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능리
반농반어 마을 이며 320세대가 모여 산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비양도가 만들어 지는 시기라 한다.(1002년) 옛 지명은 ‘盃令’이다. 보통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과 비틀어진 일이 생기면 ‘베랭’이라 얕잡아 부르기도 한다. 배령은 목사가 행차 길에 능향원 술잔을 올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2. 금능해수욕장
현무암 층 위에 패사가 퇴적하여 바다 빛이 에메랄드 아름다운 비취색을 띠고 있으며 ‘으뜸원해변’이라고 한다. 한림읍 16절경 중 한곳으로 협재해수욕장과 인접해 있으며 비양 섬이 바로 앞에서 북풍을 막아주고 있다. 주변에 한림공원과 더마파크가 있어 제주시 서부지역 관장지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대형숙박시설도 많아 수학여행 학생들이 많이 머무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름철 휴가 장소로 전혀 손색이 없다.
3. 금능석물원
장공익 석공명장이(올해 89세)은 아주 작은 체구다. 키가 160이 안 되고 몸무게는 50여 kg 조금 넘을까 말까 할 정도다. 그 작은 체구로 커다란 검은 돌멩이를 마음가는대로 주물럭거렸다. 손길만 닿으면 명품을 만들어 내어 500여 평 대지위에 장선생님 손길과 둘째 아들 정성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장공익 장인은 상대리 출신이며 1959년 금능리에 수은교 법사로 일하면서 돌을 다듬기 시작하였다. 몸이 허약하여 심방에게 의존도 많이 했는데 많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 중 한 사람이다. 70평생을 돌과 씨름하다 올해 초 병원에 입원해 계시지만 아직도 선생님이 정원 한 모퉁이에서 징을 치는 해머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돌많은 제주도에서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석을 만들고, 돌하르방을 다듬고, 초가집을 다듬으며 제주를 전 세계에 빛내신 어르신이다. 지금은 둘째 아들에게 전수되어 보존되고 있지만 과거 1980년대 명성에는 미치지 못함이 아쉬움이다. 러시아 고르바초프, 몽골 대통령에게도 돌하르방을 선물하고 미국, 일본, 카나다 등에 많은 나라에 정착하여 돌하르방은 제주를 홍보하고 있다.
4. 능향원(陵鄕圓)
금능리는 원형의 원담이 보존되고 있으며 고려시대 구축한 환해장성도 일부가 잘 남아 있다. 석물원 바로 앞 잿동산에는 능향원 있는데 제주에 민속신앙 중 하나로 영감과 할망이 한 곳에 모셔서 마을 분들을 지켜주고 있다.
잿동산은 1970년대에 유교식 포제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마을 원로들이 잿돈을 성금으로 내놓으면서 얻은 지명이다. 마을이 발전으로 신당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신물동산에 본향할머니 신과 소왕물에 영감 신을 1986년 10월에 이곳으로 모셔오게 되면서 잿동산에서 능향원이 된 것이다.
5. 원담
금능리에는 4개의 원담이 있다. 소원(작은원), 마른원(물이 늘 말라 있다), 집알원(집 울타리에), 조르기(자우락이란 지명에서)이다. 현재는 소원과 마른원만 유지하고 있으며 원담축제를 한다.
6. 배령연대(제주기념물 제23-19호)
제주도 방어시설중 하나로 38연대 중 이곳에 지명을 딴 배령연대가 과거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작업현장에서 만나면 늘 행복한 미소로 고객을 응대하는 장공익 명장
입구에 돌하르방이 손님을 안내하고 있다.
모람나무 모자(벙거지)가 무더운 여름에 잘 어울린다.
일붕스님(서경보 박사)
이 마을과 석물원을 지켜주는 수호신
그 아래 석문으로 관람객이 보호를 받으며 지나간다. 굿 아이디어다.
설문대할망도 더웠나 보다 초장삼을 뒤집어 쓰고
정공익 선생님 본인의 모습
김녕굴의 뱀을 치는 서련판관
다산을 했다.
할아버지가 손주들과 놀고 있는 모습 해학적으로 표현
전시품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십사 하고 가리키고 있다.
그 곁에서는 할망과 딸이
아기구덕에 아기를 지고 하나는 데리고
제주여인의 참 모습이다. 조금 더 있으면 양손에 아이가
제주에 어느 동네를 가도 몰방이는 보인다.
보통 30호에 하기씩 두는데 여이치 않으면
50여 호에 한기가 있는 마을도 있다.
게으른 마을이라 할 수 있겠다.
(제주초가 마을)
(집줄 놓은 장면 재현)
새봄이 오기전 봄 농사 시작 전에 지붕을 일어놔야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에 2월 영등이 가버리면 집줄을 놓고 지붕을 새로 단장한다.
화산으로 이뤄진 땅에는 물이 고이지 않는다.
동네마다 물통을 파서 봉천수를 길어다 먹는데
물을 담는 도구는 질그릇 허벅이다.
보통 여자 아이가 10살만 되면 애기대바지를
지고 물을 길러 간다.
할머니가 응가하는 모습
응가는 당연히 돼지가 먹고 후일 거름이 되어 다시 밭으로 가서
밑거름이 되어 건강한 작물은 다시 우리 입으로 순환방식이다.
할머니가 시~~ 하는 모습 한 구석에서
손으로 가운대를 살짝 가리고 앉아서
에구 부끄 ^^
제주해녀가 바다 밭에 들어가 큰 바위 아래 전복을 따는 모습
장선생님의 작업장인데 이제는 둘째 아들이 작업을 하고 잇다.
오늘도 현장에서 아드님을 만나서 집안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돌로 만든 미로 길
입구- 들어가면 등치가 좀 있는 사람은 걸어다니기도 어렵다.
(사농바치 복장)
사냥을 하러 가는 시기는 겨울 농한기 철이다. 추워서 감태모자를 쓰고 총 한자루 둘러매고 개 한마리 대려서 이른 새벽에 나간다. 화심하고 담배는 필수품이다.
성냥이 귀한 시기라 화싱을 갖고 다닌다.
(소에 짐을 싣는 장면)
암소는 고분고분 말도 잘 듣지만 숫소는 성질이 좀 있어 아이들 부리기는 가탈스럽다. 질매 위에 양쪽으로 짐을 잔득 싣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장선생님이 직접 자화상을)
설문대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았기 때문에 가슴이 축 늘어졌다.
(동물농장)
제주의 발전하는 모습으로
(1만8천 신들의 모습)
저 안으로 들어가십서
입구로 나오면서 불교계의 불상과
(제주시 동자복의 모습)
동굴입구에서 마지막을 시원하게 마무리 하고
단체사진 한장 남기면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