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예술인가? 수필은 예술이다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그 말의 기저에는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되는 글에서 문학성을 보기가 어려우니 수필은 문학이 아니며 예술이 아니다’는 비아냥거림이 깔려 있다. 나는 등단하고 나서 문학성이 무엇인지를 몰라 지금까지 헤매어 왔다. 문학성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닥치는 대로 대략 일백여편이 넘는 글을 쓰고 난 후 비로소 ‘문학성이란 이것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수필의 문학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문학성에 대한 언어적인 개념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문학성의 사전적 정의는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이다. 이 정의에는 세 가지 단어가 사용된다. 문학(文學). 작품(作品), 예술(藝術) 이란 단어이다. 이들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자.
문학 :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작품 : 예술적 창작활동으로 얻어지는 제작물
예술 :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또는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단어의 개념을 합성하여 “문학작품”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면 "문학작품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그냥 평상의 언어가 아닌 고도로 숙련된 언어적 기교와 기술을 사용하여, 아름답고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 표현한 창작활동의 결과물"이라 정의 된다.
결국 우리가 “문학성”이 높은 글이라고 하는 말의 뜻은 나의 사상이나 감정을 그냥 표현하지 말고 미적경지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표현하라는 의미이고, 내가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미적 경지가 낮으면 문학이 아니고 사상서나 철학서나 역사서일 뿐이고 문학 작품이 아니니 결국 미적수준의 높낮이를 두고 구분하는 것인데 미적 수준의 높 낮이는 결국 글을 다루는 작가의 기예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 엇더리
이 시는 황진이라는 여인이 벽계수라는 남자를 호리는 시다. 저작 의도도 불순하고 미풍양속을 저해한다. 그러나 그 시가 담아내는 표현의 차원 높은 아름다움(=언어적 기예)으로 인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성적인 본능을 유혹하는 음탕함과 사악함이 사라지고 예술성을 얻게 되어 우리 문학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고 또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노래하는 황진이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면 벽계수는 벽창호(碧昌牛)라 개명해야 했을 것이다. 또 황진이가 이런 시를 지어 부르지 않고 솔직한 게 좋다고 "벽계수야 너 오늘 나하고 술 한 잔 하고 가라" 고 했다면 과연 벽계수가 황진이의 몸뚱이만 보고 말에서 내렸겠는가? 황진이는 기생이 아니라 예인이고 어떻게 해야 인간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안 천재적인 문인이다. 수필이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필가들이 해야 할 일은 사상의 깊이(인간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지만, 언어적 기교와 기술을 고도로 숙련되게 갈고 닦는 일이다. 기예를 닦는 이 일은 손가락이 굽도록 까지 모방하면서 써 보아야 하는 초인적인 인내를 요한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 진다.”는 말처럼 “기술과 기교” 그것은 99%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질 수밖에 없는 예인(藝人)이 되기 위한 기본인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수필가님은 당신이 쓴 수필을 스스로 예술의 경지에 올라있다고 여기고 있는가?
수필을 쓴다고 하니 지인들은 나를 참 한가하고 여유롭다며 부러워한다. 대충해서 작가가 되어서 폼 재며 다니는 돌팔이 한량들이 황진이의 마음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송도삼절은 되어야 같이 놀 수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