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3주일 강론 :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루카 13,1-9) >(3.23.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라고 경고하시면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주님이 바라시는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중진국, 선진국으로 성장해나가는 중에 대형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중간 부분이 갑자기 무너져, 시내버스와 차량들이 한강에 빠지면서 32명이 죽은 사고였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붕괴 사고입니다.
세계 3대 지하철 사건 중에서 2개가 대구에서 일어났는데,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사고로 260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 중앙통 지하철 방화 사고 때문에 192명이 죽었습니다. 정말 끔찍스러운 참사였습니다. 그 사고로 죽은 사람이 많지만,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무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직장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섰던 그는 끝내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관이 중앙로역 한쪽 벽에 있는데, 사고로 불탄 물건들과 희생자들의 유품들이 있습니다. 추모관을 보며 자문하게 됩니다. 사고 희생자들은 죽어가면서도 자기 가족과 지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오늘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살아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늘 말하면서 기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1995년 6월 29일 17시 52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대형 사고들이 자주 일어났는데, 천재지변이든 다른 것이든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끔찍한 사건 사고와 하느님 심판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하시며, “기회가 있을 때 빨리 회개하라.”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언제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라는 말씀은 오늘 복음인 루카 13,1-5에만 나옵니다. 기원후 27-30년 중의 어떤 해에 갈릴래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바치려 했는데, 빌라도 총독이 로마 군인들을 시켜 유대인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총독으로 임명되어 기원후 26-36년까지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렸는데, 성품이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그 사건에 대해 알렸습니다. 성전 예배 보다가 참변 당했다는 말인데, 그런 일이 있으면 희생된 사람들이 우리보다 죄가 더 많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빌라도를 욕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왜 죄와 회개에 대해 말씀하셨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당시에 로마 식민지 지배정책은 정치, 경제, 군사적 지배에 관심이 있었지, 종교적 지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즉 반란 일으키지 않고, 세금 잘 내면 뭘 믿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원활한 지배를 위해 종교 자유를 보장했고, 종교지도자들을 적절하게 대우했습니다. 예루살렘 대사제들은 로마 군인들과 아주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성전에서 무참히 피살된 사람들은 로마가 금지하던 예배를 드리다가 죽은 것으로 보기 어렵고, 반로마 테러활동을 벌이던 열혈당원들로 로마군에 쫓기다가 성전으로 도망친 사람들이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그렇게 학살한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주장했거나, 그와 유사한 소요 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빌라도의 만행을 규탄해도 모자랄 판에, 회개를 강조하시면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빌라도에 의해 피살당했지만,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은 더 혹독한 벌(영원한 죽음)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죄를 가진 채로 죽지 않으려면 기회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또 실로암탑 붕괴 때 18명이 죽은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큰 죄를 지어서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탑을 부실하게 쌓은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빌라도의 학살 사건에 대해 데모하고, 실로암 탑에 대한 부실 공사업자와 담당기관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겠지만. 예수님이 관심 가진 것은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아닌 신앙적 개혁, “회개 운동”이었습니다. 회개(悔改)의 뜻은 “뉘우쳐서 고친다.”인데, 회개가 죄를 성찰하고 참회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 유대교 랍비는 소극적 영성인 “참회”보다 더 적극적 영성인 “선행”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마르틴 부버 지음, 장익 옮김, ≪인간의 길≫, 분도출판사, 1977, 42쪽).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 잘못에 대한 말만 하고 생각만 하는 자는 자기가 행한 그것을 마음에서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는 결코 돌아서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정신은 점점 거칠어지고 마음은 점점 완고해지며 우울함에 억눌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 어쩌자는 말입니까. 똥을 이리 쓸고, 저리 쓸어 본들 똥은 똥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가 안 졌는가 해봐야 하늘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꿍꿍거릴 겨를이 있으면 차라리 하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진주알을 꿰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성서에도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더는 거기 마음을 쓰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그대가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그렇다면 선을 행함으로써 이에 대처하십시오.”
예수님 당부처럼, 진심으로 회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