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로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옛성
옛성
고목나무 아래 서 있으면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쿵 들린다
오래된 성문이 닫히는 소리
나의 생은
어느 애잔한 동물이 살다간 전생
낙엽이 떨어질 때마다
어떻게 울어야 할지
몸뚱이를 툭툭 쳐서 물으면
그림자로만 대답하는 사람의 울음
- 배홍배
전람의 그림 중 2번 째 곡인 옛성은 프랑스 남부의 허름한 어느 중세의 성문 앞에서 류트를 퉁기며 노래하는 음유시인 트루바드루를 묘사한 곡으로, 영감을 받은 하르트만의 그림은 남아있지 않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이 곡을 통해 그 애잔한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다.
https://youtu.be/paWjKBnYoHw?list=RDpaWjKBnYoHw
무소르그스키(1838~1881)는 글린카, 다르고미시스키, 발라키레프,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콥스키 등 19세기 러시아 국민악파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광활한 러시아 땅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2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농사 방식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농민들의 빈곤과 불안에서 비롯된 문제들에 주목했다. 당시 러시아의 음악계는 음악 활동이 이루어지던 몇몇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서구에서 유입된 음악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 작곡가들은 민속 음악과 농민 음악이라는 미개척 자원을 탐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청중에게 그들 자신의 삶과 역사를 자각하게 할 수 있는 음악적 형식과 양식을 모색했다.
무소르그스키는 민속 음악 특유의 선율 및 화성적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언급했듯 인간의 언어에서 비롯된 선율, 즉 당시 널리 사랑받던 고전적인 선율과는 다르면서도 누구나 즉각 이해할 수 있는 선율을 구현해내는 능력 면에서 다른 작곡가들보다 단연 돋보였다. 그는 전통적인 형식과 양식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했으며 마치 음악이라는 예술을 처음부터 다시 창조해야 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대가로 그의 작업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실험이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자신이 대담하게 구상했던 양식과 과거 거장들이 다져놓은 토대를 하나로 결합할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생명력이 넘쳤으며 위대한 음악적 천재 중 한 사람이 낸 새롭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오페라와 가곡 분야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는 순수 기악곡으로도 두 편의 걸작을 남겼는데 이 음반에는 그 두 작품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무소르그스키가 1874년에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은, 1922년 모리스 라벨이 완성한 탁월한 편곡 버전으로 연주된다. 라벨의 이 편곡은 그 자체로 관현악 레퍼토리의 고전이 되었다. 무소르그스키가 이 작품을 썼을 당시 그는 오랜 고군분투 끝에 자신의 위대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무대에 올리는 데 성공한 직후였으며, 머릿속에는 또 다른 두 편의 오페라 『호반시치나』와 『소로친치 시장』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 친구이자 건축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이 세상을 떠나고 하르트만의 회화, 드로잉, 스케치 전시회를 관람한 무소르그스키는 그를 기리는 음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작품들 중 10점을 골라 민요적 선율과 음악적 언어를 결합한 방식으로 생생하게 음악으로 재현해 냈다. 이 곡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프롬나드 테마다. 이 테마는 도입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2번, 5번, 7번 곡 앞에서도 각기 다른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며 8번곡의 일부로도 나타난다.
무소르그스키가 『전람회의 그림』에서 보여준 피아노 양식은 그 간결함과 꾸밈없는 질감 면에서 놀라운 혁신을 이루었다. 그는 건반 작품을 쓸 때 민요나 일상 언어가 지닌 군더더기 없는 경제성을 충실히 구현해 냈다. 라벨 역시 무소르그스키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여 학구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관현악 편곡을 시도했다. 그는 각 악기를 고유한 음색과 개성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로 다루었다. 이처럼 라벨의 편곡은 원곡이 지닌 본래의 정서를 충실히 간직하면서도 놀라운 변모를 꾀했으며 덕분에 이 작품은 콘서트홀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지휘자 블라디미르 골슈만
블라디미르 골슈만의 음악적 경력은 현대 음악계에서 가장 빛나는 사례 중 하나다. 파리에서 러시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파리 음악계의 주도적인 인물로 활약하며, 파리가 가장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적 아이디어의 중심지가 되도는데 기여했다. 유명한 ‘골슈만 콘서트’는 당시 어려움을 겪던 젊은 작곡가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원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오늘날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위대한 무용수 파블로바와 1920년대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공연에서 지휘를 맡았으며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달라는 초청을 받기도 했다. 1931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의 지휘자로 부임하여 27년간 연속으로 재직하고, 세인트루이스를 미국 전체에서 손꼽히는 음악 중심지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미국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섰으며,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완벽에 가까운 지휘 기술과 더불어 탁월하고 통찰력 있는 음악적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