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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문제로 항상 어려움이 많다. 나에게 "이"라고 하면 너무 아프고도 힘들었던 기억과 아름답고 좋은 기억도 있다. 좋은 기억은 이란 캉간 현장에서 이 때문에 현장에서 수백키로 떨어진 지역 공항 부근에까지 가서 이를 뽑고 아름다운 페르시안 공주와 뜻하지 않은 사랑을 나눈 것이지만, 좋지 않은 기억은 동아건설에 다니면서 사우디 가기전 남대문 앞 치과에서 무조건 이 몇개를 뽑고서 수십년동안 고생한 것등이다.
나는 왕십리역 사무실 부근 치과에서 이를 빼기도 하고 틀니를 해서 넣기도 했지만 너무 불편해서 아무래도 인플랜트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값도 워낙 비싸고 잘못하면 또 후유증도 크다고 해서 어디서 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곰곰히 생각하던 차에 문득 오래전에 둘째 아들 율이 다니던 둔촌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참좋은 김치과'를 생각하게 되었다.
곧바로 병원을 개업했다고 했다.나는 그전까지도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줄 알았는데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신다. 그녀는 졸업하면서 어디에다 개업할까 망설이다가 "이왕이면 서울에 가서 승부를 보자"하는 생각으로 서울에 개업케 되었다고 했다.언듯 볼 때 그녀는 안철수 의원과 닮은 그런 모범학생 모습이다. 지금은 의사가 세명이고 간호사가 열명인 작은 기업규모의 치과병원이다.
반드시 김종숙 의사가 최종 확인한다.바쁜 사람은 숨넘어 갈 지경인데도 꼭 그 원칙을 지킨다. 이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한 후 8개를 인플란트 해야 한다면서 필요성을 설명해주었다. 총2,000만원인데 아들 율이부터 10년이상 된 고객이므로 10프로 할인해서 1,800만원에 해드리겠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면 고사장님의 제2의 인생이 펼처집니다. 이제 겨우 62세이니,20년은 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졸업후 37년이 지난 2009년 여름 전남의대 졸업생 80명중 단체로 상해 기념여행을 다녀 왔는데 총 참여의사는 32명이었다고 했다.특별히 사정이 있는 사람 몇명 빼고 올 수 있는 사람은 다왔는데 절반도 안된다고 했다.의사라고 해서 다 성공하는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이는 개업했다가 폐업했고 어떤 이는 개업은 했지만 제대로 운영못하는 사람도 있고, 일부 봉급쟁이 하는 분도 있고 자신은 그중 얼마안되는 성공한 케이스 같다고 했다.
계약금 600백만원을 먼저 드리고 수술이 끝난후 1,200백만원을 드리기로 했다. 하루는 오른쪽 4개 수술하고 3주후에 또 왼쪽 4개를 수술했다. 그리고는 처음 몇달은 월 1회씩 가서 AS를 받고 그후부터는 두달에 한번씩 갔다가 6개월이 지나서 본뜨고 또 점검한 후 9 개월이 지나서 1차로 마무리되었다.그래서 잔금 1,200만원을 지급했다. 그후 조금 지나서 한쪽 인플란트한 곳이 이상해서 다시 또 뺀 후 다시 본을 뜨고 이렇게 마무리 된 것이 3년이 지났다.6개월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3년이 더 걸린 것이다. 그런데,2012년 가을 강남의 한 안과에서 녹내장 수술을 하고 사무실에 가려고 강변역 4번 출구에서 막 건널목을 건너려는데.초록색 신호등이 깜박 거렸다. 순간 한쪽 눈을 가려서 잘 안보이는데 급한 마음에 뛰면서 건너다가 앞으로 꼬꾸라져서 앞니가 부러지고 얼굴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팔을 벌리며 "저도 고사장님.보고 싶었어요" 했다. "이런 경우 갈 병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하면서 위로했다. 그래서 갈 때 마다"김종숙 선생님! 제 2의 인생이 펼쳐 진다더니,청년때 김치과에 왔다가 이젠 백발 노인이 되도록 이치료만 하니 언제 제2의 인생이 펼쳐지죠?"하자, "좋은 입을 드렸잖아요?"했다. 이에 내가"좋은 이는 음식 먹는데 사용하고 좋은 입은 입맞춤하는데 써야죠. 그러니 이젠 제2의 인생을 맛보도록 입술을 주셔야죠"했다 이에 "우리 고사장님은 못말려.멋쟁이.대단하셔! 의사 선생님한테도 이런 농담을 하시다니"하고 웃었다.
지난 2016년 3월에 병원에 가서 보니,그녀의 책상에 "의학박사 김종숙"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김종숙 선생님! 안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명의이신데 뭐하러 또 공부했나요?"하자, "그냥 자기 만족이죠.이젠 고사장님과 같은 고대동문이 되었네요."그러면서 고대 칫과 대학 구로병원의 임재석 박사가 저의 지도 교수이시고 그로부터 박사학위 받았어요"그랬다. 그런데 임박사는 우리동문 모임에 안나와서 만난 지가 48년도 더 되었어요. 임박사는 고등학교 2학년때 나와 가끔 외국영화를 보러갔는데 , 나는 영화에서 영어대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못알아 들었는데 그친구는 다 알아듣고 나에게 통역까지 해주었지요.나보다는 격이 다를 만큼 공부를 잘했어요. 그 때 갈 때는케이크를 사서드리며 늦게 나마 박사학위 축하를 해드려야겠다. 아래 사진은 김치과 병원에서 오랜만에 같이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서 어떤 이는 너무 잘 어울리는 연인 같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