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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따라 오늘도 부활하는 나의 믿음
분문: 롬 6 : 6 - 9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힌 것은 죄(罪)의
몸이 멸(滅)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罪)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者)가 죄(罪)에서 벗어나 의(義)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만일(萬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者)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死亡)이 다시 그를 주장(主掌)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의 죽으심은 죄(罪)에 대(對)하여 단번(單番)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對)하여 살으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自身)을 죄(罪)에 대(對)하여는 죽은 자(者)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對)하여는 산 자(者)로 여길지어다
2023년 송구영신예배로 드립니다.
2024년 표어를 로마서6장5절로 해서 ‘예수님의 죽음 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나의 부활’로 하여 날마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능력있는 성도님들 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안에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롬6장3절-9절의 말씀입니다.
그와 함께 죽으심에 연합한 자요
그와 함께 살으심 곧 거듭난 부활에 연합한 자의 체험으로 사는 자 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십자가의 죽음에 연합한 자이기에
다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난 것임으로
아직도 내가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사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며 내 안에 사시는 삶으로 사는 자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肉體)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爲)하여 자기(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러한 바울의 고백과 같은 삶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삶이므로 우리의 고백도 이와 같이 이루어야 합니다.
요 15:5
나는 포도(葡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果實)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날마다 살아 갈 때에
날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지체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떨어져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이 있는 ”연합된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과실을 맺게 되는 것이며 또한 이렇게 연합된 관계로 인하여 맺는 열매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각종 보화와 선한 열매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내 안에 그리스도의 것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았다는 연합의 관계를
분명한 사실로 받고 믿게 되면(믿음) 얼마나 큰 위로와 확신을 받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그 은혜란 무엇이며, 그 은혜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엡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恩惠)로 구원(救援)을 얻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심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였으니
이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살리심을 얻은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말 입니다.
이러한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이루게 하시려고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고난에 함께 하는 은혜를 허락하신 것이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연합된 자는
첫째로
얽매이기 쉬운 죄에 쉽게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죄와 상관이 없는
주와 연합된 한 몸이라는 주체 의식이 분명하기 때문에 쉽게 죄에 끌려가지를 않습니다.
둘째로
죄에 빠져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즉시 회개를 이루어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죄 속에 오래 머물지를 않습니다. 왜요? 다시 죄에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죄 속에 있는 것이 어색하고 괴롭게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노예였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남의 집에 머물고 있으면 편치 않는 일과 같습니다.
죄의 노예로 사는 옛사람은 나의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이 되었습니다.
새 생명으로 사는 나의 속사람이 나의 사는 집입니다.
밖 마당은 사단에게 내어 주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단이 역사하여도 내가 예전에 살았던 나와 상관없는 그 옛사람일 뿐입니다.
셋째로
설혹 옛사람의 간섭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받은 은혜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지를 못합니다.
이는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구원의 확신을 흔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죄에 넘어질 때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보좌에 앉히시기까지 함께하시는 연합의 은혜를
십자가로 받은 것이면 구원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끊임없는 날마다 죽노라하는 성화의 연단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시면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5절에 보시면 “본받아 연합하였다”. 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받아 연합하였다는 말은 본래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더 구체적으로 해석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힌 것은
죄(罪)의 몸이 멸(滅)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罪)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에 내어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못 박은 것은
다시는 죄에 매여 종노릇 하지 못하게 죄의 몸을 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은
이제부터는 죄에 매여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니
죄가 있으되 죄와 상관이 없는 자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죄와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오직 약속의 말씀대로 모든 믿는 자들이 고대하는 주님의 재림을 보게 하십니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罪)를 담당(擔當)하시려고 단번(單番)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救援)에 이르게 하기 위(爲)하여 죄(罪)와 상관없이 자기(自己)를 바라는
자(者)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과 고난에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고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될 수 있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이러한 놀라운 기적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세례를 통하여서만이 우리는 그의 안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세례를 통하여 주와 연합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人)이나 헬라인(人)이나 종이나 자유자(自由者)나 다 한 성령(聖靈)으로
세례(洗禮)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聖靈)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세례만 있으면
우리가 십자가의 세례만 이루게 되면 그와 연합된 자가 분명한 것이니
이것은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는 세례이며,
한 성령을 마시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으로 한 몸을 이룬 것이니
서로 나뉘고 갈라서는 것으로는 하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며 주도 하나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엡 4:4-5
몸이 하나이요 성령(聖靈)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所望)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主)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洗禮)도 하나이요
오직 이렇게 십자가의 세례인 한 세례 안에서만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세례가 없으면 한 주안에 함께 한 것이 아니므로 십자가로 죽는 죽음이 없는 자 곧 세례가 없는 자는 주와 합한 자들이 아닙니다.
바람에 날려가는 자들 바람에 일어난 자들을 보세요.
이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하고 간 자들이 아닙니까?
이 십자가의 고난을 이지기 못하고 나간 자들이 아닙니까?
이 십자가의 고난이 소용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이 십자가의 고난을 헛되이 여겨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하지 않고 어떻게 그의 부활에 연합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유대인(人)이나 헬라인(人)이나 종이나 자유자(自由者)나 다 한 성령(聖靈)으로
세례(洗禮)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각기 생각과 각기 사상과 각기 판단이 다른 열방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한 성령으로 한 세례에 함께 하는 것뿐입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온 몸과 지체가 연합되고 결합되어 오직 그리스도의 처소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성령으로 한 세례를 받았으면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고 우리의 새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란 우리 인생들의 본질(성)과 기질을 말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몸에는 이러한 옛사람의 본질과 기질이 남아 있어서
속사람의 선한 성품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끝 날까지 싸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은 선한 싸움으로 영생을 취하기 위한 싸움이니
시기나 다툼이나 욕심으로 싸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딤전 6:12
믿음의 선(善)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永生)을 취(取)하라 이를 위(爲)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證人) 앞에서 선(善)한 증거(證據)를 증거(證據)하였도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옛사람과 결코 함께 할 수 없기에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옛사람이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 풍속을 좇던 아담 안에서 함께 죄지었던 나입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단을 따르던 아담 안에서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던 나입니다.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으로 아담 안에서 불순종의 죄에 매었던 나입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아담 안에서 함께 한 사망의 지배를 받았던 나입니다.
사실 “죽음”이란 대단한 파괴력을 지녔습니다.
육신적으로도 일단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이 단절이 됩니다.
인간관계며, 법적인 관계도, 이 세상의 생존의 관계도 다 끊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은 세례를 받음으로 죽었습니다.
이것은 죽고 있다는 말이 아니며 죽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죽으려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세례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믿음)
그래서 죄의 지배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자유를 얻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는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죽을 수 있는 것을 고백하는 바울을 보세요.
죄의 유혹은 있으나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날마다 세례로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자도 아니며 죽으려고 하는 자도 아니며
오직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 것이며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롬 6:7
이는 죽은 자(者)가 죄(罪)에서 벗어나 의(義)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이렇게 세례로 죽어본 자가(날마다 죽는 것이니) 어떻게 죄에 거하여 다시 죄에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세례로 죽었으면 이제 우리가 자신을 보고 네가 누구냐?
물어볼 때에 “글쎄.....”라는 답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새사람입니다.”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까? 왜, 자기의 옛사람에게 연연해합니까?
그 옛사람은 내가 날마다 죽을 때에 하나씩 내어버린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새사람인 나를 더 이상 지배할 수도 흔들 수도 없습니다.
롬 6:8
만일(萬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는 일은 아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세요. (롬6:8)절 서두에 보시면 “만일”이라는 말이 있지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이 말은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때에 다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주의 죽으신 십자가의 고난에 함께 참예한 삶의 경험으로
지금 나에게 주와 함께한 그러한 죽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죽으심 같이 날마다 죽는 일로 그 체험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죽는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의 경험으로 또한 다시 살아나는 경험 또한 하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바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온전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기 안에 이루는 것일 뿐입니다.
날마다 죽을 때마다 하나씩 죽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는 놀라운 체험으로 감사하며 살되
그 후부터는 눈이 범죄 하니 범죄 한 눈을 버리는 순간 하나님은 새로운 눈을 주시며,
손이 범죄 하니 범죄 한 손을 끊어버리는 그 순간 하나님은 새로운 선한 손을 주시며,
마음이 범죄 하니 마음을 찢어 버리는 순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시는 체험을 날마다 하므로 그날에 온전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로 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다시는 죽지 않고 사망이 그를 주장하지 못함을 진정 믿으며 아는 자입니다.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者)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死亡)이 다시
그를 주장(主掌)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죽고 다시 사는 경험이 없는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죽고 다시 사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죽었으며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는지를 아는 산자라야 증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죽었다가 산자입니다.
그는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이며 의에 대하여 다시 살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음이나 우리의 다시 사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기인한 것이어야 합니다.
롬 6:10-11
그의 죽으심은 죄(罪)에 대(對)하여 단번(單番)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對)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自身)을 죄(罪)에 대(對)하여는 죽은 자(者)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對)하여는 산 자(者)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여긴다는 말은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여기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의 단번에 죽으심을 힘입어 죄에 대하여 죽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죽었으면 이제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니
이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여긴다는 말로만 한 것이 아닌 것임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右便)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生命)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리스도와 함께한 자신의 삶을 고백하였습니다.
빌 3:10-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復活)의 권능(權能)과 그 고난(苦難)에 참예(參與)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者) 가운데서 부활(復活)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穩全)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은 만난 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한다고 합니다.
부활 주님을 만난 그가 고백하는 말을 명심하세요.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바울은 자신이 즉시 부활한 것이 아님을 말하며
그 부활을 본받아 자신에게 이루려고 먼저 그의 죽으심에 그의 고난에 참예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죽는 일이 없이는 곧 세례가 없이는 다시 사는 부활이 결코 없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곳에서 그 복음을 듣는 모든 자에게 복음과 함께
이렇게 자기와 같은 믿음으로 살 것을 본받으라고 눈물로 당부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는 계시입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까지 이르렀든지 그 신앙의 현주소가 어느 곳이든지
바울과 같이 어찌하든지 주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부활에 이르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당시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증거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으면서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빌 3:16-18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行)할 것이라 형제(兄弟)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本)받으라 또 우리로 본(本)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行)하는 자(者)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十字架)의 원수(怨讐)로 행(行)하느니라
진정 바울과 같이 그의 부활에 이르려고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가므로
죄에 대하여 한번 죽은 자는 분명 또한 부활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강한 힘으로도 어떤 유혹도 은혜로 얻은 구원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우리의 구원”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비바람에도 어떤 강한 힘으로도 아니 죽음에서도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빼앗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피 흘리신 그 대가로
이루게 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지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임하는 날의 징조가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눅 21:25-27
일월성신에는 징조(徵兆)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民族)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因)하여 혼란(混亂)한 중(中)에 곤고(困苦)하리라 사람들이 세상(世上)에 임(臨)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權能)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人子)가 구름을 타고 능력(能力)과 큰 영광(榮光)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계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 그리고 대풍에 흔들리고 떨어지는 하늘의 권능들이 누굽니까?
대풍(광풍)이 불어 닥친 것은 어린양의 진노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는 땅이 변합니다. 산들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모두 바다에 빠지며 바닷물은 그 위를 덮어 넘치고 흉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아의 심판 때를 완숙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구원에 이르는 자들과 심판에 이르는 자들이 분별되게 됩니다.
이러한 노아의 때가 곧 인자의 임하는 때이니
심판에 이르는 자는
바닷물의 흉용함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나 죽기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자는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임하여
그들의 흉용함을 두려워 아니하며 오히려 안연할 것입니다.
시 46:2-5
그러므로 땅이 변(變)하든지 산(山)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洶湧)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山)이 요동(搖動)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셀라}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城) 곧 지극(至極)히 높으신 자(者)의 장막(帳幕)의
성소(聖所)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城中)에 거(居)하시매 성(城)이 요동(搖動)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오직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소를 기쁘게 하는 그 성중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않으며
하나님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이러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에게
새벽별들로 일어나게 하여 도우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마음을 굳건히 지키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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