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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 그 왼쪽 뒤는 천왕봉
(…)
그 길을 떠난 사람 가운데서
모두가 정말로 길을 잃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내가 길을 잃을지 아닐지에 달렸다는 것을
--- 바츨라프 하벨,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에서
▶ 산행일시 : 2011년 10월 29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2명(버들, 자연, 연하(煙霞), 5end, 드류, 화은, 감악산, 대간거사, 메아리, 해마,
백작, 승연)
▶ 산행시간 : 13시간 28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실거리 33.0㎞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23 : 56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30 ~ 03 : 50 -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雲樹里) 쌍계사(雙磎寺), 산행시작
04 : 45 - 불일폭포(佛日瀑布) 가는 Y자 갈림길
05 : 55 - 상불재
06 : 30 - 1,268m봉
07 : 12 - 내삼신봉(△1,354.8m)
07 : 48 - 삼신봉(三神峰, 1,289m)
08 : 38 - ┣자 한벗샘 갈림길
09 : 36 - ┤자 의신 갈림길
10 : 20 - 세석(細石)대피소
10 : 31 - 영신봉(靈神峰, 1,652m)
11 : 21 - 칠선봉(七仙峰, 1,558m)
11 : 45 - 덕평봉(德坪峰, 1,522m), 선비샘
12 : 25 ~ 12 : 45 - 벽소령(碧宵嶺)대피소, 중식
13 : 42 - 형제봉(兄弟峰, 1,453m)
14 : 15 - 연하천(煙霞川)대피소
16 : 20 - 음정 가는 임도
17 : 18 -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三丁里) 음정마을, 산행종료
17 : 57 ~ 19 : 50 - 함양, 목욕, 석식
23 : 07 - 동서울 강변역 도착
1. 멀리는 천왕봉, 맨 왼쪽은 촛대봉
▶ 내삼신봉(△1,354.8m)
우리는 오늘 또다시 지리산 쌍실종주(남북종주라고도 한다)를 시도한다. 하산완료 예정시각
17시. 쌍계사에서 삼신봉 넘어 남부능선을 지나고 주능선 삼각고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 틀
어 북부능선 영원령, 삼정산 넘어 실상사까지 실거리 40㎞가 더 되는 산줄기를 무박으로 가
려는 것이다. 2009년 9월 26일 의기양양하게 쌍계사를 출발하였으나 겨우 벽소령에서 더 못
고 삼정리 자연휴양림으로 탈출했던 아픈 기억을 지우고자 해를 걸러 절치부심하였다.
진용을 재편한다. 제1진이 주력으로 쌍계사에서 출발하고, 제2진은 의신마을 대성골로 오르
기로 한다. 어정쩡한 나는 어디로 갈까? 제1진에서 함께 가자고 부추기는 이도 없다. 고집일
까. 그러나 순전히 얼른 삼신봉에 올라 만복대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그 장쾌한 지리 주능선의
파노라마를 보려는 욕심에서 제1진을 자청한다. 여의치 않으면 벽소령에서 탈출해야지.
어째 출발부터 조짐이 수상하다. 오늘은 동서울에서 23시 30분에 출발한다고 고지했는데 버
들 님이 여느 때와 같이 0시 30분에 출발할 것으로 잘못 알고 26분을 지각하였고(26분은 크
다), 쌍계사 입구의 식당가 텅 빈 너른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졸음이 덜 깨서인지 어리벙벙하
여 갈 곳 몰라 괜히 동네 한 바퀴 돌고나서 바로 눈앞의 ‘↑ 쌍계사 0.7㎞’ 방향 표지판을 본다.
화개천이 조용하다. 아니 사위가 조용하다. 우리가 쌍계사 첫 손님일 게다. 불 꺼진 매표소를
지난다. 문화재관람료 대인 2,500원이다. 돈 굳었다. 6명 도합 15,000원이니 소주가 5병이라
고 대물환산 하며 희희낙락하는 우리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매표원이 자다가 들었나 보다. 뒤
미처 우리더러 어디 가시느냐고 묻는다.
머뭇거리자 삼신봉에 가는 거냐고 재차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잘 다녀오시라 인사한다. 우리
가 삼신봉 넘어 세석 넘어 벽소령 넘어 삼각고지 넘어 영원령 넘어 삼정산 넘어 실상사를 가
려는 줄을 짐작조차 못할 것. 문화재관람료 내라고 할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돈 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마 캄캄하여 도저히 문화재를 관람할 수 없겠다는 지극히 현명한(?) 판단에
서이리라.
현판에 ‘三神山 雙磎寺’라고 쓴 일주문에 이어 금강문과 사대천왕 눈 부릅뜬 천왕문을 지나
법고(法鼓) 옆 계단을 오른다. 멀리서 목탁소리가 들린다. 설마 테이프를 틀어놓았을라고. 규
칙적이다. 묵묵 108개 돌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수행일 터. 돌계단을 이슥하니 오른다. 왼쪽으
로 국사암 가는 Y자 갈림길을 분별한다. 재작년에는 국사암 쪽으로 잘못 갔었다.
하늘 열린 개활지에 자리 잡은 찻집휴게소는 아직 불 켜지 않았다. 문득 하늘 우러르니 성글
었지만 별이 보인다. 기상청이 무척 고맙다. 주중 내내 비 온다고 하다가 막판에 비가 오지 않
는다 하여 이리 비가 오지 않으니 말이다. 오른쪽으로 불일폭포 가는 Y자 갈림길을 지나고 등
로는 비로소 소로의 산길이다.
산비탈 돈다. 오른쪽은 헤드램프 불빛이 닿지 않는 깜깜한 절벽이다. 여느 때는 한밤에도 목
어(木魚)적인 불일현폭(佛日懸瀑)의 독송(讀誦)이 골골을 울렸는데 오늘은 잠잠하다.
시누대 수준의 산죽 숲으로 난 길이다. 땀을 비로 젖는다. 주계곡 가까이 다가가 너덜 길 오르
다가 사면으로 비켜 전나무 숲길 지나고 물 졸졸 흐르는 주계곡을 건넌다.
길고 긴 너덜길이 시작된다. 선두 쫓아 내닫자니 너덜 골라 딛는 헤드램프와 눈, 스틱, 발걸음
이 바쁘다. 4중주다. 이중 하나라도 엇박자 내면 그대로 엎어진다. 고개 들어 공제선 가늠하
기 지치고 선두의 헤드램프 불빛을 별빛으로 혼동한다. 그래도 내 걸음으로 가야한다. 가쁜
숨을 잊을만할 생각을 생각해 내려고 하니 더 되다. 그저 무념이 상책이다.
상불재. ┳자 능선 갈림길에 진입한다. 숨 돌린다. 키 큰 산죽 숲길은 계속된다. 새벽이슬 내
린 산죽 잎이 차디차다. 날이 더디 샌다. 기대했던 장려한 일출을 보기는 글렀다. 우중충하다.
1,301m봉 오르는 중 06시 25분에 소등한다. 산죽 숲에서 고개 내밀 때마다 날은 부쩍부쩍 샌
다. 시간절약을 위하여 독바위는 오르지 않고 지나친다. 아깝다.
1,336m봉은 암릉 암봉이다. 직등불가. 왼쪽 사면으로 뚝 떨어졌다가 오른다. 내삼신봉이 눈
으로는 가까워도 발로는 멀다. 봉으로 돋우려고 한참 내렸다가 반등한다. 밧줄 잡고 슬랩 오
르고 뜀바위 건너뛰면 내삼신봉 정상이다. ‘三神山頂’ 이라 쓴 정상 표지석이 있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운봉 27, 1991 복구.
이곳이야말로 만복대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의 주능선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최고
의 경점이다. 말문 막히게 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골골의 만학과 울근불근한 천봉. 역사를 조망한다. 첩첩한 낙남정맥, 백운산, 똬리봉, 그 넘어
남해 금산의 아련한 모습은 저기가 엘도라도가 아닐까 하는 동경심을 일게 한다.
2. 천왕봉
3. 반야봉
4. 가운데 능선은 낙남정맥
5. 악양 가는 형제봉 능선
6. 내삼신봉 주변
7. 반야봉
8. 내삼신봉에서, 감악산 님과 대간거사 님(오른쪽)
9. 가운데 능선은 낙남정맥
10. 가운데는 세석대피소 위 영신봉
11. 삼신봉
▶ 세석(細石)대피소
내삼신봉에서 가래떡 따위로 아침을 때운다. 승연 님이 너무 늦다. 어련히 올까 길 저축하고
자 우선 떠난다. 나중에 승연 님의 늦은 연유를 물었더니 스마트 폰인 휴대전화를 잃어 그걸
찾느라고 40분이나 헤맸다니(휴대전화는 기어이 찾았다) 쌍실종주 대열에 복귀하기는 난망.
상불재에서 얼굴 본 이후 산행 마친 음정 차안에서 보았다.
1,024m봉 내려 갓걸이재. 우회로 마다하고 바윗길 올라 삼신봉 정상에 선다. 남한 남도의 자
존인 천왕봉을 다시 본다. 바윗길 내리면 영신봉까지 낙남정맥이자 남부능선 8.5㎞.
길가 魯雄 님의 추모비가 애틋하다.
“山이 좋아 山을 찾아
山이 좋아 山에 올라
山이 좋아 山에 누워
森羅萬象 벗을 삼네”
해마 님이 운해가 없는데도 뭍과 물을 분간하지 못한다. 막 달린다. 하기야 마라톤 풀코스를
3시 4분에 주파한 실력이다.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 페이스킬러다. 여러 사람 죽인다. 냅다
내빼버리니 벽소령 가기 전에 절반인 3명이 종주대열에서 이탈했다. 고사목 지대 지나고
1,286m봉, 1,278m봉, 1,213m봉 넘어 ┣자 갈림길 안부. 한벗샘이 오른쪽 사면 50m 지점에
있다.
갈림길에 일단의 배낭 큰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나더러 청학동에서 오느냐고 묻는다. 쌍계사
라고 답하자 그네들 큰 배낭 믿고 내리깐 눈 고쳐 뜬다. 세석대피소 가는 이정표가 수시로 나
타나지만 애써 외면한다. 오로지 발걸음이 말을 할 것이므로.
바위 지붕한 천혜의 비박 터를 지나고 석문을 통과한다. 봉봉을 등로 따라 우회한다. 그렇다
고 거저 봉우리를 넘는다는 덕 보는 게 전혀 없다. 번번이 사면 깊숙이 떨어졌다가 곧추 오르
곤 한다. 왼쪽으로 의신마을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서 꾸준한 오름길이다. 세석 2.2㎞. 해
마 님과 대간거사 님은 훨씬 앞서 갔다. 내삼신봉에서부터 혼자다.
음양수. 암반에 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나는 이 음양수를 우리나라 최고의 명수라 믿어 의심
치 않는다. 해발 1,450m의 바위틈에서 나오는 모양새가 우선 그렇고 맛 또한 비길 데 없는 일
미다. 배부르게 마시고 수통 꼭꼭 눌러 담는다. 늪지 잠시 지나면 오른쪽으로 거림 가는 ┣자
갈림길 나오고 세석대피소 0.5㎞. 내쳐간다.
세석대피소는 북적인다. 노천 식탁마다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라면, 된장찌개, 누룽지 등등.
더구나 라면발 길게 늘어뜨리며 깨작이는 모습을 보니 내 목젖이 간질간질하다. 어렵게 고개
돌려 지난다.
12. 천왕봉
13. 내삼신봉
14. 반야봉
15. 시천면 신천리 주변
16. 멀리 왼쪽은 백운산 옆 똬리봉
17. 앞은 불무장등
18. 멀리 왼쪽은 백운산
19. 가운데가 천왕봉
▶ 연하천(煙霞川)대피소, 음정마을
세석대피소에서 벽소령까지 6.3㎞. 거기서 점심 먹을 요량으로 발걸음을 서둔다. 오는 사람
들과 열 걸음이 멀다하고 마주친다. 모두 인사성도 밝다. 나보다 앞선 수인사에 일일이 답하
느라 침이 밭을 지경이다. 영신봉을 데크 계단으로 내리고 걸음마다 경점이다. 천왕봉은 구름
에 가렸다. 백운산 한재 똬리봉이 가경이다. 반야봉은 언제나 단아하다. 어찌 보면 수밀도 모
양 요염하다.
너른 공터가 칠선봉이려니. 쭈욱 내린다. 오르고 내리는 닳고 닳은 돌길이 따분하다. 덕평봉
은 왼쪽 사면으로 크게 돈다. 선비샘. 파이프 타고 샘물이 줄줄 흐른다. 배낭 벗어놓고 포식한
다. 숲속 길 돌아 1,473m봉을 내리고 1,435m봉 직전 안부에서 지정등로인 왼쪽의 임도로 간
다. 곁눈질로 보는 덕평봉의 품이 아주 푸짐하다. 저래서 덕스럽다 하여 덕평봉이라 이름 지
었을 것.
벽소령대피소가 보인다. 절뚝이며 다가간다. 뜻밖에 우리 일행이 반긴다. 반갑다. 제1진의 해
마 님과 대간거사 님, 제2진 6명 모두 이제 막 점심을 마치고 출발하려는 찰라다. 부랴부랴 앙
가슴 두드려가며 점심밥 먹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제1진의 뒤쳐진 세 사람(감악산
님, 승연 님, 백작 님)을 두고 간다. 그들은 이곳 벽소령에서 탈출할 것이다.
이때만 해도 최소한 별바위등을 넘어 영원령(1,289.5m)은 손에 잡혔다. 그런데 연하천대피소
에서 착각한 옛날의 기억에 사로잡혀 갈 길 몰라 우왕좌왕 할 줄이야.
1,403m봉을 오른쪽 사면으로 가뜬하게 돌아 넘고 형제봉(1,453m봉)도 그러려니 성큼성큼 다
가가는데 왼쪽 사면으로 돌듯 하던 등로가 확 심술부린다. 에누리 없이 직등하는 것이다. 암
봉을 뒤로 돌아 꼬박 오른다. 가파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 하다 긴다. 땀을 짜낸다.
형제봉을 지나면 완만하다. 너른 공터인 삼각고지(1,480m) 넘고 연하천대피소. 삼정산 가는
북부능선을 찾으려 연하천대피소를 갔다 왔다 다시 갔다 다시 왔다 다시 간다. 옛날 기억에는
연하천대피소 지근거리에서 등산로 아님의 금줄을 슬며시 넘었었다. 대간거사 님은 연하천
대피소에서 왁자하던 등산객들의 취사소리까지 똑똑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 길이 흔적조차
없는 것이다.
지형도도 그 기억과 다를 바 없다. 계곡 옆 생사면으로 내린다. 살 붙은 능선 찾아 온 사면을
누빈다. 대간거사 님, 해마 님, 나 셋이서 한판 소극을 벌인다. 잡목, 너덜, 산죽과 일대 씨름
을 벌인다. 특히 산죽 숲을 뚫느라 곤욕을 치른다. 키 넘는 산죽 숲에 포위당하기도 한다. 헤
치다 보니 미역줄나무덩굴과 합세한, 가지 많은 나무가 쓰러져 역방향으로 누운 산죽 숲이다.
헛심만 오지게 쓰고 물러난다.
결국은 가까스로 아까의 너른 공터인 삼각고지 아래 음정마을 가는 뚜렷한 길로 들어선다. 이
길이 맞다. ┣자 갈림길 안부. 연하천대피소에서 불과 700m인 거리를 무려 1시간 25분이나
걸렸다. 직진은 별바위등(1,400m), 영원령(1,289.5m) 넘어 삼정산(1,156m)으로 가고 오른쪽
은 음정마을로 간다.
지금시각 15시 40분. 지쳤다. 분하지만 영원령, 도솔암도 놓아버린다. 이로써 우리의 쌍실종
주는 또 실패하고 만다. 연하천대피소에서 길 찾느라 헤맸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절대시간이
부족하다. 13시간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이고 15시간이면 해볼만 하다는 게 중론이다. 오른쪽
너덜 길로 내린다. 허탈하다.
임도. 음정마을까지 4.1㎞다. 산자락 굽이굽이 돈다. 만추로 환한 길이다. 길섶에는 산국이 줄
이어 만발하였고 산사면에는 낙엽송이 노랗게 수놓았다. 승용차들이 몰려있는 바리케이드
친 등로 입구 나오고도 한참을 더 내린다. 대자 갈지자 그리는 도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연
속해서 고사리 밭으로 질러 내린다. 멀리 우리 차가 보인다. 영화 마이웨이(The Winners, My
Way) 마지막 장면처럼 스퍼트 낸다.
20. 벽소령 가는 길에서
21. 덕평봉
22. 왼쪽 멀리는 백운산과 똬리봉
23. 형제봉
24. 형제봉 중턱의 명품 소나무
25. 멀리 가운데는 백운산
26. 음정마을
첫댓글 욕심내시지 마시고 반쪽식 했으니 쌍실은 완성이죠. 13시간에 거기까지 가신것도 준족이나 해볼터글구보니 작년 이맘때 지리가보고 한번도 몬가봤네여....애구 가보고 싶어라...
연하천 옆에는 왜 뚫고 그러셨어요 내년에 다시 가유 5월에 가면 좋을 거 같아요...
갈수록 회춘하시기 큰일입니다...
모처럼 지리산에 들렀습니다...날씨도 쾌청하여 조망도 굳이었고,,,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형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