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 항쟁(1987)
전두환 정부의 부정부패, 비리와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태도 지속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1) →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함(“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 국민들을 속임, 국민들이 분노함 → 그런데 전두환 정부는 오히려, 4· 13 호헌(護憲. 헌법을 보호하여 지킴) 조치를 단행함 → 이것은 기존(현행)의 ‘대통령 7년 단임과 간접선거(간선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 이것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고,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킨 조치였다. → 이러한 선언(1987년 4월 13일)은 또 다시 체육관 선거(대통령선거인단이 체육관에 모여서, 대통령을 간접으로 뽑음)로, 자신의 뒤를 이을 노태우를 대통령직에 승계하여 독재적 군사정부를 계속하겠다는 의미였다. →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진,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를 ‘6월 민주 항쟁’이라고 한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함 → 반정부 항쟁 도중에 연세대학교 이한열 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짐 → 시위는 더욱 확산됨(전국적으로 각계각층이 참가함) → 결국 전두환 정부는 굴복하고, 민주정의당 후보였던 노태우는‘6· 29 민주화 선언(1987.6.29)’을 하게 되었다. → 이 선언의 핵심적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실시였다. → ‘대통령 5년 단임 개헌’으로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노태우가 당선됨(김영삼과 김대중이 야권의 후보 단일화를 하지 못하여,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당선됨. 36% 득표) → 이후 대통령이 된,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의 노력으로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됨 →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의 집권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퇴보(退步. 정도나 수준이 이제까지의 상태보다 뒤떨어지거나 못하게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