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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4:9-13) 마술 램프만 주무르는 신자들
누가복음 강해 (30)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눅4:9-13)
주님을 도우려는 사탄
사람이 지혜롭게 되어서 자기를 개발 성장시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남들 앞에 자기가 뛰어나다고 자랑하기 시작하면 죄에 빠지는 지름길이 됩니다. 에덴에서부터 이브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만 높이는 원죄에 빠졌습니다. 이 세대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기를 과시하는 ‘관종’이 된 까닭도, 그 원죄로 인해 이생에서 한껏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욕심을 채우려는 뜻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성전 꼭대기에서 사뿐히 뛰어내려서 사람들 앞에 자신을 자랑해 보이라고 유혹했습니다. 구약성경 말씀을 교묘하게 한 단어만 빼버리고 인용함으로써 그러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라고 부추겼습니다. 주님은 이브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전혀 의심하지 않으므로 그분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브를 대신하고 또 인류를 대표하여서 이생의 자랑으로 인한 죄를 물리치는 본을 보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메시아 사역에 대한 사탄의 훼방을 물리치는 맥락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보라는 첫 시험은 사람들의 현실적 필요를 풍요롭게 채워주는 메시아가 되라는 것이었고, 천하 만국의 영광을 차지하라는 둘째 시험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세우는 메시아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신자들의 현실적 삶을 안락하고 형통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므로 사탄의 앞선 두 시험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아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전혀 다치지 않는 메시아가 되라고 부추겼는데, 주님을 곡예사 수준으로 전락시키려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런 정도는 해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요컨대 큰 기적을 베푸는 메시아가 되라는 뜻이었고, 주님은 그러지 않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중에 공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고, 특별히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사람들로 알게 하려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실현해 보여야 했습니다. 사탄의 존재 목적은 사람들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 하나뿐인데, 주님이 기적을 일으키면 사람들이 열렬히 호응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이 시험은 오히려 주님의 공사역에 유익하게 작용하고, 사탄에겐 당연히 해가 됩니다. 그런데도 이런 시험을 했다면 분명히 사탄의 더 교묘하고 음흉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며, 주님도 그 의도를 꿰뚫어 아시고서 거절하신 것입니다.
제 삼의 답변
사탄이 주님에게 뛰어내려 보라고 했으니까, 일상적인 경우라면 가부간을 대답해야 합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고 구약성경의 말씀도 믿지 못하기에 뛰어내리지 않겠다든지, 아니면 네 말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뛰어내리겠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먼저 두려워서 뛰어내리지 않겠다고 하면 주님은 아주 평범한 인간 랍비가 되어버립니다. 또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의 종이 됩니다. 거기다 두 번째 시험에서 사탄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거절한 말을 주님 스스로 번복하는 연약하고 비겁한 메시아가 됩니다. 주님이 둘 중 어느 쪽을 따르든 사탄의 음흉한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느 쪽으로도 대답하지 않고 제 삼의 답변을 내놓으셨습니다.
사탄이 구약성경 말씀을 살짝 비틀어서 유혹했으나,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라고 구약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인용해서 대답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보내신 종은 무슨 일을 해도 천사들이 보호해 주므로, 안심하고 네가 메시아임을 온 성안에 과시해 보이라고 부추겼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당신의 종이 사역을 하고 있다면 어떤 위험에서도 보호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전혀 위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만 시험하는 것은 그분이 절대 기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주님의 이 대답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살펴볼 여지가 있습니다. 사탄은 사실상 기적을 되도록 많이 일으키는 메시아가 되라고 부추긴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에 대해서도 딱부러진 답변을 하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은 앞선 두 시험에서도 주님의 대응은 이와 같았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첫째 시험은 사람들의 현실적 욕망을 채워주는 메시아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떡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혹은 그것을 우선적으로 충당해주는 메시아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삶 전체를 거룩하게 주관 통치하시기에 당연히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는 일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시험은 사탄에게 절만 하면 천하만국의의 영광을 차지하게 해준다는 것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메시아가 되라는 요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대놓고 거절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경배하겠다고, 즉 하나님의 뜻에만 따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백성들로 하나님과 먼저 화해하게 만든 후에 백성들 스스로 그분의 뜻에 합당한 나라를 만들게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도 기적을 일으키는 메시아가 되지 않겠다고 직접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다거나, 백성들에게 기적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죽어가는 병자들을 고쳐주었고, 죽은 자도 살렸으며, 폭풍우도 말씀 한마디로 잠잠케 했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만여 명을 먹였습니다. 위급한 경우에 비상한 방안을 동원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대답은 앞으로 행할 어떤 기적도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따를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단순히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과시할 목적으로는 절대 기적을 베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신자가 이 땅에서 살다 보면 기적이 절실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너무나 사악해진 이 세대를 보면 주님이 당장 오셔서 단번에 심판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곧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시켜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주님의 대답은 하나님이 시켜야만 기적을 일으키겠다는 뜻인데, 이런 비참한 상황을 지속시키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지 궁금합니다. 도대체 언제쯤에나 극도로 타락한 이 세상의 죄악을 깨끗이 해결하고서 당신의 공의를 바로 세우실지 신자들의 가슴만 나날이 갑갑해져 갑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뜻을 정확히 따져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명기 6:16을 인용한 것인데, 원문은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기적을 소망하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으나,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처럼 시험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사백 년간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열 가지 이적으로 구원해 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서쪽 해안가 지름길은 애굽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노예로 사느라 전쟁 경험이 없는 이스라엘이 두려워할까 우회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앞을 가로막는 바다를 갈라서 추격해 온 애굽 군대를 수장시켰으나, 결국 그들이 도착한 곳은 먹고 마실 것이 없는 신 광야였습니다.
다시 여호와가 이끄는 대로 므리바에, 맛사는 므리바의 별칭임, 도착해 보니 여전히 마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은 모세와 다투며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출17:2)라고 야단쳤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모세가 모든 일을 자의로 하지 않고 일일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따랐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에게 불평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를 시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불평이라고 여겨선 안 됩니다. 그들은 당시의 세계 최강국 애굽을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열 번이나 무참히 패배시키는 큰 권능을 목격했습니다. 홍해에선 바다가 갈라진 사이의 마른 땅을 모든 백성이 안전하게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 후에 도착한 신 광야에서도 하늘로부터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충분히 공급받았습니다. 세상 어느 민족도 체험은커녕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엄청난 권능을 온 백성이 이미 양껏 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는 이적을 체험한 직후입니다.
‘시험하다’는 히브리어 동사 ‘나사’는 주어가 하나님이고 목적어가 사람일 때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믿음을 견고케 해준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한지 시험해 보려고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했던 경우입니다. (창22:1)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한 것처럼 주어가 사람이고 목적어가 하나님이 되면, 사람의 완악한 불신앙을 뜻합니다. 모세는 그 시험의 의미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17:7)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만 불신한 것이 아니라, 물이 없는 눈앞의 상황을 핑계 삼아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의심한 것입니다. 나아가 당신의 임재하심을 지금 바로 증명해 보라는 것인데, 사람이 감히 하나님께 행할 수 없는 교만한 요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의 그 말을 인용했으므로, 시험의 헬라어 ‘에크페이라조’도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한두 번 그분의 능력이나 임재를 의심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그 한계까지 계속해서 검증하며 확인하겠다는 완악한 불신앙을 뜻합니다. 사탄이 지금 세 번이나 주님의 메시아 사역을 훼방하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바로 시험입니다. 나중에 사탄에게 미혹 조종된 백성들이 일관되게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 또한 시험입니다.
백성들 요구에 따르라.
주님은 사탄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즉 기적을 많이 베푸는 메시아가 되지 않겠다고 거부했습니다. 말하자면 백성들에게 기적을 많이 베푸는 메시아가 되면 거꾸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셈이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주님은 당신의 신적인 권능을 드러내어야 하고 또 위급한 상황에 처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야 할 때는 초자연적 능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므리바에서 이스라엘이 완악하게 당신을 시험했지만, 하나님은 당신께서 택한 백성인지라 불쌍히 여기고서 모세더러 반석을 지팡이로 치라고 해서, 즉 기적을 일으켜서 생수를 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사탄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 까닭은 어쨌든 주님이 인용한 말씀 그대로 므리바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물이 떨어지자 당장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신학적으로 따져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들의 이전 경험이라도 회상해야 하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그때그때 형편에 맞추어서 자기들이 필요하거나 소망하는 일을 요구하면 하나님은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램프를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푸른 거인이 나타나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식의 하나님입니다.
나름 잘 봐줘야 평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고 자기 뜻대로 자신이 책임지고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자기는 손 하나 꼼짝하지 않고 있을 테니까 하나님이 곧바로 모든 것을 대신 다 처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바라는 일은 현실 삶이 만사형통하는 것 하나뿐입니다. 고갱처럼 타히티 낙원에서 매일 무위도식하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무 고난과 문제가 없는 무사 무탈삶을 하나님이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께 자기 전부를 완전히 위탁하고서 그분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믿음은 눈을 닦고도 없습니다. 대신에 인간이 주인이고 하나님이 종이 되는 관계만 원하는 것입니다. 원죄로 인해 이미 인간이 이 땅의 주권자 통치자가 되었기에, 하나님마저 그런 질서와 체계 안에 인간의 밑으로 들어와서 인간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꾼 직후인데도 물이 없으므로 곧바로 하나님도 없다고 했는데, 갈증이 날 때 당장 물을 내놓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꼴입니다. 수많은 이적을 체험한 이스라엘이 그 정도라면 다른 족속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 필요에 따라 그에 합당한 온갖 신들을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지금도 각 나라와 민족별로 합당한 종교를 믿으면 된다고, 아니 그러는 것이 옳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력으로 통제 주도할 수 있는 일은 문제나 고난이 될 수 없습니다. 도무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닥치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믿음인데, 따지고 보면 그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기적입니다. 매번 위급할 때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달라는 것은 매번 기적을 베풀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주님더러 기적을 베푸는 메시아가 되라는 부추김은 백성들의 모든 요구를 그대로 다 들어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미약하고 어리석고 불쌍한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보호 인도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교묘한 속임수요 광명한 천사를 가장한 모략입니다.
두 종류의 시험
므리바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실존 여부부터 의심한다면 신자가 아닙니다. 그런 불신자라도 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진심으로 믿고 싶다는 소원과 열정으로 당신의 은혜를 체험하고 싶다고 기도할 수, 즉 그분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 소원이 진실하고 간절하다면 하나님도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은혜와 권능을 체험토록 응답해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믿음이 있는 신자도 비슷한 의미의 긍정적 시험을 할 수 있습니다. 겁이 많은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 출전할 결심은 했으나, 승리할 수 있다는 징조를 보여달라고 두 번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극렬한 풀무 불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간섭해서 자기들을 건져 주신다고 믿었는데, 더 중요하게는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기꺼이 하나님만 경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도 어떤 면에선 하나님을 시험해 본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진정으로 자신의 믿음을 성숙시켜 보겠다는 뜻의 시험이라면 하나님께 그에 합당하게 적절한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험은 기드온의 경우처럼 한두 번이면 족합니다. 매번 그분의 실존과 권능을 체험해 봐야만 믿겠다는 것은 종교적 핑계만 내세웠을 뿐 완악한 불신앙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의 뜻이 자기들과 다를지라도 묵묵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고 있는 온전한 신자라면 그분의 초자연적 간섭이 굳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도 그런 신자를 구하러 왔기에, 즉 인간의 요구에 따라 매번 기적을 베푸는 메시아가 될 필요가 전혀 없기에, 사탄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단번에 거절한 것입니다.
그 대답의 뜻은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라 당신의 사역을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결정과 실현에 어떤 존재도 개입은커녕 단 한 치의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자, 주님은 친어머니임에도 ‘여자여 아직 나의 때가 아니다’라고 완곡하게 대답했지 않습니까?
원죄 하의 인간이 원하는 것은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충족시키고, 특별히 이생에서 자기를 자랑하려는 것들뿐이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대로 절대 다 들어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간 다들 감옥에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요즈음 같아선 모든 이가 로또에 당첨되는 것을 간절히 소원할 텐데, 미국에서 당첨된 이후의 삶을 추적해 봤더니 모두가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고 합니다. 인간은 아무 부족함 없이 편할수록 죄악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더 큰 문제
더 큰 문제는 자기들이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조차 인간이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죄의 필연적인 결과로, 사탄이 유혹한 것과 똑같이 이스라엘도 예수님에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주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자, 그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본 자들마다 예수님을 모욕하며 소리쳤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며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게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라고 했고,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도 똑같은 욕을 퍼부었습니다. (마27:39-44)
그런 비아냥의 숨겨진 의미는 사탄의 유혹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지켜주시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까지 포함해서, 로마 제국을 물리쳐서 다윗 왕국의 현실적 영광을 재현해 달라고 주님에게 요청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 로마 제국을 무너트리려면 출애굽 때의 여호와가 일으킨 열 번의 초자연적 이적보다 더 많이 일으켜야 합니다. 그동안 주님이 베푼 기적들을 보면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고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라면 당연히 자기들 요구대로 그런 큰 기적을 일으켜 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너무나 무력한 모습으로 달려서 운명하기 직전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입니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일이 완전히 허사가 되었으니, 분통이 터졌을 것입니다. 그동안 거짓 마술사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 한 번도 그들의 현실적 필요를 충족시키러 온 메시아라고 밝힌 적도, 또 그렇게 사역한 적도 없었습니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일방적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하나님마저 자기 종으로 부려 먹으려는 원죄의 발산이었습니다.
대신에 주님은 새벽부터 병을 고치러 사람들이 몰리자, 천국 복음을 전하려고 다른 동네로 급히 옮겼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준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므로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주님은 일찌감치 도망쳤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자에겐 의사가 필요 없고 환자에게만 필요하다면서, 유대 사회에서 소외되고 비천한 사람들을 주로 만나서 치유 위로 구원해 주었습니다. 나아가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만 왕의 왕이시기에 이방인들도 아무 차별 없이 교제했습니다. 당신께서 유대 지도자들의 미움을 사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몇 번이나 제자들에게 예고하며 가르쳤습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지 정작 그렇게 조롱하는 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물리적 높이는 사람 키의 두 배 정도로 성전 꼭대기에서 기드론 골짜기까지의 높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천국 최상층 하나님의 보좌에서 음부의 맨 밑바닥 사이로, 인간은 메우기는커녕 도무지 계산도 못 할 만큼 깊이 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얼마든지 내려올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열두 영도 더 되는 천군 천사를 동원해서 일시에 로마를 무너트릴 수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베드로가 칼로 베어버린 대제사장의 하속 말고의 귀를 그 자리에서 바로 붙여 주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들이 말하는 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 조롱한 자들부터 엄중하고 영원한 심판을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대의 기적
그러나 여호와가 므리바에서 심판하지 않고 당신의 긍휼을 베푸셨듯이, 주님도 그들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당신의 대적들을 위해서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르니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이자 사랑입니까? 거기다 완전히 죽었다가 사흘 후에 부활하신다고 이미 약속했습니다.
만약 당장 내려오셔서 조롱한 자들을 심판하신다면, 모든 백성이 너무 두려워서 주님께 무조건 복종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온전한 믿음이 생기지 않기에 주님이 원하는 바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래로 한 번도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 당신을 믿게 만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진심으로 기꺼이 당신께 모든 것을 의탁하길 바라실 뿐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지금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해봐야 인간 문제를 근본적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선 아무리 주님이라도, 어폐가 있지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더러 자기 몸 하나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현실 삶의 형통과 안락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증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고 인간 외부의 여건이 잘못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잘못을 범하거나 환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계시한 뜻은 모든 인간의 모든 잘못과 죄악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바는 오직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받은 복이 있으면 믿고, 없으면 믿지 않는 자는 당신과 아무 관계가 없고 오히려 사탄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므리바 사건에서처럼 물이 없으니까, 하나님도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복 되게 해주는지 화 되게 해주는지 시험해 보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자기 노예로 부리려는 것이 모든 인간이 원죄에 묶여 있다는 여실한 증거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들 행동은 물론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도 전부 사탄이 지배하는 차원에서 오는 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혼이 육신과 안목의 정욕으로 또 이생에서 자랑하려는 탐욕으로 가득 차서 완전히 썩어져 있습니다. 기적이란 모든 수단이 고갈되어서 인간이 꼼짝달싹 못 하는 비상 상황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비상한 방식으로 탈출구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이 사탄의 종이 되어 있는 줄 꿈에도 상상 못 합니다. 그 영혼을 성령의 간섭으로 깨끗게 해야만 그 치명적인 문제가 해결되므로, 주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으로 베푸신 은혜야말로 기적 중에 최대의 기적입니다.
기껏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리는 곡예사 같은 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일은 주님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사탄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선언한 것도 십자가에서 모든 인생의 죗값으로, 무지한 영혼을 살려내는 부채 대금으로 당신의 전부를 성부 하나님께 대신 지불하는 사역만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님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사탄의 세 시험을 이겨낸 원리는 오직 하나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이니 메시아 사역을 훼방하려는 시도를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물리친 비결도 하나인데, 인간에게 오직 하나님의 참사랑만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너무나 궁핍해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현실적 축복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영원한 복락을 주어야만 그 현실 축복이 참된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알라딘 램프의 푸른 거인은 인간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죄악으로 빠트린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에덴에서의 원죄가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그 죄의 본성이 끈질기고도 교묘하게 신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혹시 위급해지면 초자연적인 대박 같은 은혜만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고 모든 삶을 그분의 거룩한 통치 아래에 온전히 내어 맡기고 있습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점점 더 고달파지는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지 못하면 아직도 예수님이 이 세 시험을 이겨내신 의미조차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좀 더 엄격히 말해서 완악한 이스라엘처럼 주님더러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면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내 궁핍한 현실부터 해결해 내라고 조롱하고 있는 셈입니다.
(4/5/2026) 박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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