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픽사(Pixar)처럼 집단 창의와 협업이 안 될까?
LG Business Insight 2015년 9월호(Weekly 포커스)에 실린 박지원 책임연구원이 기고한 "우리는 왜 픽사(Pixar)처럼 집단 창의와 협업이 안 될까? 라는 주제에 대하여 정리해 본다.
창의적 성과 창출을 위해 구성원 간 집단 창의와 협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집단 창의와 협업의 대표적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기업들도 브레인트러스트와 같은 회의가 활용되고 있지만 그 성과는 크지 않다. 픽사에는 창조적 마찰의 장을 열어주는 리더십과 신뢰 문화가 있다.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는 픽사를 대표하는 핵심 멤버들과 영화감독과 제작팀이 한 자리에 모여, 제작중인 영화의 이슈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나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자 회의시스템을 말한다.
토이스토리 감독이었던 존 레스터, 월-E 감독이었던 앤드류 스탠튼, 몬스터 주식회사 감독이었던 리 언크리치 등 픽사의 핵심 멤버 8명이 현재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감독이나 제작팀은 영화 제작 과정중에 어려움에 봉착하면 이들 8명의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나 또는 별도로 조언을 구하고 싶은 다른 동료를 소집한다.
보통 오전에 지금까지 작업된 내용에 대한 상영회가 열리고, 점심식사 후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에서 감독은 영화 진척 상황과 현재 직면한 문제를 설명하고, 이후 참석자들로부터 적나라한 의견과 피드백을 받는다.
인사이드 아웃의 감독인 피크 닥터 역시 그 자신이 브레인트러스트 멤버이면서도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을 여러 차례 가지면서 관객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관객 입장에서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여 갈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어찌 보면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은 타기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아이디어 회의나 리뷰 회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집단 창의와 협업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회의는 많아졌지만 기대했던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영화 제작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의 감독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공헌을 해 준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픽사의 공동 설립자 애드 캣멀 역시 픽사 성공의 핵심 요소로 브레인트러스트를 꼽고 있다.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가 우리가 몰랐던 획기적인 제도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우리와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픽사의 집단 창의와 협업, 무엇이 다른가?)
1. 문제 해결 중심의 생산적 회의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은 단순히 진척 상황 체크를 위한 회의가 아니라, 창작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동료들 간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의미있는 자리이다.
2. 포지션 파워가 작동하지 않은 집단 창의 현장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는 픽사를 대표하는 핵심 멤버이자 최고의 전문가들이지만 이들은 조언만 해줄 뿐 지위를 앞세워 감독에게 구체적인 일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픽사는 해당 애니메이션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그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감독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의견 충돌을 감수할 수 있는 상호 신뢰 문화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에는 의견 충돌로 인한 관계적 불편함이 없다. 대신 서로의 발전을 도와주는 동료로서의 신뢰가 끈끈하다
4. 혁신의 장을 만들어내는 리더십
픽사의 리더들은 구성원들이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며, 그들의 의견을 활용하여 창조적 결론을 도출한다.
5. 복잡한 협업 과정에서도 책임자는 분명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들도 감독에게 수정을 지시할 수 없다. 난관이 발생하면 감독이 책임을 지고 해법을 찾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감독을 외롭게 혼자 두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감독에게 있지만, 어려움에 봉착할 경우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브레인트러스트가 존재한다. 또한 픽사 내부에는 실패를 두렵거나 학습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픽사는 실패를 단지 특정인의 책임으로 몰기보다 픽사 모두의 문제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픽사의 성공적인 집단 창의와 협업이 가능한 것은 동료 간 신뢰 문화와 창조적 마찰의 장을 만들어내는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집단 창의와 협업은?)
1. 비생산적인 회의가 많다.
비생산적인 회의가 늘어나고, 이메일의 참조가 넘쳐나는 등 중요하지 않은 이메일이 수북하게 쌓인다. 이로 인해 정작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한 우를 범하기도 한다.
업무 협업의 툴로 회의나 이메일, 메신저 사용률이 증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업무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또한 실적이나 진척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도 지나치게 많다.
사업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토론하기보다는 보고를 위한 회의가 많다 보니 회의를 위한 문서 작성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회의문서는 잘 정리되어 있어도 정작 회의 시간에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드물어 회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2. 상급자의 포지션 파워가 강력하게 작용
상급자의 의견 위주로 거의 모든 회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문성이 높은 사람이 포지션 파워도 높을 수 있지만, 최근 기술의 진부화 속도가 빨라지고 아이디어나 지식의 수준이 반드시 포지션과 비례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회의 결과가 회의 참석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합리적 결론이 아니라, 처음부터 위계상 상급자인 리더가 어떤 발언을 했느냐에 따라 결론이 정해지는 오류가 쉽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리더가 제기한 의견이라 하더라도 실무자들의 판단 하에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 문화 속에서는 여전히 리더의 의견을 어떻게든 반영시켜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 개인 성과주의를 강조하면, 팀 내 소통이 줄고 비협조적으로 발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린다 힐 등의 공동 집필 저서인 '집단 지성'에 따르면, 혁신을 거듭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상호신뢰, 상호 존중의 문화를 형성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갈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많은 조직들에서 의견 충돌 등의 갈등에 대해서는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어 집단 창의나 협업을 저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회의 시 자신보자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얘기하기 어렵고, 동료 간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굽히는 경우가 많다.
즉,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집단의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협업 시 협업자들 사이의 탄탄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협업을 통한 공동의 목표보다 나 또는 우리 부서가 돋보일 수 있는 일에 중점을 두거나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는데 급급한 경우도 있다.
개인간 치열한 경쟁을 자극해 성과 극대화를 유도하는 성과주의의 인사 풍조가 이런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4. 혁신의 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리더가 많다
많은 기업들의 경우, 집단 창의나 협업을 강조하면서 정작 이에 걸 맞는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듯하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집단 창의나 협업 과정에서도 여전히 의사소통의 제약을 만드는 리더를 종종 볼 수 있다.
모든 협업자들의 의견을 골고루 경청하기보다 리더가 이미 정해놓은 방향대로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의견 위주로 취사선택하여 회의 분위기를 끌고 감으로써 다른 의견들을 제거시키는 경우가 그 예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사소통의 장은 잘 만들어놓지만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안이한 태도로 여러 의견을 단순 취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행여 협업자들간에 갈등이 발생하면 상황이 복잡해지거나 일이 커질까봐 갈등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중재하여 모두에게 해가 가지 않는 결론을 어렵사리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것은 중요하나 창조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절충하거나 취합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리더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지적 자극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5. 복잡한 협업 과정에서 책임관계가 불명확하다.
집단 창의나 협업 과정에서 책임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을 경우,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네 탓'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실패할 경우 여러 사람이 연관된 일에 자칫하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책임지지 않으려고 책임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그 결과 그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며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서로 미루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적당히 일을 처리하고 한발 물러서거나, 일이 잘 될지 안 될지에 대해 눈치를 살핀 후에 숟가락을 얹거나 발뺌하려는 태도도 간혹 발생하여 구성원 간 신뢰가 낮아지거나 점점 협업을 불편해하거나 껄끄러워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픽사처럼 집단 창의와 협업이 되려면...)
제도 모방이 아니라 집단 창의와 협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회의는 기업에서 집단 창의나 협업을 위한 중요한 시스템이다.
문제는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전문가적 역량과 깊은 식견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참석자들이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 역시 집단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집단 사고(Grouping Thinking)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집단 창의와 집단 사고를 결정짓는 유의미한 조직 단결력과 리더십을 지적한 바 있다.
픽사와 다른 기업의 회의 문화의 가장 큰 차이도 바로 여기서 나타나는 듯하다.
고객에게 기발하고 경이로움을 주는 아이디어와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이라는 제도는 그 누구도 모방 가능하다.
하지만 픽사만의 신뢰 문화와 창조적 마찰의 장을 열어주는 리더십은 사실 쉽게 따라가기 어렵다. 제대로 된 집단 창의와 협업으로 가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고민의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
(Weekly 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