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으며 윤리가 핵심이었다. 가정에서의 효孝가 근본이 되어 나라의 충
忠으로 연결되었으며, 조상의 묘소墓所를 살펴보는 성묘와 이맘때쯤 벌초의 전통은 현재까지
사회의 뿌리가 되어 깊게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3일 새벽 7시부터 시작한 벌초는 일찍 끝났지만, 남해고속도로 의령나들목 진입부터
이미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올 것이 왔었다. 벌초행렬을 시작으로 추석이 바짝 다가온 느
낌이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추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제사와 음식 장
만이며, 다음은 경제적 부담이 으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애기한다.
올해도 추석전날은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내자는 벌써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지만 옛날의
며느리처럼 전을 부치고 나는 주방을 힐금거리며 눈치를 볼 것이다. 이제 그녀 나이도 칠십
밑자리인데 손놀림마저 여의치 못하고 설상가상 발목골절로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제수
씨 또한 거동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구완하고 있어 상황은 난감하기 그지없다.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추석을 나고 있을까.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우리
집안이 더 엄격하거나 더 느슨한 건 아닐까. 작년에 발표된 설문조사에는 ‘예전부터 지낸다’가
53%였으며, ‘최근 몇 년 사이 안 지내기로 했다’가 26%, ‘오래전부터 안 지낸다’가 21%로 집
계됐다. 이 응답대로라면 네 집 중 한 집, 국민 1000만여 명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전통을 버
린 것으로 파악되며, 금년에도 차례 문화를 거부하는 가구가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명절은 1년에 두 번, 여러 세대가 한곳에 모이는 특수상황이다. 할아버지 세대와 중장년,
젊은 세대는 제각각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특히 여성들은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이 노동인지 휴식인지 모호하다고 토로한다. 가사노동은 까닥하면 세대갈등과 남녀갈등이
연쇄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가 되고 있다. 우리 집안도 연시제·절사를 통합하여 5년에 한번
돌아오지만 그날 참석인원은 30여명이나 되어 음식 장만에서 항상 애로를 느끼지만 주방은
늙은 당숙모들이 아직 현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세대가 가고나면 규모는 또 축소되겠지만 형식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추
석 노동은 여간해서는 피할 수 없으며 그녀들도 자신의 세대에서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리라.
몸이 힘들면 마음도 망가지기 시작한다. 사위가 처가에서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
로 며느리가 시댁에서 더 크게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21세기 가장 귀한 덕목은 충과 효라지만 이제는 다시금 생각해 볼 시점에 이르렀다. 여태껏
이뤄낸 전통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집안 사정의 다름도 인정하고
추석차례를 산소에서 지내면 어떨까 싶다.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마다 축소되고 있지만, 대가족이 사라지고 남녀평등 의식이 커지면서 이제는 짐을 들어줄
필요가 생겼고 아예 모시지 않는 것이 아니고 연시제는 집에서 추석은 성묘를 겸하여 묘소에
서 지내는 변화를 시도해 본다.
명절과 제사는 현실과 다양한 형태로 타협 중이다. 토론하여 중지衆智를 모아보자. 어떻게
결정이 날지 그날 되면 알겠지만 서로 배려하면서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면 갈등은 줄일 수 있
겠다. 가치와 관점에서 보면 누군가는 포기 선언을 해야 하며,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차례나 제사는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나름의 경건한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이런저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둥근 달은 점차 더 크게 영글어가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