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다 와 선악을 구별하다는
다르다
선악에 대한 히브리 원문은
Towb 와 Ra 로
그 원래의 뜻은
Towb 는 좋아하는(agreeable) 이고
Ra는 싫어하는(disagreeable) 이다
보편적으로 사용한 용례를 들어보면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에서 “좋았더라” 가 이 towb 이다
그리고
창세기( 창 ) 24장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였다.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좋다거나(towb) 나쁘다(ra/싫다)거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새번역)
출애굽기( 출 ) 21장
8. 주인이 아내로 삼으려고 그 여자를 샀으나,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ra), 그는 그 여자에게 몸값을 얹어서
그 여자의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내야 한다.
그가 그 여자를 속인 것이므로, 그 여자를 외국 사람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
이 절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에 즉 싫다는 의미로 “Ra”를 사용하였다
창세기( 창 ) 6장
2. 하나님의 아들들(다른 신들이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towb)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이 절에서 “아름다움” 의 원문이 “towb” 이다
이 towb에 대한 에녹서 표현은
“성욕을 느끼다” 이다
그런데 기원전 2-3세기 구약 히브리어 경전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Septuagint)
이 towb 와 Ra 를
“선(kalos)과 악(poneros)” 으로 번역 하는 바람에
그후 부터는 이 towb ra 를 선과 악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헬라어 신약 성경도 Septuagint를 따라 선과 악으로
번역하였다
즉 towb는 agathis 또는 kalos로
Ra 는 poneros 또는 kakos로 번역하였다
산약성서는 제자들이 애초에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이후 코이네 헬라어(보통헬라어/공용헬라어)로 번역하였는데
(다른 장에서 별도 논증할 생각이다)
번역할 그 때 그 번역 기준을 불행 하게도 Septuagint(70인역)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는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선악을 알게 된 사실을
이렇게 표현을 하였다
로마서( 롬 ) 5장
12.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이 구절은 인간이 아담을 통해 선악을 알게 된 것을
인간의 sarx에 자석의 (자성과 같은)죄성(sinful nature)이 틀어 온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즉 towb 와 ra를 알게(yada) 되는 것은
사람의 sarx(육체 + 혼)에 죄성이 들어 온 것이다
죄성이란 자석의 자력 처럼 어떤 물리적 힘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towb는 좋아해서 자기 앞으로 당기는 힘이고
ra는 싫어해서 멀리 밀어 내는 힘이다
마치 자석의 자력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은 극 끼리는 밀어 내고
다른 극 끼리는 서로 잡아 당긴다
죄성은 자석의 자성처럼 물리적 힝의 작용이 있다
Towb는 쾌락을 당기는 힘의 작용이고
Ra는 불쾌이고 마이너스 쾌락으로 밀어 내는 힘의 작용이다
또
인간의 행복과 불행 중
불행은 마이너스 행복인 것과 같다
마치
막대 자석의 자성은
좋으면 당기고
싫으면 밀어 내는 힘이 있는 것이다
자석에는 N극 S극이 있는데 S극은 마이너스 N극인 것과 같다
반면에 성령의 소욕으로 나타난 열매는 플라스적인 사랑만 있고 마이너스적인 미움은 없다
그 열매의 빛깔로는
기쁭과 마음의 평안만 있고
마어너스적인 불행(불행, 염려등)은 없다
불교에서는
불행해 지지 않으려면 행복을 버려야 불행이 행복과 같이 나가게 되지만
성령의 소욕은 아예 마이너스적인 것은 없다
죄성을 영어로 표현하면 nature desire 또는 sinful nature 인 것이다
아담으로 통해 들어 온 선악은 인간의 탐욕으로 곧 죄성인 것이다
이 죄성으로 인해 세상의 삶의 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반면에
성령의 소욕으로는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가 생성된다
양심이 곧 이성이고 율법이다
로마서( 롬 ) 2장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의 삶의 원리는 선한(agathos) 양심이고
세상의 삶의 원리(상식)는 세상 양심이다
세상 양심인 율법 또는 상식으로 삼아 살아 오다가 하나님의 이성(nous)이고 그의 법인 선한(agathos) 양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상기 두 삶의 원리를 영적 (선한)이성(nous)으로 구분히게 되는 것이다
그 표현이
선악을 분별하다 이다
여기서 선이라 하는 towb 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로 하나님이 보시기 좋아하시는 의 뜻이고
Ra는 세상의 삶의원리로 하나님께서 보시기 싫어 하시는 의 뜻이 되는 것이다
선악을 분별하다 는
두 삶의 원리를 영적 분별력으로 구분한다는 말이다
히브리서( 히 ) 5장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자들은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분별하게 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
가이사의 형상의 것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려 하지 않는다
이 분별력이 사람의 영적 이성으로 nous 이다
그릇과 같은 사람의 혼(psyche)에 마음(kardia 자아)이 있고
마음은 이성(nous)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판단한 것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영적 이성으로더욱 분별력이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 내용이
고린도전서( 고전 ) 14장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nous)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Nous : 이성(reasoning faculty)
하나님의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이성(nous가)이
곧 선한 양심이다
히브리서( 히 ) 13장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베드로전서( 벧전 ) 3장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베드로전서( 벧전 ) 3장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사람에게
의식( 인식하고 이성으로 생각하는)을 담고 있는 혼이 있고 또 혼이 인식하지 못하는 영(pnuma)이 있다고 밝혀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