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김포공항 - 박완서
민근홍 국어마을
[줄거리]
노파는 손녀의 자상한 부축을 받으며 박물관을 구경 중이다. 그러나 노파는 심통이 난다. 제 에미를 닮아 곱살스런 데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손녀가 팔상전 어쩌고 불국사 어쩌고 하는 설명도 못 알아듣겠거니와 평상시와 다른 친절에는 분명 속셈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유리창 안에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은 집이야 백 층도 넘는 빌딩이 수두룩하다는 미국에다 비하겠는가. 환성을 지르는 손녀가 더욱 밉살맞다. 노파는 지청구만 듣던 평상시의 모습과는 다르다. 딸 덕에 미국에 가면 먹을 것, 입을 것이 지천일 테고 딸이 수 틀리게 하면 아들네로, 그 아들이 밸이 틀리면 저 아들네로 가면 그만이다는 베짱이 옹색하고 박하게만 생긴 얼굴에 당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사실 노파의 자식이 모두 미국에 있는 것은 아니다. 딸은 미국에, 둘째아들은 서독에, 셋째아들은 브라질에, 넷째아들은 괌에 있다. 노파가 생각하는 서독이며 괌, 브라질은 모두 미국 안에 들어 있다. 하긴 구파발의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무악재 고개 너머 현저동 막벌이꾼에게 시집을 왔으니 세상 구경이라고 해봤겠는가. 고작해야 인왕산 성터에 올라 굽어다 본 서울이 전부였으니. 그저 나들이 옷 차려 입고 동물원이랑 화신 상회랑 동양극장이나 가 봤음 싶다가도 산너머 친정 쪽이나 쳐다보고 울기나 했으니. 노파의 됫박만한 측량으로는 어차피 일러줘도 쇠귀에 경 읽기다.
노파는 거드름을 피우며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여전히 보호본능이 작용한 손녀는 노파의 허리를 싸안고 인파를 헤쳤다. 세상에! 깨진 사금파리 같은 것들을 놓고. 난 또. 무슨 휘황한 금줄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알았네. 무슨 어려운 놈의 이름은 그리 붙여 놨는고.
노파는 연민의 표정을 띤다. 소녀는 노파의 표정을 읽고 절망에 빠진다. 고모와 삼촌들이 그랬다. 미군부대 주위를 돌며 하우스 보이며 잡역부며 장교식당의 웨이터가 되더니 그들이 감축되자 직장을 못 구해 서러워했다. 그들의 동심은 미제와 달러의 경이로움과 함께 성장했다. 이민을 가기 위한 몸부림은 흡사 덫에 걸린 들짐승의 몸부림과 같았다. 그들은 생판으로 연줄을 뚫으려다 알선업체에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교제비를 뜯기기도 했다. 집안은 악다구니가 끊이지 않았다.
형제 판의 싸움은 언제나 고부간의 그것으로 이어지고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의 어머니를 때리고 에미 대신 계집 치는 놈 속모를 줄 아느냐며 할머니는 더 으르렁대고 그러면 삼촌은 나는 외로운 놈입니다, 독백을 하고. 소녀는 그 시절 누가 누구하고 어떻게 편이 나뉜 싸움인지 도무지 아리송했다. 그 때를 회상할 때마다 삼촌들의 발목에서 나는 쇠사슬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삼촌들은 이따금씩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쪽에서 기대하는, 이른바 생활비 같은 것은 언급이 없었다. 그저 바쁘다는 말뿐이었다. 노파의 편지는 소녀가 대필했다. 노파의 구구절절 사연이란 뻔한 것이어서 너희들을 못 보고 죽을 것 같다는 탄식 섞인 엄살과 보고 싶다는 말. 그리고 돈 없이 얹혀 살려니 구박이 막심하다. 돈을 좀 보내라는 말. 물론 소녀는 마지막 말은 쓰지 않았다. 노파는 그런 줄도 모르고 꿈만 좋아도 돈이 들어 올 운으로 해몽하고 몇 번씩 편지를 읽어 달라고 했다.
물론 허망하기는 소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이 나라에서 자유로워진 그들이 이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러나 할머니의 용돈이 오지 않듯 그런 소식은 오지 않았다. 다만 김치에 대한 거의 환장할 것 같은 허기증을 호소하기는 해서 소녀는 고소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것도 분명해지지 않은 채 할머니의 떠남이 다가온다. 섭섭함과는 다른 묘한 이질감이 소녀는 싫다.
삼촌들도 그랬다. 멀쩡하다가도 떠날 날을 받아놓으면 그때부터 이상했다. 연민의 표정, 떠나는 자는 그것을 보인다. 남아있는 자에게. 심지어 삼촌들은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꼭 구제품을 안고 찾아 온 자선이 취미인 코 큰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녀의 손에 힘이 빠진다. 지금 할머니의 얼굴에 나타난 것도 같은 연민이다. 박물관 구경 한 번에 할머니의 심미안이 트이리라는 것은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뜻이 있어 온 곳도 아니다. 떠나는 시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생각한 소녀의 어머니가 구경이나 시켜 드리라는 말에 극장에 오고 보니 머리를 산발하고 피가 낭자한 포스터를 본 할머니는 질색을 한다. 하긴 소녀도 볼 마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곰탕에 김치를 두 그릇이나 비운 노파는 행복한 미소를 띠며 미국가면 구경거리가 많으니 돈일랑 뒀다 쓰라며 선심을 쓴다. 박물관에 들어온 노파는 방이 바뀔 때마다 소파에 앉기 바빠 소녀는 설명을 포기하고 혼자 열중했다.
드디어 마지막 방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노파의 얼굴이 놀라움과 기쁨으로 변하더니 외경의 빛까지 띤다. 대형 불상. 노파는 부자나라 미국에도 부처님은 안 계시리라는 것쯤은 안다. 한 식구처럼 국사당 벽에 모셨던 신령의 화상들. 용왕님이니 신칠성님이니 선바위니 형제바위니 소원을 빌기를 좋아한 노파는 우선 단 하나의 손자 길남이의 장수를 빌었다. 올해 삼재가 든 맏아들을 위해서도 빌었다. 딸도 걱정스럽고 미국까지 갈 자기도 그렇고 아니, 먼 후일까지 빌어두고 싶고…….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저, 비나이다. 그저그저…… 부처님, 제 마음 다 아시지요.”
부처님은 모두 아시고 다 들어줄 것만 같다. 손녀에게 돈을 달래서 불상 앞에 놓기까지 한다. 햇빛 속에 나온 노인은 피곤하기도 하여 손녀와 나란히 앉는다. 소녀는 할머니의 고목의 수피 같은 손을 만진다.
“네 고모한테 네 에민 너무 했니라.”
그랬다. 소녀도 그렇게 생각한다. 떠나는 딸에게 입힐 옷 한 벌을 장만해 주라고 한 할머니의 마음에 어머니는 찬물을 끼얹었다. 허름한 반코트 하나. 무슨 벼슬이나 하러 가는 줄 아느냐. 똥 치러 가는 데. 보조간호사 일을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그 나라에서는 할 사람이 없는 허드레 일을 하러 간다는 설명을 들은 노파는 하루 종일 분해하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사 신고 온 고모와 밤새도록 티격댔다. 이년 똥 치러 미국까지 가는 싸가지 없는 년. 이것이 고명딸에게 한 노파의 마지막 말이었다.
내일로 노파가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노파는 맏손자와 자고 싶다. 고추도 주물러 보고 잠투정도 받아주고 밤새도록 품에 품고 싶었다. 그러나 박복한 노파는 그 복도 없다. 손자와 잠을 자기는커녕 꼴도 볼 수 없게 며느리가 외가로 데리고 가버렸다. 사돈네 회갑과 겹친 것이다. 노파는 밤새도록 울었다. 떠날 시간에 겨우 대어 온 며느리는 친정으로 곧 돌아가야 된다고 설쳤다. 노파는 손자가 아프다고 울 정도로 안았다.
소녀는 할머니가 입은 촌스런 합성 양단 한복과 은비녀가 삐딱하게 꽂힌 허술한 쪽과 목에 걸린 영문이 새겨진 빨간 숄더백, 특히 손자에게 보내는 강한 애착의 눈을 보며 가슴 깊이 아픔을 느낀다. 차라리 이놈의 고장을 향해 어디서고 오줌을 갈기고 말겠다고 폭언을 퍼부으며 갔던 삼촌들을 배웅하는 것이 더 편했다.
쌍포리코. 한 젊은이의 물음에 노파는 대답한다. 아. 샌프란시스코요. 노파는 동행을 만나 반갑다. 갑자기 버스에서 내린다. 얘들아. 쌍포리코까지 가는 친절한 젊은이를 만났다. 내 걱정들은 마라. 손자의 얼굴이나 한번 더 볼까하고 찾았지만 벌써 갔는지 아무도 없다.
기체가 이륙하자 노파는 뿌리 뽑힌 고목으로서의 스스로를 인식한다. 노파는 울기 시작한다. 이 땅의 구질구질한 것까지 얼마나 사랑했던가. 노파는 자기 시신을 보듯 나동그라진 나무와 지상으로 노출된 수만 가닥의 수근이 말라비틀어지는 환상을 보며 서럽게 운다. 그 울음은 자신에게 바치는 조곡인 만큼 처절했다. 젊은이들은 그 울음소리가 못 견디게 싫다. 비행기만 아니면 뛰어 내려도 찻삯 같은 거 아깝지 않을 정도로 듣기 싫다. 이렇게 기분 나쁜 음색은 생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