기
세븐의 미국 데뷔앨범 제작에 Usher, TLC 등과의 작업으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제작자 마크 시멜 (Mark Shimmel)을 비롯,
리치 해리슨 (Rich Harrison), 닥차일드 (Darkchild) 등
그래미상 수상경력의 대형 힙합 프로듀서들을 대거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도
바로 이러한 미국 '본토' 프로듀서들에 대한 공격적 인맥전략에서 얻어진 성과로 보곤 한다.
그는 대한민국 음악계도
미국처럼 넵튠스같은 유명 프로듀서가 음반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수보다 프로듀서 중심 체계로 재편될 것이라는 신념 아래 가수 이외에
프로듀서들의 발굴, 양성에도 계속 힘써
현재 YG 엔터테인먼트는 최신 트렌드를 만드는 데
능한 젊은 프로듀서들을 상당수 갖추고 있다.
YG의 초창기부터 함께 한 페리를 비롯해
원타임의 테디와 스토니스컹크의 쿠시 그리고 빅뱅의 지드래곤 등이
양현석의 프로듀서 조련 시스템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사업가 양현석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이미 수십억의 수익을 챙겼던 양현석은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후
음반기획과 동시에 주식과 부동산 등에 꾸준히 투자를 하여
이미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써(그의 동생 양민석과 함께 법인 공동 대표이사)
연 100억대의 매출 규모의 음반 제작 이외에,
방송영상물,음반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의 신규상장으로 26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남겼으며,
자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 역시 2011년 말 우회상장이 아닌 직상장에 성공함으로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게다가 상장시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빅뱅과
2NE1에 치중된 매출비율을
싸이와 에픽하이 영입으로 해소하려 했는데,
싸이가 발표했던 6집 앨범에 수록된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연예계 최고 주식부호가 되었다.
증권가에서는 신인 이하이의 훌륭한 성적,
내년초 데뷔 예정인 신인 걸그룹 등의 소재등을 이유로
YG의 주가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또한 1999년
홍익대 부근에 힙합 클럽 NB1,NB2 등을 차례 차례 인수, 운영하면서 시작한
'클럽사업' 역시 젊은 세대의 발길이 잦은 강남과 압구정, 홍대 일대의 문화를 바꿔 놓으며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제일모직과 YG가 합작으로 한류를 기반으로 한
패션사업도 돛을 올린 상태이다.
솔로 앨범1998년 [1집]: 악마의 연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프로듀서로 변신하기까지 줄곧 힙합 뮤직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던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이후 약 3년 만에 자신의 첫 번째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사회를 비판하는 양현석의 관점이 두드러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앨범에 수록된
전곡 면면에 드러나며,
상업적 목표가 아닌 순수한 힙합지향적 목표로
완전한 힙합 앨범의 정형을 보여준
90년대 한국 힙합 수작들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전형적인 R&B '악마의 연기(양현석 작사 / 페리 작곡)'가
타이틀곡으로서 인기를 얻었으며,
앨범에 수록된 8곡 전곡의 작사를 양현석 자신이 직접 담당하였다.
특히 3번째 수록곡
'아무도 안 믿어(양현석 작사 / 서태지 작곡)'는
서태지가 참여한 곡으로,
힙합 특유의 리듬에 모던록적인 멜로디를 가미한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악마의 연기' 못지않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YG엔터테인먼트 멤버들이 참가하는 프로젝트 앨범에
래퍼로 피처링하는 것 이외에는
1집 앨범 이후 현재까지 뮤지션으로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수상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